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61)
역시 알고 있었네.
굳이 더 물어볼 필요도 없지.
“그래. 잠깐 시간 돼?”
“물론이지. 벌써 도장도 여섯 개나 모았으니까 시간은 넉넉해. 먹을 것만 사서 갈게.”
어디로 오라는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갈 곳은 뻔하다.
“고맙다. 천천히 와.”
나는 나르케에게 인사하고 다시 엘리아스와 레오에게 향했다.
그새 파이는 나르케의 어깨로 옮겨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다가오는 내게 엘리아스가 웃으며 레오 쪽을 턱짓했다.
“루카, 쟤 상품 받았다.”
“끝까지 잘했나 보네.”
“걔가 좀 하지. 나도 중심만 잡을 수 있었으면 상품 딸 수 있는데~ 너도 나중에 꼭 봐!”
엘리아스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총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한 적이 종종 있었기에, 주인공의 실력은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다.
그때 상품을 안고 온 레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뭔 말이야? 지금 하겠다는 건 아니지?”
“나중에, 나중에.”
“그래, 다행이네. 너 지금 목발 없이 걸었다가는 한 달 더 치료해야 하는 수가 있어.”
엘리아스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생각만 해도 싫은 듯했다.
레오가 상품으로 받은, 사람 반만 한 크기의 인형을 들며 물었다.
“그보다 이건 어떻게 처리하냐.”
“안고 자.”
“…반에 두면 갖고 싶은 사람이 가져가겠지?”
이제 보니 인형 색이 파이와 비슷하다.
곰 모양이지만, 어쨌든 둥글둥글한 게 외형도 닮았다.
“필요 없어?”
“응.”
“그럼 파이한테 줘 봐. 좋아할 것 같은데.”
“음? 돌로 집 짓고 사는 동물이 이걸 좋아할까?”
“이따 가서 보면 알겠지. 안 그래도 지금 나르케한테 가 볼 건데, 줄 거면 내가 갖다줄게.”
“아, 아까 얘기할 게 있다고 했지.”
레오가 내게 인형을 넘겨주었다.
“한 시간이면 이야기 끝날 것 같아?”
“글쎄, 왜?”
“끝나고도 같이 놀자고.”
이놈도 참 떼로 몰려다니는 게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다. 그냥 친한 친구 한둘과 같이 노는 게 편하기야 하겠지.
어쨌든, 나야 대화만 끝나면 오늘 할 일은 끝이니 상관없지.
“그래, 그럼 이따 본관으로 나갈게. 그때 보자.”
* * *
“아, 왔구나.”
파이와 놀고 있던 나르케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가 내 팔에 끼워져 있는 인형을 가리켰다.
“이건 뭐야?”
“레오가 사격장에서 따 왔어. 쓸 일이 없대서, 파이가 좋아하나 좀 물어보려고.”
“나 주는 거야?!”
파이가 나르케의 어깨 위를 빙빙 맴돌며 외쳤다.
책상에 인형을 내려놓으니 파이가 그 위로 뛰어내렸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좋다고 하니 나르케한테 넘겨야겠네.
“하하, 고마워. 이렇게 크게 만든 인형은 처음 봐서 좋은가 봐. 그리고 이거 행정학과 부스에서 사 온 건데, 같이 먹자.”
나르케가 작은 상자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꺼냈다.
설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표면에 체리가 잔뜩 박혀 있었다.
“…….”
“애들이 진짜 맛있게 만들었더라~ 사실 아까도 먹었는데, 또 생각나서 샀어. 자, 여기.”
나르케가 내게 상자를 밀었다.
“고마워.”
“뭘~ 그래서, 나한테 하려던 말이 뭔지 궁금해지는데.”
거기까지는 알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나는 커피를 내려 그의 앞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나르케, 이건 미리 말해 둘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너를 곤란하게 할 수도 있어.”
“흐음, 그래?”
“그러니 답하기 어렵다면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그런데도 묻는 건… 내 입장에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라서야. 이런 날에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하다.”
이제부터 그와 나누는 대화에 따라 변경 가능성이 바뀌겠지. 나르케가 내게 어떤 의미로든 중요한 인물이라면 말이다.
