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7화 (27/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7)

“어떤 교수가 날 감시하라고 했는지 말해. 이미 다 알고 있어. 사실대로 말하면 그냥 놓아줄게.”

놈의 눈이 떨렸다. 놈이 내 뒤로 눈을 굴리며 말을 질질 끌었다.

“그…. 아니….”

“누구냐고!”

“트, 트라우트! 트라우트 교수가 시켰어!”

내 윽박에 놈이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좋아.

트라우트라면… 오래전 아스카니엔의 후원을 받아 교수 자리에 오른 학자 중 하나다.

마법사지만 현재 마법학과 교수는 아니고, 다른 학과에서 마법을 가르친다.

왜 형의 편지를 오해했는지 확실히 알겠네.

이 자는 아스카니엔 가문이 루카를 보호하기 위해 황실과 맹약을 맺은 걸 알고 있다. 우리 가문과 연관이 있었던 자라면 아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트라우트는 형의 편지를 맹약이 깨지지 않게, 그러니까 내가 플레로마와 접촉하지는 않는지 잘 감시하라는 뜻에서 보낸 편지라고 여겼을 것이다.

나는 미소 지으며 학생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그래, 좋네. 고맙다.”

“…응?”

“자, 너는 나랑 맞닥뜨린 이상 나랑 대화해서 정보를 얻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 그렇지?”

“뭐, 뭔 소리…?”

“그리고, 이왕이면 앞으로는 감시인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학생의 재킷 배지를 흘끗 보고 말을 이었다. 기사학과 배지다.

“넌 우리 학과도 아니지. 나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같은 과, 같은 반에, 같은 특별반 이용자면 최적의 조건이겠는데. 너도 너 자신을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러니 내일 교수님께 말씀드려 봐. 아무리 생각해도 넌 한참 부족한 환경에 있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무슨 소리냐고 물을 만하다. 진실이 아니고, 정신 조작 마법이니까.

나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완드를 겨눠 한 달 전에 썼던 마법을 입에 담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놈의 눈이 풀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기서 잠들면 안 된다.

나는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학생을 아까 뛰어온 방향으로 잡아 세우고, 그의 이마에 신력을 담아 의식을 깨웠다. 순식간에 학생의 몸에 힘이 돌아왔다. 그가 눈을 뜬 순간, 경악이 얼굴에 스몄다.

“악!”

놈이 내 얼굴을 보고는 뒤로 펄쩍 뛰며 소리쳤다.

지금 그에게 남은 마지막 기억은 내가 급작스레 뒤돈 기억이다. 내가 뒤돌 줄 모르고 있다가 얼굴을 마주해 놀랐을 것이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는 목소리를 떨며 인사했다.

“…아, 안녕, 루카스. 맞지?”

“안녕.”

나는 한쪽 눈썹을 구기며 인사했다.

놈이 눈을 굴리며 억지웃음을 지어냈다.

“음, 여기서 마주치다니 신기한 우연이네. 그, 널 따라오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반가워서.”

내가 할 말이다.

놈은 알아낸 정보를 전부 트라우트 교수에게 말할 테니, 이 기회를 역으로 이용하면 형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교란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이 상황에 맞는 연기를 해야겠지.

내가 살짝 불쾌한 기색을 담아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말을 이었다.

“아, 사실 너한테 말을 좀 걸어 볼까 하고 있었거든.”

“말을 걸어?”

“요즘 애들이 네 얘기를 많이 해서. 네가 지난 학기랑 다르게 되게… 사교적이라는 말을 좀 들었어.”

나는 눈썹을 좁힌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허둥지둥 말을 이었다.

“음, 그런데 지금은 좀 불편한가 봐. 아무래도 늦은 시간에 학교 끝에서 마주쳤으니까….”

“당연히 좀 그렇지. 그럼 나랑 대화하려고 쫓아왔다는 말이야?”

내가 그에게 각인시켰던 방향으로 대답하자, 놈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스쳤다. 놈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살짝 목소리를 높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맞아. 도서관에서 나온 걸 우연히 봤는데 네가 갑자기 뛰더라고. 무슨 일이 있나, 싶기도 해서 따라와 본 거야. 불편했으면 미안해.”

“…아냐, 됐어.”

나는 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불편할 리가 있나.

이제부터 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수에게 내가 꾸며낸 거짓 정보를 전달할 것이고, 교수 역시 그것을 형에게 상세히 적어 보낼 것이다.

