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9)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아무리 저녁과 새벽 시간을 활용한다 해도 벅찼다. 한나절의 훈련으로는 0.4점이 올랐는데, 약을 만들고 나서 내게 남은 시간은 고작 5일이었다.
결석을 세 번이나 하고서야 간신히 9시간을 남기고 제안을 달성시켰다.
다행히 근력과 지구력 분야에서 상승폭이 커 때때로 0.4점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띠링―!
축하합니다!
‘제안 2: ‘체력’ 점수 0점 달성’ 성공!
‘Route 1 — 〈 Chapter 3 특별 보상 〉’을 확정합니다.
‘뭐가 나올지 궁금하네.’
Chapter 3 특별 보상
가지고 싶은 특성이 있나요?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특성?’
저 문구를 보다 보니 머릿속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설마 그때 교환학생 특성 가지고 싶댔더니 이런 거 나온 거냐….’
이제는 생각도 잘 골라 해야겠네.
나는 눈앞에 나타나는 새하얀 빛무리를 지켜보았다.
빛이 일정한 형체를 가지기 시작하더니, 쪽지 한 무더기를 이루었다.
책을 한 장씩 찢어 접은 듯한 모양새였다. 질감이 살아 있는 유백색의 종이에 검은 잉크로 깨알 같은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빛이 번쩍이는 탓에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여기서… 아무거나 펼치면 되나.’
나는 눈을 찡그리며 쪽지 무더기에 손을 넣었다.
쪽지를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눈앞에 새하얀 글자가 나타났다.
띠링―!
축하합니다!
‘매력’ 특성이 추가되었습니다!
뭐야?
어이가 사라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매력이 밥 먹여 주냐. 마법사가 마법으로 먹고 살지 매력 퍼먹고 살 것도 아니고…. 장난하나.
‘운이 나빴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뭐라도 있는 게 낫겠지만… 지금 저런 항목이 필요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회의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매력 특성을 불러냈다.
매력 Lv.1
― ‘친해지고 싶다!’ 일정 대상 호감도 2점 상승
― ‘네 말이면 옳겠지.’ 설득력 20% 상승
― 다음 레벨까지 2.0 포인트
장난하냐는 말 취소한다.
내가 너무 편협했다. 이름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됐다.
호감도에, 설득력 20% 상승.
호감도도 호감도지만, 설득력 항목이 상당히 끌린다. 장기적으로 투자할 만한 특성이다.
‘괜찮네.’
나는 만족하며 창을 날렸다.
* * *
“나르케! 나르케 오는 날이야!”
파이가 내 어깨 위를 신나게 돌아다니며 외쳤다.
이놈이 왜 여기에 있냐면…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며 신력을 이용해 꾸준히 내 방으로 워프했기 때문이다.
행정실에 데려다 놓기를 여덟 번째 반복했을 때, 행정실 직원이 나르케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다. 나르케는 나만 괜찮다면 파이를 풀어 내버려 둬도 된다는 말을 남겼다.
자정부터는 혼자 있어야 했기에, 동물 하나 더 얹고 다닌다고 해서 정신이 사나울 것 같지는 않아 수락했다.
그리고… 같이 지내는 동안 나르케에 대한 정보도 많이 뽑아냈다. 동료로 만들겠다 결심했지만 대화도 제대로 안 해 본 지금은 경계도 필요하니, 내가 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을수록 좋다.
먼저 나르케에 대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파이가 알아서 나르케에 대한 정보를 줄줄이 늘어놓았으니까.
나는 나르케가 신학교에서 왔으면서 면병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쓸데없는 정보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좋겠네.”
“루카스도 좋지?”
“그래, 좋네.”
뭐 어느 정도 친해졌어야 좋지. 하지만 일단 맞장구쳤다.
“나르케도 우릴 만나면 좋아할 거야~!”
“그렇구나.”
나는 놈을 케이지에 넣어 둔 뒤, 따라오면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교실로 향했다. 신력 써서 워프하는 놈에게 케이지는 사실 효과가 없겠지만 일단 구색은 갖춰 봤다.