만약 값이 떨어진다면, 나는 나르케가 여태 본색을 감추고 있었으며, 오늘도 내게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떨어지는 순간부터 나는 나르케를 적으로 여겨야 하는 셈이다.
“아냐, 네 입장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
나르케가 잠시 입을 닫았다가 말을 이었다.
“네가 지금부터 무슨 말을 할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어.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정확히 뭔지 묻고 싶은 거지?”
“그래. 근거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네가 여기에 온 건 나와 관련되어 있지. 맞아?”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파이가 나르케가 떼어 놓은 체리를 먹다 말고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사실 이미 볼에 채운 상태라 먹다 말았다는 표현이 애매하긴 했다.
나는 다시 눈을 돌려 나르케를 바라봤다. 그가 턱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흐음….”
말을 돌릴 것 같진 않지만, 변명의 길을 차단해 볼까.
“너는 스트라우치의 좌표에서 나를 빼내면서, 내 마법을 보고 ‘역시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라고 했지.”
“…아.”
나르케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죽어 가고 있었으니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건지, 아니면 반사적으로 나온 건지는 몰라도, 나는 이 점에서도 네가 여기 온 이유를 한번 짚고 가야겠어.”
“하하,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은 있다…. 거기에 내가 그날 했던 말이 연관되어 있는 거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방심했네. 그래, 너도 나와 비슷한 권능을 받은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나르케의 웃음에서 여태까지 느껴 본 적 없는 분위기가 났다. 의도한 것은 아닌 것처럼 느껴져, 나는 그저 커피를 마시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를 지켜봤다.
“맞아, 내 계획보다 이르긴 하지만 굳이 네게 숨길 이유도 없지. 내가 여기로 온 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어.”
“…그렇구나.”
생각보다 깔끔히 인정하네.
“물론 너희에게 했던 말도 사실이야. 이 점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부터 선택받은 삶을 살아야 했던 건, 아직도 가끔….”
나르케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더니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나조차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있지. 나는 분명 내 믿음을 믿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고르지 않은 삶이 죽는 날까지 정해져 있고, 내가 가문 사람들과 교황청이 짜 놓은 그 길로부터 평생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에 가끔 구역감이 치밀어.”
‘…흠.’
당황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성직자의 입에서 이렇게 센 이야기가 들려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가 왜 교황령을 떠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친구로 먼저 알았는데도, 나중에 만들어진 이미지에서 벗어나 그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말한 나르케가 짧게 헛숨을 터트리더니, 묵주를 매만졌다.
“…주여,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커피 좀 마셔, 나르케.”
내가 이 입장이 되니 국왕이 왜 내게 차나 좀 마시라고 했는지 알겠다.
나르케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고마워. 이제 와서 모든 걸 돌리고 싶다는 건 아니야. 그냥 선택권이 있는 삶은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뿐이지. 그럴 때마다 몇 번이고 성서를 뒤적이고, 수많은 회의록을 들춰 보고, 며칠이고 틀어박혀서 생각을 정리하지만, 그래도 해결되는 건 없더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반응이라도 보여야 그가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고해하러 오는 자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웃음이 나. 아무것도 혼자서 해낸 게 없는 자가 잘도 그 자리에 앉아서 다른 이들을 죄로부터 씻겨 주겠다고 하는구나, 싶잖아.”
“…….”
“나는 내 믿음마저 누군가에게 검증을 받고 싶은 심정인데 말이지.”
나르케가 중얼거리고 웃었다.
신력 하나 확보하자고 어린애들을 마구 등용할 때부터 알아봤다. 집단 전체로는 별문제가 없어도 개인은 그다지 상태가 좋지 못하네.
“내가 너희에게 말했던 그건 정말 내가 느껴온 것들이고, 정말로 나를 여기로 오게 한 원인 중 하나야.”
“그래. 그 점은 의심하지 않아.”
“그리고, 여기에 온 이유가 하나 더 있다고 했지. 네 추측이 맞아. 나는 너를 찾아왔어.”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황금빛 눈에는 아무런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할 거짓이 준비되어 있거나, 아니면 아예 거짓을 말할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겠지.
“왜?”
“그분의 말씀…이라고 하면 루카스 너 같은 무신론자는 싫어하겠지?”
잘도 무신론자인 걸 맞혔네.
