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62화 (62/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62)

“뭐?”

파우스트가 사라져?

파우스트 극에서 파우스트가 사라지면 어떡하냐.

엘리아스와 나는 짧게 시선을 교환했다.

“오스왈드가 나가서 안 돌아왔어. 레오 너는 뭐 알고 있는 거 없어?”

파우스트를 맡은 학생이 오스왈드인가 보네.

이름을 들으니 비밀 모임의 친구 중 하나다.

바이에른 출신이기에 3교육원에서부터 레오와 친하게 지낸 친구기도 했다.

‘지금이… 7시네.’

나르케와 헤어졌을 때가 1시쯤이었지. 사라진 시간을 아는 걸 보니 같이 연극에 나가는 친구들은 그와 잠깐 마주치긴 했나 보다.

레오가 침착하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어디에 있었는데?”

“연습실. 수염 사러 나갔는데… 안 돌아와.”

“…그걸 왜 사…?”

“파우스트 구인류잖아. 옛날 인간들 특징을 잊고 있었어.”

늙은 파우스트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건만 그렇지 않았다.

하기야, 이미 인간종 자체가 달라졌기에 마법사 인류는 수염이 없다. 여기 놈들에게는 구인류 특징으로 먼저 인식될 만하지.

나와 달리 레오는 곧바로 납득하고 물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온다고 말한 것 없어?”

“어. 그래도… 재료만 사서 온다고 했는데 다섯 시간 동안 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뭔 일이 있나 본데.”

“그러게~ 두세 시간까지는 그러려니 해도 다섯 시간은 너무 길다.”

엘리아스가 한마디 거들었다.

한 학생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 시작 전까지 안 오면 어쩌지? 걔가 주인공인데. 우리 대체 2주 동안 뭐 한 거냐….”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기다리면 오지 않을까, 싶지만….

다섯 시간째 연습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는데 무작정 기다리라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무슨 일이라도 났으면 못 올 테니까.

레오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대본 외워 둔 사람 또 없어?”

“나르케는 대강 알 걸….”

레오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이 상황에서 상대역이 대본을 아는 게 무슨 소용인가.

어쨌든 나르케가 맡은 역할도 필요한 상황인데.

게다가 그냥 익숙하게 알 뿐이지, 자신의 배역이 아닌 대사와 동선을 완벽하게 외워 둔 것도 아닐 테다.

엘리아스가 가볍게 물었다.

“1인 2역은 어때, 나르케한테 말해 봤어?”

“그건 관객들이 혼란스러워할 것 같아. 연극을 즐기는 애들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대중적이지 않은 쪽으로 가면 들어왔다가도 나갈 것 같아서….”

“아, 잠깐만! 나르케가 안다는 것도 정확한 건 아냐. 그냥 내 추측이었어.”

한 학생이 황급히 해명했다.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저를 찾은 친구들에게 손짓했다.

“일단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나가서 찾아보자. 너희도 같이 가자.”

“그래, 알겠어.”

그때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레오, 못 찾을 것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 넓은 수도에서 딱 맞는 타이밍에 걔를 만나는 건 솔직히 사막에서 바늘 찾기잖아. 지금 축제인 학교만 네 군데 더 있어.”

“그럼 대역 맡아줄 친구 먼저 찾고 가면 되겠네. 파우스트 역 대본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 없어?”

“그레트헨 맡은 애는 좀 알걸….”

학생이 자신 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알기로 그레트헨은 분량 있는 조연이다.

‘걔한테 시키면 그 역은 또 누가 하냐….’

역시나 레오가 미간을 붙잡았다.

“…걘 안 돼. 그래도 같이 연습했던 애들이면 익숙하긴 하겠네. 그럼 나는 교수님께 말씀드릴 테니까, 지금 파우스트랑 배역 교환할 수 있는 친구 있는지 알아봐 줄 수 있어?”

“어, 알겠어. 애들한테 한번 물어보고 올게. 이따 여기서 보자.”

학생들이 급하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엘리아스가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애들 열심히 준비했는데, 안됐네.”

“그러게. 시작 전까지는 돌아와야 할 텐데, 어딜 간 거야.”

“연습 있는 거 알면서 다섯 시간이나 자리를 비운 건 뭔가 이상한데. 걔가 노는 걸 좋아하긴 해도 그렇지 맡은 배역 버리고 놀러 갈 사람이었던가?”

내 의견도 엘리아스와 같다.

내 기억에, 그는 조금 시끄럽긴 해도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랬으면 레오가 모임에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뭔가 걸리는데.’

“…그러게. 일단 나는 교수님께 다녀올게.”

레오가 자리를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보았던 학생들이 왔다.

놈들이 내 시선을 필사적으로 외면하며 엘리아스에게 말을 걸었다.

“엘리아스, 레오는?”

“아직. 파우스트 하겠다는 애는 있어?”

“없어…. 주인공 대사가 너무 많아서 안 되겠대.”

“누구누구한테 물어봤는데?”

