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60)
“흠….”
상대가 가진 칩이 12개뿐인데 올인?
‘나야 상관없지만.’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천천히 가셔도 되는데요.”
“에이, 우리 오래 했잖아요.”
“그래, 인마! 알면서 체크는 웬 체크? 이제 다 걸었으니까 끝내!”
행정학과 놈들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마법학과 학생이 웃으며 해명했다.
“아니, 첫 베팅 최대가 칩 2개잖아! 어차피 이분은 콜하실 텐데, 내가 체크하나 판돈 4개 더 만드나 별 차이 없지 않아? 그리고 맨 처음에 너희가 체크한 것도 생각하지~?”
그래서 지금 올인을 했다, 이거지.
아예 올인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처음 베팅에는 칩 2개만 걸 수 있다. 처음에 읽은 룰이었지.
만약 놈이 두 번째 턴이었다면, 내 베팅액에 칩 10개를 레이즈했겠지만 놈이 첫 번째 턴이다. 2개를 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는 칩이 없는 상황에서 레이즈하지 않을 테니, 한 라운드의 판돈은 고작 4개가 된다.
3라운드에서 그랬지.
그러니 놈도 아예 올인을 한 것이다.
‘어지간히도 빨리 끝내고 싶은가 보네.’
이렇게 되면, 내가 폴드하지 않는 이상 놈은 총 122개의 칩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예요? 폴드?”
“아뇨.”
나는 내 앞에 놓인 칩을 밀었다.
“그대로 가죠.”
순간 상대의 눈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이내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고개를 틀었다.
* * *
“그대로 가죠.”
루카스 아스카니엔이 남은 칩을 모두 테이블 안쪽으로 밀었다.
‘이상한데.’
질 게 뻔한데도 이렇게 태연하게 나오나?
아니, 여태 그러긴 했지. 이제 와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쪽도 많이 지쳤나 봐요. 좀 오래 하긴 했죠?”
“글쎄요.”
“…….”
붙임성 없긴.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지었다.
“카드 공개하겠습니다.”
딜러의 말에 카드를 펼쳤다.
J, K, J, 8, J, 3, 6.
무늬는 유의미하게 겹치지 않았지만, J 3장으로 트리플이다.
딜러가 내 카드를 보고 말했다.
“J 트리플입니다.”
아스카니엔이 J를 한 장 가지고 있으니, 포카드는 불가능했다.
사실 더 높여 보고 싶었기에 3-2 조합, 즉 트리플에 원페어 하나를 합한 풀하우스를 노리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건 안 됐네. 그래도 트리플까지 나왔으니 다행이지.’
나는 턱을 괴고 아스카니엔이 카드를 뒤집는 걸 바라봤다.
‘Q, 2, J… 그리고 Q.’
히든에 Q가 한 장 더 있었군.
결국 Q 원페어가 있었네.
자신 있게 나온 이유를 알겠다.
내 액면에 있는 J 원페어보다는 Q 원페어를 더 쳐주니까.
‘단순하다.’
상대의 히든에 뭐가 있을지도 생각하지 않는 스타일.
물론 앞서 경험한 수십 개의 라운드에서 같은 모습을 보였기에, 놀랍지는 않다.
Q 원페어고 뭐고, 그래 봤자 여기는 트리플인데.
“어!”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한 친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Q랑 2 투페어야? 아냐! 잠깐만, 아, 미친…!”
투페어 나와 봤자 지금 내가 트리플인데 뭔….
내가 턱을 괸 손을 풀고 그의 패를 보려는 순간, 딜러가 입을 열었다.
“Q-2 풀하우스 나왔습니다.”
“…!”
풀하우스를 이쪽이 가져?
당황스러움에 테이블을 짚고 일어났다. 밀어 둔 칩이 그 충격에 쓰러졌다.
촤르륵―
‘그렇게 되면 내 칩은…!’
테이블에 있던 판돈 35개와 내게 남아 있던 칩 75개, 총 110개가 전부 아스카니엔에게 넘어간다.
친구 하나가 등을 퍽 쳤다.
“야, 너…! 왜 올인했냐?!”
“체크하지 말고 4라운드에서 쟤 털어 버리지…!”
아스카니엔은 여전히 별생각 없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앉아 제 카드를 내려다보다, 미소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 칩은 122개가 되는군요.”
“…….”
“맞습니다.”
황당함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딜러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판을 마무리 짓기 위해 마지막 멘트를 했다.
“최종 승자는 루카스 아스카니엔입니다. 포커 오전 첫 번째 우승자 나왔습니다!”
