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42화 (42/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42)

엘리아스가 시작부터 60년을 거저 먹게 된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책자를 이리저리 펼쳐보았다.

시야 옆에서 나르케가 고개를 숙이고 미간을 손으로 누른 채 소리 없이 몸을 들썩였다.

표정 안 봐도 200% 웃는 중이다.

띠링―!

〈 Chapter 4.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2) 〉

제안 3: [인상] 점수 5 방어 (0/N) (167시간 59분 57초)

* Route 1 — 〈 Chapter 5. 좋은 물건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1) 〉

* Route 2 — 〈 Chapter 5. 저녁이 되기 전에 하루를 칭찬하지 말라 〉

그래… 잘 떴다.

안 그래도 손 좀 봐야 할 일인데, 다음 챕터로 넘어가 주면 나야 좋지.

“이거 돈 주고 샀어?”

“으응… 1 펠.”

엘리아스의 헛웃음이 들려왔다.

솔직히 말해 보자면, 40대까지는 예상했어도 70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헛다리를 짚어도 이렇게 짚네.

니콜라우스는 뭐 하나 제대로 드러낸 것이 없으니, 나이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래도 대충 목소리나 실루엣,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해 ‘젊은 사람인 것 같다’는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70대라는 충격적인 나이는 어떻게 나왔을까.

이때 고려할 것이 있다.

마법사들은 가진 마력에 따라 수명이 극명히 달라진다.

그러니, 77살에도 청년 같은 신체를 가지는 게 아예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다.

루카의 아버지만 해도 이제 70대를 바라보지만 신체는 비마법사 기준 40대에 멈춰 있다.

‘그렇다고 해서 60년을 점프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

가끔 있기는 해도, 절대 흔하다고 할 수는 없다.

17살을 보고 77살이라니….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너무한 면이 있었다.

물론, 그건 내 입장이지.

내 나이를 아는 입장에서나 너무하지, 나를 전혀 모르는 자들은 70대이면서 3-40살 즈음의 젊은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하나만 더 생각해 보자.’

대충 70대로 뭉개지 않은 걸 보면, 어떤 자료로부터 내 나이를 알아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따지자면 아마… 17을 잘못 읽었겠지.’

수기로 적힌 자료였다면 그럴 수 있다.

전에,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군에 이름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레오에게 집안 어른들을 설득한 과정에 대해 물어봤다.

레오가 그 막중한 자리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자를 곁에 둘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레오와 같은 학년에 같은 과 친구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적어도 등쳐 먹어질 위험은 없다고 생각하신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니콜라우스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말한 건 아니다.

아스카니엔은 공국을 이루고 있으며, 안할트 지역의 통치 가문이다.

그리고 귀족 사회, 특히 제국 내 여러 국가들의 통치 가문끼리는 교류가 꽤 있는 편이다.

레오가 아무리 제 가족이라 해도 믿고 말하지 못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자식이 언질도 없이 새까만 가면을 쓴 도둑놈 같은 자식을 수행원이라고 붙여놓고 신문 1면에 나왔는데, 심지어 그 가면 쓴 놈이 누군지도 안 알려 주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늘 헛소리라고는 일절 하지 않는 점을 보증 삼아 같은 과 친구라는 이야기를 믿어줬는데, 그 마당에 ‘시민증을 만들어 줄 건데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출생 연도를 바꿔서 올려야 해요’라고 하면 잘도 신뢰할 수 있겠다.

그래서 레오는 가족에게 웬 신원미상의 사냥꾼이 같은 과 친구라는 걸 알린 마당에 내 나이까지 조작할 수는 없었다.

어느새 얼굴에서 황당함을 지운 엘리아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77살이야.”

“진짜?”

“아니? 몰라. 마법사 나이를 얼굴만 보고 어떻게 알아. 안 물어봤어.”

“아앗… 그렇구나….”

“뭐야, 얘네 가면 쓰는 이유도 추리했어? 지나치게 못생겨서…는 뭐야. 불륜 뭐야. 지명수배자는 또 뭐야?!”

엘리아스가 레오를 보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레오가 착잡한 얼굴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야. 이런 거 믿지 마.”

“그래? 하긴 비텔스바흐가 고용했는데 지명수배자일 리가….”

“다른 것도. 평소 행실도 자격 요건에 포함되어 있어.”

평소와 다른 웃음기 없는 답변에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레오와 가깝게 어울리던 친구가 눈치를 보더니 그의 등을 툭 쳤다.

“야~ 분위기 너무 가라앉았다! 혹시 또 모르는 거지. 너도 일하는 시간에나 보지, 평소 생활이 어떨지 어떻게 알아.”

“뭘 몰라.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지.”

레오가 답답한 얼굴로 답했다.

답답할 만하다.

하루에 적어도 12시간은 보고 있으니 확실히 답할 수 있는 건데, 그 니콜라우스가 지금 같은 반에서 대화를 듣고 있다는 걸 말해 줄 수도 없고.

“아무리 그래도 네가 그걸….”

