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69화 (69/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69)

“…뭐….”

“어?”

레오와 엘리아스가 동시에 웃음기를 지우고 얼이 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 보니 나르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통찰 쓰기 전에 내가 말했나 보네….’

“어어어어어어어?!”

엘리아스가 벌떡 일어나려다 레오가 붙드는 바람에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으며 소리쳤다.

“그걸 네가 왜 먹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루카스.”

“말 그대로야.”

“그게 무슨 효과를 내는지는 알지?”

레오가 한마디씩 힘주어 물었다.

“모르고 마시겠다고 했을까?”

“지금 플레로마를 사랑해 보겠다는 말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데, 그래, 너라면 분명히 그렇게 해서 겔다 아스만의 계획을 알아 오겠지.”

“정확히 파악했네.”

나는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겔다 아스만은 언제든지 플레로마의 세계로 갈 수 있으니, 그쪽의 몸에 거는 마법은 위험이 커. 대신 내게 건다면 아무 문제도 없지. 마침 감정을 읽을 수 있다고 했으니, 그자가 나를 손안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경계를 죽여 놓으면 일이 수월해져.”

“…전부터 살신성인 정신이 아주 뛰어나네.”

레오가 한쪽 눈을 구기며 빈정거렸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놈은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부터 보인다. 사실 나였어도 누군가 이런 발언을 한다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내게는 단순한 저지가 아니라, 저지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반대할 거라면 계획의 어디가 문제인지 정확히 짚어 줬으면 하는데.”

“네가 지난 10년 동안 외부에 나오지 않아서 경험이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그 플레로마를 사랑하고 나면 그자를 배신하고 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그 계획을 돕지 않을 자신이 있느냔 말이야.”

있다.

놈은 루카를 생각하니 경험이 없다고 여기겠지만, 나는 여태까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잊을 만큼 분별없이 군 적이 없었다.

레오가 내 표정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있다고 말하겠지. 다들 그렇게 말해. 그리고 다들 어디서 나사 하나 빼고들 돌아와.”

그건… 여태 다른 이들을 지켜본 바로 확실히 그렇긴 하다.

제삼자가 볼 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상당히 많다.

친구들이 사랑 문제로 술 처먹고 새벽에 전화하는 게 진부해 빠진 헛소리인 줄 알았더니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났다.

평생에 걸쳐 이해해 보려 했지만 단 한 번도 이해에 성공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성격이 도움이 될 때가 왔다.

다른 자들에 비해 경계를 칼같이 지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해독제가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지? 일이 끝나면 해독하면 돼.”

“다들 안 먹으려고 하니까 문제지~”

엘리아스가 웃으며 턱을 괴었다.

레오가 동조했다.

“그래. 그런 감정도 중독이라고. 처음엔 몰라도, 계속 약을 먹다 보면 관성적으로 그런 감정과 그런 상황에 자기 자신을 몰아넣어.”

중독이라.

새로운 관점이다.

그러니까 약을 마신 자들이 해독제를 주려 해도 피한다는 말인데… 얼마나 세게 만든 걸 마셨는지 궁금해진다.

“그래,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네.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어. 너희가 있으니까.”

“우리?”

엘리아스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내가 안 먹으려고 하면 너희가 붙잡아서라도 먹여 줘. 부탁한다.”

레오가 탐탁잖은 듯 미간을 좁히며 턱을 쓸다, 고개를 끄덕였다.

“흠…. 우리 셋이면 충분히 할 수 있겠네.”

“…….”

가만 보니 이놈이 나보다 더하네.

이게 뇌를 빼는 약도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이성을 잃는다고 셋이서 제압할 생각까지 하는 거냐….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몸싸움 수준이 아니고 마법이 동원될 거라 여기는 듯했다. 몸싸움 정도라면 애초에 루카는 여기 있는 셋 중 그 누구도 이길 수가 없다.

그때 엘리아스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야, 근데 이거 재밌겠다. 맨날 얼굴 싹 굳히고 수업 듣는 것만 봤는데,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데?”

“그러게, 나도.”

“너희들이 직접 거기까지 가야 보지….”

