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43화 (43/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43)

“흐음, 그래~ 여기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추정이라고 쓰여 있네. 이제 루카스 네가 왜 이렇게 태연한지 이해가 된다.”

나르케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른 책자를 뒤졌다. 죽은 눈으로 이마를 짚고 있던 레오가 눈꺼풀만 들어 나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내가 전에 너한테 황색언론을 막을 필요 없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오늘 자 기사를 직접 봐 놓고 설마 아직도 이용하겠다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맞는데.”

“하아….”

레오가 양손으로 눈을 꾹 눌렀다.

이렇게 모든 사고와 행동을 정석적으로 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구는 사람이 엘리아스랑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지 놀랍다.

뭐, 결국 그도 어느 정도 엘리아스와 닮은 면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 않다면 비텔스바흐에 잔뜩 우겨서 가짜 신원 시민권을 따내는 행위는 할 수 없지.

그때 나를 빤히 보던 나르케가 입을 열었다.

“루카스.”

“음?”

“좀 피곤하겠지만… 잘 해낼 것 같다. 힘내.”

예지 능력을 썼나.

전반적으로 흐름이 나쁘지는 않다는 얘기겠지.

“고맙다.”

“야, 여기는 너 대인기피증 있어서 만나는 사람 없을 거래. 같은 사람 보도할 거면 말을 좀 맞추든가 하지 뭐 하는 거지?”

엘리아스가 또다시 낄낄댔다.

나는 그를 보며 따라 미소 지었다.

“이렇게 나오면 나야 좋지.”

“여유롭네. 우리 빼고 전 국민 바보 된 느낌 즐기는 중?”

“뭐, 그런 것도 없다고는 못 하겠고. 진실 파악 면에서도, 대중이 느낄 신뢰도 면에서도 글렀으니까.”

뭘 추리해 보려 해도 말이 맞아야 확신하지.

이 싸움은 니콜라우스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올해 하반기가 되어서야 탄생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신뢰도~ 그거 좋네. 이미 끝났지.”

“그래. 흥미가 생긴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나온 다른 가십지를 더 찾아볼 테니까.”

“나 같으면 가판대 바닥까지 싹싹 긁어간다. 솔직히 결계 적합성 문제 처리하고 나면 니콜라우스는 어디서 튀어나온 놈인지 찾아보려고 했어.”

“…….”

갑자기 피부가 서늘해지는 것 같다.

나는 최대한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펼치는 것마다 말이 죄다 다른 걸 보면, 어떻겠어?”

“짜증 나지. 그래서 뭐가 진짠데? 됐다. 여기서 찾아보려 한 내 잘못이지… 그러겠지?”

엘리아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굳이 ‘무조건 정보를 알아내겠다’는 태도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펼치는 것마다 말이 전부 다르면, 지금 읽고 있는 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 그저 흥미 본위 가십거리라는 것을 인지할 기회가 된다.

물론, 말을 맞춰도 이득이다.

잘못된 정보만 돌아다니는 마당에 말을 맞춰봤자 무슨 타격이 있겠는가.

이러나저러나 그저 고맙고 우스울 뿐이다.

그때, 레오가 늘어난 거짓 정보에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그러고 보니까… 대인기피증 얘기는 어쩌다 나온 건데?”

“얘네가 어릴 때 니콜라우스 친구였다는 사람 인터뷰 땄어. 루카 넌 읽어 봤어?”

“어.”

교황령 사람의 인터뷰였다.

그는 어릴 적에 니콜라우스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니콜라우스’가 어릴 적부터 종종 납득하기 어려운 마술 같은 일을 벌였는데,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지금까지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고 했다.

유전을 통해 마법을 물려받은 게 아니라, 완벽한 비마법사 사이에서 갑자기 마법사가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아마 그는 그 니콜라우스를 그런 케이스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당연히 그는 내가 아니지만,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감사한 시나리오다.

레오가 황당한 듯 입꼬리를 끌어내리며 물었다.

