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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31화 (31/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31)

저녁 8시, 레오는 온종일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던 엘리아스를 찾아 교내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 호수는 이미 엘리아스가 새의 다리에 묶어 보낸 쪽지로 알고 있었다.

레오는 데스크에서 들어가도 되겠냐는 허가를 받고, 복도 끝 호실 문을 열었다.

드륵―

“오랜만이네, 레오.”

문을 열자마자 느긋한 인사말이 들려왔다.

침대에 기대 누워 있는 엘리아스가 입가에 대었던 와인잔을 살짝 들어 인사했다.

레오가 그를 내려다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랬어?”

“어떤 거, 다리 부러진 거? 아니면 1학년?”

“둘 다 묻고 싶은데, 일단 뒤에 거.”

“너 같으면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겠어?”

“…듣고 교수님께 말씀드렸겠지.”

“아, 너답다. 고향에 온 기분인데. 아쉽지만 난 그런 성인군자는 못 돼.”

엘리아스가 씩 웃으며 와인을 마셨다.

“그보다 만나자마자 타박이야? 몇 달을 못 봤는데 반겨야지!”

“반갑다. 이틀에 한 번꼴로 편지를 보내대서 내내 옆에 있는 줄 알았네.”

레오의 비딱한 대답에도 엘리아스는 피식 웃기만 했다. 레오가 바닥에 놓인 빈 와인 상자를 구두 끝으로 툭 쳤다.

“이 술은 또 뭐고.”

“알코올 7%짜리 물이라고 해 줘. 도저히 이걸 술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에휴….”

“한잔할래? 학식으로 나오는 아페리티프 도수라서 문제없는데.”

“할 일 많아. 너나 많이 마셔.”

엘리아스가 잘 말했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고 또다시 와인을 들이켰다.

레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징계는?”

“없어. 여기 있는 거 보면 알겠지? 너무 충격받아서 입원이나 해야겠다고 떼 좀 썼어. 순순히 보내 주더라.”

“아니잖아.”

레오의 간단한 말에 엘리아스가 입을 다셨다.

“눈치 빠르긴. 그래도 징계 안 받은 건 맞아. 내가 들은 말이 보통 수준이어야지. 여기 온 건 마법의학으로 치료 좀 받을까 해서 온 거고.”

“징계라도 안 받아서 다행이네. 나으려면 얼마나 걸린대?”

“영영 못 쓰게 될 수준이라 마법의학 동원해도 두 달 넘게 걸려. 시전자가 비텔스바흐쯤 되면 또 모르겠지만.”

“…언제 다쳤는데….”

엘리아스가 와인을 들이키고 레오를 턱으로 가리켰다.

“네가 나랑 같이 메펜 안 가고 네 왕국군 마법사랑 간 날. 이렇게 말하면 죄책감 좀 느끼고 나랑 같이 다니려나?”

레오가 눈을 찡그리고 입을 꾹 닫았다.

엘리아스가 킬킬대고 또다시 와인을 붓자 레오가 물었다.

“거짓말하지 말고. 진지하게 대답해 봐.”

“진짜야. 어제 제한 구역에 갔어. 상급 짜리.”

“…….”

레오가 구제 불능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쯤 누워 있던 엘리아스가 와인잔을 삿대질하듯 내밀며 몸을 일으켰다.

“이봐, 내 실력 못 믿어~? 평가 점수는 너보다 후져도 마력은 훨씬 나아!”

“그럼 다쳐 오긴 왜 다쳐 와?! 앞뒤 좀 맞춰!”

“거긴 웬 돼지가 오염돼 있더라. 빠르기도 엄청 빨라. 피하려다 보니 떨어졌지.”

“멧돼지겠지.”

“알아.”

레오가 미간을 붙잡고 참을 인을 새기는 표정으로 일어나 뒤돌았다.

그러다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멧돼지한테 마법은 왜 안 썼는데?”

“오염된 공기에 중독됐어. 상당히 졸리던데.”

“떨어질 땐 잘도 썼네.”

“살긴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다리 하나 부수고 목숨 얻은 거면 꽤 값싸지.”

레오가 엘리아스의 왼쪽 다리와 침대 옆에 놓인 목발을 보고 착잡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래도 살아서 와서 다행이야.”

“웬일로 본심을 말하네.”

엘리아스가 씩 웃었다.

“이러면 철회하고 싶어지는 거 알지? 아무튼 마법의학은 왜 진작 안 쓰고 이제 왔어?”

