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51화 (51/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51)

형이 만든 거짓 소문이 워낙 정교하긴 하지.

10년 동안 사실로 받아들여진 이야기이니 이제 와서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그렇다 해도 플레로마까지 그걸 그대로 믿는 걸 보니, 놈들에게 동족을 알아보는 능력이 없다는 걸 알겠다.

‘이거 앞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겠는데.’

하나만 더 떠볼까.

평소 확인이 애매해 보류해 두었던 것이 있는데, 고위 플레로마를 만난 지금이 기회다.

“머리가 좀 안 되나? 신력 쓰는 사람을 플레로마로 잘도 믿겠군요.”

스트라우치가 비웃음을 흘리는 나를 보며 애써 웃음 지었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예의는…. 그렇지, 골방에 처박은 자식한테 예절 교육을 제대로 시켰을 리가.”

“틀리냐고.”

“당신들은 뭔가 단단히 오해하는 모양인데, 플레로마라고 신력을 쓰지 못하리란 법은 없지요? 그분에 대한 믿음은 우리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

그동안 신력만 믿고 정체를 밝히지 않길 잘했다.

신력은 성직자들의 힘이고, 그런 만큼 조건으로 순수한 신앙심이 꼽힌다.

하지만 아무리 체계의 도움을 받았다 해도, 큰 믿음이 없는 내가 자유롭게 신력을 쓸 수 있는 것은 조금 미심쩍다.

신력을 무결함의 증거로 이용한다면, 플레로마도 신력을 쓸 수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

그때, 스트라우치가 턱을 쓸더니 무언가 결심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력을 그렇게까지 크게 쓸 수 있다는 점은 놀랍긴 하군요. 반격의 여지가 있으니 당신을 대중이 잘 아는 플레로마로 만드는 게 우선이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콰아앙―

눈을 뜨기 힘들 만큼 거센 바람이 얼굴에 닥쳤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주위를 확인했다.

“…!”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보니, 수도 시계탑이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기회 한 번 줄까요?”

“…무슨….”

“경께서는 무력을 들이대 봤자 딱히 동요하지 않는 걸로 보이는데….”

스트라우치가 생각에 잠겨 있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한 완고함과 반항은 고귀한 자리를 꺾으며, 무한한 고통 속에서는 정의마저 지치고 만다.

무감한 목소리가 고저 없이 빠르게 귓가에 흘러갔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전개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놈은 아무 의미 없이 이딴 웃기지도 않은 말을 꺼낸 게 아니라 내게 마법을 걸었다.

고층의 거센 바람이 숨을 방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감각이 너무나도 현실 같기 때문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수도 한복판에서 니콜라우스가 누구인지 밝혀도 별생각 없을지 궁금하네요. 슬슬 제 말을 들을 마음이 생기나요? 진짜로 플레로마가 되기 전에 깔끔히 끝내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냐.’

당연히 현실이 아니다. 넘어갈 필요 없다.

마법이 겉으로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정신 계열 마법이겠지. 지금 지나치게 동요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는 근거는?

거센 바람에 숨통이 콱 막혀 온다.

숨을 쉬려 해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공기와의 합이 맞지 않는다.

‘젠장, 마법 때문에 머리가….’

가능한 선택지를 따져 볼, 놈이 고를 만한 합리적인 경로를 떠올릴 정신이 없다.

‘나한테 걸린 마법을 해제하려면, 지금 처리해야 하나.’

그것도 나쁘지 않다.

비록 쓸 만한 정보는 얻지 못하겠지만.

“보세요. 저쪽은 제국2교육원 학생들이군요. 여기는 학교 주변이니, 그동안 길에서 당신과 한두 번쯤 마주친 사람들도 있겠지요.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자백을 들으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스트라우치가 내 얼굴을 돌리며 난간 밖을 가리켰다.