학생이 눈치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려 하자 엘리아스가 턱을 괴고 그를 바라봤다.

“얘들아, 적당히 해~ 너희는 바이에른 왕실에서 이런 쓰레기 새끼를 고용했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

말이….

헛웃음이 났다.

“…아니… 그런 말은 아니지.”

“그런 말이야.”

엘리아스가 웃으며 답했다.

“이 신문 작년에 사람 하나 죽이지 않았어? 그런데 아직도 인기가 많단 말이야?”

“…….”

엘리아스가 책상에 내려놓았던 책자를 콱 잡아채며 제 앞에 선 학생에게 말했다.

“뭔 말인지 알았으면 여기 있는 거 믿지 말고. 이거 내가 가져도 돼?”

“어? 어어…. 그래.”

학생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답했다.

상황은 교수가 조례를 위해 교실에 들어오며 끝이 났다.

모두가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을 즈음, 엘리아스가 나를 슬쩍 보며 눈썹을 까딱였다.

* * *

모임 장소에 들어서자, 미리 와 있던 친구들의 시선이 내게 일시에 쏠렸다.

회의도 없는 날인데 알아서 모여 있는 걸 보니 오늘 일이 놈들에게도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놈들이 모일 걸 예상하고 와 놓고서 보일 반응은 아니긴 하다.

“아이고, 어르신… 으하하학학!”

엘리아스가 진지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혼자 미친 듯이 웃으며 테이블에 엎어졌다. 레오가 경멸과 한심함이 섞인 눈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기분이 나빴다면 반격했겠으나 나 역시도 그냥 웃음만 났다. 솔직히 77살은 지나치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르케가 피식피식 터져나오는 웃음을 누르며 물었다.

“루카스.”

“어.”

“77살에 레오 8촌 친척에 수배자에 실종된 대마법사에 제국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이 된 소감이?”

“별 생각 없어.”

“다스로테는 네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만 일곱이라더라. 다음 호 예고야.”

나르케가 잡지 뒤표지를 접어 흔들었다.

이건 도덕을 떠나 현실적으로 시간이 되는지 모르겠다.

다음 호는 아예 저걸로 빠질 생각인가 본데….

확실히, 내가 이룬 성과와 관련도 없고 생산적이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황색언론이 맞다.

“너무 자극적으로 보도하려다 현실성을 놓친 것 같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얼굴 가리고 다닌다는 말은 안 억울해?”

“글쎄. 맥락상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설이기는 하니까.”

개인적인 이유로 밝힐 수 없다고 하는 것보다는 덜 수상하고 윤리적인 문제도 없어 보이는데, 그냥 나도 이걸로 노선 바꿀까.

고민하고 있자, 나르케가 웃었다.

“그래도 크게 신경쓰지 않나 보네. 다행이다.”

사실과 교묘하게 섞으면 화가 날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허무맹랑하다 보니 오히려 침착해진다.

그냥 전 국민이 저 헛소리를 보고 진짜인지 아닌지 궁금해할 걸 생각하니 웃길 뿐이다.

나르케와 달리 터져나오는 웃음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던 엘리아스가 숨을 고르고 물었다.

“흐핫하하… 후우… 루카, 근데 솔직히 읽는 내가 다 빡치던데, 당장 가면 까서 전부 박살 내고 싶지 않아? 너 가면만 벗으면 저 모든 헛소리가 끝나.”

“됐어.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는 헛소리 듣는 게 훨씬 낫지.”

나는 잠시 상태창을 열어 인상 점수를 확인했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0.1) [+5.0015131]

그새 인상 점수는 끝자리 5979점에서 15131점을 찍었다.

아직 하락세를 타지는 않았지만, 제안의 내용에 따르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번 제안은 내게는 쉬어 가는 시간이다.

상대가 쉽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펜으로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 쉬울 리가.

하지만 이 문제는 내게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이득이다.

그렇기에 조금 힘을 빼고 임할 수 있다.

니콜라우스가 얻고 있는 사회적 이미지는 과거의 형과 비슷하다. 대가 없이 사회에 퍼주고 또 퍼 주는 인간이라는 말이다.

내 문제와 별개로, 형은 그런 니콜라우스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형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볼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니 니콜라우스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 경로를 죄다 차단해야만 한다.

그때, 레오가 다스로테를 패대기치듯 내려놓고 나지막이 말했다.

“루카스.”

“왜.”

“이거 제대로 안 읽어 봤지? 다 읽어 봤으면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을 텐데.”

“읽었어.”

내 대답에 엘리아스가 눈썹을 들썩이며 휘파람을 불었다.

레오가 말없이 나를 지켜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었어.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지. 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는 보도를 무시할 수는 없잖아.”

“그래, 그러면 잘 알겠네. 이건 억울하고 말고가 아니라 그냥 인격 모독이야. 루카스 너는 제국2교육원 학생이지만 니콜라우스는 아냐. 다스로테가 널 성인으로 간주하고 별의별 역겨운 말을 다 하고 있다고.”

그게 황색언론이지.

전혀 놀랍지 않다.