레오가 이마를 손에 파묻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가져올게.”

“고맙다.”

“대신, 약속해.”

내가 그를 빤히 보자 레오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졌을 때를 말하는 거야. 우리가 널 적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쓴다고 해도, 널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아 줘.”

“어떤 방법이 뭔데.”

“안 듣는 게 좋을 것 같아, 루카스.”

나르케가 웃으며 말했다.

“…….”

저놈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 안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 * *

레오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랑에 휘둘려서 동료를 배신하고 적의 편에 선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가능성이다.

‘그렇게까지 걱정 안 해도 플레로마 쪽에 넘어갈 생각은 없는데.’

마법 능력치 면에서 적에게 넘어가는 순간 골치 아파질 테니 더더욱 문젯거리로 보이겠지.

“와, 패키지 멋지네.”

주말 낮이지만, 우리는 소포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였다.

엘리아스가 금장이 둘러진 어두운 나무 상자를 보며 감탄했다.

레오가 여전히 께름칙하다는 얼굴로 상자의 잠금장치를 열었다.

안에는 노란 액체가 담겨 있는 병이 열 개 들어 있었다.

레오가 가장 왼쪽 병을 꺼내 내게 건넸다.

“자. 한번 시험해 봐. 제일 약한 약이니까, 해독도 쉬울 거야.”

사용법은 간단하다. 그냥 마시고 사람 눈을 보면 된다.

누구한테 시험해 볼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교수님께 갔다 온다. 5분 뒤에 다시 여기서 보자.”

“뭐? 같이 가!”

엘리아스가 외쳤다.

나는 곧장 워프해 기숙사로 가, 교재를 들고 밖으로 향했다.

언제 왔는지 엘리아스가 또다시 목발을 마법으로 띄우고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같이 가야지, 루카. 이 재밌는 걸 너 혼자 보려고 그래?”

“목발부터 제대로 짚어. 빨리 나아야지.”

“그래, 그런데….”

나는 담임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엘리아스가 피식거리며 말했다.

“이런 취향? 60대는 아무리 그래도 좀….”

“아니.”

나는 엘리아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시험이다.

학생을 상대로 하자니 지금 당장 불러오기에 적합한 친구가 없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하자니 다짜고짜 붙잡으면 약을 먹고 효과를 확인할 시간이 부족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대상을 골랐다.

특히 보기만 해도 졸음이 몰려오는 상대이기 때문에 효과를 확인하기 쉬울 것 같았다.

교수님께는 여러 의미로 죄송하지만, 5분 뒤 바로 해독할 테니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

“들어오세요.”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뒤에 학생은?”

“아, 저는 같이 들으러 왔습니다.”

엘리아스가 히죽거리며 답했다.

아무리 봐도 공부하러 온 놈은 아니지만, 교수는 그러려니 하고 내 책에 손짓했다.

“어디 보세요.”

나는 교수에게 책을 넘기고 물었다.

“마법의 총효용을 미분하면 한계효용이 된다고 배웠는데, 그 계산 과정을 한 번 더 듣고 싶습니다.”

나는 교수가 책을 들여다보는 타이밍에 손에 쥐고 있던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삼켰다. 아직은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렇죠. 이 부분은 많이 들을수록 이해가 쉽죠. 자, 보면 여기 델타 X라고 적힌 부분이 있죠. 여기서 델타가 변화량이라는 건 기억하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교수는 아직 교재를 가리키고 있을 뿐, 나를 보지는 않았다.

엘리아스가 뒤에서 소리 없이 웃으며 상황을 보고 있었다.

“효용함수를 봅시다. 가로축은 마법, 세로축은 효용이지요. 한계효용은 마법 소비량을 한 단위 늘렸을 때 생기는 효용의 증가분입니다. 자, 우리가 여기서 델타 X만큼 소비를 늘린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면 그래프에서 세로축으로도 증가량이 생기지요. 이게 델타 U입니다.”

그때, 교수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지요?”

* * *

놀랍게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래도 내용 이해는 잘됐네.’

