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45)
1,775만 펠.
그새 내 보수를 계산했네.
바이에른을 포함한 4개국으로부터 얻는 일주일 정화비는 355만 펠, 3억 5,500만 원이다.
숫자를 보니 5주를 곱한 듯했다.
‘주 단위로 받는데 굳이 5주를 곱하네.’
무슨 그림을 원하는지 뻔히 보인다.
“…이야.”
나르케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학생이 주위 학생들을 휙휙 돌아보며 물었다.
“뭐야? 저거 뭔 소린데. 받은 돈 전부 바람피우는 데에 쓸 거라고?”
“그런 것 같은데? 제목 저렇게 뽑는 것도 신기하네….”
내용은 안 봐도 뻔하다.
말 같지도 않은 날조 덩어리겠지.
그나저나….
나는 학생이 든 잡지 표지를 보며 말을 툭 던졌다.
“그쪽이야말로 돈이 많이 필요한가 보네.”
“그러니까. 얼마나 뽑아먹으려고 이래? 이제 그냥 어이가 없다.”
다른 학생이 별생각 없이 내 말에 답했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 오늘은 벌써 시간이 다 됐네.”
“다스로테는? 필요하다며. 빌려줄게.”
“이제 괜찮아. 이쯤에서 정리하고 일어나자.”
* * *
수도, 다스로테 본사.
“지금 타이틀을 취소하고 내일 아침으로 미루자고요?”
부국장이 제 앞에 선 사람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예.”
“왜요? 지금 화제 못 타면 밀리는 거 순식간이에요. 모르지 않으실 텐데….”
“3개국 추가 정화 보도 이후로 저희 측에서 니콜라우스 경에 대해 제대로 조사한 것이 없습니다, 부국장님.”
부국장이 펜을 내려놓고 안경을 벗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언제부터 우리가 조사에 목숨을 걸었다고 그래요? 괜찮으니까 그냥 쓰세요. 이번 주 목표한 건 채워야죠.”
“저도 그 부분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바이에른 왕실에서 니콜라우스 경의 정화 건으로 회견 자리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회견?”
“예. 바이에른 왕국 신문 정치부에는 어제 저녁부터 연락을 해 놓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부국장이 턱을 손으로 쓸었다.
“어제부터 예정이 되어 있었다고… 어제면 니콜라우스 톱으로 실은 날이죠? 겸사겸사 해명하려나 보네. 그냥 밀고 나가요.”
“예. 그런데 위험한 부분이 있어서 직접 말씀드리러 온 겁니다. 지금 바꾼 타이틀을 보고도 취소하지 않은 걸 보면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듣기로 이미 오늘 바이에른 왕실에서 임시 회의만 두 번 소집되었다고 했는데, 연관이 있는 게 아닐지….”
그 말에 부국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고갯짓했다.
“정말 그 말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이런 거 하루 이틀도 아닌데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이번 기사도 국장님께서 고르신 거니 그냥 하시죠.”
“…….”
상대가 명확히 대답하지 않고 말을 고르고 있자, 부국장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이렇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왕실 회의 한두 번에 회견 하나 잡혔다고 미리부터 내빼고 그러면 여기서 일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여긴 제국신문이 아니에요.”
“예? 아니….”
“뒤늦게 알았다고 여기 엉덩이 붙이고 있을 게 아니라, 거기 가서 하나라도 더 질문하고 있어야 맞는 거예요. 1면 바꾸자는 소리를 할 때예요? 기자들은 제대로 보냈나 몰라. 내가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말해야 해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돌아가서….”
부국장이 탐탁잖은 얼굴로 그를 보더니 다시 말투를 적당히 돌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기다려 봐요.”
“예?”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안타까워서 그럽니다. 저거 어떻게 나올지 뻔해요. 저 사람 믿는 구석이 뭔지 알아요? 저 회견 자리 앉으면 무조건 질문 들어갈 텐데 취소 안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돈 절대 그렇게 안 쓸 거고 반드시 사회에 환원할 거다’ 이러려고. 그렇게 뒤늦게라도 해명하면 이미지 좀 나아지는 줄 알고 그러죠.”