나는 살짝 열려 있는 교실 문을 잡아당겼다.
학생들이 맨 뒷줄에 몰려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1분반 긴장하고 있겠네.”
“우리도 1학년 기말 전에 3등 보내서 평균 떨어졌잖아. 이제 와서 뭐라 할 자격 없지.”
“걔네 그런 거 기억 못 해. 중간 치면 무작정 우리 반 교환학생 빨이라고 깐다, 이제.”
“까라고 해. 근데 애초에 우리가 이겨야 욕하지….”
“나르케! 잘하는 종목 있어? 우리 방학 전에 대회 있는데.”
누군가 끼어들어 화제를 바꾸자, 가운데 앉은 학생이 웃으며 답했다.
“글쎄. 공으로 하는 건 대부분 자신 있어.”
“야, 우리 이겼다. 끝났네.”
“왜 애 오자마자 부담 주냐.”
이 학교는 학과별로 딱 두 개의 반이 있다.
더 있다면 모를까, 둘로 나뉜 탓에 분반 사이에는 미묘한 경쟁 구도가 생겨 있다. 특별반에 선정된 학생 수나 반 평균 같은 시험 성적부터 각종 대회까지, 비교하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어쩔 땐 교수들마저 성취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며 경쟁을 부추겼다.
‘심할 수밖에 없지.’
반이 더 많이 나뉘어 있었던 고등학교에서도 우스갯소리로, 때로는 진심으로 다른 반보다 잘하느냐 못하느냐 따지기도 했으니까.
학창시절 체육대회 우승상품 타는 데에 광적으로 집착하던 모습이 그대로 성적을 비롯한 각종 대회로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거기에 전국에서 날고 기는 놈들만 모아 놓은 탓에, 확실히 이곳 학생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성적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학년에서는 입학 이후 첫 시험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옆 반인 1분반의 성적이 근소하게 높았다.
나는 내 자리 옆에 주루룩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노트를 나누어 주고 자리에 앉았다.
“잘 봤다. 오늘도 힘내고.”
“…으응….”
학생들은 여느 때와 같이 죽어 가는 얼굴로 웅얼거렸다.
그때, 교실 맨 뒷줄 구석에 앉은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나르케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들은 나르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나르케에게 무언가 말하려 입을 달싹였다.
드륵―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조례를 하러 들어온 교수의 인사에 학생들이 빠르게 자리로 돌아가 인사했다. 교수가 오늘 있을 일을 안내하고는 나르케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부터 교환학생 첫 등교일이죠. 일 년 동안 같이 공부할 친구이니 자기소개 한번 해 봅시다.”
학생들의 시선이 다시금 나르케에게 쏠렸다. 나르케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이번 학기부터 함께하게 된 나르케 파르네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난 학교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받았었죠. 이곳에서도 좋은 성과 있길 바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조례 이후 첫 수업까지 끝나자, 나르케가 내게 다가왔다.
“루카스.”
나르케가 속닥였다.
“연락 받았어. 너한테 맡겨서 미안해. 파이가 많이 귀찮게 했지?”
“아냐, 나름 괜찮았어.”
“그동안 봐 줘서 고마웠어. 괜찮으면….”
“나르케.”
한 학생이 교실 문밖에서 조심스레 나르케를 불러냈다.
나르케가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을 띠고 돌아와 눈썹을 으쓱였다. 나는 그 미묘한 제스쳐의 뜻을 물었다.
“뭐야?”
“네가 플레로마라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조심하라던데.”
친절도 하다.
나는 슬쩍 웃음을 터트렸다.
“뭐라 대답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
“…….”
전부터 굉장히 흥미로운 대답만 나오네.
나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이따 저녁 먹고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 * *
“루카스.”
나르케가 기숙사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파이가 든 케이지를 들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파이 데려왔어.”
“나르케!”
“고마워. 잘 지냈어?”
“재밌었어!”
나르케가 더 대답하지 않고 씩 웃었다.
나는 나르케 앞에 차를 내어놓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
“잘 마실게. 고마워.”
“뭘, 학교 소개는 받았어?”