황색 언론까지 갈 필요도 없다. 효과 좋은 교란책을 찾았으니, 이번에도 잘 활용해 봐야지.

* * *

“교수님.”

한 학생이 마법검술학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스테판 트라우트라는 이름이 적힌 문패가 햇빛에 빛났다.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리자, 학생이 자연스레 들어가 교수의 앞에 앉았다.

학생이 여전히 할 일에 열중하고 있는 교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낮에는 별일 없었습니다.”

교수가 고개를 들어 그를 가만히 바라보자, 학생이 말을 이었다.

“저녁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11시에 도서관에서 나오더니 3교육원이 있는 곳으로 무작정 뛰었습니다. 쫓아가 봤는데….”

“쫓아갔다고요.”

교수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까딱였다. 학생이 눈을 피하며 목덜미를 쓸었다.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가는 게 수상해서요. 들켰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했습니다. 동물을 잃어버려서 찾으러 돌아다녔다고 하더라고요.”

교수가 고작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냐는 눈으로 학생을 바라봤다. 학생이 황급히 본론을 꺼냈다.

“오랫동안 대화해 보니, 1학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과장이었습니다.”

“그래요….”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무언가 적어 내려갔다.

“길게 대화하니 티가 나던데요.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것도 다들 몇 마디만 말을 나누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짧게는 멀쩡히 대화할 수 있다는 얘긴데. 어쨌든 그 학생은 짧게나마 대화가 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죠. 이유는 알아봤나요?”

“예, 성적을 올려야 한다던데요.”

그 말에 교수가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성적?”

“가족이 성적을 올리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태도 점수가 어쩌고 하는 얘기도 했는데, 무슨 상관인지….”

“음.”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무언가 빠르게 적었다.

학생이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종합해 보면 참여 수업 때문에 적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법학과는 우리 학과랑 다르게 발표 같은 활동의 비중이 크니까요. 제 추측일 뿐이지만요.”

학생이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의문에 빠졌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적 하나 올리자고 그렇게까지 변할 수는….”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뭐든 해낼 수 있습니다.”

“궁지요?”

학생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교수 앞이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풀어냈다.

교수가 펜을 멈추고 손을 저었다.

“됐습니다. 또 알아낸 것 있나요?”

“아뇨, 딱히… 없습니다. 종일 기숙사 아니면 도서관에 있는 게 다입니다. 본인 입으로도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어울리는 친구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겠죠.”

“그렇군요. 수고했어요. 그 학생은 앞으로도 그럴 테니, 이상한 행동을 보일 때만 찾아오세요.”

“예.”

학생이 뒤돌았다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종이에 무언가 갈겨 쓰던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죠?”

“아….”

학생이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다시 교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교수님. 교수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그 학생과 학과도 다르고, 접점이 많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같은 과 학생이 감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마법학과 특별반 학생이면 저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요.”

“하기 싫다는 말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닙니다. 가 보겠습니다.”

학생이 황급히 문을 연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어.”

학생이 살짝 주춤대며 옆으로 비켜섰다. 나르케가 가볍게 학생에게 눈인사하고는 교수의 연구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무슨 일인가요?”

“방학 때 교수님 강의를 들어 보고 싶은데, 제가 교환 온 학교에서 인정이 되는 과목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래요, 여기 앉으세요.”

나르케가 학생이 나간 곳을 쳐다보고는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교수의 책상을 흘끗 보고 물었다.

“그런데, 방금 그건 루카스 얘긴가요?”

* * *

“이제부터 나르케가 루카스 감시해야 해~!”

“잘됐네. 근데 말뜻은 알고 있지?”

나는 파이의 호들갑에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바로 위층 옥상에 올라, 파이가 전해 주는 나르케의 말을 그대로 들었다. 몇 미터 안쪽에서는 서로의 말을 읽을 수 있는 듯했다.

아무튼, 그러라고 나르케를 그 시간에 보냈다.

감시인에게 지속적인 정신 조작 마법을 가한다면 교수가 눈치챌 수 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니까.

그러면 감시인을 내가 바꾸면 되지.

레오도 부탁하면 해 주겠지만, 이 일에는 나르케가 더 적합했다. 레오보다는 나르케가 잘못된 정보를 더욱 태연하게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나르케는 교환 온 이후 루카스와 나름 친밀히 지내 왔다며, 다른 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것까지 조사할 수 있다고 잔뜩 떠벌렸다.

