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65화 (65/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65)

플레로마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신호다.

특히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그리고 그를 지원한 왕세자와 바이에른 왕국에 대놓고 복수심을 드러내고 있다.

곤충 건도 전부 수포로 돌아갔고, 연방위원회에 심어둔 중요한 인물도 잃었으니 놈들 입장에서는 이미 손해가 상당하다. 이렇게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바이에른만을 복수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니야.’

그랬다면 바이에른 땅에서 범죄를 저질렀겠지.

플레로마는 황실과 제국 정부에 대해서도 분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전부 죽지 않았다는 건 한 번 더 짚어 볼 만한데.’

피해자들은 전부 마법사에, 귀족이다. 죽였다가는 플레로마 대 제국의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

그러니, 이건 다른 무엇도 아니라 오직 경고다. 여기서 더 나서지 말라는 경고.

‘나르케가 왜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고 했는지 알겠네.’

지금 연극 따위가 대수가 아니다.

사실상 놈들은 지금 반쯤 전시 상태로의 돌입에 동의한 셈이다.

이 정도면 형의 신경도 플레로마의 범죄로 분산될 수밖에.

‘…그리고, 교황령 쪽의 동향도 더 철저히 확인해야겠는데.’

형의 일은 1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 제국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최소 9개월가량 남았지만, 상황이 변한다면 형이 맡은 일도 바뀔 수 있다.

나는 생각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봤다.

정리라고는 하나도 되지 않은 겁에 질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신경을 긁었다. 병원에서 나온 자들이 오스왈드를 들것에 태워 옮겨 가고 있었다.

다시 허공에 확성 마법이 전개되고, 새 방송이 들려왔다.

[제국2교육원 재학생 여러분께 안내합니다. 오후 11시 10분부터 행정관과 본관, 교내 병원을 제외한 모든 건물의 출입을 제한합니다. 재학생 여러분께서는 즉시 본관으로 이동하십시오.]

* * *

“출석 부르겠습니다.”

11시가 넘었음에도, 우리는 기숙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학교는 대부분의 건물을 잠갔고, 황실에서 나온 수사원들이 교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교수가 어두운 얼굴로 출석을 불렀다.

병원에 실려 간 오스왈드를 빼고, 남은 49명은 모두 자리에 있었다. 교수가 출석 명부를 덮고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오늘 수도에서 마법사들이 습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분간 외부 출입이 불가하지만, 학생 여러분께서는 교내에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항상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수는 일부러 내 쪽을 보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시선은 내게 잠깐 붙었다가 떨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하다.

어쨌든 나는 플레로마가 아니니, 나를 보는 학생들을 마주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학생들이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교수가 자리를 정리하고 문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교실에서 대기하세요. 기숙사가 개방될 때 다시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학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연극 때문인지 플레로마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를 흘끔대는 학생들은 계속해서 나왔다.

‘교수의 오지랖이 감사하네.’

플레로마로 여겨지고 있는 내게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시간에 내가 외부로 나갔는지 나가지 않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될 뻔했다.

교수가 내게 레오를 붙인 덕에, 내게는 분명한 알리바이가 있다.

혹시나 해서 눈이 마주치는 학생들의 호감도를 확인해 보았는데, 아주 낮지는 않은 걸로 보아서는 진심으로 나를 꺼리는 게 아니라 소문이 소문이다 보니 한 번씩 눈길을 주는 듯했다.

‘그보다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나는 레오가 앉은 쪽을 바라보았다.

레오는 내내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당장 바이에른으로 이동해 국왕과 대책을 논하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학교가 출입을 통제해 그럴 수가 없었다. 특히 나라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왕족이 나갔다가 변이라도 당했다가는 학교 입장에서는 감당하지 못할 문제가 된다.

바이에른 출신자들도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그중에는 멜빈도 속해 있었는데, 사건 탓에 에너지 소모가 컸는지 표정만 봐서는 거의 죽어 가고 있었다.

부반장이 침체된 반 분위기를 보고 조심스럽게 강의대 앞으로 나갔다.

“얘들아.”

학생들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부반장이 괜히 나왔나 생각하는 얼굴로 눈만 굴리더니 마침내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내일 오스왈드 병문안 가자.”

“그래…. 가야지.”

“당연한 거 아냐?”

“너 안 가려고 했어?”

“아니, 아니지… 뭘 안 가!”

부반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다 어이가 없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이 상황에도 농담하는 놈이 있네….

