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58화 (58/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58)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일정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어서요.”

“부담 가지지 말고 이런 날에는 노세요, 학생.”

통하지 않았다. 이런 데서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시네.

교수는 인자한 얼굴로 교실을 나갔다.

소리 없이 눈물까지 짜며 웃는 엘리아스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긴 했지만, 눈치를 보며 교실을 나가는 레오의 친구들을 보니 그건 금세 헛웃음으로 변했다.

“허….”

교수는 이게 더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걸 모르는 건가.

악의는 없겠지만 이런 상황을 내가 겪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좋은 점은 교수가 날 나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거….’

그러지 않고서야―엿을 먹이려는 게 아니라면―이런 오지랖을 부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는 정말 뿌듯해 보이는 얼굴로 교실을 나섰으므로 굳이 이런 유치한 방식으로 엿을 먹이려는 건 아니었을 것 같다.

그저 도와주는 방식에서 내가 의도치 않게 내상을 입었을 뿐.

“…괜찮아?”

어느새 주위에 온 레오가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런 거 물어보면 더 참담해지는 거 알고 있냐?”

“미안.”

이미 반에는 학생들이 몇 남지 않았다. 상황을 구경하고픈 마음보다 내게 이변이 생길 것을 더 두려워한 모양이다.

나는 빠르게 교실을 벗어나며 레오에게만 들릴 크기로 작게 말했다.

“너는 친구들하고 놀아. 난 나르케하고 할 얘기가 있어.”

“이미 보냈어. 그리고 뭔 얘긴데?”

“있어, 그런 게. 아무튼, 다시 가서 불러와. 난 지금 도서관에 갈 거니까.”

“도…!”

레오가 말을 잇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

워낙 FM 기질이 강한 놈이라 방심했다. 축제 날에 도서관에 가는 건 이놈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인가 보다.

나는 차분히 의도를 전달했다.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내가 도서관에 간다는 말은, 공부만 한다는 게 아니라 시기를 보겠다는 말이야.”

“…그냥 다니자. 어차피 난 여럿보다는 하나가 편해. 저녁에 엘리아스가 못 알아들을 말만 내내 하다 간 것도 걸리고… 넌 3교육원도 안 다녔고 1학년 때는 기숙사에만 있었잖아. 올해가 축제 처음 아냐?”

처음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루카는 처음인 게 맞으니까.

‘어차피 축제 때 돌아다니면 안 되는 것도 아니긴 하지.’

교수가 낀 마당에 친구랑 좀 논다고 형이 경계할 일도 아니고, 어차피 루카의 인상 점수도 올려야 하니 이제는 형의 경계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엘리가 뭐라고 했는데.”

“말 돌리는 거 보니까 맞네. 일단 이것 좀 묻고 가자. 너 대놓고 나랑 있어도 괜찮은 거야?”

“어차피 형님 귀에 들어가도 교수님 얘기 안 나오겠냐. 시켜서 붙은 거라는 것도 같이 들어갈 게 뻔해.”

“그래…. 오늘 내로 전교로 안 퍼지면 다행이긴 하지.”

그 정도인가….

내가 할 말을 잃은 사이 레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나르케한테 할 말 있다고 했지? 그럼 놀다가 중간에 만나면 합류하는 걸로 하자.”

“그래.”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긴 하네.

어차피 나르케는 내가 의심을 품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아챘을 테니, 따로 불러내도 문제는 없기는 하지만.

‘파이도 여기에 있으니까 이따 데려다줘야지.’

나는 왼손 손가락에 닿는 털 덩어리를 아무 생각 없이 매만졌다. 여전히 파이는 내 손을 붙들고 있었다.

“뭐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거 있어?”

“글쎄다….”

축제를 안 가본 건 루카지, 나는 이미 많이 가 봐서 별생각이 없다.

축제에서 뭘 하던가. 대학 축제보다는 고등학교 축제의 기억을 짚어야 하겠는데….

뭔 모기퇴치제 만들기 같은 것만 떠오르네.

나는 학교에서 받은 가이드북을 펼쳐 보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제대로네.’

다들 열심히 준비한 게 보였다.

책자를 덮으니, 뒤표지에 도장을 모으는 칸이 있었다.

레오가 책자에 고갯짓하며 말했다.

“이왕 노는 거 너도 도장 다 채워서 상품 받아 가. 학생회에서 준비 많이 했어.”

“상품은 뭔데?”

“그건 도장 다 채우면 알겠지.”