신학교에서 온 학생이 플레로마로 여겨지는 학생을 겉으로는 잘 대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믿을 리가 없으니, 교수도 나르케를 믿고 선뜻 감시를 맡겼다.

‘나르케 본인이 먼저 나보고 플레로마 소문이 헛소문이라고 얘기 꺼낸 걸 알면 놀라겠네.’

이쯤에서 생존 가능성이 변했는지 확인을 좀 해 봐야겠다.

여명777

― 최종 결말 ‘Chapter X. 사망’까지 716일 21시간 13분 01초

― 변경 가능성: 7.9% (+1.0%p)

나르케를 처음 만나고 확인했을 때는 6.4%였다. 그 사이 0.5%p가 오르고, 이번 일로 1%p가 또 올랐다. 나는 한시름 놓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나르케 나왔다!”

파이가 어깨에서 뛰어 내려가 계단으로 향했다.

이제 이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으니, 다시 큰 그림에 집중할 시간이다.

나는 파이를 따라 내려가, 나르케의 인사를 받아 주고 별관으로 향했다.

* * *

오늘의 회의는 주말이라 조금 이르게 시작했다.

나는 책상을 짚고, 학생들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자료 수집에 집중했지. 이제 본격적인 분석으로 들어갈 거야.”

“지금까지도 분석 아니었어?”

멜빈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전부 종합해 보자는 거지. 먼저, 앞으로 활동이 어떻게 이뤄질지 얘기해 보자. 현재 황실에서 플레로마 처리 본부가 있는 건 다들 알겠지.”

“알지.”

“그쪽에는 수많은 부서가 있지만, 핵심은 두 곳이야. 전략, 그리고 전투. 우리는 전략실이 하는 일에 집중할 거고, 필요한 경우에만 답사를 나갈 생각이야.”

물론 나와 레오는 자주 나갈 생각이다.

키메라 이리를 보고서 또 나갈 생각은 싹 사라졌지만… 오히려 그 존재 때문에라도 나가서 소설의 전개가 바뀌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플레로마의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으니까.

나는 준비한 자료를 책상에 늘어놓고 대답했다.

“플레로마가 새로운 규칙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 건, 신도 10만 명을 모은 2년 전이야. 2년 전부터의 범죄 기록을 조사해서 월별로 범죄 발생 건수를 분류했어.”

나는 학생들에게 그래프가 그려진 종이를 하나씩 나눠 주고, 수를 읽어 나갔다.

“1월부터 11건, 8건, 7건, 4건, 5건.”

“점점 줄고 있네.”

“그러다 다시 6월부터 급등하고 줄지. 13, 8, 10, 5. 그리고, 10월부터 다시 9, 15, 14.”

학생 하나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건… 그냥 규칙이 없는 거 아냐?”

“잠깐만,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로 넘어갈 때 조금 줄어드는 것 같은데. 준비 기간인 건가?”

“음, 일리 있네.”

학생들이 알아서 대화를 나누며 추론하기 시작했다. 레오가 펜으로 종이를 툭툭 두드리며 고개를 들었다.

“10월부터 3월까지의 범죄는 재물손괴, 상해가 대부분이네. 6월부터 8월까지의 범죄는 주로 약취와 유인으로 분류되고. 그런데 이런 유형 말고, 정확히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면 이해가 빠를 것 같아.”

나는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노트를 꺼내 펼쳤다.

“그래, 10월부터는 주로 묘지를 훼손하고 시체를 훔쳐 가거나, 산 사람이나 가축의 피를 뽑아 간 범죄가 대부분이야. 반면 6월부터는 유괴, 납치, 허가받지 않은 불법 선전 등이 대부분이지.”

“겨울이나 여름이나 미친 짓을 하는구나.”

한 학생의 말에 나르케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 그보다는 범죄의 결이 다르네. 계절별로 활동이 바뀌는 거야. 그렇지?”

“맞아. 겨울에는 플레로마의 부활, 영생, 마법에 관한 범죄가 대부분이라면, 여름에는 신도를 양성하고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범죄가 대부분이야.”

슬슬 가닥이 잡히자 학생들이 훨씬 진지해진 얼굴로 정보를 살폈다.

나는 기사를 꺼내 건넸다.

겨울이 되어 공공 묘지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출입자 신원 검증을 철저히 한다는 기사였다.

“이 정도는 황실에서도 대놓고 공개만 안 했을 뿐 이미 가지고 있던 정보야. 여기에, 우리는 하나 더 추가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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