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5)
나는 그대로 뒤돌아 방문을 잠그고 편지를 펼쳤다.
당장 형이 펜을 잡고 있는 것처럼, 마법으로 적어낸 암녹색 글씨가 천천히 이어졌다.
[사랑하는 내 동생에게.]
[잘 지냈니? 벌써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가는구나.]
저번과 다를 것 없는 시작이다.
나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싸늘한 눈으로 글자를 내려다봤다.
나이 차 많이 나는 형제가 할 법한 걱정 어린 안부 문구가 쭉 이어지고, 본론이 나타났다.
[ 네가 중간고사에서 학과 10등 안에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얼마나 뿌듯하고 기뻤는지 몰라. 네가 영특한 아이라는 건 어릴 때부터 쭉 느껴오고 있었는데, 네가 그 어떤 고난에도 변하지 않고 어릴 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것을 보니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뭉클해지네.]
꼴값 떨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나는 미소 지으며 다음 장을 펼쳤다.
[ 하지만 동시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어. 너는 어릴 때부터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성실한 아이였어. 좋지 않은 건강으로도 언제나 우리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 그런 네게 공연히 성적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닐까, 나의 부탁으로 네가 부담을 느껴 몸을 살피지 않고 공부에만 열중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돼.]
[ 너의 성과와 노력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야. 네가 거쳐온 수많은 고뇌와 인내를,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다만 네가 만약 형의 말에 부담을 가지고 있다면, 그럴 필요 없다는 걸 말해 주기 위해 편지를 써. 언제나 형은 네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어.
이곳은 아직 나름 따뜻하지만, 수도는 많이 추워지고 있다고 들었어. 언제나 몸조심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렴. 다시 만나는 그날에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
다시 한 번, 네 노력의 결과를 진심으로 축하해. 네게 언제나 신의 가호가 있기를.]
[― 진심을 담아, 너의 형이.]
“…하하….”
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봉랍을 다시 편지 봉투에 붙이고 서랍 깊숙한 곳에 편지를 넣었다.
편지의 내용은 중요치 않다.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슬슬, 형의 움직임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 * *
형이 할 수 있는 일을 나열해 보자.
가장 극단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부터, 사소하지만 실현 가능한 일까지.
첫째, 나를 당장 죽이러 온다.
불가능하다. 본인이 하던 일까지 관두고, 그것도 학기 중에 나를 죽이러 오는 것은 부담이 크다.
둘째, 사람을 보내 죽인다.
그럴 일 없다.
형은 지독한 완벽주의자고, 이 일에 단 하나의 티끌도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형이 나를 죽이는 일을 남의 손에 맡길 가능성은 극히 낮으며, 나를 죽이라 사주한다고 해도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 살인청부업자까지 죽여야만 만족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그 친지와 동료까지, 모두.
셋째, 어릴 적처럼 새로운 사건을 꾸며 내 이미지를 더욱 추락시킨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 실현이 어려우며, 형은 영지 밖이라는 스케일 큰 무대에서는 사건을 꾸며 본 적이 없다.
꼭 필요하다 여겨지는 상황이 아니면 굳이 택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적극적으로 소식을 찾는다.
가장 가능성 있다. 이미 형은 내 소식을 듣고 언론에 언급되는 아스카니엔에 대해 전부 뒤졌을 것이다.
나를 죽여야 할지, 아니면 아직 그 정도는 아닌지 면밀히 판단해 보고 있을 것이다.
이때, 형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고 보는 루카의 특성을 고려해 여러 가능성을 남겨 두었을 수 있으며, 따라서 지금 나를 죽이는 것은 섣부르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르거나 말거나 안전하게 그냥 죽여 버리겠다는 선택을 하더라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첫째와 둘째 루트는 곧바로 폐기된다.
그러니 지금으로서 형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넷째. 교내에 감시인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마법학과 강의동 2학년 층에 다다라, 나는 교실을 지나쳐 중앙의 특별반으로 향했다.
특별반 앞 휴게 장소에서 노닥거리던 학생들이 내가 얼굴을 보이자마자 나를 흘끔대며 말을 멈췄다.
“저 사람들 루카스 보는 거겠지?!”
파이가 입을 다시며 물었다.
이놈은 전부터 계속 사람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주길 바라고 있다. 어차피 나르케가 은신 마법을 건 탓에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고는 마법학과 특별반 문을 열었다.