하지만 그 덕분에 몇몇 학생들이 슬쩍 웃었다. 비록 제대로 된 웃음이 아니라 헛웃음에 가까웠지만,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부반장이 그런 학생들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오늘 축제 열심히 해 줘서 다들 고마웠다. 준비하는 내내 공부랑 연습 병행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았고, 반장도 그동안 많이 애써 줘서 고마웠어.”

레오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으음, 또 마지막에 우리가 많이… 문제가 생길 뻔했지. 루카스.”

부반장이 나를 바라봤다.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내게 꽂혔다.

“우리가 20분 남기고 급하게 맡겼는데도 잘해 줘서 고마웠고, 또 많이 당황스러웠을 텐데 미안했어. 다들 그럴걸. 그렇지?”

“맞아, 고맙다~!”

엘리아스가 불쑥 끼어들며 눈을 부릅떠 다른 학생들에게 반쯤 협박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마음은 고맙지만 그러기 전부터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학생들이 있기는 했다.

‘…뭐가 어찌 됐든 이런 분위기는 버티기가 좀 그런데.’

현실이었다면 바로 화제를 돌렸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의 내게는 득이 되는 상황이니 견뎌야지.

“덕분에 우리 2주 동안 준비했던 거 잘 보여 줬고, 관객도 많이 모였어. 여태 반 행사에 자주 참여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앞으로도… 행사 있으면 같이 열심히 해 보자.”

“그래.”

내가 정말 답할 줄 몰랐는지 부반장이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다행이다. 앞으로도 기대할게, 루카스. 마지막으로, 오늘 다들 정말 수고 많았고, 기숙사 가면 일단 오늘 일 생각하지 말고 푹 쉬자, 얘들아.”

학생들이 박수로 호응했다.

누군가 나가 이야기를 꺼낸 덕에 숨이 턱턱 막혔던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다. 나름 반장 대신 맡은 역할을 다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플레로마에서 연극으로 주의가 돌려져서 다행이네.’

내 인상 말이다.

기껏 이미지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 놓았더니 제대로 체감하기도 전에 플레로마에 대한 경계심이 내게 한 번 더 씌워지고 있었는데, 그나마 환기가 되었다.

그때, 교수가 들어와 책상을 두드렸다.

“여러분, 지금 1학년부터 기숙사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2분반은 10분 뒤에 나갈 테니 짐 챙기세요.”

* * *

새벽 4시쯤 되자 교내 수사는 끝이 났고, 학교에 방문한 외부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도 전부 정리가 되어 모두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기숙사 옥상에 올라, 난간에 기대 학교를 내려다보는 레오를 찾았다.

―“레오.”

레오가 나를 향해 뒤돌았다.

엘리아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기에 레오는 내가 신력으로 말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걸 직접 경험하는 건 지금이 처음이겠지만.

나는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레오에게 다시 학교나 내려다보라고 눈짓했다.

“지금 그럴 정신 아냐.”

레오가 차음 마법을 걸고, 다른 건물에서 보이지 않는 쪽의 의자를 뽑아 앉았다.

―“내내 잘 보고 있었으면서 이러네.”

“할 말이 있으니까 여기 왔겠지.”

―“그래, 전략회의 할 겸 네 멘탈 좀 보려고 왔다.”

“전략?”

―“이번 일에 대한 건 아니야. 너한테는 이야기를 안 해서 말이야.”

나는 레오에게 간단히 내 계획을 설명했다.

레오가 학교 뒤편의 숲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알겠어. 보육원 명단을 가져와야 한다니… 정말 이번 사건에 대한 건 아니네.”

―“그래.”

“하지만 내게 지금 이걸 말하는 걸 보면 계획을 취소할 생각은 없다는 거겠지.”

하여간 엘리아스나 얘나….

빠르게 알아들으니 나야 좋지.

나는 책장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그래. 하지만 만약 왕국에서 내게 활동을 자제하라고 하면, 나는 거부하지 않을 거야.”

“그럴 일은 없어. 그놈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아.”

레오가 단호하게 답했다.

나는 잠시 그에게 시선을 주고 다시 책을 바라봤다.

―“그래, 다행이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나 보네.

이 사건은 플레로마가 제국과 바이에른, 니콜라우스에 적개심을 가졌기에 생긴 것이었다.

괜히 플레로마를 건드려서 애꿎은 국민들을 위험에 몰아넣었다고 자책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럼 이번 계획을 밀고 나가는 것에 대해서, 네 의견은?”

이번 계획을 성공시킨다면, 그건 플레로마의 경고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 된다. 어쩌면 새로운 피해자를 낳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해.”

―“간단하네.”