“연극 나가는 애들한테 다 물어봤어. 나르케는 한번 해보겠다고는 하는데, 메피스토펠레스랑 바꿔 주려는 애가 없어서 안 될 것 같아.”

“그치, 악마도 분량 많으니까~”

엘리아스의 말에 한 학생이 조심스레 물었다.

“…엘리아스, 네가 메피스토펠레스 해 줄래? 사실 맨 처음엔 너로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뭐야, 욕 아냐?”

“아, 아니, 아니! 어쨌든 결국 나르케가 맡았잖아!”

“그래, 뭐. 올라가서 아무 말이나 해도 되면 할게.”

엘리아스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피식 웃었다.

학생이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

“혹시 파우스트 읽어 봤어?”

“읽어는 봤지.”

학생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즉흥극하면 안 되나…? 괜찮지 않아?”

“한번 해 보자. 엘리아스, 내가 읽으면 거기에 다음 대사 쳐 줘.”

“읽어는 봤다고 했지 잘 안다고는 안 했는데. 그래, 해 봐.”

엘리아스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까딱였다.

학생이 빠르게 대본을 펼쳐 대사를 읊었다.

“너희 같은 부류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어도 대강은 정체를 짐작할 수 있지. 그건 그렇고, 자네는 누구인가?”

“전 메피스토펠레스입니다.”

“…….”

“아….”

“안 되겠다.”

그 반응에 엘리아스가 팔걸이를 잡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야?! 딱 정석으로 대답했잖아! 뭐라고 쓰여 있는데?”

“저는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항상 선을 행하는 힘의 일부분입니다.”

엘리아스가 눈만 껌뻑이며 그들을 보다 입을 열었다.

“…장난해?”

“…….”

“대체 누가 누구냐고 묻는데 이렇게 말해!”

“근데 얘네는 해! 그러니까 외워야 하는 건데… 아, 안돼. 즉흥극도 안 되겠어. 관객은 모이겠는데, 뒤로 갈수록 완전히 난장판 될 것 같아.”

“파우스트 맡겨 볼까?”

학생들이 저들끼리 소곤거렸다. 엘리아스가 잔뜩 오기가 생긴 얼굴로 손뼉을 치며 도발했다.

“해! 한번 와 봐. 잘 받아 줄 테니까.”

“그래, 그럼 메피스토 대사 쳐 줄게.”

학생이 숨을 훅 들이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나를 즐겁게 하는군요. 우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의 시름을 없애 드리고자 젊은 귀족의 차림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충고하노니 당장 나와 같은 복장을 하시지요.”

“예? 제가 왜요?”

“…아직 안 끝났어. 그러면 당신은 인생이 어떤 건지 온전히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으음? 하하하! 옷 하나 갈아입는다고 시름이 사라진다고. 인생을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닙니까? 그것만으로 해결될 고뇌였다면 지금 당신 앞에서 이러고 있지도 않을 겁니다.”

그 말에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어! 방금 좋았어.”

“대사 1/10 토막 내긴 했는데… 이거 이어질 것 같은데?!”

“그니까. 뭐라고 줄이지? 아, 이거 뒷사람 센스가 중요하겠는데.”

대본집을 든 학생이 다른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더니 입을 열었다.

“그 고뇌를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아주 위대한 존재는 아니라지만, 당신이 나와 함께 어울려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이라면, 나는 기꺼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복종하겠습니다.”

“…흠, 그래요? 무르기 없습니다.”

엘리아스가 탐욕에 전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

“뭘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

“…네가 아니라 파우스트를 연기하라고! 파우스트는 한번 주저해야지!”

“아, 한번 읽어 본 사람한테 너무 많은 거 바라지 마~”

학생의 타박에 엘리아스가 웃으며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학생들이 다시 저들끼리 대본집에 무언가 필기하며 대화를 나눴다.

“계속 끊기네. 파우스트가 대가로 뭘 해줘야 하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메피스토는 대가 얘기를 피해야 하잖아.”

“이런 거 한두 개도 아닐 텐데 공백 안 생기게 뒷사람이 바로 대답할 수 있나?”

“힘들 것 같아. 그레트헨 맡은 친구는 이런 거 받아 줄 성격이 더더욱 아니잖아. 즉흥극은 안 되겠다.”

학생들의 얼굴이 또다시 어두워졌다.

엘리아스가 테이블을 툭툭 두드려 주의를 집중시켰다.

“야, 왜. 그냥 내가 할게.”

“아니, 사실 뒷사람이 받아 주는 건 그렇다 쳐도, 엘리아스 네가 한 대로 하면 파우스트 분량이 반 넘게 줄어서 시간이 엄청 남아…. 많이 압축한 거라 늘릴 수는 있는데 남은 세 시간으로 대사 넣을 부분 찾고 애들한테 암기시키기는… 부족해.”

“남는 시간은 내가 어떻게 좀 때워 볼게. 하고 싶은 말 하지, 뭐.”

반쯤 넘어간 학생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안돼. 왠지 그냥 말하게 두면 우리 반 징계받을 것 같아.”

그때, 레오가 자리로 돌아왔다.

