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1화 (21/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1)

나는 레오와의 훈련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했다.

주말이라 하루 종일 시간이 많아 잠시 훈련했다.

‘지금이… 6시네.’

식사는 생략하고, 가서 자정까지만 공부하면 되겠는데. 나는 목걸이 줄을 잡아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루카스.”

레오가 훈련장을 나가려는 나를 불러 세웠다.

“내일 중간고사인 거 알지? 시험 잘 치고 다음 주에 여기서 만나자.”

“내가 너 꺾으면 어쩌려고 응원하냐.”

“꺾든가….”

레오가 피식대며 웃었다.

저런 여유로운 반응에는 이유가 있다.

놈은 우리 분반에서 매번 2등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한 과목을 제외하고 전부 만점을 맞아도 최상위권은 불가능하다. 레오도 그걸 알고 있다.

나는 마법 실기 과목에서 기본 출석 점수와 대체과제물 점수를 합한 30점만을 얻어 갈 수 있다. 그나마 병결 처리를 받아 놓아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그 출석 점수마저도 못 받을 뻔했다.

어차피 최상위권이 되고픈 욕심도 없다.

내 이미지를 뒤집을 수 있는 최소한의 상승만 있으면 된다.

‘그 이상의 투입은 오히려 불필요해.’

완전히 시간 낭비다.

나는 기숙사로 돌아가, 언제 왔는지 책상에 풀 무더기를 쌓아 놓은 파이를 옆으로 치우고 교과서를 펼쳤다.

핵심은 진작 마쳤다. 지엽적인 내용에서 변별될 수 있으니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가 덜 된 부분이 있는지 정독할 차례였다.

‘이 지긋지긋한 학교 공부를 이 나이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행히 오늘 할 양은 세 과목뿐이다. 나는 책에 얼굴을 박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교과서를 훑어 나갔다. 옆으로 밀려난 파이가 풀을 질겅질겅 씹으며 물었다.

“루카스, 하기 싫으면 바위 타러 갈래?”

“아니.”

뭔 맥락의 제안이지, 이건….

나는 파이의 말을 흘려들으며 공부에 집중했다.

한참 공부하다, 나는 파이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었다.

‘다들 중간고사 얘기만 하네.’

이동하는 동안 마주친 학생들 모두 시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입이 걸려 있다 보니 다들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곳 학생들에게는 쓸데없는 분반 자존심도 걸려 있다. 우리 학과 기숙사인 만큼 우리 학년 학생들의 분반 이야기도 가끔씩 들려왔다.

“루카스.”

나르케가 반가움에 눈을 크게 뜨며 내 등을 툭 두드렸다.

먼저 옥상에 올라와 있었던 모양이다. 그 뒤에 보이는 친구들이 난감한 얼굴로 슬슬 물러났다.

“너도 여기 올라오는구나! 여기서는 처음 만나네. 어때, 공부는 잘돼 가?”

“그럭저럭. 너는?”

“잘되고 있지. 하하, 친구들이 나한테 기대를 너무 많이 하더라. 특별반에 못 들면 다들 실망하겠어.”

“못 들 리가 있나.”

그럴 수준이면 여기로 교환 못 온다. 각 학교에서 수재로 불리는 학생들만 선발했으니까.

내 대답에 나르케가 웃더니 내게 물었다.

“너는? 레오랑 다 같이 특별반에 가면 좋을 텐데.”

“글쎄, 내 성적 몰라? 마지막 시험에 48등이었어.”

“그때는 생각하면 안 되지. 어때, 될 것 같아?”

귀신같은 놈.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어깨만 으쓱였다.

“글쎄.”

그렇게, 중간고사 당일이 되었다.

감독관으로 들어온 교수가 문제지를 나누어 주었다.

“시험 시간은 60분입니다. 배부한 문제지와 답안지에 이름을 적고 1분간 대기하세요. 마법 발동이 감지되는 순간 1회 고사 전체가 무효 처리됩니다.”

지긋지긋한 안내였다. 아니, 사실 마지막은 좀 새롭긴 했다.

나는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무릎에서 손을 떼고 펜을 들었다.

* * *

“아, 돌겠다. 이번에 또 떨어졌으면 어떡하냐.”

“야, 석차 발표 2분 남았어!”

“빨리 들어가! 이따 휴게실로 나와서 알려 줘.”

금요일, 마지막으로 시험이 끝난 날 저녁.

기숙사는 성적 발표로 시끄러웠다. 나는 옥상에서 내려와 방에 들어갔다.

‘이제 곧 자정이네.’

성적 발표는 시험 종료 당일인 오늘 난다.

물론 성적 정정 전의 석차긴 하나 여기서 변동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입학 때 지급받은 성적 기록표를 꺼냈다.

자정이 되면, 학교가 링크 시켜 둔 마법이 여기에 적힐 것이다.

나는 앞 장부터 천천히 살피다, 마지막 장의 석차 기록 항목에서 손을 멈췄다. 그간의 석차가 나열되어 있었다.