“말하지 않겠다면, 이건 어떨까요. 니콜라우스 에른스트가 플레로마라는 걸 내가 직접 밝히는 겁니다. 나는 슈베린의 정의로운 연방의원이 되고, 당신은 대중을 기만하던 플레로마가 될 테니… 자연스럽게 당신의 공로와 업적은 무너질 겁니다.”

“…….”

“이거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의 명성까지 한방에 떨어뜨리는 좋은 방법이겠는데. 가족 하나 컨트롤을 못 하는데 다른 플레로마를 잡고 다니는 게 말이나 되나. 그치? 자리 반납하고 나가는 수밖에 없지.”

차분히 생각해 보자.

따지고 보면, 현실 세계로 날 불러냈다기에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첫째로, 놈은 출입이 불가능한 시계탑 꼭대기에서 사람을 난간 밖으로 밀며 위협하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은 대놓고 잘못된 행위를 보여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가짜라는 말이다.

둘째로, 가면이 없는데 사람들이 뭘 믿고 나를 니콜라우스로 판단하는가? 이 부분은 더 말할 가치도 없다.

셋째로….

나는 손끝으로 마력을 밀었다.

무언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몰아서 쓸 것을 생각해 조절했음에도 방금 멎은 피가 또다시 흘렀다.

“이거, 그래 봤자 의미는 없을 텐데.”

마법을 쓴 것을 알았는지 스트라우치가 킬킬댔다.

나는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셋째로, 이곳에서도 마법을 쓸 수 없다.

아까, ‘마법을 쓸수록 체력이 깎이는 저주술이 이곳에 걸려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지. 공간에 건 마법이 어떻게 이곳에서도 유효한가?

결국 이곳도 스트라우치가 만든 세계라는 말이다.

“…잘 됐어.”

여기까지 와 놓고, 어떻게 이 급의 플레로마를 만났는데 이대로 기회를 놓치기는 아깝지.

그 순간, 눈앞에 익숙한 창이 나타났다.

띠링―!

Chapter 4 특별 보상

인생은 한 번뿐일까요?

축하합니다! ‘재시도’ 특성이 추가되었습니다!

재시도 Lv. 1

― 〈Chapter 4〉 내 직전 체크 포인트로 이동

― 1회 이용 2.0 포인트 (0/2)

― 다음 레벨까지 2.0 포인트

* 보유 포인트: 2.0 포인트

* 다음 포인트 획득까지 행운 0.15점

‘…직전 체크 포인트?’

그 체크 포인트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마법 등장 이래로 시간 여행에 관한 연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는데, 그게 온전히 성공한 적은 없었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마법이 내게 주어지는 이유가 뭔가. 이제 무서울 정도다.

‘아니, 이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위급할 때 불러내려 했는데 지금 나온 것이 조금 미심쩍다. 굳이 지금 이런 특성을 준 건….

‘이걸 써야 한다는 뜻인가.’

아까 좀 더 지켜보면서 스트라우치로부터 플레로마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지.

언제든지 위험하면 접고 빠져나가려 했음에도 이런 능력을 준 걸 보면 이번 기회에 얻어야 하는 정보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의미가 있지?”

“음?”

“어차피 가짜인 세계에서 나를 몰아붙여 봤자 무슨 이득이 있냐고.”

“…지금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닐 텐데? 뭘 믿고 가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스트라우치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는지 확인하듯 내게 물었다.

여유로움을 표하고 있었으나, 썩 편안한 얼굴은 아니었다.

“현실이라면 마법을 쓰지 못할 이유가 없겠지.”

“…….”

스트라우치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럴 수밖에.’

아까 놈은 내게 정신 계열 마법을 걸었다.

그게 마인드 컨트롤로 풀렸다는 말은 내 수준이 그의 수준보다 위에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마력을 못 쓰게 만들어도 그 점은 어찌할 수가 없다.

스트라우치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뜻은 잘 알겠군요. 스스로 한 선택이니 나중에 남 탓하지는 않겠지요?”