어쨌든 좀 더 알아들을 수 있는 답을 원하는 건 사실이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단순히 학생 신분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야. 정식 명분은 플레로마로부터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서지.”
“제국은 교황청의 개입을 원하지 않을 텐데.”
“하하, 무시하려는 건 아니고, 플레로마의 본거지니까~”
그에 대해서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플레로마는 제국에서 처음으로 생겨났지만, 제국은 대륙 전역으로 퍼지는 플레로마를 막지 못했다.
그걸 조금이나마 저지하고 있는 것이 로마 교황청이다. 역설적으로, 점점 하락세를 타던 교황청의 권위가 플레로마로 인해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렇다면 추기경 신분을 이용하는 게 제일 나을 텐데, 그 신분을 이용하지 않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이곳에 온 건 아직 설명되지 않는데 말이야. 난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하하… 예리하네~”
나르케가 커피를 마시고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신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너를 로마 교황청으로 데려가는 것, 그게 내 임무의 일부야.”
‘있게 되었다’라.
내 행동으로부터 그의 행동이 바뀐 게 맞다.
“너는 내가 신력을 쓸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이 부분은 너처럼 대답할 수밖에 없겠는데. 미안해,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
결정적인 부분에서 말할 수 없다고 하네.
하지만 나 역시도 소설이나 호감도 따위의 것은 근거로 내밀기 어려웠으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생존을 가를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지.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어? 루카스 아스카니엔으로서 신력을 쓸 수 있다는 걸 아는 자가 몇이나 있냐고 묻는 거야.”
“다행히 네가 아는 사람들이 전부야, 루카스.”
“날 데려가는 게 네 임무라고 했는데, 임무로 주어졌다는 말은 네 상급자도 알고 있다는 말 아닌가?”
“아니, 너에 대한 정보는 이야기하지 않았어. 난 네 사정도 진작에 알고 있었으니까.”
“…….”
레벨 2짜리 통찰 능력의 한계는 두 달간 그를 봐오며 잘 알게 됐다.
실제로 내가 가진 레벨 2짜리 매력 특성을 보아도, 특성이 뭐든 이뤄 주는 만능 도구가 아니라는 건 잘 알 수 있다.
‘통찰이 아니라 다른 걸로 알아차렸다는 건데.’
처음 인상 그대로, 경계할 만하다.
하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자는 곁에 두고 살피는 게 안전하다는 점에서도 생각을 해야 한다. 특히, 나를 만나기도 전부터 내 일을 알고 있었다면 더더욱 내 영향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된 이상 놈은 계속 옆에 붙들어 두어야겠네.’
통찰 능력은 적으로 돌리기에 위험하고, 또 여러모로 아깝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진 놈을 이제 와서 적으로 대하기는 어렵기도 하다. 해야 한다면 하겠지만.
내가 그를 뚫어져라 보고 있자 나르케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 로마 교황청은 너를 원해.”
“내가 아니라 신력을 원하는 거겠지.”
“하하, 그래. 그거야. 이렇게 되었으니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할래, 같이 교황청으로 갈래?”
파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놈에게는 같이 어딘가로 간다는 것 자체가 좋게 들린 듯했다.
“…이건 좀 급하지 않나? 나는 이 이야기를 방금 처음 들었는데 말이지.”
“어디까지나 네게 이득일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솔직히 네 운명을 나처럼 만들어야 한다면,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확실히… 어떤 의미에서 이득이라고 하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네게 주어지는 명예직이 하나라도 있다면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에게 대항하기 쉬워지는 건 사실이야. 그리고, 내 선에서 교황청의 무리한 요구를 쳐낸다면 네가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 테니, 사실 내 푸념 때문에 네게 좋은 일을 걷어찰 필요는 없어.”
“그래, 알고 있어.”
“어떻게 할래, 루카스. 내 밑으로 들어올래? 아니면, 교회에는 얼굴을 알리지 않고 이대로 살래?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할게.”
“네 밑으로 들어가는 선택지뿐이야?”
내 웃음에 나르케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야 내가 널 보호해 줄 수 있으니까.”
확실히 신력을 쓸 수 있으니 써먹고자 하는 곳이 많네. 그만큼 쉽지 않은 능력이긴 하지.
