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36화 (36/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36)

“언론을 적으로 돌리면 네 공적이 모조리 황실의 차지로 돌아가. 언론이 협박범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를 쓰겠어?”

“걱정해 주는 거야?”

“…….”

레오가 옆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양손을 휘휘 저었다.

그냥 대충 듣고 넘기라는 사인인 것 같다.

“…그래.”

“감동이네~ 그래도 방법이 없잖아.”

“네 공적을 황실에 빼앗겨도 괜찮다고?”

“안 돼, 빡치겠지. 그것도 X나게.”

“뭐, 너 진짜…!”

엘리아스가 레오의 어깨에 팔을 둘러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 가고 있어. 심지어 웬 놈의 벌레까지 나오지. 공적 값은 나중에 이자까지 받아 가면 돼. 안 그래?”

사형으로 받아 가니 나름 이자를 쳐서 받아 간 게 맞긴 하지.

놈이 얼마나 뱉은 말을 잘 지키는지 아는 입장에서 소름이 돋았다.

“지금 계획을 무로 돌리자는 말이 아니야.”

“그럼?”

“이것부터 묻고 가자. 그 계획은 결계 적합성 문제 때 세웠던 계획이지?”

“그래. 왜? 결계 적합성 문제도 그대로 제기할 거라며.”

맞다.

주기적으로 관리·감독을 해서 플레로마의 실험을 방해해도, 여전히 남아 있는 마수가 있을 테니 결계를 강화해야 한다.

“루카, 언론이 황실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보도할 리가 없어. 헛걸음하지 않고 빠르게 가려면 목숨부터 쥐고 흔들어야 하지 않겠어~?”

“물론 그렇지.”

나는 엘리아스의 얼굴을 똑바로 봤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지금?”

‘결계 적합성’ 문제는 황실의 관리 부족이지.

하지만 보도되는 이야기가 ‘플레로마의’ 곤충 실험이라면?

황실은 초점에서 빠지고, 플레로마가 비판의 대상으로 오른다.

“…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엘리아스가 눈썹을 까딱이며 손가락을 소리 나게 마찰했다.

레오 때도 느꼈는데 역시 말이 빨라 좋다.

“계획 세운 시기를 물어본 거였네. 모기를 앞세우면 포커스가 돌아갈 거다, 이거지?”

“그래. 욕을 먹는 주체가 황실이 아니라 플레로마면 돼.”

어차피 결계 상향 요구는 모기 건 요구안에도 들어 있으니, 굳이 타이틀로 내세워 언론을 자극할 필요 없다.

“뭐야, 너네? 이런 거까지 생각하면서 보내야 하는 거야?”

“…나 갑자기 그냥 앉아 있기만 하는 거 같은데.”

학생들이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부담 가질 필요 없어. 그냥 우리가 할 건 하나니까.”

나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린 이 문제를 언론에 제보하고, 소송을 걸 거야.”

* * *

나는 종일 의무실에 있다가, 밤이 되어 모임 장소로 워프했다.

〈 Chapter 4.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2) 〉

제안 2: [인상] 점수 5 달성 (0/1) (163시간 53분 51초)

* Route 1 ― 〈 Chapter 4 특별 보상 〉

* Route 2 ― 〈 Chapter 5. 저녁이 되기 전에 하루를 칭찬하지 말라 〉

‘…흠.’

아직 내가 형의 손안에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날에 제안을 주다니.

시기가 적절하네.

그런데….

인상 점수 -9.9점한테 지금 총 14.9점을 올리라고 하는 건가?

‘…….’

그것도 일주일 안에?

보상이고 뭐고 그냥 저 제목부터 찝찝한 챕터 5로 꺼지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한참 자조하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비웃음을 멈췄다.

상태창의 인상 점수 좀 다시 보자.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2.0]

[+2.0].

그러고 보니 오전에 인상 점수가 2개가 된 걸 확인했었다.

제안에 [인상] 점수라고 써 있는 게 설마….

