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49)
“아, 니콜라우스 경. 이렇게 뵙게 되어 기쁘군요. 솔직히 정말 뵐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루카스를 발견한 의원이 환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루카스가 그의 악수를 받아 주며 답했다.
“의원님의 부탁인데 외면할 수가 있나요.”
“하하, 고맙습니다. 역시 평가대로 인정이 넘치시는 분이군요.”
의원이 마치 감동한 듯 말끝을 살짝 올렸다.
그에 루카스가 미소 지었다.
“그래서, 제가 조사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시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우선, 제 저택으로 초대해도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이런 곳에서는 드리기 어려운 말씀이다 보니 말입니다.”
“저택이요.”
“부담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집무실 대신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곳이고 수도 주위라서요. 혹시 불편하시면 여기서….”
잠시 고민하던 루카스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지역 좌표를 주시면 따라가겠습니다.”
“아니요, 부탁하는 입장에서 경께 그런 수고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잡으세요.”
의원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루카스가 그의 초록색 눈을 뚫어져라 보고는 그의 손목을 겹쳐 잡았다.
의원이 작게 수를 세더니, 워프 마법을 전개했다. 순식간에 그의 저택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정원이었다. 여름의 것처럼 푸른 잎의 표면이 햇빛에 반짝이며 빛났다. 11월 겨울의 정원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루카스가 주위를 훑어보고 중얼거렸다.
“멋지군요.”
“하하, 그렇게 여겨 주니 고맙습니다. 경을 초대하려고 공을 좀 들였습니다.”
의원은 저택의 가장 높은 층까지 올라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그가 방의 창가에 가까이 위치한 테이블을 가리키며 자리에 앉았다.
“차는 무엇으로 드릴까요? 말씀하시는 것으로 내오라 명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시다시피 가면을 벗을 수가 없다 보니.”
루카스가 웃으며 가면 끝을 툭툭 두드렸다.
의원이 몸을 젖히며 크게 웃었다.
“아! 하하, 그렇군요. 니콜라우스 경께서는 정말 왜 가면을 쓰시는 겁니까? 말들이 많던데, 궁금하긴 하네요.”
“제 얼굴을 보면 사람들이 편견을 가질 것 같아 그랬습니다. 제 능력과 행보에 집중해 주셨으면 해서요.”
“흐음, 거참… 신기하군요. 분위기만 보아서는 그만큼 이상하게 생기셨을 것 같진 않은데요. 그리고 사람이 못나 봤자 얼마나 못날 수 있습니까. 다 개인적인 해석의 영역이죠.”
외모를 말한 건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여졌네.
루카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보통은 그 해석의 영역에서 편견이 생기지요.”
“그래요…. 경께서 겪어오신 일들을 제가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어쨌든 이제 다들 니콜라우스 경께서 가면을 쓰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으니까요. 전부 초기의 이야기죠. 우리는 이제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그러죠.”
“요즘 플레로마의 형세가 평소같지 않다는 것은 니콜라우스 경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마침 제가 플레로마가 기존과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하나 포착했습니다. 보이시나요?”
의원이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 루카스에게 넘겼다.
깔끔히 제본된 종이에는 그가 분석해 온 통계와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내용을 확인한 루카스가 가면의 턱을 천천히 쓸며 말했다.
“묘지 도굴 건수가 줄었군요.”
“예.”
“감소 건수가 조금 미미한데요. 이 정도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변화로 보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알고 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
루카스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스트라우치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에게는 정보원이 있습니다. 아마 제국에 있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각자 정보원을 두고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플레로마에 오래 몸담았다가 일 년 전 빠져나온 자를 데리고 있습니다.”
루카스가 가볍게 헛숨을 내쉬었다.
“그 플레로마가 배신하면 어쩌려고 곁에 두고 계신 겁니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미 저희 측에서 손을 써 두었거든요.”
루카스가 잠시 말을 멈추고 미소지었다.
이 부분은 좀 짚고 넘어갈 만했다.
이제부터 그가 사용할 방식과도 연관이 되어 있을 테니까.
“방법이 있습니까?”
