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64화 (64/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64)

제대로 통했다.

나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엘리아스의 강력한 주장에 시험 삼아 나르케와 대사를 주고받았고, 정말 대본을 다 외웠다는 게 증명이 되자 그 후부터는 다른 학생들이 알아서 무대포로 상황을 끌고 나갔다.

그렇게 이 짧은 시간에 초반 3분가량만 세 번을 연습했다.

정말 놀랍게도, 다들 대사를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에만 집중했는지, 그 누구도 내 의견을 묻지 않았다.

떠밀어 달라고 할 필요는 없었다. 정말로 말 그대로 떠밀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야 나한테는 이득이긴 하지.’

“그때 시간이 20분밖에 안 남았었으니까. 사실 너 오기 전에 교수님이 우리 안 하는 걸로 하고 공지 돌리려고 했거든.”

나르케가 황당한 내 심정을 이해했는지 뜬금없이 나를 위로했다.

이제 대기실에는 학생이 몇 남지 않았다. 배우로 나가지 않는 학생들은 이제 관객석으로 내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냐.”

“그래도 잘 선택했어. 아마 네가 걱정하는 것만큼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야.”

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나르케가 머리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흠… 더 큰 문제가 있거든.”

“뭐?”

“정말 잘 몰라. 느낌이라서.”

예지 능력을 썼나.

하필 오늘처럼 일이 많이 터진 날에 저런 말을 하니 불길하네.

그때, 대기실 반대편으로부터 1분반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관객 155명이야, 얘들아!”

“이거 안 중요하지 않냐? 저긴 주인공이 없는데.”

“야, 너희 주인공 아직도 안 왔어?”

1분반 학생들이 2분반 대기실 앞에서 깐족거렸다.

3교육원에서부터 서로 알아 온 학생들이 많아, 장난을 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특별반 몇 명 갔는지 비교할 때부터 알아봤다.’

유치하긴. 웃음만 난다.

레오 역시 놈들의 도발을 무시하고 복도 쪽 문을 쾅 닫았다.

그때, 스태프가 무대와 연결된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2분반 지금 올라가세요!”

지금 시각은 9시 55분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르케가 내게 고갯짓했다.

“갈게, 이따 보자.”

* * *

드디어 10시, 예정된 시작 시간이 되었다.

나는 무대 뒤에 서서 마지막으로 대본을 체크했다.

무대에 잠시 불이 들어오자, 관객석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얘네 그냥 하나?”

“메피스토펠레스 혼자 할 건가 보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크게 말하면 여기까지 다 들리냐.

어쨌든,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기야 할 것이다. 벌써 자리에 모인 관객 수가 100명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주인공 없이 어떻게 시작할 건지 궁금할 테니 모였겠지.

‘만약 시작을 못 한다면 100명 모두 그냥 나가겠지만….’

시작할 테니, 호기심으로 모인 100명을 전부 흡수하는 일만 남았다.

내가 지금 이걸 왜 생각하느냐 하면, 내 옆에서 조연 둘이 계속 관객 수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연 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바로 다물었다.

‘조용히 하라고 쳐다본 건 아닌데.’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무대에서 흘러들어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10시 3분, 파우스트 등장 전 마지막 대사가 나오고 있다.

신이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파우스트를 대상으로 내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나는 너희 무리를 미워한 적이 없으니, 내 인간들을 위해 너희를 내려 주고자 한다. 가서 그들을 너희 악마의 방식으로 이끌어 보아라!]

쿵―

소리와 함께 무대 조명이 꺼지고, 막이 내려왔다.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도 함께 커졌다. 이제 주인공이 나올 차례라는 걸 다들 아는 듯했다.

나는 컴컴한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소품으로 준비된 투박한 구두의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트를 옮기는 2분반 학생들이 망설이다,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비장하네….’

그럼,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나는 준비된 책상 앞에 앉아 새까만 허공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시작 신호가 나타났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철학도, 법학도, 심지어 신학까지도 일생의 노력을 쏟아 빈 데 없이 공부했다.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어?!”

“뭔데?! 파우스트 왔어?”

내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관객석이 시끄러워졌다.

탁―

막이 오르며 서늘한 바람이 관객석으로부터 바닥을 따라 훅 밀려왔다.

머리 위로 조명이 들어오자, 이제는 조명의 열기가 따갑게 쏟아졌다.

나는 대본에 쓰여 있던 대로 여전히 무대 옆을 바라보며 파우스트의 말을 입에 담았다.

“나에게 있어 즐거움은 영원히 사라졌으며, 올바른 것을 알았다는 확신도, 다른 인간을 일깨우려 가르칠 자신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어어어어어?!”

“야, 잠깐만! 뭐야!”

의자 부딪히는 소리가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객석을 보지 않아도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 있었다. 이미 객석의 소음이 내 목소리를 덮어, 나마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극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엘리아스의 예상대로 관객은 500명을 넘어, 마지막으로 집계된 수는 550명이었다. 작은 공연장이었기에 이 이상으로는 수용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띠링―!

‘Route 1 — 〈 Chapter 5 〉’을 시작합니다.

「 Chapter 5. 좋은 물건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1) 」

Chapter 5 특별 보상

본격적인 지지 기반! 새 인상 항목을 드립니다.

‘이건 뭐냐.’

새 인상 항목이라.

나는 커튼콜 직전, 무대 뒤로 돌아와 상태창을 열었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칭호: 니콜라우스 경

체력: +1.3 [+4.3]

정신력: -1.1 (+0.5)

마력: ?

기술: +2.7 [+5.7]

인상: -9.9 [-7.0] [+6.61503261]

행운: +1.15 (+0.2)

특성: 여명777, 신력, 매력 (Lv.2), 재시도 (Lv.1)

인상 항목에 새로운 칸이 생겼다.

