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38)
나는 노트에 의원들의 이름 약자와 호감도를 간단히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엘리아스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자, 시간이 없으니 이 이상의 인사치레는 생략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
본인은 해 놓고 다른 사람 인사는 안 듣겠다는 의지가 잘 보인다.
“최근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죠. 무엇인지 아십니까?”
“곤충 문제죠.”
“물론 그것도 화제죠. 하지만 그거 말고 또 있습니다.”
한 의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양손을 맞잡았다.
“잘 모르겠군요. 말씀해 주시죠.”
“2주 전 있었던 니콜라우스 경의 자선 마법 행사를 기억하십니까?”
엘리아스의 손짓에, 보조원이 당시 대기 줄에 서 있다 찍힌 아기 사진을 꺼냈다.
“원인 모를 피부병에 시달리던 아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온몸이 당장 곪아 터질 것처럼 변했죠.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이 아니라 사안의 심각성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아스가 당시 보도되었던 신문을 자료로 띄웠다.
“그간 곤충은 우리의 경계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곤충은 마력을 담기에는 지나치게 약하고, 운이 좋아 마력을 보유한다 하더라도 극소량만을 가질 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는 우호적인 반응이다.
엘리아스도 상식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보시죠. 여태까지 경계할 거리도 되지 않았던 곤충이 마력을 옮겨 인간을 오염시켰습니다. 그것도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닌, 노약자에게는 치명적인 수준이죠.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부의장이 대답했다.
저자가 이 자리의 최고 권력자다.
연방위원회 의장이자 이 나라의 총리는 담화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제 보니 치안본부에서도 본부장이 오지 않고, 그 아랫급 마법치안재정실 실장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좋습니다. 자료를 보시죠. 모기의 독을 피부에 주사한 결과물입니다. 메펜의 피부병 환자와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엘리아스 공작. 지난 일주일간 이 내용이 나지 않은 신문은 없을 겁니다.”
“예, 이후 제시하는 자료는 메펜 지역의 모기를 세 개의 군집으로 분류한 후 군집 간 교배를 거친 결과물입니다. 가장 최악의 경우로, 후손 중 일부는 현재 오염 모기의 다섯 배의 피해를 낸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지요.”
연방위원회 부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아스가 부의장을 말없이 한참 쳐다보더니, 씩 웃었다.
“다 아시니 길게 말할 필요 없겠습니다. 저는 이 일이 보도되기 전, 소식을 전해 듣고 치안본부와 의회에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예, 그 점은 알지요. 이건 분명히 언급을 하고 가도록….”
엘리아스가 그쪽을 보지도 않고 손을 뻗었다.
“제게 말을 끝마칠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니, 지금 그런….”
“행동을 촉구했지만! 치안본부는 외부 우편물을 그대로 반송하더군요? 이해합니다. 혹시 폭발물이 올지도 모르죠. 하지만 신민들의 안전을 위해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치안본부 마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저희가 답변을 드릴 수 있….”
“아, 물론! 이해합니다. 총리께서 소집하신 긴급회의에 다들 나오신 걸 보면 분명히 개선하실 의지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당연히 알죠. 충분히 이해하니 해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혼자 무슨 말씀을…!”
“엘리아스 공작, 품위를 지켜서 참여하십시오.”
“품위 없게 느껴졌다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아무튼….”
말 끝마칠 기회를 달라더니 본인이 다른 사람 말 잘라먹고 있네.
나나 레오였으면 실시간으로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날 태도다.
나는 그의 태연한 표정을 지켜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밝힙니다. 신민들의 안전을 위해 결계 내부를 일주일에 한 번씩 정화하십시오. 오염된 벌레가 성장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엘리아스가 말을 마치고 의석을 둘러보았다.
의석 뒷줄에서 누군가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일주일이라니…. 거, 니콜라우스 경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이 자리에 있는 걸 보면 모르겠냐?
물론 저건 진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게 아니지.
나는 그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답했다.
“같은 의견입니다.”
“허어….”
“뭘 묻습니까. 애초에 니콜라우스 경과 논의해 작성한 요구안인데요.”
엘리아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때, 한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방위원회 의원 헤닝 베렌드입니다.”
“예, 말씀하세요.”
“먼저, 공작의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 송출을 지켜보고 계실 신민 여러분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5배 이상의 피해를 내는 모기는 3세대 모기 중 8%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숫자로 따져 볼까요? 4마리였습니다. 4마리요.”
“…….”