“바이에른은 니콜라우스를 제지할 생각이 없어. 플레로마도 그걸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오히려 타이밍 좋게 네가 새 계획을 가져와서 고마울 뿐이지.”

적당한 미소와 달리 말투에는 서늘함이 묻어났다.

“…….”

화났나 보네.

후회하기는 무슨, 잘못 짚었다. 그렇게 정신력이 약한 놈은 아니었지.

죄책감과 후회를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걸 얼마나 오래 끌고 가는지, 어떤 방식으로 승화시키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갈린다. 놈은 다행히 아까의 번민에서는 빠져나온 듯했다.

어쨌든, 맞는 말이다.

경고를 주었음에도 니콜라우스가 또다시 플레로마를 공개적으로 깨부수는 사건을 벌인다면 플레로마 측에서는 상당히 열이 받을 수밖에 없다.

바이에른이 플레로마에게 숙이고 들어가기를 택하지 않는 이상, 니콜라우스의 활동은 언제든지 환영일 수밖에.

―“새 피해자가 생긴다면 어쩔 거냐?”

“…….”

―“바이에른이 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딱 두 개지. 강경하게 플레로마에 대적하거나, 아니면 정말 잠자코 있거나. 그 중간은 없어.”

이에 대해서는 아까 완곡히 물었지만, 중요한 문제이니 더 확실하게 짚을 필요가 있다.

또, 바이에른에 제안할 것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레오의 이름으로 편지를 전하는 수밖에 없는데… 다시 물어본 지금 레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그를 통해 제안을 하는 것은 보류해야 한다.

한참 침묵하던 레오가 입을 열었다.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내 자리에게 묻는 거라면, 당장의 피해는 받아들여야지. 플레로마의 경고에 지는 게 장기적으로 더 큰 피해를 불러올 테니까.”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각오라면 그에게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

그때, 레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계획이 있어.”

* * *

2시간 뒤, 나는 기숙사 로비에서 새벽 6시에 발행되는 신문을 한 부 꺼냈다.

[바이에른 왕실 마법부, 권외 방위기동대 창설…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바이에른 왕세자·니콜라우스 에른스트 첫 합류]

니콜라우스는 오늘부터 수도에서 활동하는 플레로마 처리반에 소속되었다.

내가 제안을 할 생각만 했지, 같은 내용을 레오에게 제안받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결과물은 똑같으니 상관없지.’

오히려 일이 빠르게 진행되니 편할 따름이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올라가 워프 마법을 준비했다.

오늘은 어제 일의 여파로 수업이 없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행히 교내에서의 워프 마법 제한이 해제되어 모임 장소나 레오의 훈련장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갈 곳도 레오의 훈련장이다. 이 시간에 그쪽으로 가기로 약속했다.

내가 워프하자, 레오가 뒤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왔네.”

“어.”

“들었어? 앞으로 5일 동안 외부에 못 나가는 거.”

다짜고짜?

학생들은 모두 이번 주 주말까지 외부로 나갈 수 없다. 주말 외출을 허가했다가 또다시 사고가 날 걸 우려한 듯했다.

레오가 완드를 닦던 천을 내려놓고 뒤돌았다.

“잘 됐어. 약을 안 마셔도 되니, 중간에 컨디션이 나빠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

“솔직히 알지? 신력 같은 특수 마법을 제하면 네 전투 마법 실력은 아직 바닥이야.”

“…….”

새끼 말하는 거 봐라….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닥까지는 아니지, 레오.”

“그래, 그건 맞지만, 너라면 좀 더 할 수 있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5일 내내 질병계를 내라고 하고 싶은데….”

설마 지금 훈련 때문에 결석하라고 하는 거냐….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다. 플레로마가 저렇게 나오는 이상 슬슬 내 실력을 정비할 필요가 있으니까.

단지 마법 광인이 이런 말을 하니 께름칙할 뿐이다.

레오가 완드를 들었다.

“좀 그렇지? 남는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해 보자, 루카스.”

띠링―!

〈 Chapter 5. 좋은 물건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1) 〉

제안 1: ‘기술’ 점수 4 달성 (0/1) (119시간 59분 59초)

* Route 1 — 〈 제안 2 〉

* Route 2 — 〈 Chapter 6. 저녁이 되기 전에 하루를 칭찬하지 말라 〉

‘…이거 오랜만이네.’

전과는 달리 나 역시도 올릴 생각이었으니, 그다지 부담은 아니다.

대신, 나 역시도 생각이 있었음에도 이걸 제안으로 준 건….

앞으로 기술 4점까지 만들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만큼 일이 커질 거라는 얘기겠지.

“그래.”

해야겠다, 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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