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9화 (29/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9)

나는 장갑 위에 마력을 두르고 흙바닥에 손을 내려놓았다.

주위에 다니던 개미들이 방향을 틀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일제히 장갑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번 손을 털었음에도 개미들은 또다시 손을 타고 올랐다.

“개미도 오염됐어?”

“응.”

주인공의 방문에서도 오염된 곤충은 등장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신분을 숨긴 채 몇몇 제한 구역을 살피고 다녔는데, 그때에는 그냥 신나게 오염된 척추동물을 때려잡기만 했다.

“오길 잘했네. 왜 곤충이 오염되어 있는지 좀 알아보자.”

“너도 곤충으로 실험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가능한 일은 여러 가지니까.”

굳이 나방도 잡고 개미도 잡아 데려가서 실험할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집단을?

물론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지역 전체가 오염되었다고 보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다.

나는 개미가 없는 곳을 찾아 흙을 쓸었다. 흙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서 질퍽하게 뭉쳤다.

“물기가 많네.”

“비가 온 게 아직도 마르지 않았나 봐. 옆에 습지도 있고.”

이렇게 되면 곤란하다.

물에 쓸려 사라지고 남은 미량의 마력으로는 이게 오염된 동물에서 나온 건지, 지역 자체를 오염시키려 했던 증거인지 알 수 없다.

“늪으로 가 보자.”

한참 걸어 중간에 오염된 쥐를 한 무더기 잡고 나서, 드디어 늪에 다다랐다.

둑에 앉아 늪에 손을 넣자 아까와는 다른 기류가 손끝에 맴돌았다.

레오가 중얼거렸다.

“여긴 흙부터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야. 더 멀리 안 퍼진 게 용한 상태인데?”

“원인이 늪일 거야.”

이건 소설에서부터 그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냇가처럼 길게 늘어진 늪을 따라 걸었다.

역시나 한 걸음씩 발을 뗄 때마다 오염된 동물들이 늪에 반쯤 몸을 걸치고 죽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둑에 앉아 늪 표면에 완드를 대고 신력을 흘려 정화했다.

마수를 뿌리 뽑지 않는 이상 주기적으로 정화해 줘야겠지만, 일단 이렇게라도 해 놓아야지.

문제는 늪은 그대로인데, 왜 소설과 달리 곤충이 오염되어 있느냐다.

결국 곤충은 늪에 의해 오염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벌써 소설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건데.’

이제,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었다.

“레오, 이만 돌아가자.”

“벌써?”

“조사를 좀 해 보려고. 동물도 어쩌다 가끔 결계를 뚫는 놈이 있으니, 곤충도 가능할 거 아냐.”

“여기가 하급 제한 구역이니까… 충분히 뚫겠지.”

레오가 아무렇지 않게 답해 놓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미간을 구겼다.

“분명히 사람을 무는 벌레가 밖으로 나가서 일을 친 적이 있을 거야. 언제 문제가 있었는지 찾아보자.”

* * *

“이상한 증상이요?”

“예, 한 달 이내에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분이 계셨나요? 원인 모를 병이나, 잠깐 겪고 사라진 갑작스러운 통증도 좋습니다. 그 외에도 곤충이나 벌레에 대한 이야기라면 사소해도 괜찮으니 전부 이야기해 주세요.”

다시 사무소로 돌아온 나는 들고 온 수첩을 펼치고 관리인의 말을 적을 준비를 했다.

“딱히 그런 건…. 아, 벌레에 대한 거면 추운 날씨에 모기가 돌아다닌다고 불평하시는 걸 듣긴 했어요. 왜 여름 모기보다 가을 모기가 더 가렵냐고 엄청 뭐라 하시던데요.”

이곳은 제국 최북단이기에 10월 마지막 주인 지금부터 벌써 한겨울 같은 날씨를 보인다.

모기가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또 다른 건 없습니까?”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네.”

나는 수첩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변 고맙습니다. 그럼 잠시 마을을 둘러보고 싶은데….”

그 순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한쪽 벽에 늘어섰다.

그들의 방문에 관리인이 얼어붙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춤거렸다.

사람들이 레오를 향해 깍듯이 인사했다.

“메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바이에른 왕세자 저하.”

