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39)
엘리아스가 희미하게 미소짓고는 목발 없는 오른팔의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의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논리를 빠뜨리는 걸 즐기시나요?”
“예?”
“실험군 모기 일부가 대조군 공격력의 5배를 지닌다는 결론은 희박한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모기들에게서 탄생한 결과입니다.”
“그래요, 엘리아스 공작. 여기에 바로 문제가 있는 겁니다.”
“뭐가 문젠지 한번 들어 보죠.”
엘리아스가 선심 쓰듯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의원이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작께서는 어쩌다 생기는 슈퍼 모기 한두 마리를 처리하는 데에 무려 5억 펠을 바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그냥 메펜의 오염 모기를 박멸하기만 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뭣 모르는 자들은 이걸 소극행정이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게 바로 과잉행정입니다. 쓸데없는 곳에 혈세를 낭비하는 모습이지요.”
언뜻 듣기로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엘리아스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입을 벌리더니, 한참 뒤 말을 꺼냈다.
“뭘 모르시나 본데 모기는 날아다닙니다.”
“…….”
“압니다.”
“또 뭘 모르시나 본데, 이 연구가 시사하는 점은 고작 ‘여러 세대를 거쳤더니 엄청 세진 모기가 4마리나 나왔다’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아스가 눈썹을 과장되게 기울이며 웃었다.
“나름 뿌듯해하셨을 것 같습니다. 연구 보고서는 결론에서 모기의 파워를 지적했지만 의원님께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모기 개수에 집중했으니, 누구도 잡지 못한 맹점을 잡아냈다고 아주 득의양양해졌겠죠?”
“이보세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시죠. 그동안 곤충이 경계 대상으로 오르지 못했던 이유가 뭡니까? 왜 곤충 오염이 이렇게 이슈가 되었습니까?”
“…….”
“오염 마력을 견디려면 그 본체가 강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뭘 알게 됐죠? 곤충처럼 작고 연약한 것에도 분명히 오염 마력을 실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 걱정 마세요. 우리만 처음 안 것 아닙니다. 플레로마도 올해 처음 알았습니다.”
미친 듯이 말을 쏟아내던 엘리아스가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작게 손뼉을 쳤다.
“아니죠, ‘플레로마가 마침내 이런 것까지 알아냈다’라고 표현해야 의원님께서 이해하시겠군요.”
의원이 엘리아스를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아시겠나요? 이 연구는 의원님처럼 모기 수나 비율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연구입니다. 우리는 고작 모기가 ‘슈퍼 모기’로 불릴 만큼 강한 마력을 싣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게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입니다.”
“공작, 그건 알고 있습니다. 슬슬 생산적인 주제를….”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다른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아스를 저지했다.
엘리아스가 그에게 손을 내젓고 목소리를 키웠다.
“한마디로! 모기에게 그만한 마력을 싣는 것이 가능하니, 플레로마는 앞으로 그런 ‘슈퍼 모기’를 대량 생산해 전국에 살포할 수 있겠죠. 그게 우리의 논점이고, 신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황실과 의회, 그리고 마법 특권 계층이 포착해 대비해야 할 점이다, 이겁니다.”
장내가 싸해졌다.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엘리아스가 조용해진 의석과 서기석을 둘러보더니, 미소 지었다.
“의원님께서는 남의 현실감각을 말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
멀쩡하게 해냈다.
아니, 그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인상: +4.5 (+1.5)
혹시나 해서 열어 본 인상 점수는 단 한 시간 만에 미친 듯이 치솟았다.
‘한 시간에 1.5점.’
양수에서의 상승폭으로는 말도 못 할 만큼 높은 수준이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엘리아스를 점점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확실히, 전국적으로 모습을 보이는 게 인상 점수 향상에 도움이 되네.’
물론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저쪽은 지금까지 준비했던 이야기를 다 썼을 테고, 궁지에 몰렸다 싶으면 논리 없이 뻔뻔히 굴 것이다.
애초에 상대가 엘리아스이니 그리 열심히 준비하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렇게 나오면 엘리아스도 똑같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때, 다른 의원이 입을 열었다.
“너무 이른 발상입니다. 무엇보다 대량생산에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허.”
엘리아스가 참지 못하고 대놓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보통 이럴 땐 ‘우리도 그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임무는 저와 말싸움하는 게 아니라 신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공작, 당신은 이곳에 우리를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아, 예. 어디서 주워들은 말 좀 써 보고 싶었어요. 됐죠? 그래서, 플레로마가 성공하면 어쩌시려고요?”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 아니고 그쪽이 원래 생각이겠지.