“…….”
“열이면 열! 다 그런다고. 오히려 그게 자충수입니다. 해명을 왜 거기 앉아서 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기만 해요. 그러면 또 매출 올라가지. 안 그래요? 우리 추측이 아니면? 아니면 어쩌려고 그래요, 이렇게 생각하겠죠? 그러면 그냥 그때 가서 돈 얘기 빼요. 다시 불륜 메인으로 잡으면 되잖아요.”
“예,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자 그가 빠르게 화제를 정리하려 고개를 끄덕였다.
부국장이 다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격려했다.
“그냥 순간에 최선을 다해요. 너무 나중까지 보면서 고민하고, 그럴 필요 없어요. 당장 우리 고객들이 이거 읽으면서 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
“아무 생각 안 해요. 그냥 하루하루 머릿속에 이슈 하나씩 딱 잡히게만 뽑으면 우리 할 일은 끝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목표치 딱 잡고, 예? 수치 올라가는 거 보면서 달리면 쉽죠. 그렇죠? 그리고 1면 올라간 건 아시다시피 다 국장님께서 승인한 거니까 건드릴 생각하지 말고요.”
“예. 이해했습니다.”
“그래요. 이제 가 봐요.”
부국장은 그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비서를 시켜 오늘 자 바이에른 왕국 신문을 가져오게 했다.
* * *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인상: -9.9 [+5.0002513]
두 시간 전에 2829였으니, 두 시간 동안 깎인 양은 300뿐이다.
낮에 눈 한번 감았다 떴을 때 30이 깎였던 것을 떠올리면 상당히 완만한 하락이었다.
다시, 나는 바이에른의 회견장에 나와 있다.
나는 이제는 친근하게까지 느껴지는 회견장과 송출 카메라를 바라보며 발표를 준비했다.
사실 이 자리에 나 대신 대리인을 앉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얼굴도 몸도 제대로 나오는 게 없으니 인간적인 친숙함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민감한 이슈가 나올 때 내빼는 거냐고 공격할 수 있으니, 이번 이슈까지는 내가 직접 자리에 앉기로 했다.
송출 시작 사인이 들어오고, 나는 지난번과 달리 양손을 회견용 테이블 위에 올리고 간단한 인사말을 전했다.
굳이 질질 끌 필요 없으니,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오늘 6시 제국신문과 각국의 신문을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저는 뷔르템베르크 왕국과 헤센, 바덴 대공국의 정화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질문이 들려왔다.
“질문 있습니다! 이전에 헤센에서는 두 배의 보수를 제시했는데, 실제 계약도 그렇게 체결하셨습니까?”
“더 많은 요청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뷔르템베르크를 포함해 세 국가를 고르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나는 짤막하게 답변하고 다른 질문을 기다렸다.
그래도 시작부터 다스로테가 제기한 논란이 질문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후로 서너 개의 질문을 간단히 받아 주자, 드디어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질문 있습니다. 오후 8시에 다스로테에서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경의 결정에 대해 ‘불륜 자금을 위한 정화’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전에 다스로테를 맹렬히 비판한 적 있는 정론지 소속 기자다.
이 질문은 다스로테를 위한 질문이 아니라, 그쪽을 비판하기 위한 질문이다.
이 자리에는 다스로테 바이에른 지부에서 나온 기자들도 있는데, 아직 질문을 꺼내지 않았다.
왜 저렇게 느긋하게 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기회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근거도 없이 상상을 사실인 것처럼 말씀하시니 당황스러울 따름입니다. 다스로테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저는 그 누구와도 떳떳하지 못한 관계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올바른 절차를 밟아 법대로 해결할 예정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내 무결을 입증할 자료가 되지 못하므로, 적당히 언급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낫다.
이제야 다스로테 쪽 기자들이 손을 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쪽에 손을 내젓고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온 지금, 다스로테의 이번 주장에 대해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기자 몇이 스펠을 중얼거리며 카메라를 들었다.