“돈이 없다.”

“뭔 황가 사람이 돈이 없어? 장난해?!”

레오가 점점 지끈거려 오는 이마를 짚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께 연락드릴게. 안 그래도 너 언제 오냐고 그러셨어.”

“좋네. 바쁘실 테니 한 달 뒤로 잡아 줘.”

“네 부상이면 언제든지 시간 내실 수 있는데?”

엘리아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 꼬라지를 봐야 할 자식들이 있어서. 그래서, 네가 고용한 마법사는 얼마나 도움이 되길래 날 두고 간 거야?”

“도움…은, 글쎄, 그런 생각은 딱히 안 해 봤어. 그 마법사가 가자고 한 거라서.”

“뭐?”

“그쪽이 가자고 했다고.”

“…네가 남이 가잔다고 가는 사람이라고?”

엘리아스가 황당함을 담아 물었다.

레오가 되레 황당해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아무튼, 얘기 나온 김에 이제 가야겠네.”

“벌써 가게? 더 놀다 가.”

그 말에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도 가야 해. 그 상태로 워프할 수 있어?”

* * *

“멋지네. 전략회의실?”

“맞아.”

“오.”

모임 장소로 워프해 온 엘리아스가 벽면에 붙은 수많은 지도와 메모를 훑어보며 휘파람을 훅 불었다. 손에는 와인을 가득 따라 놓은 잔을 든 상태였다.

“분석 잘했네. 황실 자료보다 나아 보이는데.”

그러더니 몸을 돌려 나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루카스지. 안녕.”

“안녕. 오늘 아침에 만났지.”

“맞아. 덕분에 오늘 지각 면했다. 고마워.”

레오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 앉은 엘리아스가 커다란 테이블과 그에 딸린 의자들을 세어 보며 말했다.

“사람이 많은가 보네? 지하에, 마법 걸린 걸쇠에, 저 수많은 분석 자료를 보면 비밀스러운 모임인 것 같은데. 나도 여기 끼워 주는 거야~?”

이 화법은 엘리아스의 스타일일 뿐, 끼워 준다고 해서 흔쾌히 가입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이해득실을 따지기 전까지, 마음이 동하기 전까지 넘어오지 않는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부탁하는 거지. 레오에게 어디까지 들었어?”

“너랑 굉장히 놀라울 만큼 급속도로 내밀하게 친해졌다는 데까지.”

내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레오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구겼다.

“대체 언제 그렇게 말했어? 수업 끝나면 같이 훈련하고 새벽에는 플레로마를 연구하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지. 정확히 전달해.”

“네가 진지하게 훈련 상대를 맡아 주는 사람은 몇 없잖아.”

레오가 포기한 얼굴로 손을 휙 내저었다.

“루카스, 흘려들어. 적응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거야.”

“아냐, 문제없어. 마음에 드는 화법인데.”

마음에 드니까 후반부까지 잡고 읽었지.

10년에 달하는 내용을 큰 생략 없이 담았던 만큼 상당히 긴 이야기였다.

어쨌든, 지금은 그걸 회상할 때가 아니다.

“길게 말할 필요 없겠지. 본론부터 말할게. 네가 들은 대로 여기는 플레로마를 제거하기 위한 비밀 모임이야. 그리고, 난 네가 이곳에 들어와 주길 바라.”

“으음~?”

엘리아스가 꼬았던 다리를 풀며 고개를 빗겨 들었다.

“그거 좀 놀라운 소리인데. 플레로마가 플레로마를 처리하겠다니.”

“나야말로 놀랍네. 진심으로 내가 플레로마라고 생각해?”

엘리아스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가 레오 쪽을 고갯짓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머리로 납득이 되진 않지만, 넌 레오랑 친구니까. 레오는 아무나 옆에 두지 않아.”

“간단명료하네.”

“그만큼 레오는 믿을 만한 친구야. 너도 같이 지내 봤으니 알겠지. 마음 같아선 네게 상귀나치오 돌체라도 좀 권해 보고 싶은데… 일단 호기심은 좀 참자고.”

레오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럴 만도 하다. 엘리아스가 말하는 음식은 피로 만든 푸딩이니까.

레오는 무례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소설에서 줄곧 봐왔던 그다운 대답에 웃음이 먼저 났다.

엘리아스가 홀로 이 상황을 납득해 보려는 듯 생각에 잠긴 채 저 멀리를 바라봤다.