엘리아스가 휘파람을 불 것처럼 입술을 오므렸다가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 참는 듯한 얼굴이었다.
우리가 그 말에 태클을 걸지 않자 자신감이 생겼는지, 의원은 이제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엘리아스 공작, 지역 정화비가 얼마나 드는지 아십니까?”
“건당 10만이죠.”
“그것도 하급입니다. 중급과 상급의 경우에는 더 많은 금액이 투입됩니다. 엘리아스 공작의 우려에 충분히 공감하나, 어떤 문제든 해결책은 실현 가능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21개 제한 구역을 모조리 청소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방법이 아닙니다.”
의원이 이제는 말 안 듣는 아이를 타이르듯 말을 부드럽게 끌었다.
목소리만 키우는 것보다 더 나쁜 신호다.
물론 그 쪽에게.
자만심이 꼈으며, 이 상황을 아주 여유롭게 느낀다는 뜻이다.
엘리아스가 빙그레 웃더니 입을 열었다.
“하급 15개, 중급 5개, 상급 1개지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공평하게 하급, 중급, 상급 모두 7개라고 가정합시다. 이의 없으시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밑밥 까는 거 봐라.
“왜 굳이….”
“계산의 편의를 위해서입니다. 어쨌든 동의하세요, 안 하세요?”
“원하시면 그렇게 계산하세요.”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급이 줄고 상급이 늘었으니 예산이 더 많이 잡힐 것이고, 그렇다면 비용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대중에게 와닿을 것이다.
의원이 팔짱을 끼고 엘리아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중급과 상급에 책정된 인건비는 각각 50만 펠, 그리고 100만 펠. 그렇다면 총인건비는 하급 70만, 중급 350만, 상급 700만이군요. 합하면 1120만입니다.”
한화 11억 2000만 원.
여기에 52주를 곱해야 한다.
1년에 582억 4000만 원이다.
“1년에 5억 8240만 펠인데, 이 정도면 신민 안전 값으로는 충분히 들일 만하군요.”
“만만치 않은 돈입니다. 여기에 결계 유지 비용도 들어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쪽은 18억 펠 정도죠. 총 23억 8000만 펠이면… 이 정도면 충분히 들여야 할 돈이군요.”
약 2380억.
하지만 우리가 새로 계산한 표준 인건비와 결계 유지비를 합하면 약 1조 1600억 원이 된다.
저들도 이미 요구안을 받았기에 알고 있을 것이다.
요구안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없다.
결계 적합성을 상식적으로 계산하기만 해도 얼추 비슷한 값이 나오니까.
기존의 유지비 1800억이 결계 적합성을 지나치게 후려쳐 나온 값이기 때문에 이런 극명한 차이가 발생했다.
1조를 염치없이 1800억으로 후려친 놈들이니, 충분히 이 단계에서도 난리를 칠 수 있다.
역시나, 한 해에 들어가는 나랏돈의 총액을 따졌을 때 말이 안 되는 규모가 아닌데도 상원의원 몇이 황당하다는 듯 미묘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저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터져 나오는 헛웃음도 들려왔다.
“허, 참….”
“무슨 말을 그렇게 쉽게….”
“엘리아스 공작, 당연히 들여야 할 액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황에 맞게 조절해야만 하는 게 예산입니다. 없는 돈을 파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이 문제를 위해 외화를 차입해야 할까요? 우리 제국이요?”
엘리아스가 그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끄럽게 미소 지었다.
“필요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
“물정을 모르는군요.”
“거참, 어쩌려고….”
소설 초반, 의회는 상비군력 증강을 위해 2조 원짜리 추가 예산안을 통과시킨다.
말이야 그렇게 하지만 주로 쓰이게 된 곳은 제국군 및 왕국군 대가리들 봉급이다.
각 군대에서 한자리씩 맡고 있는 연방의원과 귀족들의 주머니로 예산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곤충 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일수록 곧 추진할 예산안에 쓸 수 있는 액수가 줄어들므로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심지어 플레로마 범죄에 관한 분야는, 한번 예산을 높여 놓으면 그걸 다시 축소하기는 쉽지 않은 분야다.
그들 입장에서는 아예 시작부터 그 문제 제기를 밟아 죽일 시도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국민의 편에 선 엘리아스의 요구를 미리부터 ‘말도 안 되는 것’,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해 추후 쏟아질 국민들의 요구와 비난을 줄여 놓기.