“뭐, 니콜라우스랑 친구였던 사람?”

“어.”

“…세상에 니콜라우스가 한둘도 아니고 뭔….”

레오가 회의적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동의한다.

하지만 황색언론의 입장에서 그만한 팩트 체크는 중요치 않다.

적당한 구체성과 끌리는 이야기라면 쉽게 믿으니까. 대중이 기사의 진위까지 낱낱이 따져 들지 않는 것도 한몫한다.

‘이쯤에서 다시 확인해 볼까.’

먼저 제안부터.

〈 Chapter 4.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2) 〉

제안 3: [인상] 점수 5 방어 (?/N) (152시간 17분 53초)

* Route 1 — 〈 Chapter 5. 좋은 물건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1) 〉

* Route 2 — 〈 Chapter 5. 저녁이 되기 전에 하루를 칭찬하지 말라 〉

5점 방어.

4점대로 떨어지지 않게 막으라는 뜻이다.

어찌 보면 아슬아슬한 말이다.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면 딱 5점.

넷째 자리에서 반올림해 봤자 5.002점이니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점점 점수를 올리기 힘들어진다는 말뜻은, 예를 들자면 이렇다.

1단계에서 2단계로 올릴 때는 1,000만 있으면 됐지만, 2단계에서 3단계로 올릴 때는 10,000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값이 내려가도 단계까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0.1) [+5.0015129]

‘그새 끝자리가 15131에서 15129로 내려갔네.’

그래도 이 정도면 제자리를 진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스로테 같은 전국적인 보도 창구가 나를 공격하는 상황에서는, 실시간 송출로 3점이 올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1점 단위로 쭉쭉 떨어질 수 있다.

내게 놈들의 보도가 이득인 건 맞지만, 긴장을 풀 생각은 없으니 다시 철저히 계산해 보자.

“오늘 자 다스로테가 몇 시에 나왔지?”

“아침 여섯 시.”

레오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신문의 발행 시각은 오전 6시, 그리고 오후 6시. 이 시간대 주위로 판매량이 증가한다.

오후 11시 50분을 지나고 있는 지금, 오늘치 인상 점수 변화는 이미 겪은 셈이다.

줄곧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을 테지만….

실시간 송출과 바이에른 회견의 영향으로 아직까지는 상승세를 유지했다.

‘진짜는 내일부터야.’

다스로테는 일간지다.

내가 일곱 다리를 걸쳤다는 추측을 본격적으로 보도할 때부터 내 인상 점수는 조금씩 하락세를 탈 것이다.

단순 망상 나열로 치부하기에는, 황색언론을 진지하게 믿는 이들이 많다.

그러니까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지.

어쩌면, 내용의 신빙성에 따라서는 조금이 아니라 급격하게 하락할 것이다.

“레오, 협박은 언제 할 거냐?”

“내일 저녁에 회의 소집하려고.”

머리 아픈 일만 가득해 심란해졌는지, 레오가 관자놀이를 짚고 눈을 감은 채 답했다.

“그래. 미리 고맙다.”

“더 일찍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도저히 못 보겠으면 말해. 그냥 내일 아침에 바이에른으로 돌아가서 어머니께 말씀드리게.”

“오호, 이렇게 학교를 빠질 수도 있군~”

엘리아스가 옆에서 웃었다.

“…! 내가 너처럼 놀러 다니려고 빠지는 줄 알아?!”

“응…? 이번엔 그냥 부러워서 그런 건데?! 내 평소 행실이 어땠길래 바로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야~?”

아무래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나도 레오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논 적 없어! 탐사하러 다녔지.”

“탐사를 무슨 석 달 내내 해?!”

나는 엘리아스와 레오가 말다툼하는 것을 끊고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해.”

내일 저녁이면… 일곱 다리를 걸쳤다는 미친 소리는 그대로 나가겠군.

어차피 장기전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하다.

모레 보도부터는 내 이야기가 끊길 것이다. 완전히 끊기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이야기는 전부 빠지겠지.