“네가 플레로마가 아닌 게 확실하다면 어쩌다 그런 소문이 돌았을까. 아, 이런 거 재밌지. 한번 따져 볼까? 시작은 당연히 네가 어릴 적 벌인 그 유명한 사건들 때문이야.”

그가 턱을 괸 채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진위는 차치하자. 하나도 제대로 조사받은 적 없잖아. 아, 질문을 바꿔야겠네. 정확히는 무엇이 네가 플레로마라는 주장을 강화했을까? 아스카니엔이라는 빛나는 이름이 있고, 추문을 막고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세력이 있는데 어쩌다 이 상황까지 치달았냐는 말이야.”

예리하네. 주인공답다.

소설에서나 읽던 그의 이런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가 곧바로 손가락을 두 개 펼쳤다.

“내 가설은 두 가지야.”

“내가 너랑 비슷하다고 했지.”

레오가 내 쪽을 보지도 않고 무심히 말을 던졌다.

이곳에 오기 전, 잠깐 훈련장에 들러 레오에게 엘리아스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고, 그때 그 편지를 보낸 이가 엘리아스라는 걸 확실히 들었다.

엘리아스가 그 말에 손뼉을 쳤다.

“뭐, 나랑 비슷하기까지 하다고? 레오 네 친구 취향이 어떤지 좀 알겠다.”

“그런 게 어딨어. 생각한 게 뭔지나 말해.”

“급하긴. 어릴 적 생긴 사건들에 ‘도저히 친해지기 어려운 면모’가 합쳐져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극대화되었거나, 아니면 아드리안 아스카니엔과 지지 세력이 그 소문을 적극적으로 밀었거나.”

레오가 당장이라도 헛웃음을 흘릴 얼굴로 입술을 벌렸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통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간단히 정답을 맞힌다고?

레오가 조용히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반에 어릴 때 자기도 모르게 살인을 저질렀다는 놈이 있는데, 적극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사건을 해명해도 모자랄 마당에 시커먼 안색으로 죽을상을 하고 다닌다? 아, 끝이지.”

레오는 후자의 이유를 물었지만, 진실을 알 턱이 없는 엘리아스는 전자의 이유를 설명했다.

아무튼 나름 순화해서 표현했네.

엘리아스 성격에는 ‘그딴 꼬라지로 살고 다니는데 네 생각에는 이상한 소문이 안 생길 것 같냐’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당연히 악역에게 공격당했을 때의 인성이지만… 소설에서 읽었던 그 성격이 뇌리에 깊게 남아 지금의 평범한 언행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물론 지금은 몰라보게 바뀌었지. 소문만 없었어도 너도 네 형님처럼 살 수 있었을 것 같네. 외모도 닮았고… 태도는 의외로 네 쪽이 더 고압적이고 날카롭지만, 그 정도야 아스카니엔 이름 하나면 다 끝나지.”

“두 번째 주장에 대한 이유는?”

내 말에 엘리아스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고는 양손을 맞잡았다.

“그쪽이 정답인가 보네.”

“…….”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상대의 사소한 단서까지 잡아채 승리를 이끌어 내는 사람이니, 이번에도 내 어조나 질문의 종류로 그 사실을 알아냈을 터다.

사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내 성격을 그리 자세히 알 턱이 없다. 훨씬 앞선 말에 대한 이유를 묻기보다는, 당장 성격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게 내 처지니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다들 자기 인생을 바탕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어. 일차적으로는 말야. 그러니까… 내가 너랑 똑같은 놈이라 맞출 수 있었다는 말이지.”

엘리아스가 와인을 들이키고 씩 웃었다.

“그래서 맨날 입조심하라고들 하는 건가? 결국 네 사정 맞추려다 내 사정까지 들통난 꼴이 됐네. 넌 레오 친구기도 하니까 상관없겠지. 루카스, 황제에 대해 잘 알아?”

“글쎄.”

“우리 큰아버지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정을 어떻게 맞췄냐고 묻고 싶었겠지? 질문이 틀렸어. ‘어떻게 그런 후안무치하고 패륜적인 발상을 했냐고’가 적합하지. 답하자면 내가 우리 큰아버지한테 배운 게 그런 것뿐이거든. 큰아버지의 조카 사랑은 끔찍할 정도야.

여유로운 비웃음으로 감추었지만, 말투 끝에 날이 선 마음이 묻어났다. 엘리아스가 겉으로는 여전히 웃음을 띠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

“단어 그대로 아주 끔찍해 죽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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