애초부터 그들은 엘리아스를 화제의 완충재로 만들려 회의에 응했으므로, 정화비 580억 원 가량에도 일부러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하듯 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계산한 비용이 580억이 아니라 1조를 넘어선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무례한 말들이 쏟아지던 도중, 제일 젊어 보이는 의원 하나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엘리아스를 나무랐다.
“공작께서는 그렇게 정치를 하고 싶다면 현실감각부터 키우셔야겠습니다.”
“…….”
그 말에, 내내 별다른 표정 없이 비난을 듣고 있던 엘리아스의 얼굴이 한순간에 굳었다.
빠악― 쾅―!
그가 짚은 목발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가 오른팔에 끼웠던 목발을 바닥에 던지고 멀쩡한 쪽의 목발에 몸을 기댔다.
보조원이 급하게 어딘가로 연락하는 것이 보였다.
‘…건드렸네.’
정치를 할 거라 말한 적도 없는데 굳이 저 말을 꺼낸 건… 높은 확률로 엘리아스의 상황을 알고 이용하는 것이다.
엘리아스의 마력이 현 황제를 압도한다는 건, 엘리아스가 일반적인 황가 사람들처럼 국정에 관여하려 해도 황제가 그렇게 두지 않으리라는 것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당장 이 자리에도 먼 황가 출신 의원이 몇 있다.
황제가 두 눈을 뜨고 있는 이상 엘리아스는 무엇을 하려고 해도 가문의 이름에 비해, 심지어 가진 능력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자리 외에는 아무것도 맡을 수 없다. 이 나라에서 정치하는 사람 중 그걸 모르는 자는 없다.
‘다 알면서 저런 말을 하는 건 이성을 잃길 바라서겠지.’
그래야 수월하게 원하는 그림을 뽑아낼 수 있을 테니까.
‘여기서 폭주하면 안 될 텐데.’
나는 엘리아스의 싸늘한 얼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까 신경을 긁었던 의원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엘리아스를 향해 일어났다.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아까의 비웃음은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송출 카메라를 한 번씩 쳐다봤다.
“하고자 하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신민을 위해 일하는 입장에서, 저희의 우려는 어쩌면 공의 우려보다 더욱 클 것입니다.”
“그래요?”
“…….”
“저, 저….”
“…이 문제가 정말 치명적인 문제라면, 그리고 우리에게 자원이 무한했다면, 우리는 엘리아스 공의 말처럼 예산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의원이 앞으로 걸어 나와 회의장 가운데에 마법으로 자료를 띄웠다.
“황실 측 조사 자료를 보시죠. 지난 일주일간 조사된 메펜의 모기 개체수는 약 1,000개체로, 결코 많은 수가 아닙니다.”
지역 전체로 따지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저 사람은 지금 본질을 흐려서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지우려 하고 있다.
나는 말이 없어진 엘리아스 대신 조용히 입을 열었다.
“1,000개체 모두 오염된 모기라는 건 짚고 넘어가죠.”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결계 내부에 존재하는 데다, 오염을 전파하는 능력이 없는 개체가 무려 반을 차지했습니다. 공포에 빠져 일상을 망치기는 이른 상황입니다.”
“그 말은 무려 반이나 오염 전파 능력이 있다는 말이군요.”
미묘하게 웃음기가 섞인 내 말투에, 그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물론 문제가 커 보이지요, 니콜라우스 경.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식 세대의 75%가 사망했으니까요. 심지어 가장 강한 공격성을 가진 모기끼리 교배했을 때는 무려 90%의 자식 세대가 사망했습니다.”
“제가 제보한 연구 결과와 같은 이야기군요.”
“그렇습니다. 엘리아스 공작과 니콜라우스 경께서는 이 수치를 알면서도 정화비로 매해 5억 8천만 펠을 바치라 말하는 겁니까?”
이제부터 진짜다.
본격적으로 논점을 흐리고 있다.
‘계속 내가 밀고 나가 볼까.’
엘리아스는 저 사람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생겼을 테니,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여기서 그르칠 수 없으니, 이쯤에서 내가 전면으로 나서는 게 낫겠는데.
나는 엘리아스의 얼굴을 흘끗 쳐다봤다.
‘…아니, 아니다.’
평소와 달리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을 보니 확신이 생겼다.
받은 만큼 갚아줄 기회를 빼앗을 필요는 없지.
조용히 그를 부르자, 엘리아스가 나를 내려다봤다.
“말씀하시죠.”
나는 엘리아스에게 의원을 향해 턱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