* * *

“…당황스럽네.”

상대가 잠시 자리를 뜨자, 레오가 내게만 들릴 크기로 중얼거렸다.

정말 당황스러워 보이긴 했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늘 어딘가에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으니까.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은 이 지역의 남작가 사람들이었다.

남작은 군 업무로 지역을 나가 있었기에, 지역을 방문한 귀족에게 예를 차리기 위해 그 보좌관들이 이곳을 찾았다.

이야기도 들을 겸, 그들의 제안대로 남작의 저택에 이동했다.

나는 보좌관과 차를 마시며 아까 관리인에게 했던 질문을 꺼냈다.

보좌관이 턱을 쓸며 말을 끌었다.

“이상한 증상… 글쎄요. 이 저택 하인 중 하나의 피부병이 심해지긴 했습니다.”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2주 전부터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벌레에 물린 적은 없습니까?”

“그 이후에 생긴 일이긴 한데, 빈대에 물려서 생긴 물집이 아직까지 가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제가 엊그제 의사를 소개해 주어서 알고 있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알아보기 어렵겠는데.’

경미한 증상 정도는 다들 그냥 넘어가고 말지, 특별히 기억하기는 어렵다.

“오염 구역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그냥 조사하는 겁니다. 고맙습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말했다.

“하인츠 경께서 오셨습니다.”

“아, 잠시 일어나 보겠습니다. 편히 계십시오.”

“예.”

보좌관이 나가자 정적이 이어졌다.

나는 적어 둔 내용을 돌아보며 레오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쉽지 않은데.”

“그러게. 의심되는 이야기는 많은데, 오염된 곤충 때문에 생긴 일인지 확신하기는 힘들겠어.”

“흠….”

어떻게 할까.

그때 레오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지금 마을이라도 돌고 오자. 곤충이 여기까지 나왔으면 이미 한참 전에 번식했을 거야. 어디에서 번식했는지, 오염된 기미가 있는지 알아봐야지.”

“그 수밖에 없겠네.”

몇 시간 뒤면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 빨리 움직여야 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곧바로 멈추어 섰다.

내 발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레오가 뒤돌았다.

“왜 그래?”

“레오, 너 혼자 다녀와야겠다.”

“또 뭐야. 너는?”

“여기서 할 일이 있어.”

직접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 * *

“니콜라우스 경, 벌써 100명이 넘어갔습니다.”

“이쯤에서 닫아 주세요.”

계속 수행원이나 푸른 눈의 사냥꾼 따위로 불릴 수는 없어, 가명을 만들었다.

나는 지금 학교로 사용되고 있는 옛 수도원의 방을 하나 얻었다.

‘…아니, 방이라고 표현하긴 뭐하지.’

방은 방인데… 이곳에서 500명쯤 모아 놓고 연설도 할 수 있겠다.

책상 하나에 의자 두 개면 된다니까 쓸데없이 넓은 공간을 줬다.

“아, 아.”

…….

역시나 울린다.

나는 곧장 일어나 방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옆에서 뿌듯한 미소를 짓던 남작의 가신이 당황한 눈치로 복도 반대편의 방을 안내했다.

교실 하나만 한 크기에, 응접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좋네요. 여기로 하겠습니다.”

“정말 이런 협소한 곳으로 모셔도 될지….”

“아까 그곳보다는 훨씬 마음에 듭니다.”

아마 언론 보도용으로 그림이 잘 뽑힐 곳을 고르고 싶었겠지만, 소리가 죄다 울리는 곳에서는 원활한 조사를 할 수 없다.

가신이 아쉬운 듯 미적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니콜라우스 경, 지금 들여보내겠습니다.”

“예.”

얼마 뒤, 한 노인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더니 감명받은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그러더니 양손을 모아 무언가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신의 축복이 당신께 있을 겁니다.”

“…아, 네. 고맙습니다.”

나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조금 당황스럽지만 저런 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외지인 외에는 마법을 접할 기회가 없고, 신력은 더더욱 접할 수 없다.

그리고 난 지금부터 신력으로 사람들을 정화할 생각이다.

최근 이상한 변화를 겪은 자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결정이었다.

물론 아픈 구석은 없지만 한 번쯤 성직자―신력을 쓰는 이상 그렇게 여긴다―의 정화를 받아 보고 싶어 오는 자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걸 노렸으니 문제없다.