분명, 내 기억에 체력 점수를 0점으로 올리라고 했을 때는 [체력] 점수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늘 그랬듯이 ‘체력’이라고 했지.

설마 둘 중 뭘 올려야 할지 헷갈리지 말라고 [인상]이라고 알려 준 거냐?

‘…….’

진짜 왜 저러냐.

전에 짚이는 게 있다고 했지.

명시되지 않아 추측뿐이었지만, 이제 슬슬 알겠다.

저 대괄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니콜라우스의 인상 점수다.

루카의 전국적 이미지로는 +2.0이 나올 수가 없다.

‘푸른 눈의 사냥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마음먹고 나서야 새로운 인상 항목이 나타난 것을 봐도 꽤 그럴듯하다.

아무튼, 이것도 점수가 커질수록 상승폭이 작아질 텐데.

전처럼 음수 상태였던 체력을 0까지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양수인 상태에서 3점이나 올려야 하다니.

‘…아냐.’

기간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승산은 있다.

그때, 이곳으로 워프해 온 레오가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왜 수업 안 들어왔어?”

오늘은 회의가 없는 날이다.

이미 어제 소송 이야기까지 끝냈기에, 다른 학생들은 굳이 만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나르케와 레오는 이곳에 모이도록 약속했다.

“약을 먹었거든.”

“약? 설마…!”

레오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설마 불려 나간 게 그것 때문이야?”

“어. 형님이 시종장을 시켜서 주에 두 번씩 약을 먹이려 하고 있어.”

“…두 번? 버틸 수 있어?”

“코어 성능을 높여 놔서 아주 무리는 아냐.”

체력 점수를 왕창 올려놓길―반강제였지만―잘했다.

레오가 고민하듯 입술을 꾹 씹더니 말했다.

“못 버티겠으면 말해. 치유 마법이라도 써 줄게.”

“그래, 고맙다.”

“그런데… 너희 형님께서 굉장히 강하게 나가기 시작했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빨리 죽여 버리려는 거지.”

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은 없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직접 찾아오겠지.

레오가 충격받은 듯 입을 살짝 벌리고 있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호위라도 붙여 줘?”

“들킬 일 있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레오도 힘이 쫙 빠진 듯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그래, 어차피 네 실력만 보면 물리적으로는 문제없지…. 그래서, 지금은 좀 괜찮아?”

“괜찮아. 나르케가 도와줬거든.”

“바로 알아차린 거야? 확실히 능력이 좋네.”

좋은 능력이다.

다음에도 특성 뽑기가 나오면 나도 그 능력을 가지고 싶을 정도다.

‘진짜로 어떻게 안 되냐.’

“다들 와 있었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나르케가 웃으며 나타나 내 등을 소리 나게 두드렸다.

“좀 괜찮아?”

“…!”

그가 두드린 등에서부터 온몸의 말단부까지, 청량한 기운이 퍼져 미미하게 남아 있던 독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졌다.

“…뭐야?”

“네가 자선 행사 때 썼던 마법.”

정화했다는 말이네.

“고맙다.”

“뭘, 지금 바로 출발할 거지?”

“어.”

지금부터 바이에른에 갈 것이다.

바이에른 내의 오염 구역만 5곳이다.

그곳을 전부 신력으로 정화하고 올 생각이다.

다음 계획을 위해 밑밥도 깔 겸, 겸사겸사.

‘…어쨌든 난 거기 소속 마법사이기도 하니까.’

비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뤄졌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번에 니콜라우스의 인상 점수를 올리라는 제안까지 추가되었으니 자주 얼굴을 비추고 많은 성과를 낼수록 좋지.

“기대된다. 이곳에 오고부터 내내 참았더니 별거 아닌 일인데도 신나네!”

신력을 쓸 수 있는 나르케도 같이 가기로 했다.

나르케는 전에 같이 가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는지, 평일이 되자마자 학교에 연락을 보내 허락을 받아 냈다.

저번이면 몰라도 내일 곤충 이슈가 터질 테니, 레오가 제한 구역 정화를 위해 신력 사용자인 나르케를 섭외했다는 논리 정도면 적당하다.