바이에른 왕국 신문에서 송출을 주관 중이긴 하나, 이런 장면은 직접 녹화를 딸 생각인 듯했다.
“저는 오늘 아침, 바이에른을 포함한 4개국으로부터 지급받은 3개월분의 용역 대금 전액을 기부했습니다. 본래 밝히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모욕적인 주장에 의해 저의 의도가 곡해되는 것을 원치 않아 이렇게 밝힙니다.”
그 말에 기자들의 눈빛이 일변했다.
여기저기서 큰 목소리로 질문이 들려왔다.
“오늘 아침이요? 다스로테의 주장과는 다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디에 기부하셨는지….”
“정확히 몇 시쯤, 기관이라면 어느 곳입니까?”
내가 답하지 않자 레오가 붙여 준 보좌관 중 하나가 기자들을 제지했다.
“질문 시간은 따로 드리겠습니다. 말씀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바이에른으로부터 12주 치 용역비로 1,020만 펠, 뷔르템베르크와 헤센, 바덴에서는 각각 1,200만, 1,440만, 600만 펠을 지급받았습니다. 받은 비용은 그대로 각국의 오염구제센터와 플레로마 처리반에 기부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바이에른 왕국 신문에 첨부한 자료를 참고해 주십시오.”
펜촉이 종이 위에서 빠르게 긁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다스로테는 저녁 6시에 내 정화 보도가 난 것을 보고서, 8시가 되어서야 타이틀을 바꾸었지.
늦었다.
이미 12시간 전에 보수 전부를 기부했으니까.
그리고, 이쯤이면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됐다.
* * *
“이거였군….”
송출을 지켜보던 다스로테의 부국장이 바이에른 왕국 신문을 던지고 눈살을 찌푸렸다.
사후의 해명은 의미가 없다.
논란이 제기된 후에야 허둥지둥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다’라고 선언해 봤자, 기본적으로 그리 높은 신뢰를 깔고 갈 수 없다.
평소 선한 이미지로 유명했던 자라면 모를까, 니콜라우스처럼 세간에 얼굴을 비춘 지 얼마 되지 않아 데이터가 없는 자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가 애초부터 우리가 제기한 의혹의 반대로 행동했다면, 우리 측이 시작부터 헛다리를 짚었다면 말이 달라진다.
더 말려들기 전에 주제를 돌려야 한다.
무조건.
다스로테에 소모적인 상황이 이어지면 아예 니콜라우스 건을 못 쓰게 되는 수가 있다.
그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다 비서를 불렀다.
“지금이 10시죠. 타이틀 바꿔서 올릴 테니 마력 다시 연결하세요.”
“부국장님, 오늘 치는 이미 한 번 내용 바꾸면서 전부 사용했습니다.”
“허, 참….”
부국장이 미간을 좁힌 채 팔짱을 끼고 의자에 몸을 푹 기댔다.
어차피 오늘 보도가 예상보다 반응이 크지 않은데, 아예 내일 오전에 새롭게 올리는 게 나을까.
어차피 이 화제는 며칠은 재활용할 수 있다.
시간도 늦었겠다, 내일 아침에 올려도 크게 밀리지는 않겠는데….
부국장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비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 치 마력을 옮겨 오려면 국장님께 허가받아야 해서요. 댁에 계신 걸로 아는데, 제가 지금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됐어요.”
“오늘 보도된 건 그대로 두실 생각이세요?”
“그래요. 내일 새벽에 올립시다. 어차피 벌써 시간이 늦어서 그렇게 의미 있게 결과가 날 것 같지도 않고, 생각해 보니 모레까지는 계속 쓸 수 있는 주제라….”
똑똑―
“들….”
“부국장님!”
노크 소리에 답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황실 수사국이…. 아니, 건물이…. 바이에른… 아니….”
“좀 똑바로 말하세요. 뭐라는 거예요?”
부국장의 말에 그가 숨을 고르고 말했다.
“황실… 황실 수사국이 우리 건물을 봉쇄했습니다. 바이에른 지부도 그렇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