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32)
“내게 쏟는 관심의 십 분의 일이라도 국정에 쏟았으면 이미 이 나라는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됐을걸.”
“엘리아스.”
레오가 조용히 그를 다그쳤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가장 큰 적은 플레로마도 무엇도 아니었다. 황실 그 자체였다.
그가 말하는 큰아버지는 현 황제다.
아래로 동생이 하나 있었지만, 몸이 약했고 마력이 하급 귀족보다도 미미했기에 단 한 번도 차기 황제로 거론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의 큰아버지는 아주 당연하게 황제로 즉위했다.
하지만 황제의 평화는 동생이 자식을 낳으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법사로 판단하기도 애매할 만큼 허약한 동생에게서 현 황제보다 더 강한 마법사가 태어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황가의 기둥으로 순탄하게 자라났던 황제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그로 인해 자식에게 황위를 물려주기 어렵게 되었으니까.
물론 보통은 방계 계통의 자식이 본가 자식보다 좀 더 강하다고 해서 본가 후계를 갈아치우지는 않는다. 그저 방계 계통에서 가장 큰 명예와 부를 거머쥘 뿐.
하지만 엘리아스는 그 정도를 넘어서서 현 황제의 황위마저 충분히 위협하는, 전례 없는 마력을 타고났다.
그러니 마력이 발현된 순간부터 엘리아스는 현 황제의 적이자 그 자식들의 적이 된 셈이었다.
엘리아스가 레오의 말에 감정을 가라앉히고 미소 지었다.
“아무튼, 너도 똑같은 상황이구나. 분명 마법을 못 쓴다고 들었는데,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경계할 정도면 얼마나 강한 마력을 숨기고 있는지 궁금해지네. 아니, 애초에 마력을 어떻게 숨기고 살아온 거야?”
“형님께서 어릴 때부터 독을 먹였거든.”
“아.”
엘리아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턱을 쓸었다.
나는 늘 가지고 다니는 독약을 재킷 주머니에서 꺼내 건넸다.
그가 병을 빛에 비추어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참… 놀랍네. 믿기지가 않는데. 그렇게 국민을 위하는 사람이 동생에게 독을 먹이는 놈이라고. 거기에 이상한 누명까지 씌우고?”
“그래, 맞아. 내가 플레로마를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
“형이 만든 소문을 정면으로 부수기 위해서겠지. 아, 이거 스릴있네.”
엘리아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잘 아네. 내 의도가 순수하지 않아서 실망했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내게 그 무엇보다 강한 원동력이 있다는 점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어.”
“그건 걱정 마. 티 없이 올곧고 순수한 의도만 가지고 정의로운 일을 하라고 하면 열 명 중 일곱 명은 탈락할걸.”
엘리아스가 와인을 들고 건배하듯 잔을 앞으로 까딱였다.
그러더니 눈썹을 구기며 웃음을 터트렸다.
“입 닫아야 하는데 실수했네. 그래, 이것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나는 미소로 답했다.
내 생각에 그는 그가 말한 세 명에 속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의도가 어쨌든 그가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걸 그의 10년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안다.
나는 적당한 텀을 두고 말을 이었다.
“난 형님이 만든 소문을 부수고, 궁극적으로는 그 손에서 벗어날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플레로마를 처단해야겠지. 그러니, 네가 우리 모임에 들어와 줬으면 해. 넌 우리의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내가 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오늘 아침 일 봤지? 그냥 문제나 일으키고 다니는 학생이야. 도움이 되겠어?”
“네 가능성과 역량에 대해서는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난 네가 황실이 공인하지도 않은 마수 문제를 플레로마의 범죄로 판단하고 이곳저곳 탐사를 나선 것부터 남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내 미소에 내내 특유의 느긋한 미소를 짓고 있던 엘리아스가 순간 표정을 지우더니, 또 다른 결의 미소를 띠었다.
“…그렇지. 인건비를 톡톡히 받아야겠는걸.”
“물론, 나 역시 네게 그만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어.”
“자신감이 넘치는데. 좋아. 내가 뭘 원하는 줄 알고?”