그야 설명을 들었으니 당연하지. 역시 공부는 반복할수록 좋은 효과가 난다.

다시 모임 장소로 돌아가니, 나르케와 함께 나를 기다리던 레오가 곧바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

“평소랑 똑같다.”

“와, 정말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냐~”

엘리아스가 따라 워프해 오며 웃었다.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왼쪽에서 세 번째에 놓인 약병을 꺼냈다.

“사람마다 다르니 어쩔 수 없지. 그래서 테스트해 보고 가야 해. 너는 뭐… 1단계로는 안 될 것 같았어.”

“그런 걸 그냥 보고 아네.”

“성격이 어디 가진 않으니까.”

레오가 내게 약병을 건넸다.

그 뒤, 시행착오 끝에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려면 5단계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 혹시 기계?”

“뭔 소리야….”

나는 엘리아스의 헛소리에 가볍게 웃고 6단계 약병을 주머니에 넣었다.

10단계까지 있는 걸 보면, 5단계에서 슬슬 약발이 드는 건 그냥 평균적인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마지막으로 안경을 쓰고, 거울을 보며 전에 기록해 두었던 외형 공식을 머릿속에서 완성했다.

금세 머리칼이 부드럽게 말리고 붉게 변했다.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주근깨도 다시 피부에 살아났다.

그때, 엘리아스가 내 옷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테스트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너한텐 약할 것 같은데.”

“아니, 감정을 읽을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지. 뜬금없이 뛰어넘는 것보다는 정도를 지켜서 올리는 게 나을 거야.”

내내 가만히 앉아 지켜보던 나르케가 고개를 저었다.

“루카스, 잠깐만. 6단계고 7단계고 상관은 없는데, 이제 옷은 바꾸자. 안경도 깨끗한 걸로 바꾸고.”

* * *

아직 약을 마시기 전이라, 아무 감정도 없었기 때문에 호감이 있는 자를 보러 갈 때는 다들 조금이라도 겉모습을 살피고 간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변장의 기능에만 집중하고 있던 탓이었다.

그 때문에 엘리아스에게 기계냐는 소리를 한 번 더 들었는데, 약간 억울한 점이 있었다. 애초에 감정이 없으니까 약을 동원하지, 있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어디까지나 내가 처리해야 할 적이야.’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좋은 감정이 생기기가 더더욱 어렵지.

겔다 아스만에게는 미리 편지를 보내 약속을 잡았다.

나는 초인종을 누르고, 헛기침하며 장갑을 입가로 가져다 대 6단계짜리 약을 마셨다.

‘다른 놈이 나타나면 안 되는데.’

아직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사람의 눈을 보는 순간 효과가 나타나는 걸 이미 경험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 해독제를 가져왔으니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주위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자, 문이 열렸다.

“오셨네요.”

다행히, 내 앞에 나타난 자는 겔다 아스만이었다.

아스만이 웃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

“바이첼 씨?”

“…아, 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기쁘군요. 시간 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뭘요. 들어가죠.”

6단계는 좀 세네.

전혀 고려 대상에 없는 상대에게 이런 감정이 들다니, 역시 기술이 좋다.

나는 겔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주위를 바라봤다.

우선, 손님이 드나들 일이 적은 2층과 3층은 몰라도, 1층은 이전과 같이 삭막하다.

아니, 새로운 것이 하나 생겼다. 복도 건너편에 보이는 방에는 겔다 아스만의 이름으로 된 학위증이 액자에 걸려 있다.

‘아빈 아스만은 다시 태어난 김에 이름을 바꿨나 보군.’

그 옆에 걸린 학위증에는 에릭 아스만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플레로마가 준비해 주었겠지. 어떤 신고가 들어와도 문제없게끔 최신 시간대에 맞추어 지난 25년의 인생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을 테니까.

그들을 제대로 활용할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구경은 이쯤 하자.’

너무 샅샅이 살폈다가는 의심만 산다.

내가 다시 시선을 돌려 안쪽의 별 볼 것 없는 소파 쪽을 보고 있을 때, 겔다 아스만이 차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전에 오신 친구분은 안 오셨네요.”

