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33화 (33/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33)

레오가 대체 뭔 소리냐는 얼굴로 미간을 구기자 엘리아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쯤에서 화제를 돌려야겠다.

“엘리아스, 그동안 제한 구역을 많이 오갔다고 들었어. 네가 뭘 알아냈는지 듣고 싶어. 우리에게는 이제 새로운 자료가 필요하거든.”

“아, 환영이지. 안 그래도 입이 근질거렸어.”

엘리아스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쪽에 잔뜩 쌓여 있는 지도 뭉치에서 한 장을 뽑아 와 테이블에 펼쳤다.

그가 굴러다니는 흑연 하나를 맨손으로 덥석 잡아 지도에 동그라미를 쳤다.

“결계가 문제야.”

“결계?”

“결계 적합성이 낮아. 현재 하급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중급 수준의 결계를 씌워야 할 곳만 지금 7개째야. 보이지?”

한 학생이 엘리아스를 따라 일어서 지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지금 하급 15개에 중급 5개인데… 그러면 각각 8개에 12개가 되어야 한다고?”

“그래. 하급 15개 같은 얼토당토않은 미친 숫자는 적은 예산 내에서 결계를 충당하려니 생긴 문제야. 알다시피 결계를 유지하는 건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보통 크기의 하급 결계 하나를 유지하는 데에 하루에 한화 1,000만 원이 들어간다.

30일이면 3억이고, 1년이면 36억이다.

21개 제한 구역이 모두 하급이라고 치면 1년 유지비용에 약 766억이 들어가는 셈인데, 이 정도면 정부 차원에서 충분히 들일 수 있는 액수로 느껴진다.

하지만 중급으로 뛰는 순간, 하루에만 5,000만 원이 투입된다.

엘리아스의 답사대로라면 중급만 12개가 된다. 중급 12개 유지 비용이 1년 기준 2190억이 드는 셈이다. 물론, 중급 답사를 다녀오면 또 그중에서 상급 결계를 설정해야 하는 경우를 마주할 수도 있겠지.

소설에서, 엘리아스의 기준은 과하지 않았다.

기준을 강하게 잡을 수도 있었지만, 엘리아스는 그러지 않고 타협 불가능한 지역만을 개선 대상으로 짚었다.

“그리고, 결계 내부를 청소하지 않아서 문제가 두 배로 커지고 있어. 하급으로도 버틸 수 있었던 게 이제는 중급 결계를 깔아야 간신히 막을 수 있게 됐다고. 그놈의 청소를 안 해서.”

그것도 예산 문제다. 정확히는 황실 마법사에게 그런 잡다한 청소를 시키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로 예산 책정이 적합하게 되지 않은 탓이었다.

멜빈이 주저하며 물었다.

“황실이 그렇게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리가 없는데…. 돈이 없는 거 아닐까…?”

“있어.”

엘리아스가 단호히 고개를 젓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하지만 주머니 채우는 데에 써야 해서 안전에 쓸 돈은 없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문 명을 성으로 쓰는 법안’ 같은 걸 통과시키는 주제에 돈이 없어 결계는 소홀히 한다? 웃긴 말이야. 이딴 거 논하느라 회기나 까먹고, 각지에 붙은 명패랑 행정 기록을 대대적으로 갈아치워야 한다고 예산까지 받아 갔다고. 이런 쓰잘머리 없는 법안을 만들어서 통과시키는 건 각자 몫이나 한탕씩 챙겨 보자는 얘기지.”

“엘리아스….”

엘리아스의 거친 단어 선택에 레오가 한숨을 내뱉었다.

표현은 거칠지만 사실이다.

제국이 성립되고 얼마 되지 않아, 다스리는 영지가 아니라 마법적 특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이해 안 되는 이유로 그런 법안이 발효되었다.

현재 몇몇 사람들의 성씨 자리에 지명이나 국명이 아니라 가문명이 사용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이전 관행에서 지명만 뗀 이들이 더 많다.

엘리아스는 소설에서부터 그런 쓸데없는 곳에 예산을 편성했다는 점을 들어 의회의 상·하원에 해당하는 연방위원회와 제국의회를 신랄하게 까댔었다.