레오가 나르케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내내? 교황령에서 마수라도 잡고 다녔어?”

“비슷한 걸 했지.”

“그래? 의외네.”

나르케가 그 말에 씩 웃었다.

“직접 보면 별로 의외는 아닐걸.”

* * *

콰아앙―!

나르케가 흙바닥에서 스태프 끝을 뽑아냈다.

신력으로 인해 저녁 하늘이 대낮처럼 하얘졌다.

“…….”

굉음을 내며 닥쳐오는 바람을 막느라 감탄할 틈도 없었다.

아니,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단 한 번의 마법으로 무려 3,000평에 달하는 구역을 정화했다. 이 정도면 교수와 한 판 떠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만 제곱미터짜리 신력? 교환학생은 확실히 뭐가 다르네.”

레오가 중얼거렸다.

교환학생이라고 전부 저러진 않을 텐데 이놈도 충격에 빠져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듯했다.

“글쎄, 루카스도 할 수 있을걸?”

“이만한 광역 마법 시전법은 안 배웠다.”

“아하, 파워 얘기가 아니었군.”

나르케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는 눈으로는 죽일 마수를 찾아 이곳저곳을 살폈다.

이내 그가 입꼬리를 휙 말아 올리며 한 곳에 완드를 겨누고 가볍게 손목을 튕겼다.

쾅―! 치이이익….

거대한 나무뿌리 밑이 번쩍 빛났다.

정화 탓에 힘이 빠진 채 돌아다니던 오염된 쥐들이 전기로 지진 것처럼 검게 변해 있었다.

나르케가 쾌락에 찬 얼굴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거 혼자 해도 되겠는데.”

“…….”

“얘들아, 먼저 다른 곳 다녀와. 내가 여기 정화해 놓을게.”

“어, 그래.”

목소리는 평소처럼 더없이 선량했지만 표정은 딱히 선량하지 않았다.

‘…신학교 놈 맞나.’

아무튼, 우리 편이니 다행이지.

그리고 놈도 지금으로서는 사살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 테니 저러는 거겠지.

동이 틀 무렵, 우리는 바이에른의 제한 구역 다섯 곳을 전부 정화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나르케가 두 곳, 나와 레오가 세 곳을 정화했다.

레오는 신력을 쓸 줄 모르니, 정화 자체는 나르케와 내 몫이긴 했다.

나르케가 놀라운 얼굴로 레오의 통장을 확인했다.

“오, 제국은행 보상금만 125만 펠 나왔네.”

한화 1억 2500만 원이다.

이걸 보고 나니, 저번 일이 굉장히 흔치 않은 일이었다는 게 체감이 됐다.

하급 세 곳과 중급 두 곳, 총 다섯 곳을 모아 1억인데, 전에는 고작 한 곳에서 1억을 쓸었지.

아무튼… 이 돈을 우리가 쓸 계획은 없다.

나르케가 통장을 다시 레오에게 건네고 검은 가죽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먼저 특별반에 가 있을게. 너희도 천천히 와.”

“그래. 오늘 고생했다.”

“뭘, 이번 학기에 했던 일 중 가장 재미있었어.”

“…….”

나는 기숙사로 워프해 옷을 갈아입고 태연히 나왔다.

일부러 강의동까지 가는 길을 빙 돌아 신문을 구매했다.

[‘푸른 눈의 사냥꾼’ 니콜라우스 경의 제보… ‘플레로마, 곤충으로 부활 실험 중’]

[메펜 지역의 원인 불명 피부병, 원인이 밝혀졌다… 플레로마 소행]

[요제프 프리드리히 제국1교육원 명예교수 “전례 없는 생화학 무기 될 수 있어”]

[보도 1시간 만에 오스나브뤼크 신민 2,000명 광장 집결… ‘신속한 대처 요구’]

[클레멘스 그라프 플레로마연구소장 “최악의 경우 국가 재난 상황까지 도달”]

[플레로마의 곤충 실험이 지역 사회에 미칠 영향]

‘성공이네.’

