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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53화 (53/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53)

‘그럼, 사람을 부를 수 있는 방법이….’

주위를 둘러봐도 제대로 된 호출 도구가 없다.

시종을 부를 수 있는 끈이 한구석에 있었는데, 이제는 쓰지 않는 건지 당겨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나가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겠는데, 문제는 아직 그럴 힘이 없다.

‘이건 뭐…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다시 눈을 뜬 것은 미묘한 무게감을 느낀 이후였다.

눈을 뜨자마자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마주치고, 너무 많은 정보를 짚었더니 자연스럽게 잠이 쏟아진 것 같다.

‘근데 불은 언제 껐냐.’

아까와 달리 방 불이 전부 꺼져 있어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어! 일어났어!”

“…….”

무언가가 내 위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무엇일지는 뻔했다.

나는 이불에 올라 있는 손바닥만 한 덩어리를 붙잡았다.

“삑!”

나는 그 외침을 흘려듣고 파이의 털을 쓸었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인데도 자는 중에 돌아다니고 있으니 거슬린다. 그래도 이렇게 보니 반갑기는 하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고 토끼만 찾네~”

“뭐야, 일어났어?”

사람 발소리가 나더니, 엘리아스와 레오의 목소리가 저 멀리 문가에서 들려왔다.

나는 협탁의 스탠드에 손을 뻗어 불을 켰다.

내가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르케까지 이 방에 와 있었다. 나는 이 부담스러운 광경에 떨떠름하게 물었다.

“뭐야, 언제 왔어?”

“방금. 자고 있길래 불도 꺼 줬는데, 바로 일어났네.”

나르케가 웃으며 대답했다.

엘리아스가 빠른 걸음으로 목발을 턱턱 짚고 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야, 꼭 일주일은 못 본 것 같네~. 반갑다. 몸은 좀 괜찮아?”

“멀쩡해.”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에 무리도 없고, 시력도 청력도 평소와 같은 수준이다.

진실인데도 쉽게 믿기지 않는지, 엘리아스가 한쪽 눈썹을 들썩이더니 얼굴 주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뭐가 멀쩡하냐. 목은? 너 머리 부딪혔지? 약간 뇌진탕 왔다더라.”

어느 시점을 말하는지 알겠다. 그 이야기부터 꺼내는 걸 보니 기억에 그게 제일 많이 남았나 보네.

사람이 죽어 가는 소리를 듣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 그럴 만하다. 괜히 듣게 해서 트라우마가 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

별말 없이 있으니 엘리아스가 호들갑스럽게 말을 이었다.

“들으면서 얼마나 쫄렸는지 알아? 이야, 죽이려고 작정했네. 괜히 혼자 보냈다~ 이러고 있었다고.”

“괜찮아. 혼자 가서도 잘 돌아온 거 보면 알겠지.”

“흠, 그래. 다음에는 날 보내 줘. 알겠지? 꼭 기억해.”

“엘리아스!”

레오가 인상을 구기며 끼어들었다.

‘보내 줘’ 같은 표현과 다르게, 엘리아스는 자신이 난장판을 만들어도 이득일 거라는 확신만 생기면 그냥 튀어갈 것이다. 내가 뭐라 답해도 큰 의미는 없다.

대답 없이 웃음만 짓자 엘리아스가 크게 손뼉을 쳤다.

“자, 이건 됐고. 성공적으로 복귀한 소감이 어때? 완전히 국민 영웅이 됐는데.”

아직 본 게 없어서 어떤 분위기인지 감도 안 잡힌다.

때마침 엘리아스가 내게 신문 뭉치를 넘겼다.

엘리아스가 표시했는지, 굉장히 대충 생긴 원들이 신문에 그려져 있었다.

나는 빨간 펜으로 표시된 기사를 먼저 읽어 나갔다.

애초에 1면에 큰 글씨로 박혀 있어 표시가 없어도 눈에 띄기는 했다.

[제국 중앙정부 마법부 “니콜라우스에 공로 훈장 수여 예정, 급수는 논의 중”]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플레로마 사실 밝히기 위해 인질 자처… 1억 신민을 위한 희생]

[제국 내 17개국, 니콜라우스 에른스트에 명예 마법사 등록 부여]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광장 시계탑 위 피랍… 인파 13만 명 몰려]

발행되는 것마다 모아 뒀는지 기사 시간대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

가장 최근 제국신문 1면에는 광장에 몰린 인파를 찍은 영상이 올라 있었다.