‘직접 들으니까 새롭고 좋네.’

비록 레오는 이걸 모임 밖에서도 말할까 노심초사하는 얼굴이지만, 내가 아는 한 그걸로 죽는 일은 없다.

아무튼, 엘리아스는 제한 구역을 돌며 조사한 결계 적합성을 문제 삼아 연방위원회를 족쳤다.

그와 동시에 언론에 마수 피해 사실과 잘못된 결계 적합성을 대문짝만하게 뿌려 버렸다.

본래 언론은 왕족, 특히 황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싣지 않지만, 엘리아스가 중대한 약점을 잡은 덕에 가능했다.

연방위원회는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날 기세로 여론이 들끓자 그제야 부랴부랴 제국 내 모든 결계의 내부 청소를 한 달에 한 번씩 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덕에 마수로 피해를 입는 사람 수가 대폭 줄었다.

엘리아스가 레오의 부름에 나름 입을 다무는 것처럼 보이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제국의회는… 그냥 연방위원회 따까리야. 걘 됐고 치안본부도 족쳐야 해.”

“그래. 그렇게 해.”

레오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급한 건 그쪽이 아냐. 연방위원회지. 지금 그쪽이 알아야 하는 건 하나야. 저 망할 놈의 결계를 전부 뜯어고칠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해.”

이쪽은 원작 그대로 가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엘리, 네가 어느 구역에 가 봤다고 했지?”

“너무 많은데. 하급은 메펜이랑 다른 한 곳 빼고 다 돌았고, 하나 있는 상급에는 다리 부러진 날 갔었지. 이제 중급 다섯 개를 돌 차례야. 아, 레오, 메펜은 어땠어?”

“평범했어. 곤충까지 오염된 걸 빼면.”

“곤충~?”

순식간에 엘리아스의 얼굴이 굳었다.

학생들 역시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곤충도 오염이 돼? 그런 사례 없었잖아.”

“다른 동물한테 전염됐나?”

“…근데 생각해 보면 이론적으로 안 될 건 없지.”

엘리아스가 중얼거렸다.

“곤충이 오염됐다고. 분명 내가 돈 곳에는 그런 게 없었는데.”

엘리아스가 다녀간 14곳에는 오염된 곤충이 없다는 말이다. 이 부분은 소설과 같다.

엘리아스가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아냐. 그런데 어디 가 봤는지는 왜?”

“다른 곳에서 오염된 곤충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못 봤다니 다음 얘기로 넘어가자. 말해야 할 것이 있어.”

“뭔데? 궁금하다.”

“나는 제한 구역이 실험장으로 쓰였을 거라고 생각해. 나르케랑 레오도 생각이 같아.”

학생들이 곧바로 이해하지 못해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때, 엘리아스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것참 놀라운 발상의 전환인데.”

“뭔 소리야, 루카스. 지금 되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한 학생이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엘리아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턱을 쓸었다.

“이거 결계 적합성을 따질 때가 아니었네.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계를 설치했는데, 오히려 그 보호 도구로 인해 마음껏 실험할 장소가 생겨났다는 얘기잖아.”

결계 적합성도 이용할 생각이지만, 일단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눈에서 초점을 지우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말이 돼. 안 될 이유가 없어. 내가 플레로마라도 그 분리 정책을 역으로 이용할 거야.”

그가 눈을 내게로 옮겼다.

“다만 문제는 이건데. 대체 어디로, 그것도 어떻게 지속적으로 결계를 뚫고 들어오지? 허가받지 않은 물체나 일정 크기 이상의 생명체가 결계를 통과하는 순간 신고가 들어가. 견디기 어려운 충격까지 주어진다고.”

“애초에 21개 제한 구역이 전부 그들의 거주지라면? 아니면 결계 설치 전부터 그곳에 통로가 있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겠지.”

멜빈이 입이 찢어져라 턱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무서울 만큼 굳은 표정을 지었던 엘리아스의 입꼬리가 천천히 비틀려 올라갔다.