“일이 있어서요.”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겔다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나를 뜯어보고 있었다.

“그래요? 정말요?”

“…글쎄요. 어떨 것 같아요?”

나는 그와 같이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저 표정과 말을 보니, 상대방은 내 상태를 안 게 분명하다. 내가 언론 사업 때문에 여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생각보다 빠르네.’

나는 이렇게 급하게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능력 써서 알아챘다 해도 당연히 모른 척할 줄 알았지.

어쨌든, 레오는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조작한 화학 반응 탓에 얼굴에 오르는 미세한 열기와 달리, 내 이성은 여전히 잘만 돌아가고 있다.

물론 10단계까지 높인다면… 조금 자신이 없기는 하다.

다행히, 겔다는 웃기만 하더니 내가 여기 온 목적을 다시 짚어 주었다.

“인터뷰 시작합시다. 7시까지 하기로 했죠? 40분밖에 안 남았어요.”

“그래요.”

얘기 잘 꺼냈다.

나는 지금부터 상대방이 아는 내 감정을 방패 삼아 플레로마가 만들어 준 정보를 알아낼 것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플레로마의 계획을 입수하기 위해서는 일단 겔다 아스만과 친밀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어떤 놈인지는 알아야지.

그렇게, 나는 한참 겔다 아스만에게 호구조사나 다름없는 질문을 했다.

6시 58분이 되자 겔다가 물었다.

“자, 이걸로 질문은 끝인가요?”

“아니요.”

겔다가 또 뭐가 있냐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시간 되시나요?”

이런 젠장할…. 내 입으로 전혀 생각지 않던 자에게 이런 말을 내뱉어야 하다니… 따위의 생각과 짙은 현타가 몰려왔지만, 약발은 아주 훌륭했다.

금세 모든 자괴감이 날아가고 심박만 빨라지고 있었다.

‘이런 용도로 쓸 수 있군.’

기억해 둬야겠다.

겔다 아스만이 웃음을 터트리며 되물었다.

“지금부터요? 분명히 인터뷰는 7시까지라고 하셨는데요.”

“그랬지요. 하지만 이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언론 사업에 관한 건 아니지요?”

“그럴 리가요.”

내 말에 겔다가 웃음을 머금고 대답 없이 고개를 기울였다.

“수도에는 일주일 전에 올라왔다고 하셨죠. 여기서 마차로 30분 거리에 극장이 있는데, 아시나요?”

“그렇군요. 다음에 가 봐야겠네요.”

겔다가 뻔뻔함이 녹은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줄곧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다 치우고 기숙사로 가고픈 충동을 누르고 미소를 띠며 물었다.

“아뇨. 실러의 극이 한 시간 뒤에 올라가는데, 괜찮으시다면 제게 함께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 * *

나는 그날 자정이 다 되어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내 방에 죽치고 있던 파이에게 이끌려 다시 모임 장소로 워프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나 하나 부르려고 이 시간에 파이 안 재우고 깨워 놓고 있었던 거야?”

“그래! 해독제 먹어야지!”

그게 있었지.

나는 레오가 꺼내 넘기는 투명한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뭐가 어떻게 돼, 아직 시작인데.”

“다음 약속 잡았냐고.”

나는 안경을 벗고 눈을 누르며 답했다.

“잡았지, 뭘 물어.”

“이야, 주근깨랑 안경으로 가렸는데도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동생은 어디 안 가네~.”

“너 황제 칭찬하면 기분 좋아?”

“아, 이런.”

엘리아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오늘치 기력을 전부 소진해 의자에 녹듯이 앉았다.

약효는 약효고, 플레로마를 앞에 두고 있으니 경계심을 줄일 수가 없었다.

‘어쨌든 상대는 긴장한 것 정도로 생각할 테니 문제없고.’

“내일 또 만나기로 했어. 내일은 7단계로 가져갈게.”

“또 기계 됐나 보네….”

“아니야.”

나는 헛웃음을 치고 말을 이었다.

“슬슬 속도 좀 내야지. 나도 플레로마가 되어 봐야 하니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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