“너 역시도 지금 플레로마를 쫓고 있지. 아니, 말은 바로 하자. 넌 지금 네 방식대로 황가의 책무를 다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
엘리아스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벌린 채 눈을 좁히고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다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내가 사람들한테 어떤 평가를 받는지 몰라? 황실 망신을 잘못 얘기한 걸로 믿을게.”
“일부러 그렇게 사는 것도 있지.”
엘리아스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궁지에 몰린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어디까지 나불대나 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물론, 그 이미지는 목표를 이루기에도 안성맞춤이지. 현 황실은 국정에 소홀하고, 그 결과 많은 부분에서 허점이 생겼어. 네가 그런 이미지 아래서 황실을 대신해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는 걸 알아.”
엘리아스는 여전히 말없이 나를 지켜봤다.
“왜 그런 일을 할까? 너를 모욕하고 배척하는 황실과 반대로 움직이려는 마음이 어느 정도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건 그게 네가 나름의 방식으로 황실을 욕보이는 과정이라면, 의도는 다르더라도 나 역시 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
“…….”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가 아니고 사실이다.
내가 읽었던 엘리아스의 내면이니까.
하지만 지금 그걸 드러낼 수는 없다.
“난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도울 수 있어, 엘리아스.”
엘리아스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빙그레 웃었다.
“루카스라고 했지.”
“그래.”
“멋진 이름이야. 그러고 보니 우리 둘 다 그 망할 놈의 ‘s’로 끝나는 이름을 가졌네. 그러니까… 루카스, 루카스, 루카. 음, 이게 좋겠어.”
엘리아스가 잔 끝을 제 말의 리듬에 맞춰 툭툭 두드렸다. 그러더니 느긋하게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을 맞췄다.
“그래, 네게 협력할게, 루카.”
“…….”
순간 말문이 막혔다.
루카스를 루카라고 부르는 인물은 형과 주인공뿐이다.
루카의 챕터에서 주인공은 이상한 친화력과 모종의 이유로 10년 전 동창생의 이름을, 그것도 이미 죽은 자의 이름을 애칭으로 불렀다.
그 사연은 둘째치고, 이걸 직접 듣게 되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10년 후나 지금이나 주인공은 그대로다.
이곳에도 내가 알던 세계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안도가, 레오에게서 종종 느꼈던 그 감정이 들었다.
그뿐이면 좋았겠지만 왜인지 아무도 원래의 나를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모두가 나를 정말 루카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엘리아스가 대답 없는 내게 손을 흔들었다.
“으음, 기뻐해야 할 순간 아닌가? 내가 초면에 좀 무례했나?”
“그래, 먼저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부르면 어떡하냐.”
레오가 내 표정을 힐끗 보더니 엘리아스를 나무랐다. 레오는 내가 형에게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더더욱 중간에 껴서 난감하겠지.
“아냐.”
나는 엘리아스의 올곧은 두 눈을 보며 말했다.
“잘 왔어, 엘리.”
띠링―!
〈 Chapter 4.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2) 〉
제안 1: ‘엘리아스 호엔촐레른’을 당신의 동료로 만드세요. (1/1) (11시간 53분 17초)
* Route 1 ― 〈 제안 2 〉
* Route 2 ― 〈 Chapter 5. 저녁이 되기 전에 하루를 칭찬하지 말라 〉
축하합니다!
‘제안 1: ‘엘리아스 호엔촐레른’을 당신의 동료로 만드세요.’ 성공!
‘Route 1 — 〈 제안 2 〉’를 확정합니다.
이걸로 소설의 인물 두 명을 동료로 만들게 됐다.
이참에 상태창도 한번 볼까.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호감도 +2]
칭호: ?
체력: +9 [+7]
정신력: +8
마력: +9
기술: +6
인상: +3
행운: +8
특성: 영원한 주인공 (Lv.2), 매력 (Lv.3)
호감도가 2.
어제까지 플레로마로 믿고 있었을 테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처음에 켰으면 아주 당연하게도 음수를 마주했을 텐데, 양수로 올려놓고 마주하니 나름 기분이 괜찮았다.