펑―!
그가 계단 아래의 1층에 대고 쩌렁쩌렁 소리치고, 주머니에서 종이 폭죽을 꺼내 터트렸다. 아스카니엔은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이제야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학생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세요. 청소는 저희가 합니다.”
“…아, 네…. 그러세요.”
“소감이 어떠세요? 이제 이름 올려 드릴 건데요.”
“소감이요, 다들 제 생각보다 끈기가 있으셔서 좀 놀라긴 했지만….”
끈기?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제야 머리에 무언가 번뜩 스쳐 지나갔다.
설마….
‘여태까지 우리가 지치길 기다린 건가.’
우리가 과대평가하는 것일지도 모르나, 놈이 약패로 레이즈를 건 것도, 연속되는 폴드 이후 곧바로 레이즈한 것도, 여태 내 무리한 레이즈에 콜한 것도, 전부 우리의 경계심을 박살 내기 위해서라면….
왜 그렇게 매번 무리수를 뒀는지 알겠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까지 얇고 길게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겠지.
‘그렇게 하면 운이 들어왔을 때 수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운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지금이었던 거고.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왜 이런 짓을 계속해서 하나 했더니만, 아니, 사실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스카니엔은 턱을 짚고 고민하다, 딜러가 아니라 우리를 보며 미소 지었다.
“덕분에 재밌게 놀았네요, 선배님.”
“…허.”
계단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1층에서 그의 이름이 마법으로 반짝였다.
아스카니엔은 눈인사를 하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지나쳤다.
* * *
“야~ 이길 줄 알았다!”
“뭘 이길 줄 알아? 내내 옆에서 손톱 물어뜯고 있었으면서.”
뒤에서 엘리아스과 레오가 가볍게 말싸움했다.
나는 몸에 붙은 꽃가루를 털고 그대로 건물을 나왔다.
이름은 잠시 전당에 올라가긴 했으나 그냥 가려 달라고 했다. 그 결과 아예 사라지진 않았고, 익명으로 처리되었다.
나와서 변경 가능성을 한 번 더 확인했는데, 역시 변화는 없었다.
“근데 트리플 보여 줄 때 3학년 놈 재수 없게 웃는 거 봤냐? 어휴, 한 대 쳐 주고 싶었는데 루카가 쳐 줬네.”
“…놈이라니? 그분 3학년 2분반 부반장이야. 나중에 마주칠 수 있으니까 괜히 그런 얘기 들어가지 않게 해.”
“뭐야, 그럼 너 학생회에서 자주 봤겠네?”
“작년까지는 가끔 본 적 있어.”
“그래? 아, 아무튼 아까 그 인간들 표정 사진으로 남겼어야 했는데!”
엘리아스가 고개를 저으며 낄낄댔다.
그 특유의 웃음소리에 레오가 가볍게 따라 웃었다.
“그러게.”
“엥?”
“…너나 루카스나 날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너희가 하는 생각 정도는 나도 든다고.”
레오가 헛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였다.
“왜, 루카도 너보고 뭐라고 했어?”
“아까 미술부에서 그림 그려 주면 도장 하나 더 준다길래 그렸는데, 좀 놀라던데.”
“그야 그런 편법을 봐줄 줄 몰랐으니까.”
나는 간단히 답했다.
길게 알려 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엘리아스의 관심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오, 도장 두 개 준대? 나도 한번 가 봐야겠네.”
그렇게, 우리는 다시 5분 만에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도장을 받은 엘리아스가 방문자들의 그림을 쓱 훑어보며 물었다.
“자~ 그래서 뭐가 너희 거냐. 아, 이거 레오 그림이네.”
엘리아스가 파이 그림을 콕 집어 말했다.
아까는 엘리아스를 찾으러 가서 레오의 그림을 보지 못했던 파이가 내 어깨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야?! 나 아냐?”
뭐라 대답해 주기도 전에 파이가 레오의 어깨로 점프했다.
“…혹시 얘 그림 알아볼 줄 알아?”
레오가 목을 붙잡은 파이를 조심스레 떼어내 어깨에 앉혔다. 붙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팔이 짧아 그래 보일 뿐, 나름 안아 준 것 같다.
‘표현하는 게 사람이네….’
동족과 살지 않고 사람이랑 살다 보니 배운 건가.
“알아봤나? 토끼 기분 좋은가 보다. 그래서 루카 그림은 어딨어?”
나는 엘리아스의 물음에 벽 한가운데에 붙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오.”
눈을 가늘게 뜬 엘리아스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기울이며 손짓했다.