이때, 놈들의 결정을 하나씩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내 이야기를 터트린 시기가 조금 부적절하지 않은가?

왜 굳이 지지도가 오르고 있는 초기에 이걸 터트렸을까?

‘바보인가.’

내가 그 누구도 의심치 않는 성자로 여겨질 즈음에 제대로 된 스캔들을 터트려야 가장 타격이 클 텐데.

고점을 찍을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리지 않은 이유가 뭘까.

나는 의자에 편히 기대앉아 펜 끝을 종이에 툭툭 두드렸다.

잉크가 스며드는 걸 보고 있으니 생각이 말끔히 정리되는 느낌이다.

뻔하다.

놈들은 자극적인 멘트와 사진으로 지금 당장의 판매 부수를 올리는 게 목적이다.

만약 니콜라우스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놈들도 이런 흥미 본위의 ‘그가 가면을 쓰는 37가지 이유’ 따위를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실시간 송출로 인해 관심이 폭발적으로 오른 지금이, 바로 매출을 올리기에 최적화된 시기다.

‘여기서 한번 적당한 수위로 긁어서 뽕 좀 뽑고, 만약 나중에 다시 내 지지도가 오른다면… 그때 다시 제대로 된 건수 잡아서 떨어뜨리면 매출 올릴 기회가 두 번이지.’

미안하지만 그때는 학생이라 다시는 이런 보도 못 할 거다.

어쨌든, 목적은 정리가 됐다.

니콜라우스를 벼랑 끝까지 몰아가라는 로비가 있었던 게 아니니, 이 싸움은 할 만하다.

나는 그저 진실이 흙탕물처럼 흐려지는 것을 즐기면서, 인상 점수가 4점대로 떨어지는 일만 막으면 된다.

* * *

“루카스, 뭐 읽어?!”

오후 3시, 파이가 내 어깨에 올라타 내가 든 책자를 내려다봤다.

“쓰레기.”

“쓰레기 어떻게 읽어? 잡지 아니야?”

“아니. 이제부터 그렇게 됐다.”

나는 학교 뒤편 소각장에 책자를 던지고 그대로 뒤돌아 기숙사로 향했다.

‘상태창.’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5.0008931]

15129에서 8931.

10000대가 무너졌다.

이유는 뻔하지.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다스로테의 보도를 믿는 인간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진짜로 일곱 명을 만날 시간이 있다고 보는 걸까?

아니면 그냥 재미있으니 믿는 걸까.

‘그래도 6000 빠진 거면 양호하네.’

보도는 내 생각보다 정교했다.

어제 자 다스로테의 표지는 그냥 전형적인 황색언론의 표지였지만, 오늘 자는 표지부터가 내 사진이었다.

자선 행사 당시 창문에서 찍힌 사진을 클로즈업해 눈이 잘 보이도록 잘랐다.

편집과 각도, 그리고 가면의 굴곡 탓에 굉장히 악당처럼 나왔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딱 골라 표지에 넣었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거기에, 가짜 인터뷰가 서너 개 수록되어 있었다.

논란 분야를 막론하고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날조된 사진이었다.

나와 체형이 비슷한 자를 니콜라우스처럼 꾸며 놓고, 상황을 그럴듯하게 연출했다.

‘나름 공들여 만든 티가 나는데.’

점수 변화를 보니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해 보인다.

그들이 원하는 반응이 뽑혔다면 이미 내 인상 점수는 4점이 뭐냐, 3점대까지 떨어졌을 것이다.

물론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지금 기조를 그냥 두면 자정이 되기 전에 정말로 4점대를 찍을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 한 3시간 남았나.’

3시간 뒤면 하락도 끝이다.

그 전에 어디까지 떨어지나 한번 지켜보자고.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바이에른 국경으로 워프해, 허가를 받고 수사국 청사로 이동했다.

마침 오늘 시종장을 만나 약을 마셨기에, 나름 합당한 이유로 학교를 빠질 수 있었다.