“신력을 통해 정신을 바꾸어 놓거나, 아니면 신체 일부에 제한을 걸어 두면 되지요. 맹약한 조건을 깨면 심장 위에 주입한 마력이 심장을 터트린다거나…. 니콜라우스 경께서는 신력을 사용하니 잘 아실 텐데요.”
의원이 눈썹을 까딱이며 씩 웃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쓴다는 소리를 들으니 새롭네요. 정말 원초적이고 확실한 방식이군요.”
“그렇지요. 고전이 살아남아 내려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걸 여기서 깨닫게 되더군요.”
“그렇겠죠. 솔직히 말해서… 윤리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플레로마에게 윤리가 중요한가요? 그분의 뜻을 정반대로 행하는 자는 생을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죽여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애초에 그들은 사람이 아니지요.”
의원으로서의 입장은 잘 알겠다.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스트라우치가 씩 웃더니 다시 원래 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저의 정보원에게서 듣기로, 플레로마는 연간 수집하기로 목표한 시체 수를 늘리면 늘렸지 절대로 줄이지는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가 몸담았던 십수 년간 계속 그래 왔답니다.”
“왜죠?”
“활용할 곳이 많습니다. 평민 시체라면 그대로 살려 또다시 무덤을 파는 등 노역에 사용할 수 있고, 그로부터 비트리올을 뽑아내 자신이 가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회에 잠입시키기도 쉽고요.”
비트리올을 뽑아낸다고 했지.
플레로마의 마력을 비트리올이라 칭한다.
아무튼, 이 부분도 기억해 둘 만하다.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친구는 이번에 플레로마가 죽은 자 대신 아예 산 자를 노리는 것이 아닐까, 예전과 달리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더군요.”
“그렇군요. 충분히 그럴듯한 가설로 보입니다.”
그 대답에 의원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니콜라우스 경께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제가 메클렌부르크의 연방의원인 건 아실 겁니다. 메클렌부르크의 묘지에 플레로마가 나타날 때, 니콜라우스 경께서 플레로마를 잡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측에서는 비트리올을 처리할 만한 힘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비트리올은 일시적으로 일반 마력의 수십, 수천 배의 힘을 낼 수 있기에 처리가 힘들다.
나를 섭외하기 위해 말이 되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붙여 냈네. 아직까지 놈의 논리는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 있다.
“글쎄요. 플레로마를 잡으면 뭘 하실 거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실토하도록 만들겁니다. 그 부분도 니콜라우스 경께서 신력을 동원해 주신다면 더 큰 보수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얻어 낸 정보는 모조리 플레로마의 새 계획을 저지하는 데에 쓸 것이고요.”
루카스가 그의 말을 들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을 기다리는 의원의 눈빛이 루카스에게 꽂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루카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바이에른의 왕세자 저하를 보좌하고 있습니다.”
“예, 그렇지요.”
“그런 입장에서 이 일을 단독으로 승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의원님의 계획은 저 역시 좋게 생각하고 있으니, 저하께 허가 요청을 드려 보겠습니다.”
의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왕세자 저하라면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바이에른 공작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루카스가 표정 변화 없이 그를 바라봤다.
의원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까지 이야기가 들어가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쯤이면 중독되고도 남을 시간인데 말이죠.”
“…….”
“아무리 신력을 쓴다고 해도 이 정도로 오래 견딜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아, 의뢰는 이제 됐습니다. 설마 진지하게 들은 건 아니죠?”
“알아듣길 바라는 거면 좀 더 확실히 말하시죠. 혼잣말을 하고 싶으신 거면 저는 나가고요.”
“그렇게 하시죠.”
베르너 스트라우치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손을 틀어 문가를 가리켰다.
루카스가 그런 그를 무심히 한번 보고 문 앞까지 걸어가, 손잡이를 휙 돌렸다.
철컥―
“…….”
루카스가 중간부터 돌아가지 않는 문손잡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열리지도 않는 문을 가져다 나가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그렇죠? 저도 이 공기에 멀쩡한 사람은 처음 봅니다. 신력을 그렇게 크게 쓸 수 있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말이죠….”
“워프도….”
루카스가 손가락을 마찰했다.
파직―
아무리 많은 워프 수식을 굴려도 제대로 된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어떤 바보가 마법사를 상대로 문만 막고 워프를 안 막겠는가.