“어때, 반응 짜릿하지?”

“그래. 확실하네.”

이 정도면… 성공이다.

저번만큼, 아니, 저번보다 훨씬 반응이 크다.

아까 니콜라우스의 인상 점수가 6.5가 되어 있었지.

42억을 털었지만 0.01만큼도 오르지 않던 니콜라우스의 인상 점수가 단박에 1.5 올랐다.

‘확실히 이제 전처럼 3점이 한 번에 뛰는 일은 없나 보네.’

스케일은 비슷하다 쳐도 위험성이나 상징성 면에서 따지자면 의회보다도 더 강력했던 것 같은데… 점점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42억 털고 0.002점 오른 것을 겪고 나니 이만한 상승에도 만족할 수는 있었다.

‘돈으로 해결하는 건 안 되겠어.’

편하지만, 그만큼의 효과가 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대중의 기억에 남을 만한 화젯거리를 내보내야 한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문을 넘겼다.

신문에는 스트라우치에 대한 기사도 많이 올라 있었다.

[베르너 스트라우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연방의원, 플레로마로 밝혀져]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정치계 플레로마 검증 강화 요구 폭증]

[베르너 스트라우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연방의원, ‘플레로마’ 오스나브뤼크교구 부주교였다]

[스트라우치 의원, 연초 결계 논의 때 익명으로 연방의원 60여 명에게 다섯 차례 편지 전송… 결계 설치 유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나는 신문을 덮어 협탁에 놓고, 친구들을 보며 인사했다.

“고맙다. 너희가 아니었으면 성공하기 힘들었을 거야.”

“…….”

그 말에 레오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어디 잘못됐나 생각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쓸데없이 표현에 인색했던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반응하니 놀랍다.

“시원시원하네~ 근데 왜인지 검사를 다시 해 봐야 할 것 같은 건 착각인가?”

“하하, 루카스는 원래 그런가 봐. 거리낌 없네.”

“내가 언제 할 말 안 하고 그랬던가?”

“아니, 그런 것보다는… 뭐가 터져도 별 반응이 없지.”

반응하지 않은 적은 없는데 그렇게 보였나 보다.

엘리아스가 잠시 미간을 좁히며 생각하더니, 손뼉을 쳤다.

“아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고맙다고 하는 것부터가 그냥 딱 루카네~”

“최대한 진심을 담았는데. 그렇게 들렸어?”

“아냐, 뭐라 하려는 게 아니었어. 말투는 그냥 성격이지. 1학년 때도 이랬었나? 레오, 어땠어?”

“…그랬겠지. 길게 대화해 본 적 없어.”

레오가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놈은 루카에게 보였던 태도 때문에 1학년 시절을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듯했다.

애초에 플레로마 건에서 충격을 많이 입었는지 기력이 충분하지도 않은 것 같다.

지친 놈은 그냥 쉬게 내버려 두고, 나는 슬슬 알아봐야 할 것에 관해 물어야지.

“뭐 하나만 묻자. 알다시피 나는 가면 없이 내려왔지.”

“걱정 안 해도 돼. 아무도 모르니까.”

레오가 중얼거렸다.

“그래, 정말이야. 내가 어깨에 묻었잖아.”

나르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제 어깨를 툭툭 쳤다.

그것만으로 안 될 텐데.

내 표정에서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엘리아스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았다.

“쟤 땅에 발 대기도 전에 여기로 워프했거든. 한 상공 30m쯤에서 그랬다고 했나?”

“하하, 느낌이 딱 우리 세계 같아서. 운이 좋았지.”

역시나….

내 가설을 읽을 수 있는 나르케가 말했으면 조금 미심쩍었겠지만, 엘리아스가 말해 준 덕에 빠르게 납득할 수 있었다.

사실 찾아보려면 충분히 찾아볼 수 있으니 굳이 속이기는 애매한 주제지.

“고맙다.”

나는 나르케에게 인사하고 시계를 봤다.