순식간에 공간이 바뀌었다. 이제 바람이 멎어 들고, 여태까지 본 적 없는 낯선 장소에 있었다.

딱 보아도 종교적인 장소였다. 예고를 하고 온 것이 아닌지, 예배당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당황한 얼굴로 스트라우치를 바라봤다.

연단 앞에 있던 사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례 중입니다, 부주교님.”

“압니다. 오늘 미사는 여기까지 하죠.”

‘부주교였군.’

자연스럽게 스트라우치를 의원이 아니라 부주교라 부르는 걸 보니, 플레로마 놈들의 세계로 넘어온 게 분명하다.

“부주교님, 무슨 용건이신지 말씀을 해 주셔야….”

“서품식부터 하죠.”

“예?”

“니콜라우스 경께서 친히 이 길을 택하셨으니 지체 없이 응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트라우치가 내 로브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비웃었다.

니콜라우스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신도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부주교님, 그 말은….”

“이자가 니콜라우스 경입니다.”

콰아앙―!

말이 끝나자마자 연단 쪽으로 공격이 날아왔다.

나는 장식 모서리에 부딪혀 피가 흐르는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으나 누군가 비트리올로 나를 예배당 복도 쪽으로 밀쳤다.

‘이 새끼들이….’

“진정하세요.”

스트라우치가 별 의미도 없는 말을 하며 팔짱을 끼고 웃었다.

또다시 마력을 끌어내려 했지만, 역시 체력에 문제가 생기는지 원활하게 통하지 않았다.

‘그럼… 일단 들을 건 듣고 돌린다.’

놈들의 공간에 있는 지금, 내가 듣고 추론하는 모든 것이 전부 쓸모 있는 정보다.

때마침 나를 둘러싼 인파가 공격을 멈추고 뒤돌아 스트라우치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나는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여러분. 이 상황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참 많지 않습니까?”

스트라우치가 손뼉을 쳐 시선을 집중시키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자가 여기까지 진입할 수 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확실히, 이 형제님의 실력은 부풀려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요?”

‘‘여기까지 진입했다’니… 나는 플레로마가 아니니 계급 문제는 아닐 테고. 자질에 따라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 있나 보네.’

그리고, 그걸로 플레로마 세계에서의 계급이 정해질 테고 말이다.

내가 인파 속에서 스트라우치의 말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는 동안,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이자가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건, 우리 세계가 굉장히 견고하게 완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서는 더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플레로마들의 반응이 더욱 커졌다.

‘…이 상황에 나를 이용해서 선전을 하는 게 좀 놀랍긴 한데.’

전부 쓸 만한 정보다.

잘은 몰라도 최근 놈들의 세계에 문제가 생겼고, 그게 플레로마들 사이에서 심각한 불안 요인으로 자리 잡혔던 모양이다.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일에서 연결고리를 뽑아 이어 내는 걸 보면 생각보다 소요가 컸겠지.

‘기억해 둬야겠는데.’

“그리고… 여러분의 분노는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지 않겠습니까?”

스트라우치의 말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니콜라우스 경이 여기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는 말은, 우리가 쓸 수 있게 된 비트리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스트라우치가 인파를 뚫고 다가와 내 앞에 섰다.

손에 칼이 들려 있었다.

“…….”

“플레로마가 되면 발도 못 들일 곳이죠. 이곳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야 할 겁니다.”

스트라우치가 내 팔을 그어 피를 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바닥으로 떨어지던 피가 점성을 가지며 피부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스트라우치가 주저 없이 자신의 팔을 찔렀다. 그러고는 내 손에서 팔을 뽑아 제 피를 흘렸다.

“내가 당신을 만들었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게 해 드리죠.”

스트라우치가 누군가에게 검은 액체가 담긴 병을 건네받아 내 상처에 뿌리고, 주문을 외웠다.

―순간아,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이거….’

분명히 언젠가 읽어 본 적 있는 표현인데.

