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40)
부의장이 엘리아스가 던진 새까만 상자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뭡니까?”
“제가 직접 제작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자료? 여기 참가한 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회의를 방해하는 경우 큰 벌을 받게 될 겁니다. 안전하다고 확실히 대답할 수 있습니까?”
“예, 맹세합니다.”
부의장이 의심의 눈초리로 엘리아스의 얼굴과 상자를 스윽 훑었다. 그가 다시 한 번 엘리아스를 쳐다보고는, 뚜껑을 열었다.
“잠…!”
내 말이 다 나가기도 전에,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으, 으아아아아악!”
콰앙―!
일어나면서 다리로 책상을 쳤는지,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다른 의원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벌떡 일어났다.
“뭐야, 모기?!”
“나가! 빨리!”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의원들의 비명과 의자 넘어지는 소리가 한데 뭉쳐 소음으로 들려왔다.
“밀지 마세요, 좀!”
“나가! 나가!”
“어떻게 여기서 이런 짓을…!”
문밖에서 부의장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엘리아스가 그쪽을 보더니 웃었다.
“제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이걸 말해야 압니까! 예?!”
“모기 두 마리가 든 상자를 건넸죠. 그것뿐입니다. 참고로 수컷입니다.”
“그것뿐? 말 다 했어요?!”
“자, 잠깐만요, 부의장님. 혹시….”
한 의원이 그를 제지하더니, 다른 사람에게 무어라 이야기했다.
문간에 붙은 한 의원이 내게 모기와 내 완드를 번갈아 가리키며 손짓했다.
“…니콜라우스 경. 정화 좀 부탁합니다.”
나는 완드를 꺼내 정화 마법을 펼쳤다.
조용했다.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이거 설마….”
“일반 모기입니다.”
엘리아스가 자신을 향해 완드를 겨누는 경호원들을 보며 목발이 없는 쪽 손을 머리 옆에 붙였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부의장님께서는 분명히 문제 생길 일 없다고 하셨습니다.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황실이 대비할 수 있다고 하셨고요. 그렇게 믿음이 투철하면서, 이게 오염 모기일 거라는 불순한 생각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아니, 이렇게 갑자기 모기를 들이밀면 누가 착각을 안 합니까?!”
“그럼 플레로마는 예고라도 하고 온답니까?”
“…….”
당연히 예고하고 올 리가 없다. 엘리아스가 이 일을 벌인 의도가 명확해지자 회의장이 또다시 조용해졌다.
누군가 불리함을 눈치채고 송출 카메라에 다급히 종료 사인을 보냈다.
엘리아스가 진지한 얼굴로 의원들을 보며 말했다.
“이게 제가 제시하는 자료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태연하게 굴길래 당연히 제 자료 정도에는 놀라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일을 문제로 여기지도 않더니만 이제 와서 모기 따위에 놀란 이유가 뭡니까?”
“이보세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여태까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한 건 당신들입니다! 의원 여러분도 전 국민이 살인 모기의 위험에 놓여 있는데도 다들 문제가 없다고 그렇게 호언장담하더니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모기에 가장 먼저 달려 나가는군요. 감명받았습니다. 나가는 김에 상원 의석에서 같이 나가기나 하세요.”
의원들이 분노에 차 엘리아스에게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날렸다.
나는 의원들의 노성으로 혼란스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상태창을 켰다.
소설에서나 보던 주인공의 미친 짓을 이렇게 실제로 보니 새롭다.
그냥 읽을 때는 깽판을 쳐도 어떻게든 해결이 되길래 별생각 없이 읽었는데, 내가 현장에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오만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제일 핵심적이고 중요한 부문의 결과는 우려와 달리 딴판일 것이다.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인상: +5.4 (+0.9)
5.4점.
불과 10분 전에는 4.5점이었다.
경험상, 양수 상태에서는 일주일에 0.1점을 올리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고작 10분 만에 0.9점을 이끌어 냈다.
그만큼 국민들이 안전은 뒷전으로 두고 예산이 부족하다고만 외쳐대는 의원들에게 신물을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다.
연방위원회 의원들은 대체로 귀족이거나, 그만큼 부유한 자들이다.
보호 결계만 대여섯 겹씩 싸인 영지와 저택에 사는 그들은 오염된 마력 따위에 시달려본 적도, 그럴 일도 없다.
그러니 이 일이 피부로 와닿을 리가 없다.
그저 피 같은 돈이 새어 나가는 일로만 여겨질 수밖에.
그런 그들에게, 국민이 놓인 상황을 엘리아스가 그대로 돌려준 셈이다.
윤리 문제는 둘째다. 국민들이 느낀 본능적인 통쾌함이 엘리아스에 대한 인상 값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후로 받게 될 법적 대응은 차치하고, 계획한 일의 결과만 보면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가 없다.
‘좀 당황하긴 했지만… 주인공을 이 자리에 세운 건 좋은 선택이었네.’
“일반 모기에 이 난리를 쳐 놓고 오염 모기를 피부로 맞닥뜨릴 신민에게 아직도 예산을 운운하실 생각은 아니겠죠?”