“어, 반장이 도와줬어. 오늘부터 개인 훈련장을 써도 된다더라. 이따 갈 건데 너도 올래?”
레오에게 나르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놓아야 하니, 안 된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 화제를 돌렸다.
“아냐.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얘는 무슨 동물이야?”
“아, 파이? 새앙토끼야.”
토끼?
나는 충격을 거두지 못한 채 파이를 바라봤다.
“…네가 토끼?”
“엄밀히 말해서 그냥 토끼랑은 다르긴 해. 쥐처럼 생겼지?”
“어.”
쥐보다는 햄스터처럼 생겼지만.
“그럴 거야. 색도 크기도 딱이잖아. 그나저나… 이것 말고 다른 할 말이 있지 않아?”
“그래.”
나는 차 한 모금을 마시고 말했다.
“우선… 이건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먼저 말한다. 나 쟤 말 들을 수 있어.”
“어? 커흡…!”
나르케가 고개를 돌려 기침했다. 나르케가 웃는 건지 당황한 건지 모를 얼굴로 잔뜩 기침하고는 나를 보며 되물었다.
“뭐?”
이런 것까지 통찰로 알 수는 없었나 보네.
하긴, 레벨 2짜리 능력에 모든 것을 다 알면 세상 모든 것이 전부 얘 손 아래에 있겠지.
“진짜… 아니, 진짜 들리는 게 맞구나. 네가 신력을 쓰는 건 알았지만 파이에게 통할 정도인 줄은 몰랐어.”
방금은 통찰을 써서 확신했겠고.
또… 파이와의 원거리 소통은 불가능한 모양이다. 됐으면 진작 파이가 나르케에게 나와 대화할 수 있다는 걸 나불댔겠지.
나는 나르케의 말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뽑아내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나르케의 어깨에 있던 파이가 테이블로 뛰어내렸다.
“이제 말 통하는 사람이 둘이야~!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안 돼. 그럼 교구청에서 널 가만 안 둘 거야.”
나르케가 파이의 머리를 쓸며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질문도 있지?”
역시 이야기가 빨라 좋다.
“그래, 네게 궁금한 것이 많아. 갑작스럽겠지만 내게는 중요한 문제거든. 내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 줄 수 있어?”
“그래, 파이도 구해 줬는데 그 정도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내가 마법 쓰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근거가 뭐야?”
“그날 이야기구나. 글쎄, 직관으로 느꼈다고 말하면… 납득할 수 있어? 설명하기가 어렵네.”
직관이라.
통찰력도 어떻게 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 있지. 상태창에 있던 정보와 다르지 않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로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 그건 확실히 아니지. 일단 넌 죽은 적이 없어.”
이 점은… 대부분 그렇게 여기니 특별할 것 없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나를 시체였다 살아난 플레로마라기보다는, 플레로마의 특질을 가진 자라고 믿는다. 죽지 않았음에도 플레로마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르케가 시선을 저 멀리 두며 생각에 잠겼다.
“네게 도는 소문이 정확히… 네 살에 동물의 피를 마셨고, 다섯 살에는 하인을 죽였다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곁에 있는 사람의 마력을 빼앗는다는 소문도 있고.”
“잘 아네.”
“네 이야기는 교황령에서도 화제니까.”
나르케가 차를 마시고 한참 말을 고르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넌 자의로 피를 마신 적이 없어. 살인을 해 본 적도 없지. 이것도 근거를 묻는다면, 내 직관이 전부야. 하지만 이게 진실이지. 너도 이제는 알잖아?”
“이제는?”
“얼마 전까지는 너도 그 헛소문을 진실으로 믿고 있었을 테니까.”
“…….”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거야 그렇겠지. 빙의 전이니까.
나르케의 황금빛 눈에 이채가 돌았다.
나르케가 양손을 맞잡고 내게 물었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보통 인물이 아니지. 그렇지?”
“…….”
“본인의 살인을 동생에게 뒤집어씌우다니, 맨정신으로는 불가능하지.”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형의 이름이다.
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그래.”
대화를 하면 할수록 확실히 느껴진다.
이 사람은 무조건 동료로 만들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