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67화 (67/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67)

첫 번째로 만난 자들은 이제 노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부부였다.

그들은 지역 청년 신문을 창간하겠다는 우리의 말에 격한 응원을 보내며 열정적으로 질문에 답해 주었다.

나는 건물을 나와 또다시 마차를 잡아타며 물었다.

―“어때?”

―“글쎄, 범인은 다음인 것 같은데? 아빈 아스만, 겔다 아스만 이 둘 말이야.”

플레로마로 여겨지는 단서를 찾지 못했나 보네.

우리야 이쪽이 플레로마든 다음이 플레로마든 상관없지.

우리는 다음 집 앞에서 내려, 또다시 문을 두드렸다.

“아, 어서 오세요.”

키가 크고 비쩍 마른 한 노인이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이쪽도 나이대는 비슷했다. 아까와의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남매라는 점이다.

아쉽게도 소설에서는 두 플레로마 간의 관계가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엘리아스가 둘의 관계가 무엇인지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성씨’ 놈들이라고만 칭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어깨에 숄을 두른 자가 한 명 더 앉아 있었다. 조사한 바로는 이쪽이 여동생이다.

분명 오빠와 나이대가 비슷한데도, 건강이 좋지 않은지 기껏 해 봐야 6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오빠와 달리 90살은 되어 보였다.

나르케가 그 안으로 들어서며 신력으로 내게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그에게 눈길을 주자, 나르케가 말을 이었다.

―“전혀 낌새가 안 보여.”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게, 네 추측이 틀려 보이지는 않았어. 분명히… 나도 이 둘 중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르케의 얼굴에 혼란이 스쳐 갔다.

이렇게 되면, 그의 통찰 능력이 틀렸거나….

소설과의 시간 차이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소설과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거나.

―“일단 시작하자. 대화해 보면 뭐라도 짚일지도 모르지.”

―“…그래.”

영 아닌 듯했지만, 나르케는 자리에 앉았다.

뭐가 어쨌든, 여기까지 들어와서 다시 ‘안 하겠습니다’하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화를 더 자세히 끌어내 나르케가 판단하기 쉽게 만들어 봐야겠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는 비밀경찰과 정부 당국의 언론 검열을 규탄해 청년새언론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펠릭스 바이첼이라고 합니다.”

나르케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으나 내가 그의 팔꿈치를 툭 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미하엘 슐츠입니다.”

사실, 놈은 첫 번째 팀에서도 웃었다.

나와서 해명을 들어 보니 내가 너무 행색에 맞는 말을 해서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키 큰 노인이 웃으며 넌지시 물었다.

“위험한 건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사실 저희는 사회안전망의 작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저희의 관심사가 종교나 정치와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이유로 곤경에 빠지실 일은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약간 헛소리였으나, 다행히 그들은 가볍게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여기 하이리겐지 지역의 보육원에 오랜 기간 후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계기가 있을까요?”

“이제 곧 10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보다시피 우리는 서로를 제외하고는 남은 가족이 없습니다. 시기를 잘 타 사업은 성공했지만, 가족이 전부 죽은 뒤라 이 돈을 쓸 곳이 없더군요.”

―“전쟁이랑 전염병.”

나르케가 능력을 써서 알아낸 바를 내게 전했다.

때마침 노인이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가족은 대부분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마법의학자를 부를 돈이 없었는데, 우습게도 모두 떠난 뒤에야 마법사를 수십 번은 부를 수 있는 돈이 생기지 뭡니까. 그래서 그 뒤부터는 의학 쪽으로 빈민가 아이들을 지원해 오다, 천천히 범위를 넓혀 보육원으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그간 많이 고통스러우셨을 텐데, 이렇게 일어나셔서 뜻깊은 일을 해 주시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아닙니다. 잘 자라 주는 아이들 덕분에 저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지요.”

나는 그와 대화하며 보육원의 아이들 중 마법의 재능을 가진 자가 있었는지, 마법의학의 수혜를 받은 아이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등 마법 쪽으로 주제를 옮겨 갔다.

대화를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 무렵, 나는 본격적으로 나르케가 능력을 쓸 수 있게 조금 더 민감한 주제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마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스로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순간 두 노인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비마법사들에게 있어 마법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은 좋지 않게 들릴 수 있다.

‘어떻게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피지배 계급인 비마법사들이 지배 계급인 마법사들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기는 어렵지.’

누구는 당장 오늘 먹을 것이 있네 없네 하는데 누구는 인간을 초월해 신의 곁에 서겠다고 그 값비싼 마력을 머리색 바꾸는 데에 쓰는 걸 보면 웃음만 날 것이다.

마력이 돈이 되어 버린 사회에서, 그들이 계급을 타파하고 마력을 가지는 방법은 플레로마에 몸담는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부활 실험에서 실패하고 죽으니, 사실상 답이 없는 셈이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저는 종종 제가 마법사였다면 좋았을 텐데, 생각할 때가 있어서요. 특히 프로이센 땅에서는 신교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 공공마법의학 보장 분야에서 차별이 있지 않습니까.”

노인은 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손뼉을 쳤다.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군요! 그래요. 나도 종종 그치들이 뭔 짓거리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뜻이 같군요.”

나는 마법사지만….

어쨌든 국가가 공적 부문에서 종교를 이유로 국민을 차별하는 것은 현대 한국 정서상 상당히 놀라웠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그와 뜻이 같기는 하다.

20년 넘게 현실에서 살아온 만큼, 내 사고 방식이 마법사보다는 비마법사에 가까운 것도 사실이고.

