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7)
드륵―
첫 수업 10분 전, 나는 학생들이 대부분 도착해 있을 시간에 교실로 들어갔다.
“…뭐야?”
교실에 앉아 있던 레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고는 뒤늦게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이제는 말없이 고개를 내게 돌려 표정으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얼굴을 무시하고 다른 쪽을 살폈다.
어제 그 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비웃음을 흘리며 그들을 향해 고갯짓했다.
“버려두고 왔는데 알아서 일어나서 잘 왔네.”
“…….”
“야.”
학생들은 꿋꿋이 정면을 바라보다, 내가 다가가 한 놈의 어깨를 툭 치고서야 몸을 떨며 내 쪽을 바라봤다.
“직접 오게 만들어?”
“아, 아, 아니… 난 왜….”
나를 보는 놈의 눈이 미친 듯이 떨렸다.
분명 나를 불러내 괴롭힌 기억은 있지만, 이렇게 잘 보이게 때린 기억은 없을 테니까.
무언가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한데, 그럼에도 머릿속에 남은 것은 두루뭉술한 두려움뿐이다.
나는 미소 지으며 어깨를 잡았다.
“가방 들고 옆으로 와.”
“응?”
“내 옆자리에 앉으라고. 너희 넷 다.”
놈이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자신이 왜 내 말을 따라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네 옆에….”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말없이 책상을 툭 쳤다.
그들이 시선을 교환하고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옆에 앉았다.
나는 가볍게 물었다.
“이번 시간 뭐냐?”
“…기초생물학…. 아마도.”
“그래, 좋네. 노트 펴.”
놈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 눈치만 보다 노트를 꺼냈다. 마침 교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나는 교수가 출석 명부를 뒤지는 사이, 옆자리 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 성적이 어떻게 되냐.”
“36등…. 옆에 얘네는 40등대…일 거야. 그건 왜?”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50명 중 40등? 요점 파악하는 능력은 기대도 못 하겠네.”
“그, 그런데 너도 뭐… 48등 아니었나?”
루카는 그랬지. 시험 날에도 결석했으니까. 내내 꼴등 자리를 차지하다, 마지막 시험에서나 간신히 꼴등을 면했다.
나는 굳이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노트를 가리켰다.
“지금부터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 토씨 하나 빼먹지 말고 다 적어. 쓸데없이 요점 찾을 생각 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기록해.”
“뭐?”
“적으라고. 전부.”
전부? 학생이 난감해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그런데 아까부터 왜 우리가 네 말을 들어야….”
“싫어?”
웃음을 띠며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학생이 눈을 슬쩍 피하며 말을 끌었다.
“아니, 전부 적는 건 좀….”
“싫으면 하지 말든가. 네 자유지. 공부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잖아.”
하지 말라고? 이렇게 쉽게?
정말 안 해도 되는 건가? 학생의 얼굴에 또다시 당혹이 서렸다.
그때 교수가 학생들을 둘러보다, 내 얼굴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루카스 학생, 얼굴은 왜 그런가요?”
“아, 제가 새벽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쾅―
책상 울리는 소리가 조용한 교실에 퍼졌다.
옆자리 앉은 학생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 손을 콱 붙잡았다.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속삭였다.
“하, 하, 할게…! 할게! 다!”
“…흐음.”
“새벽에?”
교수가 옆자리 학생을 번갈아 보며 되물었다.
저 멀리서 레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챈 듯했다.
교실을 채운 다른 학생들의 눈빛도 전부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손을 붙잡은 놈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별것 아닙니다. 친구들과 좀 다툼이 있어서요.”
“폭력 사건이라면 징계위원회를 열어야죠.”
“아니요. 그만한 일이 아닙니다. 좋게 해결이 됐습니다.”
교수는 굳이 나와 관련해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은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교수님들께 말하세요. 나중에라도 괜찮으니까요.”
“예, 꼭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커버를 씌운 얇은 책을 꺼냈다. 신력 특수 마법을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다.
나는 책을 펼쳐 교과서 밑에 깔아 두고 옆에 앉은 학생들에게 손짓했다.
“뭐해? 안 적고.”
