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6화 (26/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6)

“아무렇지도 않네. 괜찮은 거야?”

새벽 회의가 끝난 후, 레오가 남은 차를 버리며 말했다.

그 말에 자리에 남아 의자를 뒤로 젖히며 놀고 있던 나르케가 나와 레오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루카스한테 감시인 붙었어.”

그 말에 나르케의 얼굴이 자못 심각해졌다. 나르케가 의자를 땅에 붙이고 눈썹을 올렸다.

“뭐야, 벌써? 어떻게 알아낸 거야?”

“우편국에 가서 형님께서 보낸 편지가 누락된 것 같다고 문의했대. 뭐라고 했다고?”

레오가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다 식은 차의 마지막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고 대답했다.

“다른 건 저한테 오는 게 아닌가요.”

“이런 잔머리는 어디서 나오는 거야….”

레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새로 차를 타 자리에 앉았다.

딱히 머리 쓰지 않아도 쓸 수 있는 방법이지만, 뭐든지 정석만 추구하는 레오 입장에서는 평생 쓸 일 없는 우회 질문일 테니 저런 반응이 나올 만하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와 달리 나르케는 이 방법이 마음에 들었는지 깔깔대기 시작했다.

“하하! 그거 진짜 쉽고 빠른 방법이네. 그래서, 누구인지는 알았어?”

“아니, 지금부터 확인해 봐야 해. 누구냐고 물어봤자 대답도 안 해 줄 테니 안 물어봤어.”

“그래? 내가 알아봐 줄까?”

“됐어. 그거 확인하려면 사람 하나하나 붙잡고 확인해야 하잖아.”

레벨 2짜리 통찰 능력은 만능이 아니다.

상대의 지각 범위에서만 사용할 수 있기에 상대가 모르는 사건의 내막까지 파악할 수 없는 데다, 알아낼 수 있는 깊이도 한정적이다. 게다가 광역 마법이 아니라 개인별로 적용되는 마법이기에, 감시인이 누구인지 판별하려면 한 명씩 대면해야 한다.

제약이 전혀 없는 능력이라면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정신력을 소모해 두통을 유발하기에 그것도 어렵다.

나르케가 입을 다시며 고개를 느적느적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하지. 아쉽네. 파이라도 우편국 안으로 워프시킬래?”

“파이 워프시키면 뭐 나와?”

레오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쟤 지능 높거든. 글자는 잘 못 읽지만.”

“뭐?”

“말도 해. 레오 너니까 말해 주는 거야.”

레오가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나를 슬쩍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 것 같은데 어쩌냐는 얼굴이다.

나도 그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하려다 그냥 미소만 짓고 나르케에게 답했다.

“파이가 서랍 안에 든 장부를 잘 꺼내서 적절한 페이지를 찾아낼 것 같지는 않아. 그리고, 걱정은 고맙지만 괜찮아. 알아낼 수 있어.”

“하긴, 파이를 보내는 건 난관이 많네.”

“…….”

레오가 계속되는 파이 이야기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르케가 손뼉을 쳤다.

“아! 정신 조작 마법은 왜 안 써 봤어?”

“마법은 될 수 있으면 안 쓰는 게 좋아. 안 쓰고 싶어도 꼭 필요한 상황이 있으니까 그전에는 최소화하려고.”

“이건 이제 마법 안 쓰고도 알아낼 방법이 있다는 뜻이겠지.”

레오의 웃음 섞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네.”

* * *

쉽다.

그냥 책잡히지 않게 바른 생활을 하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 성실히 특별반에 가고, 수업을 들으며, 식사는 방에서 해결하고, 다시 나와서 수업을 들으러 가고, 또다시 식사를 방에서 해결하고, 그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특별반 저녁 자습을 레오와 둘 다 빠지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나는 몸이 좋지 않다는 점을 어필해 주에 한 번만 의무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레오는 2학년이 되고부터는 늘 훈련장으로 나왔기 때문에 공통으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있다고 해도 크게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

격일로 있는 조직의 회의도 그냥 하던 대로 워프해서 가면 된다.

이렇게만 해도 그 쪽에게 정보가 넘어갈 일은 없다.

다만, 여기에 복병이 있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조금 걸린다.

나는 노트에 생각을 끼적이며 마법약 수업을 한 귀로 흘려보냈다. 가운을 입은 교수가 학생들을 보며 질문했다.

“마법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비텔스바흐 가문과 의학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 아는 학생? 레오나르드 학생은 빼고 답변하도록 하죠.”

학생들과 레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교수가 한참 뜸을 들이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유일하게 지필 만점을 받은 학생이 대답해 볼까요? 루카스 아스카니엔.”

나는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 지으며 간단히 답했다.

“마법 이전의 시대에는 큰 관련이 없었습니다.”

“정확합니다. 이 얘기를 꺼낸 건, 오늘 배울 내용이 비텔스바흐 가문에서 개발한 자상 치료약이기 때문입니다. 마법이 등장한 이후 처음으로 개발된 마법약이자, 마법의학과 마법약학 역사를 바꾼….”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 입을 열어야 하는 경우가 문제다.

내 변화를 가장 눈에 띄게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중간고사 이후로 지목이 늘었네.’

마법약 과목뿐이 아니다.

만점을 받은 일곱 과목 모두에서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또, 호기심이 동해 내게 말을 걸어 보려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레오의 말도 있었다.

어제 특별반에서 내게 인사했던 1분반 학생도 그런 부류였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나타날지 모른다. 그리고, 감시인은 그때에도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간 하나 때문에 매 순간 1학년 때의 루카 연기를 할 수는 없다. 그건 내 이미지를 다시 한번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어차피 형은 황색 언론이나 지역 신문을 통해 나의 변화를 확인했을 것이다.