웬일로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을 피하네.

물어보는 놈들이 많았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창밖에 눈짓했다.

“그래, 그 전에 일단 뭐라도 먹자.”

* * *

“레오! 앗….”

밖에 나오니 상황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소문을 들은 학생들이 멀찍이서 나를 흘끗대고 있었다.

그걸로 모자라, 레오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다가오는 학생들이 나를 보고 금세 멀어졌다.

레오가 뒷걸음질 치는 학생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애써 다른 학생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더니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지 차음 마법을 걸고 속삭였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너는 진짜 맨날 이렇게 살아왔냐….”

“이렇게까지는 아니지. 네가 있어서 이러는 거야.”

“뭐?”

루카를 유독 노골적으로 싫어하던 놈이 같이 다녀 주고 있으니 새롭겠지.

내 생각에는 이미 친해진 지 꽤 된 것 같은데, 남들은 내내 1학년 때와 같은 대외적 모습만 보고 있었으니까.

레오가 별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다시 가라앉기 시작한 놈을 무시하고 저 멀리 있는 간식 부스를 가리켰다.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먹으면서 행사 뭐 있나 보자고.”

“…그래….”

나는 놈을 뒤로하고 부스에 갔다.

여기에 냉각 장치를 가져오진 못했는지 옆 반 학생이 냉각 마법을 열심히 불어넣고 있었다.

“야, 온도 너무 낮아! 너 얼음 만들 거야?”

“아, 어디까지 해야 하는데!”

“…….”

마법을 가져다가 수동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얼리고 있으니 느낌이 색다르다.

나는 적당히 말을 건넸다.

“저기요.”

“아, 네… 헉?!”

“바닐라 맛 두 개 주세요. 하나는 꿀 뿌려 주시고요.”

빨리 쫓아내고 싶은 건지 아주 빠르게 받아올 수 있었다.

나는 왜인지 체리로 뒤덮인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나를 레오에게 건넸다.

“먹어라.”

“고마워. 근데 체리 양 뭐야?”

레오가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떠 보더니 그 안에도 체리가 있는 걸 보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어제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다니던 엘리아스가 한 바구니 받아 온 것부터 예상은 했지만… 많이 남나 보다. 이 정도면 바닐라가 아니라 체리 아이스크림이다.

“그러고 보니 엘리는 뭐해?”

“아마 내 친구들하고 놀고 있을 텐데, 잘 모르겠네.”

나는 주위에 아는 사람이 있나 볼 겸 고개를 돌렸다.

학교는 평소와 달리 이런저런 장식과 현수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보랏빛 교복 물결 사이에 평소 보지 못했던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몇 섞여 있었다.

이제 밖에 나온 지 좀 되어서 그런지, 내게 붙는 시선도 많이 줄었다.

‘그나저나 엘리아스는 다리 때문에 많이 못 놀 텐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어차피 못 놀겠다 보육원에 가서 정보를 뜯어낼 것 같은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명단을 알아낼 방법이 있으니 찾아봐야겠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로브 주머니에서 파이를 꺼냈다.

갑자기 나와서 당황했는지 파이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삑?”

“파이, 엘리아스 좀 찾아 줄 수 있어?”

파이가 눈만 굴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에게 말을 걸고 있으니, 레오가 잘못 들었는지 의심하는 얼굴로 고개를 틀었다.

다시 파이를 주머니에 넣자 파이가 곧바로 워프해 사라졌다.

“우리는 그동안 뭐 있는지 구경이나 하자.”

“…진짜로 파이한테 시키면 온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마도.”

“그래…. 음, 저기 가 보자.”

“미술부?”

건물 1층으로 들어가 보니,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스가 있었다.

‘페이스페인팅….’

걸어 놓은 이름은 그렇지 않았지만, 어쨌든 하는 일은 똑같았다. 헛웃음만 난다. 이거 현실이나 여기나 안 빠지는 곳이 없네.

인간들 생각이라는 게 대략 백 년 사이에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건가, 아니면 나 말고 현대인이 여기 또 있나….

합리적인 의심을 애써 무시하고 문을 열었다.

내가 들어서자 학생들이 눈을 둥그렇게 뜬 채 굳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손을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안 합니다.”

학생들의 얼굴에 노골적인 안도의 기색이 돌았다.

“휴우….”

‘…….’

이 새끼들이….

또다시 헛웃음이 나려는 차에, 레오가 한 후배에게 붙들렸다.

“선배!”