“…….”
학생들이 멍하니 내 책을 내려다보다, 교수님의 말이 시작되자 황급히 손을 움직였다.
* * *
“그럼, 다음 주에 봅시다. 복습 잘해 오세요.”
교수가 교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옆자리 놈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끝, 끝났다.”
“루카스! 우리 다 썼어!”
학생들의 눈물겨운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그 외침에 책에서 눈을 떼고 노트를 빠르게 훑었다.
당연히 빈 부분이 있었지만, 필기하는 놈이 여럿이다 보니 그 빈 부분을 서로 채워 주고 있었다.
나는 다시 노트를 학생들에게 돌려주었다.
“잘했네.”
“…안 가져가?”
“참나… 공부를 첫 시간만 하는 놈들도 다 있네. 뭐 1교시만 들으면 학교 끝나?”
그 말에 학생들의 얼굴이 어두컴컴해졌다. 나는 웃으며 그들의 어깨를 툭툭 쳤다.
“여섯 시까지 힘내라.”
그렇게,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는 노트를 전부 수거했다. 학생들이 죽어 가는 얼굴로 팔을 주무르며 노트를 건넸다.
“글씨체 날아가는 거 봐라. 똑바로 안 하냐?”
내 타박을 듣던 학생 하나가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혹시 신고는….”
“안 해.”
내가 고개를 젓자, 학생들의 얼굴에 빛이 돌아왔다. 나는 그 모양을 가만히 보다 말을 이었다.
“너희가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 말이야. 내가 알기로 폭력 사건은 졸업 전까지는 언제든지 신고할 수 있는 걸로 아는데. 그치?”
“어? 아, 아니… 그럼….”
나는 말을 잇지 못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미 병원에 가서 소견서까지 받아 놓았다.
나는 아까와 달리 천천히 노트를 읽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앉아 이미 아는 고등학교 수업을 다시 듣기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강의록만 있으면 30분 만에 끝날 것을 1시간이나 듣고 있어야 한다니.
그렇다고 교육과정이 현실과 같은 것도 아니라, 수업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으니 조금 고민이 됐는데….
‘이거 좋네.’
나는 강의 내용이 줄줄이 적힌 노트를 덮으며 씩 웃었다.
“그럼, 빌려 간다.”
* * *
루카스가 자리를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학생이 한숨을 쉬며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양아치야, 이 새낀….”
“노, 노트 뜯는 양아치가 어디에 있어….”
“어쨌든 갈취라고! 노트는 내 물건이 아냐?!”
학생이 버럭 성을 내자 다른 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진정해. 걘 분명 빌려 간다고 했잖아. 돌려주나 보자고.”
“안 돌려주면 바로 신고 가야지.”
“돌려줄걸. 내일도 필기시키려면 돌려줘야지.”
“…….”
모두의 말이 없어졌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발언이었다.
* * *
나는 방에 들러 빌린 노트들을 책상에 쌓아 놓고,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어제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고개를 들자 훈련장 의자에 걸터앉은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물어볼 줄 알았다. 안 물어보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짧게 대답했다.
“좀 맞았지.”
당연히 그걸 물어본 것이 아니라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물은 것이겠지만….
놈들이 레오 이야기를 꺼낸 것이나 내가 놈들에게 흙을 먹인 것 등,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될 이야기가 많다.
말실수할 여지를 두느니 아예 설명하지 않는 것이 낫다.
‘쓸데없이 말했다가 반도 못 간다.’
특히 흙 먹인 건 더더욱.
나는 레오의 올바른 행실을 떠올리며 입을 닫았다.
레오가 또다시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래, 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검사는 해 봤고?”
“했어. 그냥 멍만 든 거야.”
“다행이네.”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렇지 않게 뜬금없는 물음을 꺼냈다.
“그래서, 이겼어?”
“뭐?”
어울리지 않는 질문에 헛웃음이 났다.
소설에서도 레오가 주인공이 싸움질하고 다니는 걸 말리는 장면은 읽었어도, 싸움의 승패를 묻는 것을 읽은 기억은 없었다.
