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57화 (57/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57)

나는 엘리아스에게 눈짓하고 곧바로 기숙사로 향했다.

모임 장소로 워프하자, 언제 도착했는지 엘리아스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서랍에서 신문을 가져와 그의 앞에 놓았다.

“우선 네가 관심을 가졌다는 분야가 뭔지 듣고 싶어.”

“아, 그래. 좋지. 그러고 보니 항상 내 의견을 잘 물어보네?”

적당히 넘기려 했지만 엘리아스가 여전히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뭐라 대답해야 하냐.’

‘네 선택은 늘 틀리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부담만 안기는 셈이다.

아니, 틀려도 엘리아스의 선택에 걸 가치가 있는 것에 가깝지.

“네가 하는 선택이 마음에 들거든.”

“오.”

엘리아스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턱을 쓸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면 나처럼 퇴학 직전까지 경고받는 수가 있는데.”

“어쨌든 퇴학은 안 당했잖아.”

“아하~ 이런 느낌이군.”

엘리아스가 킬킬대며 웃었다.

그가 신문을 한 손으로 가볍게 뒤적이더니, 실종자 목록을 펼쳐 내 앞에 들이밀었다.

“누가 봐도 플레로마 소행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이번에 세계 복제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인데, 몇 년째 실종된 자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 전부 플레로마 쪽으로 보내 버린 게 분명해.”

“그래….”

나는 그가 짚은 통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이 주제를 꺼낼 줄이야.

엘리아스는 내가 회의에서 실종 건수 이야기를 꺼내는 걸 듣지 못했다. 그 이후에 들어왔으니까.

내가 원작의 정보를 이용해 가설을 만들었으니, 사실 이 정보는 엘리아스가 원조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반년 뒤에서 일 년 뒤 사이에 일어나야 하는데.’

결계 적합성 건을 앞당긴 덕에 다른 곳에 집중할 여력이 생겨서 그런지, 사건 흐름을 일찍 잡아챘다.

정말 그가 먼저 이 주제를 가져오니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놈들이 아니고서야 이 비정상적인 실종자 수가 설명이 안 돼.”

“맞아. 특히 미성년자 실종 수가 늘고 있지? 이렇게 점점 대놓고 건드리는데도 왜 황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언제 뭐 제대로 했냐.”

엘리아스가 웃으려다 순간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박장대소했다.

“으하하하! 와, 진짜 놀랐어. 이런 말이 들어올 줄 몰랐는데, 내가 너무 레오한테 익숙해져 있나 보네.”

“…내가 더 놀랐다.”

“내가 황실 편드는 줄 알고? 절대 그럴 일 없어~ 네가 아스카니엔 보는 거랑 똑같아.”

엘리아스가 피식 웃으며 내가 꺼낸 자료집을 읽기 시작했다.

‘흠.’

어떻게 할까.

나는 이 사건의 결말을 안다.

엘리아스는 실종 사건이 자주 일어났던 지역의 보육원을 타깃으로 잡았고, 그 보육원의 후원자 중 둘이 플레로마라는 것을 알아냈다.

‘대신 나는 이름까지는 모르지.’

보육원의 이름도 당연히 모른다.

잠들기 전에 읽었던 루카 챕터라면 모를까, 소설 초반부의 엑스트라 이름까지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이곳에 온 첫날 노트에 정리해 둔 만큼 기억하고 있는 것도 꽤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실제로 적힌 글자를 보면 느낌이 올 텐데.’

의심 가는 사람들만 추려서 검증해 보면 되겠다.

나르케에게 부탁해 볼까 생각 중인데, 사실 그와 거리를 두어야 할 일이 생기면 그건 좀 곤란하지.

‘따로 플레로마를 알아보는 방법이 없나.’

나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지금으로서는 없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일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보육원의 후원자 명단을 입수해야 한다.

‘바이에른 수사국이 이 문제까지 찾아볼 수 있나.’

전에는 다스로테 바이에른 지부에 심어 둔 사람을 통해 얻은 자료였다.

이런 구석진 보육원의 후원자 명단까지는 찾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한번 요청은 해 봐야지.

“엘리,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둔 계획은 있어?”

“음… 내 생각에는 지역 보육원부터 잡아야 해.”

“왜?”

“봐, 여기 마침 네가 사건 표시해 놨던 지도가 있더라.”