[1학년 가을학기 중간고사] [50/50] [100/100]

[1학년 가을학기 기말고사] [50/50] [99/99]

[1학년 봄학기 중간고사] [49/49] [100/100]

[1학년 봄학기 기말고사] [48/49] [98/99]

‘처참하네.’

앞 칸의 숫자들은 루카가 속한 마법학과 2분반의 석차고, 뒤 칸의 숫자들은 마법학과 전체의 석차다.

직전 시험을 제외하고는 전부 꼴등을 기록했다.

저 멀리 시계탑에서 종이 울렸다.

2학년 가을학기 중간고사.

새파란 글자가 마지막 석차 아래에 적히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삼키고 주먹을 쥐었다.

푸른 잉크가 빠른 속도로 종이에 스며갔다.

[2학년 가을학기 중간고사]

한 칸의 끝에 다다르자 잉크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순식간에 옆으로 퍼져 나갔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종이를 노려보았다.

툭―

움직임이 멈추고, 종이가 완전히 말라붙었다.

[2학년 가을학기 중간고사] [6/50] [10/100]

‘…후.’

끝났다.

반 6등, 마법학과 전체 10등.

이 정도면 만족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수준을 원했다.

나는 종이를 앞으로 넘겨 과목별 점수를 확인했다.

‘역시나.’

기초마법실습 과목은 홀로 30점.

총 열 과목 중 일곱 과목은 100점.

나머지 두 과목은 각각 97점과 95점이다.

‘평균 92.2점.’

2분반에서는 6등, 전체에서 10등인 걸 보면… 1분반에서 내 앞에 있는 놈은 고작 넷뿐이라는 말이다.

‘이번에는 1분반이 좀 밀렸네.’

반 평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 봤자 감흥은 없다.

학생들이나 신경 쓰는 점이지, 나는 1분반에게 그 어떤 감정도 없으니까.

‘어쨌든….’

이곳에서의 첫 번째 시험이 끝났다.

나는 편안하면서도 어딘가 착잡한 마음으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지금부터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사소한 것부터, 나의 안전까지.

분명 이 소식은 형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형은 행동을 취할 것이다.

재수 없는 주변 반응만 빼면 안락했던 지금까지와 달리, 앞으로는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다.

그때, 책상에 모여 있는 풀 쪼가리 위에서 번쩍 빛이 났다. 허공에서 나타난 파이가 펄쩍 뛰어 침대까지 달려왔다.

“루카스!”

“일주일만이네. 나르케가 등수 물어보래?”

“응!”

“안 알려 준다고 해.”

나는 웃으며 파이를 다시 나르케에게 보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간 파이가 1분도 지나지 않아 내 앞에 나타났다.

“왜냐는데?!”

“망쳐서.”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일 거랬어~!”

“통찰력 좋네.”

나는 간단히 답하고 파이를 다시 나르케의 방에 보냈다.

* * *

“우리 반 평균 몇인데?!”

“지금까지 32명 냈는데 57.1 나왔어.”

“얘들아, 빨리 좀 적어서 내자! 우리 이것도 못해? 어려운 거 아니잖아. 이름 까지 말고 그냥 종이에 점수만 적어 주면 돼!”

꼭 이런 자식들 있다.

시험이 끝난 다음 주 월요일, 나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우렁찬 독촉에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멋대로 점수를 예측해 계산에 포함했겠지.

문득 든 궁금증에 나는 놈에게 말을 걸었다.

“종이 줘 봐.”

“…….”

사나운 말투로 말한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말투로 말을 걸었는데도 교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큰 소리로 소리쳤던 학생이 제 친구들을 향해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윗입술을 살짝 깨물며 내게 종이를 넘겼다.

오래 살필 필요도 없었다. 맨 윗줄부터 누구의 것인지 분명한 0점이 두 개 적혀 있었다.

하나는 장기 결석자의 것이다. 1학년 말부터 학교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겠지.’

그냥 웃음만 나네.

대체과제물 점수도 포함 안 시켜 줬냐.

하긴, 이놈들이 남의 대체과제물 점수까지 알 턱은 없지.

나는 한순간에 싸해진 현장에 대한 위로를 담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놈에게 종이를 돌려주었다.

“0점으로 계산했네?”

“…네 점수?”

“내 점수 아니면 내가 뭘 물어.”

“어, 그렇게 쓰긴 했는데… 작년까지 네가… 아니, 아니야. 몇인지 알려 주면 내가 그대로 적을게.”

“됐다. 그냥 그대로 둬.”

그 말에 놈이 종이 끝을 조심스레 받아 들고 나를 곁눈질하며 멀리 떨어졌다.

그때, 누군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야, 교수님께 여쭤봤는데 우리 평균 59.1이래.”

“뭐?! 1분반은?”

“염탐하고 올까?”

“어, 나도 갈래.”

다시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살아났다. 학생들이 저들끼리 시끄럽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특별반 몇 명 가는데?”

