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70)
숨 막히는 일대 다수의 눈싸움이 이어졌다.
엘리아스가 가장 먼저 정적을 깨고 웃음 섞인 외침을 내뱉었다.
“이게 또 뭔 소리야?!”
“…우와.”
나르케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의자를 뒤로 기울이며 감탄했다. 계속 통찰을 쓰기도 전에 내가 어이없는 말을 했나 보다.
“…루카스.”
레오는 나를 부르고는 한참 말없이 머리만 싸맸다.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이게 제일 무섭다.
나는 손을 펼치고 입을 열었다.
“제대로 설명할게. 진짜 플레로마가 되겠다는 게 아니고, 플레로마 신도 행세를 할 거야.”
“…어쨌든 지금 이것보다도 더 깊이 들어가겠다는 말이잖아. 죽으러 가겠다는 거야? 물론 아니겠지. 하지만….”
레오가 여전히 이마를 손에 묻은 채 숨을 들이마셨다.
“루카스. 네게는 조금 과민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저번과 같은 상황을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아.”
“그래~ 솔직히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속 타는 일이긴 하지.”
엘리아스가 레오의 말에 동조하며 웃음 지었다.
스트라우치 때를 말하는 거겠지.
사건 직후 축제가 있어 놈의 긴장이 조금 풀리나 했더니, 그즈음에 또다시 바이에른 마법사가 떼로 플레로마에게 공격당했으니 많이 지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건 때문에 놈도 플레로마에 대해서 물러나는 걸 원치 않는다.
지금도 내가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황당해하는 것뿐, 무작정 안 된다는 둥 거부하지는 않았다. 놈은 어디까지나 계획의 위험성에 대해서만 내게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왜 또다시 적진에 들어가야 하는지 납득시키는 수밖에.
“그래, 미안하다. 하지만 나한테도 계획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
레오가 반응 없이 나를 바라보았기에,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첫째로, 플레로마 신도 행세를 하지 않는다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도 한정되어 있어.”
뭘 믿고 플레로마도 아닌 놈한테 계획을 술술 말하겠나.
내가 겔다 아스만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려면 감정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처지까지 그와 비슷해져야 한다.
더 말하지 않아도 이해했는지,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로, 겔다 아스만이 플레로마가 된 데에는 플레로마의 계획이 관여되어 있어. 하이리겐지에서 꾸준히 늘었던 실종자들은 아스만이 플레로마가 되기 전부터 일어났던 일이지. 그 납치를 좀 더 원활히 하기 위해 그자가 타깃이 된 거고.”
“그래.”
“결국 우리의 적은 플레로마의 도구인 겔다 아스만뿐 아니라, 하이리겐지에서 인력 수급을 하려는 플레로마 측이야.”
그리고….
과연 하이리겐지 뿐일까?
놈들이 벌리는 판의 크기가 내가 얻는 이득의 크기와 비례한다.
전에, 플레로마는 최소 셋일 거라고 했지.
소설에서 엘리아스는 물밑까지 잡아낸 게 아니라 표면만을 잡았을 뿐이다.
나는 그 뿌리를 잡아, 놈들의 계획이 어디까지 뻗쳐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래. 네 말을 들으니 너는 플레로마 측 세계에 갔다 올 생각도 있는가 보네. 정말이지, 네 계획은 항상 무모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레오가 입술을 꾹 다물더니 숨을 푹 내쉬고 나를 바라봤다.
“또 그만큼 효과가 있었지. 그래서,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어?”
* * *
오늘로 겔다 아스만을 만나러 온 지 5일째다.
다행히 매번, 약을 먹고 처음 마주한 자는 겔다 아스만이었다.
아빈 아스만, 아니, 에릭 아스만은 정말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지 통 집에 박혀 있질 않았다.
‘다행이지.’
나는 오늘도 아스만의 집에 와, 바깥을 내다보았다.
레오가 내게 알려 주었던 사복 경찰이 건너편 카페에서 신문을 팔락이며 가끔씩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아스는 기계 발언을 취소해야 할 것이다.
약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났는지, 집 앞에 죽치고 있는 사복 경찰에 대해 순간 부정적인 마음이 들었다.
‘이거 레오가 왜 경계했는지 알겠는데.’
물론 나는 느끼자마자 곧바로 거부감을 느끼고 그 감정에서 빠져나왔지만, 순간적으로 그런 감정이 든 것만으로도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그때, 뒤에서 겔다 아스만이 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오늘은 집에서 좀 쉬어야겠네요. 그쵸?”
“많이 피곤하셨군요.”