-7.0, 그리고 ‘본격적인 지지 기반’이라는 말로 보아서….

‘학교겠지.’

이 상황에 특별 보상을 줄 줄은 몰랐다.

지지 기반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을 공략하라는 뜻인가 본데, 역시 슬슬 루카의 이미지도 바꾸어야 하는 게 맞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변경 가능성을 확인했다.

여명777

— 최종 결말 ‘Chapter X. 사망’까지 693일 13시간 59분 21초

— 변경 가능성: 18.6% (+0.1%p)

또 올랐네.

내 직감에, 이건 약간의 마이너스 이후 플러스가 더해졌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쨌든 무언가 얻으려면 손해도 감수해야 하니 상관없다. 최종적으로 값이 오르기도 했고, 진짜 상승과 하락이 겹친 건지 알 방법이 없으니 그때마다의 상황에 집중하는 수밖에.

“루카스, 가자.”

나르케가 땀을 닦고 씩 웃으며 무대 쪽을 가리켰다. 기대하던 연극을 제대로 끝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악마 역 맡고서 기분 좋아하니 신기하네.’

분명 소식이 들어가면 난리가 날 텐데.

그래도, 놈에게는 자기 뜻대로 혼자 결정한 시도였을 테니 즐겁겠지.

다시 배역을 맡은 학생들이 모두 무대에 모이자, 무대의 조명이 들어왔다.

“와아아아―!”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인간이 등장한 바람에 객석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지만, 시간이 지나니 배역과 나를 분리했는지 다들 적당히 몰입하며 극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루카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수 없었다.

잠깐 현실에 돌아온 듯해 기분이 오묘해져, 중간에 대사를 떠올리는 데에 조금 애를 먹었다.

‘몰입은 특성 덕 좀 본 것 같네.’

매력 특성의 설득력 말이다.

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올라서 내 생각에는 그냥 대사만 줄줄이 읊는 기계나 마찬가지였는데, 다행히 내 기계적인 대사에 웃는 놈은 없었다. 설득력 30% 보정이 작용한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됐다.

[자, 저희 마법학과 2분반이 준비한 연극 재미있게 보셨나요?]

사회자를 맡은 학생의 목소리가 울렸다.

듣기 괜찮은 호응이 관객석으로부터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으아악!”

“깜짝이야!”

그때, 공연장 저편에서 비명이 연달아 들려왔다.

내 옆의 학생들이 당황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저 멀리 출입구가 활짝 열려,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뭐야? 소리는 왜 지른 거야?”

“…….”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오가 통제실에 손짓하고, 출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레오가 채 가기도 전에, 출입구의 학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2분반 걔 아냐?”

“오스왈드?”

사라진 주인공의 이름이 들려왔다.

탁―

때마침 공연장 전체에 불이 들어왔다.

저 멀리서 한 사람이 반쯤 풀린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우리 쪽을 보고 안도하듯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런데….’

얼굴부터 교복 셔츠까지, 완전히 피범벅이었다.

내 뒷줄에 서 있던 학생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잠깐만, 쟤 뭐야. 얼굴이 왜 저래?”

“뭐야? 다친 거야?”

그는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는지 의자를 붙잡고 비틀대다 쓰러졌다.

콰앙―

“으악!”

주위에 반쯤 일어서 있던 학생들이 뒷걸음질 쳤다.

‘…이건….’

정말, 그냥 농땡이가 아니었다. 저 몰골은 누가 보아도 어딘가에서 공격받은 모양새다.

치직―

[안내 방송입니다. 금일 오후 10시 45분부터 교내 워프 마법 및 워프 도구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어떤 용무로도 외부로의 이동은 허가할 수 없습니다. 본교에 출입한 외부인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동이 불가하니, 방송을 듣는 즉시 행정관 1층에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야, 신문 봤어?! 안 봤으면 지금 봐!”

몇몇 학생이 공연장으로 뛰어와 제 친구들을 끌고 나갔다.

분위기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이제 모두가 일이 상당히 크게 벌어졌다는 걸 알았다.

오스왈드가 사라졌을 때부터 느꼈던 불길한 감각이 다시금 살아나, 나는 무대를 내려와 기억을 되짚었다.

‘…그때, 사라졌다는 1학년 이름이….’

아말리아 카스텔이었지.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레오를 바라봤다. 또다시 확성 마법이 펼쳐졌다.

[안내 방송입니다. 마법학과 1학년 2분반 아말리아 카스텔, 마법학과 2학년 2분반 오스왈드 슈미트 학생을 찾습니다. 발견한 학생은 즉시 행정관 혹은 교내 병원으로 보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레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잔뜩 흔들리는 눈이 허공을 배회하다, 나와 마주쳤다. 처음 보는 충격이 스며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카스텔은 바이에른의 귀족 가문이다.

그리고 오스왈드 역시 바이에른 사람이라고 했지.

“루카스!”

누군가 불러 세우는 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출구 쪽으로 다가가 바닥에 흩뿌려진 신문을 주워들었다.

새까만 글자가 제국신문 한가운데에 크게 박혀 있었다.

[수도 내 바이에른 출신 마법사 7명 중상… 미성년 피해자만 4명]

읽는 동안 숫자가 바뀌어, 이제 피해자는 8명이 되었다.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마법사들이 중상을 입었다. 게다가 전부 바이에른 사람이다.

나는 천천히 기사를 읽어 나갔다.

‘범인 불명.’

수사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피해자 모두 기억이 없고, 사고 장면을 본 목격자도 찾지 못했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뻔한 일이다.

수도 한복판에서 바이에른 출신 마법사가 한날한시에 중상을 입었다?

‘…보복이자 경고네.’

누가 보아도, 플레로마의 짓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