원작과 달리 제 살 깎아 먹기식 강경책을 쓰지 않고도 언론 보도가 이뤄졌다.

다만 엘리아스의 이름으로 치안본부와 의회에 해당 안건을 보냈으나 까였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치안본부 ‘1급 정화 마법 사용해 메펜 지역 오염 벌레 박멸할 것’]

이제야 얘기 꺼내는 거 봐라.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일회성 이벤트일 뿐, 이렇게 되면 플레로마는 당분간만 몸을 사리고 다시 나올 것이다.

당연히 의회도 별말이 없었다.

치안본부가 눈속임 해결책을 내놨으니, 굳이 자기들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날 저녁, 멜빈이 모임 장소에 딸린 작은 방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왔다.

“루카스…! 방금 연방위원회에서 답신 왔어.”

“뭐래?”

“한 달 내로 처리하는 건 어렵대. 법을 그렇게 빨리 만들 수는 없다는데….”

의회에 다시 한번 행동을 촉구했지만, 답변은 역시 거절이다.

그나저나 입법 쪽으로 대답했군.

하긴, 정부가 추가예산을 요구하지 않으니 이놈들도 먼저 어떻게 할 수는 없지.

물론 우리 요구안대로 예산을 통과시킬 생각도 없을 거다.

“치안본부는?”

“거긴… 오늘 보낸 전보에 대한 답장은 없어.”

“그래, 고마워.”

어제 형의 미친 짓을 통해 정부로 말이 흘러 들어간 걸 확인했지.

그래서 요구안과 자료집을 다시 전송했다.

그때는 얌체같이 받아먹고 ‘추후 치안본부 공식 창구를 통해 대책을 알려 주겠다’며 답했다.

결국 그 대책이랄 게 일회성이었지.

제대로 된 대응을 촉구하는 전보를 보냈지만, 역시나 말이 없다.

멜빈이 그 자리에 줄곧 서 있다가 눈을 구기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거지?”

“그래야지. 치안본부는 이 이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데.”

“진짜 그래도 될까? 아무리 그래도 정부인데….”

“이미 걸었어.”

나는 저녁에 발행된 신문 하나를 들어 보였다.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황실 치안본부 상대로 행정 소송 제기]

* * *

같은 시각, 제국 총리부 청사.

“이게 말이 됩니까?! 그 골칫덩이가 이제 와서 뭐요?!”

“말을 가려서 하시지요. 그분도 황가 분입니다.”

“…크흠, 그래요. 엘리아스 공작이 황실 상대로 소송이라니요? 여기에 진지하게 대응할 건 아니겠지요, 의장님?”

“의회가 아닌 곳에서는 총리라 부르는 게 적합하겠군요.”

“예, 총리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말씀만 해 주시면 재판부에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총리라 불린 자는 대답하지 않고 허공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총리님. 치안본부와 의회가 적합한 대응을 보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노력했습니다. 잘 막았더니 이제는 소송을 걸어 버렸죠. 이 특종을 누가 안 잡고 배깁니까? 거기에 재판 실시간 송출까지 요구했습니다!”

“진지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까?”

“예.”

그 엄숙한 말투에 총리가 미소 지었다.

“엘리아스 공작이 제기했기 때문이겠죠?”

“그렇습니다.”

“내 감상도 공과 비슷합니다. 그자가 뭘 알고 소송을 걸었겠습니까? 분명 평소처럼 다혈질적인 성향 그대로 이 사안을 받아들였겠죠.”

“역시 총리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총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상대를 바라봤다.

“엘리아스 공작이 법원과 재판장에게 요구한 게 무엇이었는지 기억합니까?”

“사안이 긴급한 만큼 행정 심판과 조정 과정 없이 7일 이내 재판을 열 것, 그리고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신문을 통해 송출할 것. 두 가지였습니다.”

“그래요.”

총리가 한 템포 쉬고 말을 이었다.

“난 그 요구를 전부 들어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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