분명 시계탑에 있을 때 대략 오후 5시쯤 되어 보였는데, 방 한쪽에 놓인 시계를 보니 자정이 다 되어 간다.

이제 물어볼 게 하나 더 있지.

“그보다, 나르케 너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나는 표정을 부드럽게 풀어내며 나르케를 바라봤다.

“응, 뭔데?”

“너 주교냐?”

나르케가 눈을 크게 뜨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이거 물어볼 줄 알았어.”

“그래, 루카스 깨어나면 말하자고 했지.“

레오가 팔짱을 끼고 몸을 등받이에 기대며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짚어 보자. 우리는 교황청에 연락을 보냈고, 교황청에서는 곧바로 마법사를 현장에 보내겠다고 했어. 그리고 나타난 게 너지.”

나르케가 미소 지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네가 어떻게 교황청에서 보낸 마법사고, 또 어떻게 교황청의 스태프를 가지고 있었고, 주교 행색으로 그 자리에 나타났는지… 우리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된 거야?”

엘리아스 역시 약간의 흥미가 담긴 얼굴로 나르케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엘리아스의 저 표정은 결코 우호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약간은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 둘하고 완전히 친해지지도 못했는데 경계심부터 샀네.’

그럴 만하지.

나 역시도 그 정신없는 와중에 의문부터 들었으니까.

“일단, 너희가 날 주교로 오해한 건… 그래, 그럴 만해. 파시아 색이 분홍색이었잖아.”

나르케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학교에서는 말을 아꼈지만, 내가 교황청의 마법사인 건 사실이야.”

나르케가 손가락을 튕기자 눈동자 색과 머리색이 변했다.

그가 허리춤에서 완드를 뽑아 살짝 흔들었다. 이제야 완드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이것 역시도 교황청 마법사의 완드였다.

“교황청에서 정한 표준 색상이지? 완드도 그렇고. 특히 완드는 위조할 수 없어.”

“이야, 얘도 색깔 싹 다 바꾸니까 다른 사람이네. 적응이 안 돼서 그런가.”

엘리아스가 나르케의 얼굴을 관찰하며 말했다.

교황청에 소속된 자들에게는 엄격한 복장 규정이 적용되며, 신력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에게는 모발과 홍채의 색상까지 복장에 포함된다.

솔직히 이 정도면 거의 병이지 싶은 시스템이지만, 그들은 성스러움의 기준을 만들고 거기에 인간을 맞추길 원한다.

마법사 개개인도 이러한 시스템에 큰 불만이 없다.

그럴 만도 한 게, 마법사들은 스스로 신의 곁에 설 자격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만들어진 신성함을 좇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실제로 마법을 제외하더라도 일반 인류와는 많이 달라졌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여러 부분에서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런 마당에 색깔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

“하지만 주교는 아니야.”

나르케가 완드를 다시 바꾸어 허리춤에 꽂으며 말했다.

“교황청이 공인한 마법사들은 대중 앞에서 신원을 밝히기 어려워. 알다시피 마법사들에게는 암살 시도가 자주 이뤄지잖아. 무엇보다, 우리는 개개인이 지나치게 유명해지는 걸 원하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다들 가면을 쓰고 다니지는 않던데.”

“그래, 하하하! 그건 솔직히 루카스가 하는 걸 보니 재미있어 보여서 쓴 거야. 물론, 신원을 감춰야 할 필요가 있어서 쓴 거기도 해. 나도 썩 자유로운 상황은 아니거든.”

“자유로운 상황이 아니라고?”

“루카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

레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리 신원을 밝히기 어렵다고 해도 네 급에 허용되지 않은 복장을 할 수는 없을 텐데? 그 엄격한 교황청이 그걸 허가할 리가 없잖아.”

“흐음, 원칙적으로는 안 되지. 그래도 하다 보면 또 원칙만 따질 수는 없거든. 특수한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

아무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그 교황청이 아무에게나 주교복을 허용한다고? 그렇게 하면 전부 주교처럼 입고 다니게.

엘리아스마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웃으며 나르케를 바라봤다.

“주교 아닌 건, 그래. 믿을게. 그런데….”

레오가 나르케의 둥그런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그냥 사제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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