치료에 초점을 맞춘다면 경미한 증상을 겪는 자들에게는 심리적 문턱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마법의학보다는 종교적 자선 활동으로 빠지는 게 낫다.

마주한 사람이 쉰 명을 넘길 즈음, 나는 휴식을 요청하고 잠시 기록지를 살폈다.

‘진드기에 의한 피부병 하나, 모기에 물린 사람 넷.’

진드기 쪽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후자는 눈여겨봐야 한다.

2주 전부터 모기에 물렸는데, 멍이 든 것처럼 피부가 보랏빛으로 변하더니 이틀 뒤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다시 시작합시다.”

나는 두통약 하나를 삼키고 외쳤다.

조금 지나자, 한 청년이 팔에 아기를 안은 채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떻게 오셨나요?”

“피부 상태가 영 좋지 못해서요. 제가 아니라 제 아이를 좀 봐주셨으면 해서 왔습니다.”

그가 아기를 내 쪽으로 보였다.

‘음.’

피부가 보기 힘들 만큼 푸르죽죽하게 변해 있었고, 관절이 접히는 부분에는 고름이 차 있었다.

색만 보면 아까 모기에 물렸다고 말한 자와 비슷한 증상이다.

“이미 의사를 찾은 지 일주일이 되었는데 무슨 약을 써도 낫질 않아요. 마법의학으로 치료해야 할 것 같다는데, 비용이 문제라….”

머릿속으로 정화식을 외운 뒤 아기의 맥에 신력을 불어넣었다. 한쪽 팔의 푸른 기가 빠져 서서히 본래의 피부색을 찾았다.

내내 암울한 표정이었던 청년이 미간을 구기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

“정말 마력으로 생긴 문제일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장기가 손상되지 않을 만큼 힘을 조절하는데, 조금만 속도를 늦추니 다시 푸른 기운이 피부에 퍼졌다.

한참 사투를 벌이고서야 온몸의 오염된 마력을 빼는 데에 성공했다.

청년이 멀쩡해진 아기를 부여잡고 외쳤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걸 제가 어떻게 갚아야 할지….”

“질문에 답변만 해 주세요. 모기를 보신 적이 있나요?”

“모기요? 네. 올해는 안 죽고 지금까지도 살아 있더라고요. 아니,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나타났다고 해야겠죠…. 그래서 지난주에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천 주변을 한바탕 뒤엎었어요.”

“언제부터 모기 이야기가 나왔나요?”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성 루카 축일 전후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

10월 중순.

약 2주 전이라는 얘기다.

다섯 명째 같은 이야기다.

“그 정도면 자세하네요. 그래서, 좀 줄었나요?”

“아뇨. 그리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내버려 두자고들 하더라고요. 하천까지 손을 봤는데도 딱히 달라진 게 없으니….”

안 될 텐데.

헛웃음이 절로 났다.

지금 하천 주위의 습지를 손볼 게 아니고 저 제한 구역을 전부 태워 버려야 할 수준이다.

피부색이 하루 이틀 변하는 정도야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기의 상태를 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거 잘만 이용하면 굉장히 크게 번지겠는데.’

쓸 만한 일이다.

물론 플레로마의 입장에서.

만약 실험하고 나서 오염된 마력 찌꺼기가 아니라, 실험에 쓰이는 약물이나 마법을 그대로 곤충에게 실을 수 있다면?

아니면 마력을 지금의 수십 배로 강하게 오염시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면?

플레로마에게는 더없는 행운이자 교단의 대성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이고, 제국의 입장에서는 영생 공식을 찾으려는 웬 사이비 종교에 나라를 부활 실험대로 바치는 일이 될 것이다.

‘생각보다 스케일이 커.’

그리고 그건 이 대국적 문제를 해결했을 때 얻는 바도 크다는 뜻이다.

나야 일 처리를 이런 식으로 하는 제국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지만, 해결해 볼 만한 일이다.

잘만 하면 니콜라우스의 지지 기반을 다지는 첫 업적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띠링―!

‘Route 1 ― 〈Chapter 4.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2) 〉’를 시작합니다.

「 Chapter 4.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2)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