처음 와 보는 특별반 교실은 널찍했다.
고작 열 명을 위해서 오십 명을 수용하는 강의실 두 개를 그대로 내준 덕에 그랬다.
책상도 사람도 적으니 벽 한 면을 차지하는 창으로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드러났다.
이미 자리에 와 있던 아홉 명의 눈이 내게 향했다.
멜빈이 눈치 없이 반갑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크흠….”
내 의문 가득한 표정을 본 멜빈이 목을 가다듬으며 스트레칭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당황을 표하던 나르케가 웃음을 참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제 회의 이후로, 멜빈의 호감도는 급속도로 늘어 +3이 되었다.
내가 정리해 온 플레로마에 대한 분석 자료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본격적인 활동으로 들어간 덕에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미심쩍음도 전부 사라졌을 테고.
나는 둘을 무시하고 태연하게 물었다.
“내 자리 어딘지 아는 사람?”
“내 옆!”
나르케가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책장에 책을 꽂아 넣었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루카스.”
철저히 우리를 무시한 채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레오의 눈이 반사적으로 목소리의 주인에게 향했다.
나르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굉장히 자신만만해 보이는 표정을 지은, 키가 큰 학생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나는 크리스텔 클라이버야.”
나는 특별한 표정을 짓지 않고 가볍게 악수했다.
호명 때 듣지 못한 이름인 걸 보니, 1분반 학생이다.
‘1분반 학생이 나한테 아는 척을 해?’
놀라운 일이다.
“네가 특별반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 보니 새롭네. 앞으로 잘 지내 보자.”
“그래. 잘 부탁해.”
나는 적당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답했다.
일반적인 학생들에게는 평범하디 평범한 상황이지만, 루카에게는 아니다. 절대로 평범하다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상황 좀 볼까.’
점심시간이 되어, 상황을 살피러 오랜만에 학교 식당에 갔다.
“와, 여기 다들 루카스 보고 있어~!”
파이가 내 어깨에 올라타 두 다리로 서 주위로 고개를 휙휙 돌렸다.
파이 말대로, 나는 이곳에서 어마어마한 시선 폭격을 받을 수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학생들이 나를 흘끔댔다.
종종 아스카니엔이나 루카스 따위의 단어들이 귀에 흘러 들어왔다.
‘분명 지난 학기 기억으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아니, 당장 중간고사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동물원의 동물 보듯 쳐다보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피하고 자리를 떴으면 떴지.
‘그 1분반 놈이 특이한 게 아니었네.’
확실히 2학년이 되고 나서, 그리고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부터 학생들의 관심이 커졌다.
훈련장에 도착해 이 이야기를 꺼내자 레오가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요즘 너한테 관심 가지는 애들 많아.”
“그래?”
“어, 내 친구 중에도 너한테 한번 말 걸어 볼까 생각하는 애들 있던데. 뭐, 진짜 친해지려는 것보다는 호기심이 크긴 하다.”
호기심?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플레로마는 어쩌고? 안일하네.”
“그만큼 네 변화가 말도 못 하게 충격이었으니까. 솔직히 너라면 전교 꼴찌가 순식간에 상위 10%가 됐는데 관심 안 가지겠어? 그리고… 네가 애들한테 꺼려졌던 이유는 플레로마 소문이 돈다는 이유 하나만이 아니잖아.”
그건 인정한다.
등교 첫날에도 생각했듯, 학생들이 나를 대놓고 기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마법도 못 쓰는 주제에 기부입학으로 들어와서.
둘째, 플레로마 소문 때문에.
셋째, 레오처럼 학교에서의 입지가 좋은 학생들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매번 말끝을 흐리고 외관은 전혀 정돈되지 않은 데다 굽어진 어깨로 몸을 잔뜩 움츠리고 다니는 친구와는 특별한 접점이 없다면 굳이 나서서 친해지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된다.
총 네 가지 이유라고 치면, 벌써 첫 번째와 마지막 이유는 해결이 된 셈이다.
여전히 마법을 못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기부입학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지필 성적으로 대부분의 학생을 압살한 지금 그런 점은 큰 의미가 없다.
레오가 내 반응에 말을 덧붙였다.