니콜라우스가 아니라도, 수많은 정치인과 유명인이 다스로테와 같은 황색언론의 표적이 되어 왔다.

이들에게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도 몇몇 있다.

“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어?”

“‘하고 싶어’가 아니고 ‘실행할’ 일이지. 바이에른 땅에서 다스로테 유통을 중지할 거야.”

“그거 좋은 경고인데. 실제로 실행하진 말고 경고만 해. 알아서 한풀 꺾일 테니까.”

“너는 다 읽어 놓고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레오가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국의 2/3은 황실의 차지야. 그곳에서 다스로테를 저지하지 못하면 제국의 1/7인 바이에른에서 놈들을 몰아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

물론 ‘다스로테를 못 읽게 할 목적으로 유통을 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 아예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1/7이라 표현해 작아 보이지만 개별 왕국으로는 황가가 다스리는 왕국 다음으로 큰 땅을 가지고 있으며, 인구도 두 번째로 많다.

내실 없이 땅만 큰 곳이 아니라 경제력도 막강하다. 마법의학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영향력이 크다.

그러니, 사업가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가리는 게 없어. 사업도 마찬가지야. 바이에른에서 실제로 유통이 중지된다면 다스로테는 당연히 좌절하겠지.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가져다줄 테니까. 하지만 그건 반대로 고객풀에서 영영 벗어난 바이에른을 미친 듯이 물어뜯을 수 있다는 말이야.”

레오가 나를 노려보다, 한숨을 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심호흡하는 레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세게 말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너도 협박만 해도 충분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잖아. 협박은 협박에서 끝나야 의미가 있어.”

“그래, 레오도 아는데 화가 많이 났나 보네.”

나르케가 이제 그에게 현실적인 설명을 할 필요 없다는 걸 알리려는 듯, 내게 레오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통찰 능력을 사용한 것 같았다.

화가 날 수밖에.

표면상이더라도 비텔스바흐가 뽑은 사람을, 왕세자가 신임하는 마법사를 이렇게 매도하고 있으니, 이건 어떻게 보면 나만 욕하는 게 아니라 왕가까지 싸잡아서 욕하는 꼴이다.

아마 레오뿐 아니라 다른 비텔스바흐들도 다스로테의 행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 내가 흥분했어. 미안하다.”

“아냐. 너라면 충분히 화가 날 주제니까.”

“너에게도 그런 주제지.”

레오가 쐐기를 박듯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맞아. 화가 나지. 처음에는 솔직히 그랬어.”

“지금은 아니다?”

“그래.”

이때, 내가 크게 타격을 입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자기 자신 그대로 다스로테의 표적이 된 다른 이들과 다르게, 나는 니콜라우스라는 가상 인물을 뒤집어쓰고 있으며, 길어 봤자 3개월 내에 그가 가공의 인물인 것을 밝힐 것이다.

만약 내가 평생 니콜라우스로 살아야 한다면 진지하게 타격을 입겠지. 그건 더 이상 가상 인물이 아니라 또 다른 나니까.

그리고, 니콜라우스가 나라는 것을 밝히는 순간 다스로테에 적힌 95%의 글자가 활자 쓰레기로 전락하게 된다.

굳이 깊게 해명할 필요 없이, 그냥 봐도 맞는 게 없기 때문이다.

둘째.

첫째에서 맹점이 있다. 정체를 밝힌 뒤 니콜라우스의 의혹을 나에게 덮어씌울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그럴 수 있는 의혹이 없고, 만약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에도 짚고 넘어갔듯이, 학생에 대한 기사는 검열을 강하게 받는다. 특히 사진이나 영상은 더더욱 엄격하게 관리된다.

이건 황실의 지원을 받는 학생이라면 전부 적용되는 이야기이므로, 대학인 제국1교육원에 진학해서도 이런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가십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논란의 지속성이 없다.

불도 장작이 있어야 타지.

나는 77세라는 글자가 적힌 부분을 폈다.

“왜 하필 77세일까?”

“찍었겠지?”

엘리아스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게 17을 혼동한 결과물이라면?”

“굉장한 악필인가 본데. 근데 뭐… 가끔 보면 글자를 그따위로 쓰는 놈들이 있긴 하지.”

“그래… 아무튼, 황색언론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망상만 나열하지는 않아. 저들도 주장을 납득시키려면 근거가 필요하고, 그 근거에 해당하는 토대가 필요해. 어디에든 분명 과장과 날조는 들어가겠지만, 놈들이라고 조사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라고.”

“그래서.”

레오의 말에 나는 그가 내려놓은 잡지에 고갯짓했다.

“다스로테만 확인해 봤어?”

“어.”

나는 가방에서 다른 잡지를 꺼냈다.

“다른 곳도 비슷한 내용을 내놨어. 물론 다스로테처럼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엘리아스가 내가 꺼낸 잡지를 펼치더니 웃었다.

“여긴 또 왜 20대래?”

이게 바로 내게 이득인 이유다.

전에 생각한 대로, 정보를 교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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