“젊었을 적에는 마법사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내가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에 집착하면 내가 가질 수 있었던 행복도 놓치게 되지요.”

나르케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서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은 듯했다.

나는 미소를 짓고 그의 동생에게도 물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도 같은 의견이십니까?”

“그래요. 나도 같습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나르케를 위해 던진 질문이었지만, 이 말은 내게 있어 진심이었다. 비록 내가 마법사에, 귀족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자리에 있다고는 해도 말이다.

유독 늙어 보이는 노인이 잔뜩 떨리는 손을 맞잡고 힘겹게 말을 이어 나갔다.

“젊은이는 우리 세상이 불합리하게 흘러가는 걸 벌써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군요. 그건 틀리지 않았어요. 제대로 본 겁니다. 다른 능력 하나 없이 마법을 쓸 줄 아는 것만으로 쉽게 공직에 오르고, 그들이 여태 겪지 않았고 앞으로도 겪지 않을 고통을, 그들의 상상으로는 영영 닿지 못할 삶을 이해하지 못해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자주 봐 왔을 겁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나는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내 남편은 마법사들이 일으킨 전쟁에 끌려가 죽었습니다. 내 아이들은 전부 그 해 시장이었던 마법사가 길거리 미관 유지 비용을 위해 공공마법의학 예산을 삭감한 후 치료받지 못해 죽었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미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 것 같습니까?”

“…….”

나는 대답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가 내 눈을 꿰뚫듯 바라보더니 또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우리 그대로 온전하다는 걸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쯤 하면 됐어. 루카스.”

나르케의 능력을 통해서도 그에게서 플레로마의 징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듣지 않아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마법사가 되지 않아도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과연 플레로마의 꾐에 넘어갈 자들일까.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간 내어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뭘요. 덕분에 재미있었습니다.”

키가 큰 노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를 배웅했다.

우리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마차를 잡아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아무리 봐도 이쪽은 플레로마가 아니야.’

물론, 그건 첫 번째로 방문했던 집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보자. 왜 차이가 생겼는지.’

가장 유력한 가설은,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는 가설이다.

소설에서 일이 일어났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반년에서 일 년 후다.

설마 소설에서 무고한 자를 잡아 플레로마로 몰아간 것은 아닐 테고.

‘그사이에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났어.’

하지만 저들 중 플레로마가 없다고 해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지금 플레로마와 관련한 부분은 소설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엘리아스는 변하지 않았다. 그걸로 모자라 그가 1년이나 일찍 알아챌 만큼 실종자가 이 지역에 몰려 있었지.

엘리아스를 행동하게 하는 요인은 소설이나 여기나 그대로라는 말이다.

즉, 이 일에 관여된 플레로마는 셋 이상이었다.

소설에서 전부 잡아내지 못했을 뿐.

나는 창의 커튼을 전부 닫고 가방에서 후원자 명단을 꺼내 나르케에게 건넸다.

나르케가 명단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네 추측은 맞았다고.”

그 뒤, 시간이 남는 김에 명단에 있던 다른 유력 후보를 찾아가 보았지만, 플레로마에 몸담은 자는 없었다.

그리고 이틀 뒤, 수요일이 되어 우리는 왜 서로의 예측이 맞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수도 북부 하이리겐지서 마차 전복 사고 발생… 탑승자 전원 사망]

나르케와 나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

하이리겐지는 월요일에 방문했던 지역이고, 보육원이 있던 곳이다. 우리가 만난 후원자들도 전부 이곳 주민이었다.

그리고 기사 밑에 쓰인 사망자 이름은….

아빈 아스만과 겔다 아스만, 이틀 전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 다시 하이리겐지로 향했다.

그 집 앞으로 가 보았으나, 집 안을 정리하는 자들 외에는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사고로부터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어김없이 나르케를 데리고 그 집으로 찾아갔다.

똑똑―

“계세요.”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웃 주민들은 이제 나와 나르케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늙은 부자의 재산을 가로채고자 하는 자로 여겨졌겠지. 안 들어도 뻔하다.

나는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설상가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차는 폭우에 의해 미끄러져 뒤집혔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먹구름이 걷히지 않았나 보다.

‘소설 전개가 아직 맞다면….’

이건 시작이다.

아니, 모든 일이 아직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의 순간을 내가 목격한 것이다.

덜컹―

“누구세요?”

정말 열릴 줄은 몰랐기에,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집 안에 있던 자는 처음 보는 젊은 여성이었다.

‘…아니, 처음 보는 게 맞나.’

어딘가, 전에 보았던 그 노인과 닮았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펠릭스 바이첼입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어디서 오신 분이죠?”

“새로 창간을 준비하는 지역신문입니다. 필요하시다면 확인해 보세요.”

나는 며칠 전 급조했던 명함을 내밀었다.

“청년새언론? 그래요. 여긴 어쩐 일이시죠?”

“아스만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안에 계시나요?”

“어떤 아스만?”

그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피어오르던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심박이 빨라지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는 딱 한 명의 이름만 대 보자.

“겔다 아스만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문득 든 생각에 다시 입을 열었다.

분명 겔다 아스만은 자식을 전부 잃었다고 했다.

동시에 영생이니, 부활이니 하는 플레로마의 역겨운 구호가 머릿속을 잔뜩 헤집었다.

“선생님께서는 자녀분이십니까?”

나는 그의 표정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내 말에 젊은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 얼굴에 호기심 어린 미소가 번졌다.

“겔다 아스만은 전데요. 무슨 용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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