엘리아스가 지겹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가 송출용 카메라를 보더니 눈썹을 올렸다.
“생각난 김에 인사 한번 하죠. 백부님, 항상 감사합니다. 이게 바로 백부님의 뜻이라는 것을 압니다.”
황제의 뜻이라는 말에 회의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냐, 내보내. 내보내, 빨리.”
어느새 회의실 안으로 돌아온 부의장이 20년은 더 늙은 얼굴로 보좌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아까부터 의원의 지시를 받아 송출 마법을 해체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더욱 주문을 빠르게 흘려보냈다.
엘리아스가 송출용 카메라 앞에 성큼 다가서며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잘못된 방법을 택했다는 것을 압니다.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폐하. 니콜라우스 경은 잘못이 없으니, 죗값은 저 홀로 받겠습니다.”
“그만! 나가세요! 부의장님께서 퇴장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냥 끌어내! 아니, 제국신문은 아직도 송출을 안 끊었어?! 지금 연결하는 사람 누구야!”
“이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서는 이들을 도저히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담화를 지켜본 우리 제국의 신민 모두가 동의하는 바일 겁니다. 제가 전하려던 바는, 제 진심은 폐하께서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송출 마법이 완전히 해체되었다.
* * *
“5분간 휴식 후 재개하겠습니다.”
레오의 보좌관이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나는, 곤충 오염 건에 대한 바이에른의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회견장에 나와 있다.
그리고, 의회에서 있던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깽판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
[메펜·오스나브뤼크 신민 50,000여명, 엘리아스 호엔촐레른·니콜라우스 에른스트 지지 표명]
[바이에른 등 제국 남부, 지역감정에도 불구하고 엘리아스 공작 응원 물결 거세져]
[제국 역사상 첫 ‘의회 해산 촉구’ 집회 열려… 공개 담화에 대단히 실망]
[담화 이후 전국 58개 지역 돌발 시위, 총리 권고로 2시간 만에 해산]
아니, ‘깽판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 깽판 덕분에 더욱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이 옳다.
치지직―
마지막 기사는 검열을 받았는지, 읽던 중 기사 자체가 사라졌다.
곧이어 세 번째 기사도 깔끔히 지워졌다.
‘이 나라 곧 망하겠네.’
어쨌든, 단순 지지만 얻은 것은 아니었다.
[프리드리히 황제 폐하 행정 명령 “전국 21개 오염 구역 주 1회 정화”]
[“조카 엘리아스 공작, 언행 과격해 주의 필요… 그러나 뜻은 상당히 대견” 프리드리히 황제 폐하와의 인터뷰 (1)]
요구안 또한 받아들여졌다.
황제는 전 국민의 지지가 무서울 만큼 엘리아스에게 쏠리자 금세 무관심 노선을 틀어 엘리아스를 훈계하는 동시에 칭찬하기 시작했다.
자기 이득 따라 바람직한 큰아버지 상을 연기하려는 게 누구와 굉장히 비슷하다.
그리고….
띠링―!
〈 Chapter 4.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2) 〉
제안 2: [인상] 점수 5 달성 (1/1) (47시간 38분 12초)
* Route 1 — 〈 Chapter 4 특별 보상 〉
* Route 2 — 〈 Chapter 5. 저녁이 되기 전에 하루를 칭찬하지 말라 〉
이번 제안도 성공했다.
원래의 계산대로라면 담화 이후 계획해 둔 몇몇 이벤트를 거친 뒤에야 기한을 딱 맞추어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담화 한 번에 인상 값 5점이 완전히 채워졌다.
띠링―!
축하합니다!
‘제안 2: ‘[인상] 점수 5 달성’ 성공!
‘Route 1 — 〈 Chapter 4 특별 보상 〉’을 확정합니다.
‘음.’
내 생각에 이건 지금 말고 나중에 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보상으로 뭐가 나올지도, 보류가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보상과 상태창을 상황에 맞게 지급하고 있다는 가설이 맞다면 더 필요한 시기가 있다.
내가 보류를 원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체계도 진작부터 생각이 같았는지, 정말 창이 넘어가지 않았다.
나중에 쓸 수 있는 걸로 알고 있겠다.
아무튼….
니콜라우스의 인상 점수는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0.1) [+5.0000099]
눈을 한번 감았다 뜨는 와중에도, 숫자가 계속해서 바뀐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0.1) [+5.0000105]
엘리아스의 원래 인상 점수는 3점, 나르케는 물음표.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1에서 5점을 오간다.
이 중 레오의 인상 점수가 +10인 걸로 판단해 보자면, 형 역시 만점의 인상 점수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니콜라우스는 얼굴을 가리고 있으므로 인간적인 호감도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다.
10점까지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8점, 안정적으로 9점은 얻어야 추후 정체를 밝혔을 때 형의 계략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택은 옳았다.
큰 이익을 얻으려면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그 말은 이런 점에도 적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회견장 책상 아래로 내린 팔을 내려다봤다.