“너는 못 가는데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아니, 멀리를 못 보네. 이거 하나하나 다 가오가 달린 문제야.”

“율리아랑 레오는 무조건 가고, 나르케도 가겠지? 나르케! 몇 등이야?”

“안 알려 줘.”

나르케가 내 쪽을 흘끗 보며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내 말을 따라 했다.

그때, 한 학생이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얘들아, 나도…! 나도 이번에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

‘음?’

전에 길을 묻느라 붙잡았던 학생이다.

이름이… 멜빈이었지.

“몇 등인데?”

“전체 9등…!”

“와, 거의 문 닫고 들어갔네.”

“축하해! 우리 벌써 특반 네 명이야? 등교 몇 명 안 했어? 다섯 명 더 오면 되는 거지?”

나는 턱을 괴고 놈들의 대화를 들었다.

첫 시험에는 우리가 6, 그쪽이 4.

그 뒤부터는 그대로 역전당해 3:7과 4:6을 오갔다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내 생각에는 지금 1반하고 경쟁할 게 아니고 특반 간 친구들하고 경쟁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빠르게 생각을 포기했다.

이 정도면… 정말 반을 두 개로만 나눈 탓이다.

그때 옆 반에 나갔다 온 놈들이 뛰쳐 와 소리쳤다.

“야, 얘들아! 58.4!”

“뭐야, 옆 반 평균?”

“어.”

학생들이 굉장히 쓸데없는 것에 환호성을 질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학생들을 너덧 명쯤 더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봤자 마흔 명을 이길 수는 없었다. 교실에서는 계속해서 성적 이야기가 이어졌다.

“1분반에도 특반 벌써 4명 나왔다는데? 근데 걔네 아직 열세 명 안 왔어.”

“뭐? 조례 7분 남았는데? 불성실한 거 봐라.”

“그중에 학과 10등 안에 드는 놈 나오면?”

“…….”

한 학생이 낄낄대며 웃어 놓고, 오히려 우리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다행히 그사이에 학과 10등 안쪽 등수를 받은 우리 분반 학생이 하나 나타나, 분위기가 침체되지 않고 살아났다.

“우리 다섯 명이라고? 제발 1분반이 이대로 발리게 해주세요….”

“아냐, 정신 차려. 우린 옆 반이랑 경쟁할 게 아니고 우리 반에서 특반 가는 애들이랑 경쟁해야 한다고.”

“이제 우리 반 애들 다 왔는데 없어. 포기해. 반반 된 것만으로 어디냐.”

학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던졌다.

중간에 정상적인 이야기가 들려왔으나 학생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탓에 빠르게 묻혔다.

그때, 교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학생들이 허겁지겁 제자리를 찾아 앉자, 그제야 교실이 조용해졌다.

“다들 결과가 궁금한가 보네요. 아침부터 연구실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2학년인데 아직도 이렇게 1학년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길게 말 안 해도 아시겠죠?”

“예.”

“앞으로도 이렇게 행동한다면 태도 점수를 감점하겠습니다.”

교수가 으름장을 놓고 가져온 파일을 펼쳤다.

“여러분 개인의 성적 기록표는 이미 입학 때 배부했죠. 자정에 석차가 발표되었으니 각자 확인하고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수가 성적 기록표를 넘기더니 파일 안에서 얇은 편지 봉투를 꺼냈다.

“특별반 입실 동의서부터 드리겠습니다. 호명된 학생들은 앞으로 나와 받아 가세요. 율리아, 레오나르드.”

교수가 봉투에 적힌 글자를 보지도 않고 이름을 불러냈다.

반에서 늘 1등과 2등을 다투는 학생들인 만큼 이제는 재차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박수 소리가 따갑게 귀를 찔렀다.

세 번째 순서가 되어서야 교수가 안경을 들어 올려 이름을 읽었다.

“나르케.”

나르케가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앞으로 나갔다. 앞서 그랬듯이 반 친구들이 손뼉을 치며 축하했다.

“감사합니다.”

“제국에 온 지 이제 한 달이 되었는데, 잘 따라와 주어서 기쁩니다. 다음으로, 힐데가르트.”

이런저런 인사말 끝에, 그가 봉투를 받아 들고 돌아왔다.

“멜빈.”

그 말에 멜빈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번에 처음으로 특별반에 들지요? 노력을 많이 한 것이 눈에 띕니다. 축하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기대하겠습니다.”

교수가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렸다.

열정적이네…. 나는 학생의 벅찬 말투에 헛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는지, 점점 줄어들던 박수 소리가 다시 커졌다.

“마지막으로….”

멜빈이 자리로 돌아가자, 교수가 무어라 입을 열려다 책상을 뒤적였다. 교수가 파일을 뒤엎어 마지막 남은 봉투를 꺼냈다. 몇몇 학생들이 그 모습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뭐야, 한 명 더 있어?”

“이제 여기서 될 만한 사람 없지 않나…?”

교수가 말없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성적 기록표를 확인하더니, 이름을 불렀다.

“루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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