엘리아스가 회의 때 썼던 자료를 내 앞에 돌렸다.

그가 새빨간 가위표가 잔뜩 들어간 지역에 손가락을 올렸다.

“미성년자 실종이 이 시설 주위에서 무더기로 일어났어. 그치? 다른 지역도 분명히 많지만, 내 생각에는 여기 먼저 털어 봐야겠어. 뭔가 잡힐 거야.”

“촉 좋은 편이야?”

“어.”

엘리아스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라 웃음밖에 안 난다.

“그래, 그럼 여기 보육원을 살피는 걸로 하고. 일단, 관련자 명단부터 찾아보자.”

“그중에 플레로마가 있을 거다? 루카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건 모르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제일 크지 않겠어?”

“그래…. 스트라우치처럼 말이지.”

그가 중얼거리더니 목발을 바닥에 쾅 짚고 일어섰다.

“가자! 명단 가지러!”

‘그다음에 어쩌려고….’

나는 그 말을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일단 기다려. 가서 다짜고짜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럴 건데?”

“그럼 줘?”

“주…. 아, 잠깐. 다리가 이래서 속일 수가 없겠어.”

엘리아스가 혀를 차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가 어떤 방법을 쓰는지 안다.

제한 구역을 탐사하러 다녔을 때 적당한 신분으로 위장한 것처럼, 눈 색을 바꾸고 수사국 제복을 입고 형사 행세를 하며 정보를 뽑아냈다.

‘그러고 보니 눈 색 바꾸는 약도 주인공이 써서 알았던 거네.’

내가 학기 초의 일을 회상하고 있을 때, 엘리아스가 손뼉을 쳤다.

“자! 그럼 내일 알아보고, 오늘은 이걸로 얘기 끝! 밖에 봤어? 다른 과 애들 벌써 부스 설치하고 있더라.”

“그래?”

“어. 우리 과 애들만 지금 죄다 마수 때려잡는 중이야. 난 솔직히 학교가 꾀 좀 부렸다고 본다. 하필 부려 먹는 날이 축제 전날? 놀고 그냥 싹 잊어버리라는 뜻이지~”

“어느 정도 그래 보이긴 하네.”

헛웃음이 났다.

그 뒤로는 한참 엘리아스와 학교 이야기를 했다.

정확히는 그가 혼자 무더기로 이야기를 쏟아 낸 게 맞다.

엘리아스가 지칠 줄도 모르고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내일 연극하는 거 알지?”

마법학과는 누군가 제비뽑기를 잘못했는지 연극을 하게 됐다. 다행히 전부 나가는 건 아니고, 조연까지 합해 반에 열 명 정도만 나가기에 나는 역할을 피할 수 있었다.

“애들 준비 열심히 했지? 많이 보러 오면 좋겠네.”

“그러게. 아! 우리 반… 아니, 1분반이랑 관객 수 경쟁 생긴 거 알아? 아마 2분반이 이길 거라 본다. 걔네 신곡 하거든. 그냥 다 자라는 거지.”

“우린 뭐냐.”

“파우스트. 그래서 스트라우치가 말한 주문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

“주문?”

“내가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뭐 이런 대사 있잖아.”

그러고 보니….

스트라우치는 성서가 아니라 다른 것을 이용해서 마법식을 덮었다.

마법 주문에는 성서 구절을 이용하는 것이 이곳의 불문율이다. 성서 없는 마법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마법부 승인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태 내가 외웠던 주문도 죄다 성서에서 나온 것이었지.

애초에 마법식은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거기에 덮는 주문도 마찬가지다. 쉽게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마당에 다른 데에서 뽑아 온 구절로 마법식을 덮어?

플레로마 쪽에는 성서를 이용해야 한다는 불문율도 규정도 없다는 얘기다.

‘…이거 괜찮게 쓸 수 있겠는데.’

의외의 곳에서 방법을 찾았다.

이걸 플레로마 검증에 쓸 수 있겠다.

물론, 나까지 플레로마로 위장해야겠지만.

* * *

기숙사는 저녁 내내 시끄러웠다.

당장 다음 날이 축제였기에, 어제는 레오와 훈련만 간단히 하고 모임 회의는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 축제 당일이 되었다.

들려오는 말로는 간단히 조례만 하고 내보내 준다고 했다.

‘시장 바닥이 따로 없네.’