“물론 네 소문을 없는 셈 친다는 건 아냐. 다만… 그런 거지. ‘어쨌든 이번에 성적까지 올린 걸 보면 정말 대학에 갈 생각인가 본데 설마 대놓고 미친 짓을 벌이겠어.’ 뭔 느낌인지 알겠어? 아스카니엔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이야기도 돌더라.”
“그렇구나.”
본인들이 대입에 인생을 걸었다고 타인까지 그러리라는 편협함이 잘 드러난다. 어쨌든 부정적인 감정이 호기심으로 변하는 것만큼은 환영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네가 사람들의 마음을 풀게 해서 플레로마로 만들까 봐 두려워하는 친구들이 더 많아. 하지만 앞서 말한 친구들 비율도 무시 못 할 만큼 늘었다는 거지.”
“다행이네. 좋은 일이야. 그런데….”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을 이었다.
“딱 하나만 빼고. 오늘 형이 편지를 보냈어.”
레오가 잠시 입을 벌린 채 굳었다가, 턱을 매만졌다.
“복잡하게 됐네.”
“그래, 내게 접근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 중 누가 형의 감시인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어.”
“형님께서 벌써 사람을 붙였을 거라 생각해? 아니면 곧 그렇게 될 거라는 얘기야?”
“글쎄.”
편지가 도착한 오늘은 이미 석차 발표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날이다.
형의 입장에서는 정보를 얻는 것을 이 이상으로 지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놈의 신중함이라면 감시인으로 쓸 사람을 고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텐데.’
편지 발송일은 이번 주 화요일이었다.
정보를 얻은 지는 며칠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인해 보면 되지. 지금 학교에 감시인이 있다면 오늘 나 말고 다른 사람도 형의 우편을 받았을 거야.”
“우편국에 가게? 수신인도 발신인도 아닌 사람에게 수신 여부를 선뜻 알려 주진 않을 텐데.”
“안 알려 주겠지. 상관없어.”
레오가 어이없이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레오의 가방에 들어가 놀고 있는 파이를 재킷 주머니에 넣고 시계를 확인했다.
8시 57분.
학교 시설은 전부 10시에 문을 닫는다.
시간은 충분하다.
* * *
“안녕하세요.”
나는 캠퍼스 왼편 구석에 박혀 있는 교내 우편국으로 들어갔다.
마침 사람도 없고, 직원도 하나뿐이었다.
혼자 남아 죽은 눈으로 장부에 무언가를 적던 직원은 내가 창구에 앉자 더더욱 퀭해진 눈으로 의자를 슬쩍 뒤로 뺐다.
나는 그 반응을 못 본 체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받아야 할 우편에 누락된 게 있는 것 같아서요. 보내는 사람 이름으로 제 앞에 우편 몇 통이 왔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예, 말씀하세요.”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입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철을 꺼냈다. 내 이름은 안 알려 줘도 이미 알고 있는지, 그는 내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먼저 말을 붙이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나는 한참 기다리며 그의 빠른 손놀림을 지켜봤다.
직원이 짧은 지시봉으로 이름을 죽죽 긋더니, 한 칸에서 손을 멈췄다.
“오늘 아침에 편지 한 통 전달해 드렸죠? 그것뿐이네요.”
“아, 다른 것이 또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제 앞으로 오는 게 아닌가요?”
직원이 제가 짚고 있던 칸을 다시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예.”
“알겠습니다. 착오가 있었나 보네요. 고맙습니다.”
나는 의문스러운 얼굴을 연기하며 우편국을 나왔다. 파이가 재킷 주머니에서 얼굴을 불쑥 빼냈다.
“방금 뭐야? 착오는 왜?! 실수했어?”
“아니, 확인할 게 있어서.”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레오의 말은 타당하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학교에 또 다른 우편을 보냈냐고 묻고, 누가 우편을 받았느냐 묻는다면 직원은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이 타인에게 보내는 우편을 제삼자에게 알려 줄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유도신문을 했다.
만약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보낸 ‘다른 것’이 없었다면, 직원은 그렇게 깔끔히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질문에 긍정함으로써 다른 우편이 존재하며, 심지어 내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렸다.
형이 제국2교육원의 누군가에게 우편을 보냈다.
무엇을 위해?
당연히 나의 소식을 전달받기 위해서겠지.
감시는 오늘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편지를 받은 자를 찾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