외관을 깨끗이 정돈한 것, 사람들과 멀쩡히 대화하는 것, 등등.

그러니 굳이 1학년 시절 연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형의 뇌에 각인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오늘 바로 확인해 봐야겠네.’

나는 노트를 덮고 수업에 집중했다.

* * *

나는 학생들에게서 노트를 수거해 교실을 나섰다. 중간이 끝나도 놈들의 필기는 계속되어야 했다. 어쨌든 기말에서도 이 수준은 유지해야 하니까.

기숙사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 힘없이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주위를 확인했다. 아직 일곱 시밖에 되지 않아 그런지, 길에 사람이 많았다.

학생들이 우뚝 멈춰서 주위를 살피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사라졌다.

도서관에서 한참 책을 읽다, 자정이 되기 한 시간 전에 황급히 도서관을 나섰다.

역시나 이 시간쯤 되니 사람이 몇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방을 살피며 도서관 정문에서 후문까지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 그 뒤의 3교육원으로 향하는 길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즈음에는 잠시 무릎을 짚고 숨을 골랐다가, 또다시 온 힘을 다해 뛰었다.

나는 잠시 멈추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위를 확인하고, 구두끈이 다른 발에 밟혀 풀린 것을 발견해 골목 뒤에 앉아 끈을 묶었다. 멀쩡한 쪽의 끈도 풀어 다시 묶었다. 슬슬 시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조각을 밟으며 한 발짝씩 걸음을 뗐다.

밤이라 그런지, 아니면 사람이 없어 그런지, 사소한 소리도 크게 들려왔다. 내 위치를 알리기에는 제격이었다.

여기서 코너 한 번만 돌면, 학교의 끝에 있는 공원이 나타난다. 나는 보폭을 넓혀 빠른 속도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공원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왔던 방향으로 잽싸게 몸을 돌렸다.

콰앙―!

“아악!”

“그래… 이렇게 바로 걸리다니 놀랍네. 안타까워서 눈물이 다 날 것 같다. 솔직히 이 단계에서 잡힐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나는 나를 쫓은 이를 벽에 밀어붙이고 손에 힘을 주었다.

처음 보는 이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뭐, 뭔…!”

“소리 죽이는 마법까지 써 가면서 잘 왔네.”

“놔!”

놈이 팔을 비틀었다. 나는 놈을 다시 한 번 벽으로 밀어붙이고 조용히 물었다.

“누구야?”

“뭐가, 뭐가 누구야…?!”

“누구냐고. 누가 이렇게 멍청하게 움직이라고 시켰어?”

형의 편지를 받은 건 이놈이 아니다.

형의 편지를 받은 자가, 또다시 이 학생에게 일을 시킨 것이다.

형은 이렇게 허술하게 일하는 인간이 아니다.

내가 임의로 ‘감시인’이라는 용어를 쓰기야 했지만, 형이 보낸 우편에는 나를 감시하라는 내용이 한 문장도 없을 것이다. 수신자가 배신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대담한 짓을 하겠는가?

다른 수신자가 받은 편지에는, 내 편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생을 걱정하는 따스한 문구만 가득할 것이다. 그중에는 건강을 잊고 공부에 전념하는 동생이 걱정되니, 가끔 내 안부를 전해 달라는 이야기가 있겠지.

동생이 형을 어려워한다는 점을 들어, 내 안부를 전해 듣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형도 그 점을 상대방에게 말했을 것이다. 모든 논리가 정당했다.

편지 수신자가 형의 의도를 멋대로 추리하지만 않았어도 형의 일은 순조롭게 풀렸을 것이다.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지 않는 이상, 상대가 드러내지 않은 의도를 제멋대로 파헤쳐서 움직이면 불협화음만 날 뿐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또 그들 사이의 경중을 어떻게, 무슨 자신감으로 판단한다는 말인가?

수신자는 의도를 오해했다.

걱정이 되니 안부나 좀 전해 달라는 평범한 말을, 플레로마인 날 감시하라고 돌려서 말하는 것으로 오해했겠지.

물론 일부는 진실이다.

하지만 대놓고 감시를 말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함부로 남의 의도를 뜯어볼 생각이었다면 거기까지 고려했어야 했다.

‘이번에는 형이 악수를 뒀네.’

사람 하나 잘못 골라서 이렇게 다 알게 만들다니.

‘슬슬 형이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볼까.’

형이 이 상황에서 알아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성적뿐 아니라 태도까지 변한 이유가 무엇일까?

자기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 변하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외의 이유가 있는가.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만약 첫째의 이유라면 형이 구축한 20년의 시스템이 언젠가 전부 허사가 될 것이니, 당장 대비해야 할 테니까.

그러니까, 형은 첫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대놓고 감시인을 붙여 버린다면, 첫째의 경우에는 형의 악의를 내게 확신시켜 주는 꼴이 된다.

결국 그 수신인은 머리를 쓰고도 멍청해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학생이 고개를 거세게 저으며 소리쳤다.

“시키다니? 아니야! 아무도 나한테 시킨 적 없어…!”

“없긴 뭐가 없어.”

형이 믿을 수 있는 사람, 내 안부를 부탁할 만큼 형과 나를 모두 잘 알거나, 알 수 있는 사람.

둘의 교집합에 학생은 그리 적합하지 않다. 하나가 통과되면 다른 하나에서 조금씩 막힌다.

나는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교수잖아. 제국 2교육원 교수 중 누군가가 네게 날 지켜보라고 지시했지. 틀려?”

나는 미소 지으며 놈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