시간을 보니 이제 3시 반쯤 되어 있었다.

미리 받아 둔 호실을 찾아 들어가자, 한 형사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오셨군요.”

“예,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마침 방금 전부 정리를 끝냈습니다.”

그가 타자기에 올려져 있던 종이를 뽑아 한데 묶었다.

“바이에른인은 한 명도 없더군요. 전부 프로이센 사람에, 평민, 경제 사정이 그다지 좋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동원된 네 명 모두 외부와의 교류가 많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마법사는 없고요.”

“그렇군요.”

“여기, 한번 살펴보시고 조사가 더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예.”

나는 그가 넘겨준 파일을 받아 들었다.

[11-14호 다스로테 분석 결과]

어제, 바이에른에 연락해 오늘 새벽에 발행될 다스로테에 대해 조사를 요청했다.

일곱 다리를 걸친 내용에 대해 하루치 지면을 전부 할애하려면,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증거가 존재할 리 없으니, 그들이 알아서 증거를 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말로 가짜 인터뷰와 사진이 실렸지.

장을 넘기자, 다스로테에서 보았던 사진이 나타났다.

‘그레타 벨터.’

나와 연인 관계라고 주장하는 자의 사진이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이 자가 주장한 건 아니지.

인터뷰는 전부 다스로테 측에서 작성하고, 이 사람은 사진만 제공했을 것이다.

그 옆에 거주지, 직업, 일하는 곳, 가족 관계 등등,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내가 알기로,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시기는 이런 조사가 그리 빠르게 이뤄질 수 없는 시기였는데… 역시 마법이 엮인 세계라 이런 부분에서는 반세기는 빨리 발전한 느낌이다.

‘빠르고 좋네. 현실 세계 과거였으면 찾지도 못했을 텐데.‘

나는 파일을 덮고 그가 건넨 봉투에 그것을 넣었다.

“이대로면 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뭘요. 이제 어디로 가실 예정입니까?”

나는 첫 장에 나왔던 사람의 거주지를 떠올려 대답했다.

“슐라우부터 가 볼 생각입니다.”

“그럼, 왕세자 저하께는 경께서 3시 50분에 슐라우 지방으로 이동하셨다고 전달하겠습니다.”

“예.”

나는 그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나와, 다시 학교로 향했다.

나르케를 데려와야 했다.

* * *

“그레타 벨터 씨 계십니까?”

나는 나르케와 함께, 나도 모르는 사이 나와 오랫동안 만나 왔던 사람을 찾아왔다.

수상해 보이는 흰색 가면을 쓴 나르케가 이 상황에 재미를 느끼는 듯, 계속해서 히죽댔다.

가면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웃음이 섞인 것 같은 숨소리를 통해 충분히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얘도 보면… 그렇게 멀쩡한 놈은 아닌 것 같다.’

입시 앞둔 고등학생들이 뭐 다 그렇겠지만.

물론 내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따른 일반화일 뿐이다.

어쨌든, 나르케를 데려온 이유는 오늘 그의 통찰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부터 사진의 주인공이 제 입으로 진실을 말하고, 그걸 수사기관에 가서 증언하게끔 유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검증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조금 부려 먹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나르케는 저번에도 나처럼 신분을 감추고 제한 구역에 가 보고 싶다고 했으니, 마음 편하게 데려올 수 있었다.

레오가 오늘 학교를 빠지고 바이에른에 갔기에, 겸사겸사 아직 정화 계약을 어디랑 체결할지 정하지 않은 나르케를 업무적으로 엮어 데려가는 것이 수월했다.

실제로는 여기에 있긴 하지만, 명분상으로 말이다.

그때, 나무 문이 덜컹거렸다.

끼익―

“누구신지….”

누군가 문을 열더니, 우리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다스로테의 사진으로 보았던 사람이 얼떨떨하면서도 흥분한 얼굴로 목청을 높였다.

“어, 니콜라우스 경? 맞으시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