‘내가 마법을 썼다는 걸 이미 전제로 깔고 있네.’
마법이 아니면 싸움에서 이기네 지네 하는 말을 꺼낼 놈은 아니었다.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걔들이 진 놈 말을 듣고 있을 리가.”
그 대답에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이제 속이 좀 시원하네. 그래, 누가 가르쳤는데. 네가 그런 놈들한테 질 수는 없지.”
“당연히 마법을 썼을 거라 생각하는 게 신기한데.”
“그 자식들은 선을 지키는 놈들이 아니니까.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마법 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있는 동물을 먹이려는 시도부터 선을 한참 넘었지. 마법을 쓰지 않았으면 정말 그대로 입에 넣을 뻔했다.
“애들 반응은 좀 어때?”
“네가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생각하던데. 그리고 그 자식들이 실수로 얼굴을 때려서 약점 잡힌 게 아닌지 추측하고 있어.”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다.
마법사 서넛을 마법도 못 쓰는 놈이 이겼을 거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지.
결국 이 말은 내 마법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신력만 보상으로 얻고, 신력을 이용한 정신 조작 마법은 독학했는데….
‘혼자 공부한 것치곤 효과가 확실하네.’
신력을 이용한 특수 마법은 앞으로도 꾸준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물론, 좀 더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고 나서.
지금은 체력 점수를 더 빠르게 올려야 한다.
신력 사용에 방해가 된다면, 정신력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9월 넷째 주고, 다음 주만 지나면 10월이다. 벌써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셈이다.
그러니… 슬슬 상태창 보완에 속도를 올릴 시기가 됐다.
훈련을 시작한 지 세 시간이 지나자, 레오가 완드를 허리춤에 찔러넣고 시계를 확인했다.
“열 시네. 슬슬 들어가자.”
나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달리 레오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오늘은 좀 더 강도 높여서 했는데, 고생했다.”
“그래, 너도.”
체력 스탯을 빠르게 올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전을 위해 무언가 하려 해도 체력이 걸림돌이 된다.
‘하루 훈련에 얼마나 느나 좀 보자.’
나는 상태창을 불러냈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칭호: ???의 사냥꾼
체력: -3.3 (+0.1) [-0.3]
정신력: -7.6 (+0.1)
마력: ?
기술: +1.065 (+0.05) [+4.065]
인상: -10
행운: -6.385 (+0.1)
특성: 여명777, 신력
하루에 0.1, 열흘이면 1점이다.
참고로 지난주에는 일주일에 1점이었다.
값이 커질수록 느는 양이 적어지고 있다.
그래도 넉넉히 잡아 두 달이면 마이너스를 탈출할 수 있을 테니, 아직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이후다.
나는 기술 항목에 눈길을 주었다.
유일하게 양수인 기술 점수는 매번 다른 항목보다 작은 폭으로 오르고 있다. 양수로 넘어가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속도가 느려지는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더 오래 걸리는 일만 남았으니, 마이너스 구간은 최대한 빠르게 지나가는 게 맞아.’
시간에는 한계가 있는데 할 것은 많다.
잠이라도 줄여야 하나.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방을 챙기는 동안, 레오가 탄성을 내뱉으며 나를 불렀다.
“아, 루카스.”
“왜.”
“네가 말했던 약재 왔어. 오늘이 전에 말했던 나흘째야.”
레오가 제 가방 아래 깔아 두었던 상자를 들어 보였다.
음, 시험 기간 내내 저것도 만들려면 정말 잠을 줄여야겠네.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 Chapter 3.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1) 〉
제안 2: ‘체력’ 점수 0 달성 (0/1) (167시간 59분 58초)
* Route 1 — 〈 Chapter 3 특별 보상 〉
* Route 2 — 〈 Chapter 4. 한 마리의 제비로는 여름이 왔다고 할 수 없다 〉
“…….”
“루카스?”
열흘에 1점 올라가는 마당에… 일주일 만에 3.3점을 올리라고.
그래, 슬슬 이런 제안이 나올 때가 됐지.
제목이 저 모양인데 왜 조용한가 했다.
나는 비현실적인 제한 시간을 보며 코웃음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