“황실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이군.”

일변한 말투에 모두의 시선이 엘리아스의 얼굴로 향했다. 엘리아스가 인상을 팍 쓰더니 다시 말투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황실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제국 정부에서 한자리를 꿰찬 놈이겠어. 그렇지? 그 ‘깔짝깔짝’ 실험하던 것을 위험한 신호라고 주장하면서 결계를 설치하게 해. 그 후에는 정신줄 놓고 마음껏 실험해 댈 수 있게끔.”

레오가 준비한 자료를 꺼내 펼쳤다.

“그래. 그래서 처음에 결계를 설치해야 한다 주장한 인물이 누가 있는지 찾아봤어.”

“오, 이런 건 또 언제 찾은 거야?”

“네 병실에 들르기 전에. 윗줄의 플로리안 아말리에, 알버트 에른스트, 윈프레드 힌츠. 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안건을 끌고 나간 사람들이야.”

엘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전부 연방의원?”

“그래. 그리고 에스더 프리드리히, 윌트루드 알브레히트, 샌더 루도비카, 베르너 스트라우치, 이쪽은 불참.”

“무급으로 노동하고 있는 하원도 아니고 상원이 이런다고? 얘네는 플레로마 관계 여부를 떠나서 전형적인 세금 도둑이지.”

“…그렇긴 한데…. 루돌프 하인리히, 헤닝 베렌드, 트루드 레오폴트, 대표적인 반대 인물이야. 이들 모두 예산이 과다하게 든다고 입장을 표명했어.”

“이놈들도 이놈들대로 참….”

레오가 엘리아스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자료집을 다음 장으로 넘겼다.

“언론인 중에서 적극적으로 결계 안건을 다룬 자는 아스트리드 메츨러, 디트마르 페슈케. 학자 중에서는 프리드리히 슐러.”

“이 사람들의 황실 커넥션까지 생각해야 하는 거네.”

레오가 내민 목록을 훑던 엘리아스가 씩 웃었다.

“재미있게 됐어. 루카, 네가 말한 황실에 엿 먹이는 법이 이건가?”

“그렇게 말한 기억은 없는데.”

“아무려면 어때. 그래서, 지금부터 뭘 할 생각이야?”

* * *

“메펜을 위해 힘써 주신 레오나르드 바이에른 왕세자 저하와 니콜라우스 경께 감사를 표합니다.”

남작이 신뢰 넘치는 미소로 입꼬리를 굳세게 올린 채 감사패를 건네고, 다른 한 손으로 악수를 요청했다. 남작이 초청한 기자들 쪽에서 셔터음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기자들의 질문에 짧게 답해 주고, 우리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시는지….”

“학교로 돌아갈 겁니다.”

레오가 기자에게 미소지으며 간단히 답하고 남작이 준비한 워프 장소로 이동했다.

어제 메펜 남작이 곧바로 학교로 전보를 친 덕에, 화요일인 오늘 다시 메펜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평일인 만큼 학교를 빠질 수는 없어 새벽에 들러 인사만 짧게 나누고 돌아가게 되었다.

“월말평가는 왜 미뤄졌어?”

“음… 지금까지는 대외비야.”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갑작스러운 월말평가 연기로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나름 다행이긴 했다.

지금 난 오염된 모기를 담은 병을 가방에 넣고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남작 저택에 오기 전 일찍 이곳에 도착해 모기를 채집했다.

‘당장 던져 버리고 싶다.’

아무튼, 이걸 모임 장소까지 가져다 놓을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 나는 미리 가져다 놓았던 채집통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엘리아스가 눈에 띄게 관심을 가졌다.

“와, 이게 뭐야? 색깔 장난 아니네.”

“어제 말한 그 모기.”

멜빈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이 수많은 병 안을 시커멓게 채우고 있는 모기를 보며 바싹 말라 가는 입술을 슬쩍 핥았다. 멜빈이 용기를 내 채집통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건 왜, 루카스?”

“지금부터 모기 교배나 해 보자고.”

멜빈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영혼이 나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 왜…?”

“왜긴 왜야, 법안 발의시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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