“아, 요한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도장 찍으려고 왔어. 이쪽은 우리 반 친구고, 학생회 후배야, 루카스.”

레오가 나와 후배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후배는 레오를 만난 게 더 반가워서 그런지, 나에게 반감을 표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선배, 이거 하실래요? 저 좀 소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냐, 그건 나도 안 할래. 우리는 옆으로 넘어갈 거라서.”

레오가 후배가 들어 보이는 붓에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레오가 떫은 얼굴로 볼을 쓸며 걸음을 옮겼다.

“후….”

“무난하네.”

“말 돌려줘도 되냐? 그런 말 할수록 더 암담해지고 있어.”

레오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말하지만 정말 무난했다. 손톱 크기의 바이에른 국기였기 때문이다.

다음 관으로 넘어가자 미술부의 전시가 있었다.

새하얀 가벽에 벨 에포크 시대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부원이 많지 않은지, 그림도 몇 없었다.

“음, 네가 왜 여기 먼저 오자고 했는지 알겠다.”

“그치? 그냥 쓱 보고 나가면 도장 하나 주거든. 부스는 서른 개인데 도장은 열 개만 모으면 되니까 이런 곳 먼저 돌아야지.”

레오가 차음 마법을 걸고 대답했다.

보니까 얘도 쉬운 길을 찾기는 하네.

어이가 없어 웃자, 비웃는 건지 뭔지 구분이 안 됐는지 레오가 고개를 기울였다.

어쨌든, 레오의 정보력 덕분에 우리는 들어온 지 1분 만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도장을 든 한 학생이 손짓했다.

“어떠셨어요~?”

“또 오고 싶네요.”

“아, 감사합니다~! 방명록에 그림 그려 주시면 하나 더 찍어 드릴게요! 여기 참여해 주신 분들 그림 벽에 붙이고 있어서요.”

“흠….”

학생회를 눈앞에 두고 편법을 쓰고 있네.

내가 놀라는 사이, 레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네, 펜 주세요.”

“…와.”

“…….”

레오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적당히 익숙한 동물을 그렸다.

“파이네.”

“음, 바로 아네?”

객관적으로 잘 그렸다. 바로 알아볼 수만 있으면 잘 그린 거지, 뭐.

‘난 뭐 그리지.’

파이는 비교된다.

나는 다음 장을 펼쳐 선을 쓱쓱 그어 나갔다.

“와, 선 뭐야? 진짜….”

“…….”

“이거 정말 뭐야, 루카스? 해야?”

사자다.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가이드북을 내밀었다.

도장을 찍어 준 학생이 조심스레 물었다.

“오, 혹시… 이거 지금 걸어도 되나요?”

“거세요.”

왜인지 당장 걸려는 이유가 명확해 보였지만, 어쨌든 도장 받았으니 됐다.

나는 아직도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레오를 뒤로하고 건물을 나섰다.

“예에~”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물 옆 골목에서 나타난 엘리아스가 파이를 어깨에 얹고 다가왔다.

뒤따라 나온 레오가 엘리아스를 발견하고 인사도 없이 바로 소리쳤다.

“너 옷이…!”

역시나 교복이 아니라, 프로이센 수사국 복장을 하고 있었다. 진짜로 보육원에 가 볼 생각이었던 듯했다.

‘소설이랑 똑같네.’

“토끼가 갑자기 내 어깨에 올라와 있더라고? 지금 나가려고 했는데 뭘 해도 안 떨어지길래 딱 느낌이 왔지.”

“아니, 그보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어떡해?”

레오의 어이가 사라진 목소리에 엘리아스가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옷이 사람을 만드는구나, 싶지 않아?”

“누가 어울리는 거 말했냐고.”

“반박을 못 하네~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알면 되겠지?”

열불이 나서 반박을 못 하는 것이겠지만, 엘리아스는 적당히 레오의 입을 막은 것에 만족하고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냥 축제라 그런 줄 알걸. 일부러 여기 휘장도 떼고 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반장.”

엘리아스가 끝말에 힘을 주었다. 한순간에 원칙밖에 모르는 고리타분한 사람이 된 레오가 여러 의미를 담아 웃으며 목덜미를 잡았다.

‘잘 노네.’

역시 이 친구들은 같이 다니는 게 낫다.

나는 어깨에 올라타 아이스크림을 노리는 파이에게 체리를 떼어 주며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뭐 하고 놀았어?”

“아직 뭘 한 건 없고. 미술부 가서 도장 두 개 받아 오긴 했어.”