이렇게 정신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뭘 하든 딱히 눈에는 안 띄겠다. 적당한 시기를 잡아 나르케에게 말을 걸어 봐야지.

그때, 교복 로브 주머니에서 파이가 머리를 뺐다.

“나 오늘 나르케가 맛있는 거 사 준대!”

얘 초식동물 아니었나? 먹을 만한 게 없을 텐데.

‘그러고 보니 성수 먹고 살지.’

쓸데없는 생각을 이어 나가던 중, 시끄러운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안녕하십니까, 학생 여러분.”

교수가 어김없이 출석을 부르고는 강의대를 살짝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자, 다 왔군요. 기숙사 점호도 있으니 축제 도중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학생은 결석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규칙을 평소보다 더 잘 지켜야 문제가 없다는 점을 유념하세요. 그리고 오늘은 다른 학교에서도 수업이 없으니….”

수도의 고등학교는 모두 오늘이 축제다.

그 때문에 이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편히 기대앉아 로브 주머니에 있는 파이를 쓰다듬으며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

‘현실이나 여기나….’

나이를 좀 더 먹어도 설교를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그대로네. 또다시 쓸데없는 점을 깨달았다. 고등학생 때보다는 선생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됐지만 여전히 졸리긴 하다.

한참 주머니에 손을 넣고 파이와 장난치고 있을 때, 종소리가 울렸다.

‘끝났다.’

나는 급격히 시끄러워진 교실에서 의자를 뒤로 세게 밀고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때 교수가 출석 명부를 들고 교실을 나가려다, 레오를 불러 세웠다.

“반장.”

“예.”

나는 그쪽을 흘끗 보고 손가락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닿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파이가 더 놀 생각이었는지 내 손가락을 깨물고 늘어졌다. 나는 파이를 주머니 안에서 들어 올리며 작게 속삭였다.

“이따가.”

교수는 그 와중에도 레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3시쯤에 본관 1층에 배달 올 테니까 교실에 올려 두기만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시간 되면 친구 좀 챙겨 줘요.”

“예?”

내내 시끄럽던 반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레오의 당황 섞인 대답이 어딘가 이상했다.

‘뭐야.’

나는 이 이변에 고개를 들었다. 교실에 남아 있던 몇십 명의 학생들과 한 번에 눈이 마주쳤다.

같은 모임에 있는 친구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경악에 빠진 얼굴로 내게 레오를 향해 눈짓했다.

‘…….’

설마 나 말한 거냐?

* * *

종종 있는 일이다.

나도 들어 본 적이 있다. 물론 루카의 입장이 아니라 레오의 입장이었지만.

나는 반장을 몇 번 해 봤고, 선거에 나가지 않은 해에도 선생님들께 비슷한 위치로 여겨진 적이 종종 있었다.

반에서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은 언제나 한둘씩 있고, 그런 학생의 고민 상담이나 학부모의 걱정 섞인 전화가 들어올 때면 선생은 여러 방법을 시도하는데, 그중 하나가 친구를 두루 사귀는 학생을 불러 겉도는 학생을 챙겨 달라 부탁하는 것이다.

안 일어날 것 같지? 일어난다. 사실 아무리 위로해 봤자 친구가 생기는 것만큼 빠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앞에 가서 ‘담임이 너 챙기래’라고 말하지 않으니 모를 뿐이지.

‘…아니지. 교실 와서 성질내는 애들도 있었지.’

이건 교사가 학생을 잘못 본 것이다.

어쨌든 말을 꺼내는 방식은 선생마다 다른데, 어떤 선생은 생기부를 들먹이며 그 친구와 친해져 보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반면 어떤 선생은 적당히 조를 짜야 하는 활동에 먼저 끼워 주고 가끔 안부만 물어 달라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말하고 끝난다.

‘…이쪽은 전자인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10대도 인간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게 분명하다. 아니, 됐다. 지금 이걸 분석해서 뭐 하냐.

살다 살다 이런 일이 다 생기네. 아니, 사실 루카한테 생긴 일이긴 한데.

나는 어이가 없어 비식비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레오가 얼이 나간 얼굴로 굳어 있다가, 금세 평정을 되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뭘 그래 이 새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교수님. 저는 오늘 할 일이 있습니다.”

“할 일?”

“오늘 도….”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닫았다.

이 축제 날에 도서관에 간다고 말했다가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목덜미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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