하지만 이 이상으로 태평하게 사고할 시간은 없었다.

콰아아앙―!

“커헉…!”

의식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에, 온 힘을 짜내 마력을 실어 주먹을 휘둘렀다.

비트리올이 더 퍼지기 전에 내 팔도 함께 공격했는데, 괜찮은 시도였던 것 같다. 비록 피부는 온전치 않지만 정신은 멀쩡하다.

스트라우치가 저 멀리 쓰러져 숨을 헐떡이며 피를 쏟아 냈다.

“뭐야?!”

“잡아!”

몇몇 신도가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끊임없이 닥쳐오는 공격을 막아 내며 스트라우치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좋은 경험 고맙다.”

마음 같아서는 깊이 침투해 더욱 쓸 만한 정보를 빼내고 싶지만….

소식이 퍼진다면 지도부가 이곳으로 집결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쯤에서 돌아가나, 더 버티나,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컥….”

스트라우치가 내 구두를 양손으로 붙잡고 필사적으로 떨쳐 내려 했다.

나는 내게 쏟아지는 비트리올을 느끼며 재시도 창을 불러내, 조용히 중얼거렸다.

“돌려.”

* * *

콰아앙―

고층의 거센 바람에 눈이 절로 구겨졌다.

마력 탓에 생겼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돌아왔다.

주위도, 아까 보았던 것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스트라우치도 아까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가족 하나 컨트롤을 못 하는데 다른 플레로마를 잡고 다니는 게 말이나 되나. 그치? 자리 반납하고 나가는 수밖에 없지.”

“…하…하하….”

살다 살다, 플레로마가 되기 직전까지 몰리는 경험을 다 하네.

몸을 들썩이며 웃는 동안 또다시 새빨간 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죠?”

스트라우치가 당황한 듯 나를 쳐다보았으나, 금세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이거 참…. 니콜라우스 경께서 이렇게 허울만 좋은 멍청이라는 건 처음 알았군요.”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고, 피를 닦으며 손목을 한 번 두드렸다.

삑―

“수도 시계탑.”

“음?”

바람 소리 때문에 전달이 잘 되었을지 모르겠다.

형 얘기를 할 즈음이면 스트라우치가 내게 건 정신 계열 마법이 아직 유효하다고 믿는 시점이지.

스트라우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고갯짓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요? 원만하게 끝내고 싶다면 어서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요.”

나는 왼쪽 시야로 강렬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느끼며 도심을 훑어보았다. 말소리가 끊기자, 이제는 바람이 머리칼을 헤집는 소리까지 생생히 들려왔다.

플레로마에게 붙잡힌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 높이에서 수도의 전경을 보는 것은 멋진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지상을 구경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스트라우치의 어깨를 붙들었다.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스트라우치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퍽―

무언가 터지는 느낌이 났다. 무엇인지는 모른다.

사방에 피가 섞인 비트리올이 비산하는 광경이 느릿하게 흘러갔다.

반대편 난간에 부딪힌 스트라우치가 배에서 피를 쏟으며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기울여 감각을 돌려놓으려 노력하며 스트라우치에게 다가갔다.

“…쿨럭….”

언제 일어났는지, 그가 내 팔을 칼로 찍으며 말했다.

“안, 되지.”

―나는 이제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멈추어라, 정말….

나를 또 플레로마로 만들려는 생각이었는지, 이제 보니 이미 스트라우치의 손목도 저 스스로 찌른 칼에 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그의 손목을 꽉 잡아 눌렀다.

“아아아악! 사, 살….”

“살려줘?”

내 말에 스트라우치가 멍한 눈으로 상체를 들썩였다. 그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끝까지 이 방식을 쓰는 걸 보니, 누군가를 플레로마로 만들면 자유롭게 상대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게 분명하다. 이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봤다.

“죽일 리가 있나.”

“…그럼….”

“네가 나한테 한 일은 그대로 돌려주고 가야지.”

나는 스트라우치의 눈을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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