내내 멀쩡하게 말하다가 이런 식으로 한 번씩 무게를 덜어 놓는 건 황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 새로 예산을 편성해도 늦지 않습니다.”
“늦죠. 대량생산에 성공했다면서요.”
멍청한 질문이 이어질 것처럼 보이자, 치안본부 마법사 하나가 의원을 제지하고 본인의 말을 꺼냈다.
“엘리아스 공께서 가지실 불안과 두려움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마수 역시 경계 대상입니다. 다음 주중 보도할 예정이었기에 미리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것도 플레로마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어, 그래요. 말 잘 꺼내셨습니다. 제가 직접 제한 구역을 탐사해 봤는데, 또 문제가 있더군요.”
“문제는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시찰을….”
“있던데요. 그 증거가 제 몸에 있는데, 보이시나 모르겠습니다.”
엘리아스가 제 다리 쪽에 눈짓했다.
“분명 상급 제한 구역이라고 해서 치안본부의 매뉴얼대로 잘 맞춰 준비해 갔는데, 최상급 그 이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상황이 펼쳐져 있지 뭡니까. 마법을 제대로 쓰기도 전에 오염 공기에 중독되어서 절벽에서 떨어졌습니다.”
“여기는 본인의 과실을 말하는 곳이 아니고….”
“대체 어디까지 설명을 해 줘야 하는 겁니까?!”
엘리아스가 소리를 치더니 책상을 내리쳤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결계 등급을 조정해야 합니다. 기존 15, 5, 1에서 하급 8개, 중급 8개, 상급 3개, 그리고 최상급 2개. 예산은 정화비까지 총 115억 9260만 펠이 들 겁니다. 자료는 이미 그쪽에 제출했습니다.”
“…허이고, 115억….”
“공작, 아까부터 계속 이렇게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만 꺼내는데, 그러면 곤란합니다.”
“이건 본 회의의 주제와 맞지 않는군요. 다음 기회에 심층적으로 다루도록 하죠.”
나는 의원의 말에 입을 열었다.
“아뇨, 관련 있습니다. 오염 정도에 맞지 않는 결계는 오염 동물의 탈출을 용이하게 만듭니다. 동물에 포함되는 곤충도 당연히 마찬가지지요.”
내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리의 말을 듣던 치안본부의 마법사가 더는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도 말했듯, 공작과 경께서 느끼는 불안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 불안이 문제가 아니고 신민들의 안전이 문제가 아닌지?”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너무나 겁에 질려 플레로마를 과대평가하고, 신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현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 위험해질 가능성이 조금 보인다고 해서 미리부터 예산을 마구 퍼부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최대한 신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조정안을 만들었습니다.”
엘리아스가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매달 한 번. 모기가 한 사이클을 거쳐 새로운 세대를 만들게 되는 시기를 조사해 정화 마법을 걸 겁니다.”
“…흐음.”
엘리아스가 웃음을 지었다.
“죄송한데 사람 무는 벌레는 모기만 있는 게 아닌데요.”
“…….”
상대의 얼굴에 아차 싶은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다시 냉철한 얼굴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거기까지 따지자면 아까도 말했다시피 예산이 지나치게 투입됩니다. 다양한 곤충군에 대해서는 플레로마 측도 연구개발 속도가 그리 빠를 수 없을 것이고, 크기와 서식지 등에서 나오는 접근성과 상징성 면에서 다른 벌레보다는 모기를 우선적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뭔 소리냐, 대체.
곤충처럼 마법을 견디기 어려운 생물에 오염 마력을 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곤충 하나에 안정적으로 싣는 게 가능해지면, 다른 곤충에게도 마력을 싣는 건 시간문제다.
‘기대치를 낮게 잡는다고 잡았는데도….’
말해도 말해도 적용을 못 할 줄은 몰랐다. 예상보다 더 신기하다.
나는 천천히 그의 말을 반박했다.
“한 번 성공하면 다른 곤충에게 적용하는 것은 급속도로 이루어질 겁니다. 성장 기간이 짧은 곤충은 한 달 사이 번식해 피해를 끼칠 수 있으니, 곤충 자체에 마력을 실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대책을 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예산 문제가 걸려 있더라도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대책을 강구하는 건 치안본부의 일이지 않습니까.”
“예, 그건 물론입니다. 아직 이 사건이 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가 나와 송출 카메라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저걸 말이라고 하네. 저러면 국민들한테 먹히겠다고 생각하는 걸 텐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태창을 불러냈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0.1) [+3.8009128]
분명 2점으로 시작했는데, 3.8?
인상 점수 쭉쭉 잘 올라가네.