‘…….’
10점 만점에 2점을 가지고 좋아하는 삶에 적응했네.
칭호는 레오 때처럼 물음표, 그 아래는 레오나 나르케와 마찬가지로 또래에게서 보기 어려운 수치가 나타나 있다.
그보다….
‘영원한 주인공?’
내 시선은 금세 맨 밑의 특성으로 향했다.
정말 주인공다운 이름이다.
어떤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또 다른 창이 열리지는 않았다.
‘칭호가 아니라 특성 자리에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눈앞의 글자를 감상하고 있을 때, 레오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엘리…?”
레오의 물음과 달리 엘리아스는 흡족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그거 마음에 드네! 루카스 좀 본받아, 레오.”
“싫어.”
“난 너 레오라고 하잖아.”
“레오나르드라고 해도 돼, 엘리아스.”
“으음, 슬슬 누가 여기 속해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엘리아스가 레오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시계를 보니 얼마 뒤면 모일 시간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곧 올 거야.”
* * *
“나 포함 열셋이야? 엄청 많네.”
엘리아스가 학생들이 앉은 의자 수를 세어 보며 말했다.
지난번에는 열 명이었는데, 그동안 두 명 더 데려왔다.
어제 레오가 모임에서 유일하게 마수를 때려잡으러 갔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소란스러울 법도 한데, 엘리아스가 자리에 앉아 있는 탓에 극도로 조용했다.
학생들이 나와 레오에게 엘리아스를 향해 눈짓했다. 어쩌다 엘리아스가 여기에 왔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그때, 현관에서 누군가 워프했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나르케가 흙이 묻은 장화를 입구에서 정리하며 학생들을 훑었다.
“음, 다 와 있었네. 늦지는 않았는데 분위기가 왜…. 아.”
나르케가 미소를 짓더니, 엘리아스를 발견하고는 그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르케야. 앞으로 잘 부탁해.”
“얘기 들었어. 교환학생이지? 나도 2분반 옮겨 와서는 거의 처음으로 등교하는 거라 낯선데, 그래도 동지가 있어서 마음이 좀 놓이네~”
그 말에 레오가 타박을 놓았다.
“너나 무단결석하느라 우리 반에서 하루 다녔지, 나르케는 벌써 한 달이나 다녔어.”
“마음이 중요하지. 기간으로 따지면 나도 이 학교에서 2년째 다니고 있다고.”
“하하, 무슨 기분인지 알아. 같이 힘내자.”
“좋은 친구구나.”
나르케가 웃으며 눈을 찡긋거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르케의 인사에 용기를 얻었는지, 얼굴이 지나칠 정도로 창백해진 멜빈이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 엘리아스도 여기 들어왔구나…. 언제부터?”
“오늘부터. 너희들만 재밌는 걸 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동안 뭔 활동을 했어? 자료라도 좀 보고 싶은데.”
나는 내 파일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엘리아스가 파일을 한 장씩 넘기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회의는 그동안 네 번 한 거야? 질이 좋은데, 이거 누가 했어?”
“전부 다. 각자 모아온 자료 취합해서 냈거든.”
내 대답에 테이블의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결론 도출은 대부분 루카스가 했지.”
“맞아.”
그 대답에 파일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엘리아스가 웃음을 띠고 나를 봤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황실이 가진 자료랑 크게 다른 점이 없네. 어떤 부분은 좀 더 낫기도 해. 양은 그쪽이 더 많긴 하지만 이대로면 여기서도 충분히 뽑아내겠는데?”
“그건 그것대로 놀랍다….”
엘리아스의 웃음에 레오가 이마를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황실이 고등학교 소모임 수준인 걸로 봐야 하냐는 말이다.
그러다, 레오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니, 그런데 넌 황실 자료를 어떻게 알고 있는데?”
“전에 한번 털었지. 복사는 못 했지만.”
“…….”
확실히 든든한 인물을 얻은 것 같다.
나는 멍해진 학생들 틈에서 흡족함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