그리고….
놈이 나를 찾아온 게 맞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신력을 쓸 수 있다는 걸 아는 자가 그 말고는 없다는 것.
이상으로는 더 파내 봤자 의미 없는 이야기만 이어질 것 같은데, 이쯤에서 변경 가능성을 살펴보자.
여명777
― 최종 결말 ‘Chapter X. 사망’까지 693일 22시간 43분 47초
― 변경 가능성: 18.5% (+0.1%p)
아까 포커를 치기 전과 후에 18.4%였는데, 이번에 0.1%p가 올랐다.
‘제안을 받은 것 덕분인가.’
이걸로 검증은 끝났다.
지금으로서는 그를 적대시할 이유가 없다.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부분이 있기야 하지만, 신의 계시 같은 말을 하는 걸 보면 추가적인 설명을 해 준다 해도 딱히 기대가 되지는 않는다.
“아직. 지금 그걸 결정할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래? 알겠어.”
“이번 일만 끝내고 생각할게. 제안 고맙다.”
“뭘~”
“그리고… 어려운 질문이었을 텐데, 답해줘서 고마워.”
자리를 정리하던 나르케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나를 말없이 보더니, 씩 웃었다. 그러고는 살짝 주제를 돌려 물었다.
“이번 일이면, 축제 말하는 거야?”
“아.”
엘리아스한테만 말하고 다른 애들한텐 이야기를 안 했네. 나는 간단히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나르케가 턱을 쓸며 말했다.
“명단만 찾으면 되는 거야? 간단하네.”
“지금은 그래.”
그때와 시간대가 다르니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 지역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명단은 네가 찾을 생각인 것 같고. 그중에서 플레로마 찾는 건 나한테 맡길 거지?”
“…그래. 부탁할게.”
“하하하! 표정이 왜 그래, 바로 아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나는 가볍게 웃어 대답을 대신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나가자. 레오 만나기로 한 시간이라서.”
“아직 40분밖에 안 지났네. 나는 슬슬 연극 연습하러 가야겠는데.”
“그래…. 그러고 보니 네가 무슨 역할이었더라?”
파우스트 극의 주연급이라는 것만 들었지, 자세히는 들은 적 없다. 교실에서는 내내 신력 공부에 몰두했기에, 축제 관련한 이야기는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몰랐어? 나 처음부터 메피스토 맡았는데.”
“음?”
한참 정적이 이어졌다.
“…너 내가 아무리 그쪽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건 좀 무시를 못 하겠는데, 교황청 사람이 파우스트 연극에 나가는 걸로도 모자라서 대놓고 악마 역을 맡아도 되는 거야?”
“하하하! 안 되지~ 하지만 이게 기회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가문 사람들이 정해 준 대로만 살고 싶지는 않단 말이야.”
이놈도 보면 뭐….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누가 하라는 대로 하는 놈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있으니 다행이긴 하네.
“파문당하는 건 아니지?”
“내 신력 다 뽑아 썼을 때면 모를까, 그전에는 내가 메피스토펠레스 역으로 순회공연을 다녀도 안 당해.”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누가 들어도 교황청을 까는 말에 뭐라고 답을 하냐.
나는 적당히 인사를 건넸다.
“그래. 그럼 잘하고, 오늘 고마웠다. 나는 가 볼게.”
“그래, 저녁 때 보자.”
“난 안 갈 수도 있는데.”
“하하, 이따 보자~ 우리 1분반하고 관객 수 비교하기로 했다고.”
나르케가 내 말을 흘려듣고 손을 흔들었다.
그 뒤로 나는 오전과 같이 레오와 엘리아스를 만나 쉬었다.
노을이 질 즈음, 레오가 가이드북을 툭툭 치며 물었다.
“이제 도장 다 찍었지?”
“아, 나 하나 더 모아야 해. 사격 안 했잖아.”
“나도.”
이걸 다 모아서 뭔 쓸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은 거, 하나 더 모으고 깔끔하게 끝내는 게 낫지.
우리가 마지막으로 갈 곳을 정하고 있을 때, 마법학과 배지를 달고 있는 학생 서넛이 다가와 다급하게 물었다.
“레오, 파우스트 봤어? 지금 다섯 시간째 안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