허접한 답변으로 받는 반사 이익이 아주 쏠쏠하다.
그때 엘리아스가 입을 열었다.
“내가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지역은요?”
“그 부분은 추후 제국신문을 통해 발표할 겁니다.”
이건 21개 구역 전체를 정화할 생각은 없으며, 할 수만 있으면 최대한 적게, 여론을 보고 정화할 구역을 결정하겠다는 이야기다.
“…….”
“…제가 맞춰 보겠습니다. ‘메펜과 인근 제한 구역에 대해 정기적인 정화 마법을 지원하겠다’ 정도면 선심 꽤 쓴 것 같은데, 어때요, 진짜 이럴 생각입니까?”
“엘리아스 공작.”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메펜과 그 인근의 제한 구역은 오스나브뤼크까지 딱 두 곳만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죠.”
“정부는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예산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분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업과 예산안은 황실 산하의 제국경제연구소의 검토를 거친 결과물입니다.”
만능답변이다.
잘 빠져나가네.
“예, 그래요. 부정 안 하는 거 보니까 비슷한가 봅니다. 승인받기 전에 본인이 임의로 계획을 변경할 수는 없나 보죠? 다들 당신의 바닥 치는 융통성과 임기응변력에 가슴을 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돌아가서 한 소리 듣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명할 기회를 드릴게요. 하세요.”
치안본부의 마법사가 미간을 팍 구기더니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메펜을 포함한 오스나브뤼크는 곤충 오염 면에서 따지자면 제일 위험한 지역입니다. 그렇게 단순히 정화되는 구역이 몇 개인지에 집중한다면 쓸모없이 세금이 낭비되고….”
그 말에 엘리아스가 조소를 띠며 그를 바라봤다.
원하는 것은 이미 얻었다.
놈들은 21개 구역 전체를 정화할 생각이 없었다.
신경 긁는 데에 성공했네.
역시 정치판에 발을 들일 거면 엘리아스처럼 막 나갈 사람이 필요하다.
“잠깐! 이런 질문은 소모적입니다. 시간 관계상 생략하도록 하죠.”
부의장이 치안본부의 마법사에게 눈을 부릅뜨더니 그의 말을 잘랐다.
이 해명이 계속된다면 정말 일부만을 정화한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다.
‘이번에도 반사 이익 꽤 땡겼겠네.’
이제, 슬슬 여기 있는 자들의 호감도 변화를 확인할 차례다.
나는 담화에서 신경을 끄고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호감도 0*]
[호감도 +1*]
[호감도 +3]
[호감도 +5]
[호감도 +2*]
별표가 붙은 쪽이 늘어난 것만 빼면, 대부분 아까와 비슷했다.
‘설마 이 자리에 없는 건가.’
기존의 찬성파 쪽에서 슬슬 나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진 자가 나와야 하는데.
결계를 찬성해야, 즉, 제한 구역이 생겨야 플레로마가 그 안에서 활개를 칠 수 있으니 말이다.
‘…아.’
아니지.
유연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노트에 숫자를 갈겨 적기 시작할 때 즈음, 엘리아스가 씩 웃으며 목소리를 키웠다.
“존경하는 부의장님.”
법원에서나 나올 발언에 부의장이 잘못 들었는지 의심하는 눈으로 눈가를 좁혔다.
“정부와 의회의 의견 잘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플레로마가 오염 모기 대량생산에 성공해 재난 상황이 닥치면 어쩌시겠습니까? 부의장님과 정부가 책임지실 겁니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죠?”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황실이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대처할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 말입니다. 엘리아스 공작께서 먼저 그렇게 믿고 계신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좋겠군요.”
이제 이쪽도 거의 자동응답기 같은 대답만 내놓기 시작했다.
엘리아스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벌렸다.
그러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애들 말싸움이나 하자는 얘기로 들리네요. 일 터지기 직전에 황실이 알아서 할 테니 지금 돈 쓸 생각은 없다?”
“품위를 갖추시길 바랍니다. 공작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깨달으십시오.”
“죄송합니다, 부의장님. 결코 의회의 권위를 해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엘리아스가 눈썹을 늘어뜨리더니 다시 묘한 웃음을 띄웠다.
그러고는 책상에 놓아둔 검은 상자를 집어 들고, 보조원의 부축을 받아 부의원석 앞까지 걸어갔다.
“…!”
나는 필기하던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근거요…. 그래요. 근거를 드려야죠. 약소하지만 제가 부의장님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열어 주시죠.”
엘리아스가 목발을 팔에 끼우고 휘청대더니 거의 던지듯 부의장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