“그래, 알았다. 독창적이네.”
“…….”
표현은 좋지만 몸짓을 보니 그리 칭찬은 아닌 것 같은데.
“이 정도면 평범하지. 주변을 봐.”
“근데 뭐야, 이거? 애가 가시가 났네.”
“그냥 봐도 사자잖아.”
“으음?”
내 대답에 레오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
여기서 내가 뭔 말을 하냐.
나는 레오의 반응에 숨이 넘어가라 웃는 엘리아스를 두고 그냥 밖으로 나갔다. 레오가 내 뒤에 대고 소리쳤다.
“잠깐만, 루카스!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었어! 너만 그렇게 그린 건 아니니까 걱정 마. 그리고 우린 미술 과목도 없다고.”
멕이냐….
이놈 아무 말이나 하는 습관 또 나오네.
엘리아스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어쨌든 언제나 음악과 미술 과목에 강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예체능을 보지 않아 다행인 건 사실이긴 했다.
나는 이제는 그냥 현관에 앉아 버린 엘리아스와 뒤따라 나온 레오에게 손짓했다.
“됐고, 다른 거나 하자.”
* * *
슬슬 나르케를 찾아야 할 때다.
간단히 밥을 먹고 파이에게 간식을 사 주고 나니, 벌써 정오를 넘어 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밤 10시에 연극이 있으니 아직 시간은 많지만, 나르케가 주연급 인물을 맡았기 때문에 연습 시간을 생각해 일찍 찾는 게 안전하다.
파이를 한 번 더 다녀오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엘리아스가 이제 막 개장을 시작한 부스를 가리켰다. 널찍한 공용 훈련장에 사격장 비스름한 것이 만들어져 있었다.
“저거 할래?”
“너 목발은 어쩌고.”
“아하~”
레오의 말에 엘리아스가 이제 다리 일은 질린다는 듯 이를 갈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젓고 다가가 부스 앞에 굴러다니는 가짜 총을 살폈다.
“이거 게베어 짭이네. 한 5년 전에 무거워서 마법으로 들었다가 뒤지게 혼난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
레오가 엘리아스의 단어 선택에 고개를 저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정말 놀이용이라 모양만 비슷하게 만든 것 같다.
내가 총을 들자 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너도 하게?”
“어. 어차피 잠깐이잖아.”
“시간은 많으니까 상관없는데, 너 다룰 줄은 알아?”
이것도 멕이는 건지 아닌지 의문이 든 차에, 루카의 나이가 17살이라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아니지.’
어차피 통치 가문 놈들은 어릴 때부터 입대해서 방학 때마다 훈련을 받으니, 2교육원 마법학과 학생의 반 정도는 구식 무기 사용법을 알 것이다.
문제는 루카는 군에 못 갔다는 점이다.
통치 가문 마법사치고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장난감이기는 해도, 괜히 의아함을 살 일을 만드느니 안 하는 게 낫지.
생각을 마친 나는 총을 레오에게 넘겨주고 나왔다.
“그러게, 모르겠다. 네가 해라.”
“뭐야.”
나는 레오에게 손짓하며 물러났다.
레오가 떨떠름한 얼굴로 부스에 있던 학생에게 안전 장비를 받고 사격을 시작했다.
가끔 하는 구식 훈련에도 제대로 참여했는지 명중률이 꽤 높았다.
‘그동안 나르케나 찾아볼까.’
파이에게 또다시 부탁하자, 파이가 팔을 뻗어 저 멀리를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봤다.
“루카스! 여기서 보네~”
나르케가 총을 부스의 학생에게 건네주고 환히 웃었다.
파이가 소리쳤다.
“나르케~!”
“파이 안녕~ 아, 간식 사 주기로 했는데. 이따 먹으러 가자.”
“내가 아까 사 줬어.”
“아, 진짜? 고마워.”
그런데….
나는 나르케가 있던 자리를 흘끗 보고 물었다.
“…너 이런 거 해도 되냐?”
“응? 괜찮아~ 아무도 몰라.”
헛웃음이 났다.
교환 와서 잘 노네.
“그래서, 얼마나 맞혔어?”
“다 빗나갔지. 아, 조금만 더 하면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네. 확실히 기사학과 애들이 상품 다 쓸더라.”
“그래? 어릴 때부터 그것만 해 온 애들이라 그런가 보네.”
“그치! 하하, 난 완드만 잡고 살았는데, 이렇게 다르네.”
나르케가 어느새 몰린 인파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그보다, 오늘 나한테 할 말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