학생들이 엘리아스의 눈빛을 외면하고 레오에게 아는 체를 했다.

“어, 레오!”

“뭐 해? 대역은 구했어?”

“아니. 대사가 너무 많아서 세 시간 가지고는 못 외우겠대.”

레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로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래….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다른 학교에 연락해 본다고 하셨어. 우리도 이제 찾으러 가자.”

“대역은?”

“맡을 사람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30분 전까지 안 오면 참가 명단에서 이름 지울 거라고 하셨으니까, 최대한 그전까지 찾아보자.”

학생들이 착잡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한 학생이 뒤돌아 가다 나를 흘끗 보며 뭐라 말하려 하더니, 친구의 독촉에 그대로 사라졌다.

엘리아스가 혀를 쯧쯧 차고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우린 그냥 우리 할 일이나 하자. 1분반 염탐하러 갈까? 얼마나 졸린 리허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그건 도장 못 찍는데, 괜찮겠어?”

“아, 그러네.”

엘리아스는 나르케와 마찬가지로 나와 같이 돌아다니는 게 그리 이상하게 보이는 인물은 아니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인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런 이점이 있었다.

엘리아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뭐, 평소에 해 보고 싶었던 거 없어~?”

“레오랑 똑같은 말을 하네.”

“하하! 그야 넌 축제가 처음일 테니까.”

뭐라 할 말이 없네.

노는 것보다는, 이런 날 학생이 사라진 게 마음에 걸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농땡이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내가 나가서 찾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은 교수와 레오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해가 지니 이제 쌀쌀해지고 있다. 겨울용 로브를 입고 있어도 얼굴로 밀려오는 찬바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이 있는 학생회관 건물을 가리켰다.

“도장은 됐고, 네가 말한 대로 1분반 연극 구경이나 하러 가자.”

* * *

그렇게 간 1분반 연습실은 완전히 들떠 있었다.

이제 보니 쉰 명 중 마흔 명이 이곳에 모여서 연극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동시에 2분반의 주인공이 연습에 빠진 채 내내 나타나지 않은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

다들 농땡이 정도로 여기고 있나 보네.

혹시 모를 범죄의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무대에 나가는 사람 수는 열 명 안쪽인데, 이게 이렇게 반 전체가 열광하는 행사였나….

높은 확률로 2분반과의 경쟁 탓에 이렇게 된 것 같다.

소속이 애매한 엘리아스는 학생회관 복도를 걷는 내내 심드렁한 얼굴로 연습실 창문을 바라봤다.

연습실에 있다가 나온 1분반 학생이 엘리아스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엘리아스! 너 어디 응원하냐.”

“글쎄? 맞춰 봐.”

“2분반이겠지.”

“그것까진 모르겠고, 반을 떠나서 축제에 신곡은 좀 아니지.”

“파우스트는 맞고?”

엘리아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 역시 딱히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했다.

1분반 학생이 과장되게 눈썹을 기울이며 장난을 쳤다.

“그나저나 2분반은 주인공이 없어서 어떡하냐~ 메피스토펠레스 1인극 가냐?”

“오겠지.”

“근데 1학년 중에서도 반나절 넘게 안 보이는 애 있다더라. 알고 있었어? 1학년 마법학과 애들이 사람 봤냐고 물어보고 다니던데.”

“어, 그래. 그렇구나.”

엘리아스가 대충 대답해 1분반 학생을 떨쳐 냈다.

‘…….’

안 오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고?

축제 날이고 외부로의 출입이 잦은 날이니 그럴 수 있겠지만… 굳이 나서서 찾으러 묻고 다닌다는 건 그쪽에서도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는 말이다.

같이 나갔다가 혼자 떨어졌다거나, 아니면 잠깐 나간다고 했다가 그대로 사라졌거나.

‘자기들끼리 찾고 다닐 게 아니라 학교에 제대로 전달을 해야겠는데.’

축제 날이라 외부로 자유롭게 나갔을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축제 날이기에 다들 경계가 풀어져 있다.

“엘리아스.”

“왜~?”

“…아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학교는 엘리아스의 말을 신용하지 않을 것이다.

다짜고짜 아무나 붙잡고 학교에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르케라도 찾아서 학교에 전해 달라고 해야겠는데.

그때, 우리 반의 부반장이 학생회관에 와 2분반 학생들에게 대본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엘리아스가 대본을 흔들며 부반장에게 물었다.

“이제 와서 이거 외우라고?”

“어, 좀 노력해 봐.”

“이제 두 시간도 안 남았어! 그냥 즉흥극 가자니까?”

“안 돼, 내가 애들 데리고 해 봤는데 10분도 안 돼서 망했어. 이게 한두 마디 할 때는 괜찮은데 갈수록 결말로 유도가 안 돼. 공백도 엄청 생기고.”

엘리아스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지 더 이상 태클을 걸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즉흥극을 염두에 두고 여러 번 합을 맞춰 봤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때는 어렵다.

“아, 맞다. 루카스.”

부반장이 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중간고사 벼락치기 했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