“한 게 없다고? 너 얼굴 보니까 재밌게 논 것 같았는데.”

“알잖아, 대충 어떻게 됐는지….”

“으음, 알지.”

엘리아스가 피식 웃더니 뒤돌았다.

“그나저나 토끼 돌려주러 왔는데, 나도 뭐 하나 하고 갈까?”

“아니, 가지 말고 그냥 놀아. 뭘 하려고 간대?”

“그럴까…. 귀신의 집 갈까? 얘들아, 그 안에서 사람 치면 징계받냐?”

“그렇지.”

나는 당연한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엘리아스는 자꾸 다리를 치료 중이라는 걸 망각하는 것 같다.

“거기 가면 뛰어야 할 텐데, 괜찮겠어?”

“아, 이런.”

나는 가이드북을 다시 펼쳤다.

지도에 적힌 위치를 향해 고개를 드니, 저 멀리 사람이 몰려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갈까?”

“음?”

엘리아스가 저 멀리 있는 반짝이는 간판을 보더니 손뼉을 쳤다.

“오, 카지노~ 레오, 이거 어떻게 승인했어?”

“이름만 그렇지 거는 게 없더라. 종목별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 올려 주는 게 끝이야.”

“그래~?”

거는 게 없다는 말에 엘리아스의 눈이 번뜩였다.

* * *

“아무리 거는 게 없어도 그렇지 진짜 이런 곳에 올 줄은….”

레오가 눈이 아플 만큼 번쩍이는 실내를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돈이 안 오가면 더 환영이지. 딱 진짜 게임을 할 수 있다니까. 진짜 카지노에서는 커미션 떼 가는 게 열불이 나서 못 참겠어.”

“너 나이가 몇이야?”

엘리아스가 레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포커 한 판 하자. 안 한 지 몇 년 됐잖아.”

“룰 다 잊었어.”

“어이구, 모범생답네. 자, 이름 한번 올려 보자고. 루카, 너도 할 거지?”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지.

돌아보니, 이곳의 수많은 학생들이 별로 얻어 가는 것도 없으면서 이름 하나 올리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대가 없는 게임인데도 승리욕이 다들 대단했다.

물론 나는 굳이 누굴 이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 엘리아스가 실컷 웃게 내버려 두었다.

나는 턱을 괴고 엘리아스가 테이블을 두드리는 걸 지켜봤다.

벌써 세 판째 그가 혼자 이기고 있었다.

“하하하! 또 이겼네~”

“으음….”

“그게 네 실력이야, 레오. 받아들여.”

“룰을 잊었는데 뭔 승부를 해?!”

엘리아스가 레오의 말에 휘파람을 훅 불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손뼉을 쳤다.

“아, 잠깐만. 이거 한 명 더 불러올까? 전당에 이름 올리려면 적어도 네 명이어야 할 것 같은데.”

‘신났네.’

좋아하니 가자고 한 보람이 있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학생이 다가왔다.

“손님.”

“저요?”

엘리아스가 물었다.

학생이 고개를 저으며 나를 가리켰다.

“아뇨, 이쪽 분이요.”

레오와 엘리아스가 의아한 눈으로 그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나 역시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일단 차분히 대답했다.

“말씀하세요.”

“저쪽 테이블에서 동석해 주실 수 있냐고 하시는데, 생각 있으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처럼 셋이서 포커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옷을 보니 3학년이다. 그리고, 아무 긴장 없이 저들끼리 웃고 떠들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

목표가 뻔하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학생이 사라지자 엘리아스가 코웃음 쳤다.

“야, 뭐냐? 우린 우리끼리 다른 게임이나 하자.”

엘리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목발을 들자, 다시 아까 내게 말했던 학생이 다가와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

“저, 혹시…. 한 번만 더 말씀드려 달라고 해서요.”

이제 엘리아스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뭐예요? 그럼 제가 갈게요.”

“아뇨, 이분을 부르셔서….”

“…….”

대중적인 게임인 만큼, 이곳에서 포커를 하는 놈은 널리고 널렸다.

그중에서 나를 콕 집어 말하는 건, 놈들이 아는 ‘당연히 질 것 같은 놈’ 중에 내가 들어갔다는 말이다.

그렇겠지. 1학년 때의 루카라면 그런 이미지가 당연하다.

그래도….

‘이런 취급을 받기는 또 오랜만이네.’

어떻게 할까.

나는 한참 생각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