“당연히 안 되지요. 알고 있는 좌표를 다 읊어 봐요. 기다려 드리죠.”
“어떻게 한 거죠? 놀랍군요.”
베르너 스트라우치의 조소에도, 루카스는 평온한 목소리로 미약하게 탄식했다.
의원이 그와 마찬가지로 푸근하게 미소지으며 테이블에 기대 팔짱을 꼈다.
“좌표계 자체가 다르다고 하면 이해하시겠나요? 우리가 있던 곳이 1세계라고 하면, 여기는 그 일부의 복제판인 1*… 그런 식이죠.”
“세계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기보다는…. 모르는군요? 하여간….”
의원이 눈을 살짝 찡그리더니 입을 부드럽게 올렸다.
“하나만 알면 됩니다. 내 도움 없이 경께서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원래?”
“그래요. 교황령 출신의 바이에른 왕실 마법사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그 빛나는 출세도 끝이에요. 내 저택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겁니다.”
“하하….”
루카스가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가 원래라는 건지 모르겠네.”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나요?”
루카스의 혼잣말에 의원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루카스가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허공을 바라봤다.
한참 기다리던 의원이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 침묵은…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으로 느껴지는데, 맞나요?”
“그럴 리가요.”
루카스가 제 앞까지 다가온 베르너 스트라우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협상부터 하죠.”
“…….”
“그쪽이 원하는 건 뭡니까? 나를 왜 여기로 데려왔죠?”
“그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놀랍군요.”
스트라우치가 허탈함이 섞인 웃음을 흘렸다.
“대답하세요.”
“지금 상황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착각하는 모양인데….”
콰앙―!
루카스가 선 곳 바로 옆의 바닥이 검게 타들어 갔다.
“내가 경의 질문에 답해 줄 필요는 없지요. 그렇죠?”
분명 아까 워프의 시작 마법은 전개가 되었다. 미약하게나마 들렸던 소리가 그걸 증명한다.
다만 내가 넣은 좌표가 이곳에 없는 좌표라 공간을 이을 수 없었던 것이지.
어쨌든, 아예 마법을 못 쓰는 곳은 아니라는 말이다.
“보아하니 마법을 쓸 수 있는 세계인 것 같은데. 좌표가 유효하지 않을 뿐이지.”
“하하하… 그래서, 마법 하나 믿고 덤비겠다?”
콰아앙―!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폭음과 함께 스트라우치의 몸이 벽에 날아가 부딪혔다.
“커헉…!”
벽에서 미끄러진 그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가 당장이라도 토를 할 것처럼 바닥에 대고 헛구역질을 하더니, 고통에 신음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격으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그의 다리가 미친 듯이 떨렸다. 그럼에도 스트라우치는 계속해서 피식대며 루카스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나오면 그쪽에게 불리할 겁니다.”
루카스가 가면 끝에 손을 올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낯선 피비린내가 감각을 찔렀다. 곧이어 무언가 코뼈 안쪽으로부터 주욱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역시나.’
나를 데려오면서 거동을 막지 않았을 때부터 알아봤다.
정황상, 마법을 쓸수록 체력이 깎이는 저주술이 이곳에 걸려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들 동화부터 고등학교 교육과정까지, 안 빠지는 곳이 없는 저주술인데 이걸 직접 겪다니 놀랍다.
‘이런 방법을 쓰는군.’
플레로마식 마법사 감금법을 잘 알겠다.
어디에 묶어 두거나 패서 행동불능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마법 하나만 못 쓰게 해도 좋은 무기가 될 테니까.
그러면 그냥 나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면 되지 않은가… 싶지만, 이 몸이 루카의 몸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게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무엇보다 상대는 마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러니까, 비트리올을 이용한 마법은 제한이 걸리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내게 무리도 아니다. 이 순간만큼은 형에게 감사하네. 애초에 그놈이 없었으면 신분을 감출 필요도 없었겠지만, 아무튼.
아마, 앞으로 네댓 번.
그 정도면 완전히 죽고, 그 전까지는 살 수 있다.
물론 사실대로 얘기해 줄 생각은 없다.
“앞으로 한 번은 더 쓸 수 있겠군요.”
루카스가 그의 다리를 걷어차 다시 쓰러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