쇠고랑이 손에 흐르는 마력을 완벽히 차단했다.
깽판은 엘리아스가 쳤는데 국민들이 나를 좋게 여기고 있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나도 자연스레 한패로 인식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같이 연행됐다.
‘XX….’
헛웃음만 난다.
예상대로다. 이런 것까지 예상대로 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살다 살다 현실에서도 차 본 적 없는 은팔찌를 여기서 차 보네.
그렇다고 엘리아스 탓을 할 생각은 없다.
그는 그 상황에서 최고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선택을 했고, 나 역시 그런 그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늘 상상 이상의 깽판을 벌인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 일의 주도권을 일임했다.
이 일의 성공 기준은 구속이나 연행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이 싸움은 대국적인 심리전이다.
애초에 이 정도로 감방에 갈 가능성은 0에 가깝지만, 만에 하나 국가가 우리를 투옥한다고 해도 대중이 우리를 비호한다면 최종적인 승리는 우리의 편에 있다.
‘애초에 리스크를 감수하기 싫었으면 주인공을 멀리했으면 될 일이지.’
나는 그와 함께해 입는 손실보다 이득이 클 것이라 판단했고, 정말로 이틀이나 빨리 제안을 달성시킬 만큼 인상 점수가 급속도로 올랐다.
정신 건강은 좀 털릴지 몰라도 계획의 효율과 효과 면에서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시작하겠습니다.”
회견 중 쉬는 시간이 끝나, 레오가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회견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저 멀리 놓여 있는 실시간 송출 장치에 시선을 두었다.
나는 송출이 끝나자마자 엘리아스와 함께 연행되었다가, 레오를 신원보증인으로 세워 잠시 바이에른령으로 이동한 상태다.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바이에른 오염 현황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엘리아스의 조사가 끝나기 전이었기에, 도주 우려 탓에 마력을 제한당했다.
“보도 당일 서면으로 보고드렸던 대로, 11월 3일 새벽, 바이에른 왕국 내 5개 제한 구역 모두 정화를 완료했습니다. 바이에른 왕국의 제한 구역에서는 오염 곤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립니다.”
회견장의 긴 책상에 앉은 레오가 확성 마법을 켠 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우리 왕국은 제국의 방침에 따라 신력 사용이 가능한 마법사 두 명을 기한 내 섭외해 매주 정화를 실행할 것입니다.”
“어떤 마법사가 바이에른의 제한 구역을 맡게 될지 논의된 바가 있습니까?”
회견장 한쪽에서 질문이 나왔다.
우리 요구안은 받아들여졌지만, 여기서 또 황실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점이 있다.
신력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부족한 탓에, 황실은 제국 내의 왕국부터 공국까지는 알아서 마법사를 구해서 정화 할당량을 채우라는 놀라운 지시를 내렸다.
황실 역시도 제국 내 ‘왕국’을 이루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황실에 등록된 각지의 마법사를 독차지했다.
‘정치를 이렇게 내일 없이 할 수도 있네.’
물론, 놈들이 정치를 어떻게 하든 알 바 아니다.
나야 오히려 그렇게 굴수록 고마울 뿐이다.
“감사하게도 이 자리에 계신 니콜라우스 경께서 오염 문제를 발견한 순간부터 바이에른의 제한 구역을 담당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레오의 말이 끝나는 순간 플래시가 잔뜩 터졌다.
이걸로 니콜라우스의 공식적인 직위 하나를 더 얻었다.
다른 기자가 입을 열었다.
“니콜라우스 경께서는 이미 제국 내 8개의 대공국과 공국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걸로 아는데, 맞나요? 특히 헤센에서는 니콜라우스 경께 두 배의 보수를 약속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여러 지역에서는 적합한 마법사를 찾는 데에 혈안이 되었다.
그 때문에 바이에른 정부 앞으로 니콜라우스를 스카우트하려는 수많은 연락이 도착했다.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대신 바이에른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저는 바이에른 신민이며 바이에른 왕국군 소속입니다. 언제까지나 우리 왕국에 충성할 것입니다.”
나는 그들이 가장 원하는 대답을 입 밖에 끄집어냈다.
제국 내에서 둘째로 강성한 국가라는 자부심이 있는 나라답게, 몇몇 바이에른 기자들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슬슬 다시 확인해 볼까.’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0.1) [+5.0000139]
10분 전 끝자리가 105였는데, 이제 139다.
서서히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나는 창을 시야 한구석으로 밀어두고, 카메라 셔터음과 플래시가 줄어들 즈음 말을 꺼냈다.
“다만, 제국의 일원으로서 같은 제국 신민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권고한 준비 기간이 지나도록 마법사를 구하지 못한 지역이 있다면, 저의 신력이 받쳐 주는 한에서 다른 요일에라도 정화에 참여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 순간, 시야 한쪽이 번쩍이며 새하얀 숫자들이 빠른 속도로 변동했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0.1) [+5.0005979]
139에서 5979.
황실과 제국 정부가 구린 발언과 지침을 내놓을수록 감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