“요즘 계속 밖에 돌아다녔으니까요.”
수도 소개한다고 며칠을 데리고 돌아다녔으니, 힘들 만도 하지.
어쨌든 슬슬 나도 말을 꺼낼 때가 왔으니 문제없다. 어차피 오늘은 날도 흐리고, 또 그날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다.
‘조금 이르긴 해도….’
어쩔 수 없다. 늑장 부릴 시간이 없으니까.
내가 말없이 미소짓자 겔다가 내게 물었다.
“낮에는 뭘 하셨어요?”
“아스만 씨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을 찾아봤죠. 물론 이렇게 집에 있는 것도 저는 좋지만요.”
나는 자리에 앉아 웃으며 답했다.
‘돌겠네….’
이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니?
매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현타가 밀려오는데, 그래도 다행히 타이밍 좋게 약발이 올라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지는 않을 수 있다.
겔다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 그런 거 말고요.”
“정말인데요.”
나는 아니라는 걸 안다는 얼굴로 웃는 겔다를 보고 따라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남는 시간에는 동향 분석을 했습니다. 계획해 둔 방향성을 그대로 밀고 가야 하나, 싶어서요.”
“열심이군요. 신문은 언제 발행할 생각인가요?”
“동업하는 친구들끼리 의견 차이가 있어서 계속 늦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내년 상반기가 지나기 전까지는 마무리 지을 겁니다.”
마무리는 뭔 마무리, 평생 발행할 일 없다.
상반기는 고사하고 12월이 다 지나기 전까지 이 관계를 끌고 갈 일은 없으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나는 몸을 기울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아스만 씨는요?”
“글쎄요. 오늘부터는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바이첼 씨께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네요.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그래, 말 잘했다. 안 들어도 플레로마 일이지.
이쯤에서 한번 짚고 가자. 겔다 아스만은 나와의 관계를 어디까지나 흥미로 유지하고 있다.
나는 겔다의 눈을 보며 호감도 창을 불러냈다.
겔다 아스만
호감도 +7*
물론 흥미치고는 좀 높긴 하지만, 지금의 나와는 감정의 종류가 달라 보인다.
처음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만났을 뿐, 약을 먹은 나처럼 진지한 감정을 가지지는 않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하기도 하고….
‘저 표정만 봐도 그렇지.’
지금도 겔다는 고개를 비스듬히 틀고 재미있다는 얼굴로 내 반응을 관찰하고 있다.
오늘은 8단계 약을 마시고 왔으니 어제와의 차이를 느꼈을 것이다.
개인적이라 얘기하기 힘든 주제라면서 굳이 말로 꺼낸 것도 내 반응을 보기 위해서겠지.
반응 감상할 거면 대체 왜 만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 추측에는 능력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음껏 능력을 써 보는 과정인 것 같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무슨 태도를 취하든, 지금 나는 감정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고, 상대도 그걸 안다는 점이다.
‘잘됐어.’
계획한 대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을 중의 을로 떨어지고 있다.
이래서 이런 관계에 신물이 나는 것이지만, 경계심을 박살 내기에는 더없이 최적인 관계, 최적의 자리다.
이제 토대는 제대로 깔렸으니, 겔다 아스만의 안에서 만들어진 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만 남았다.
“개인적인 일?”
“그래요.”
“아직 제가 그걸 알기에는 부족한가요?”
“…….”
그 말에 상대의 입꼬리가 억눌린 채로 살짝 올라갔다.
“아마도요.”
그래, 당연히 그렇게 나오겠지. 플레로마 일을 누구한테 함부로 말하겠냐.
하지만 나는 입장이 다르다. 주제가 나왔으니 오늘 내로 도출해 보자고. 이 부적절한 관계도 오래 끌고 싶지 않으니까.
“아쉽네요. 언제쯤 가능할까요?”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네요.”
“그때까지 아스만 씨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어도 되겠지요?”
상대방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래요. 그건 바이첼 씨에게 달려 있을 것 같군요.”
“아,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는 이미 들은 이상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흐음….”
겔다가 웃음을 참으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안 봐도 뻔하다. 떼쓰는 것쯤으로 보이겠지.
뭐가 됐든 의도한 바이니 상관없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멍청한 소리나 하는 놈으로 봐주길 바란다.
왜냐면….
이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할 테니까.
나는 빠르게 특성 창을 불러냈다.
재시도 Lv. 1
― 〈Chapter 5〉 내 직전 체크 포인트로 이동
― 1회 이용 2.0 포인트
― 다음 레벨까지 2.0 포인트
* 보유 포인트: 5.0 포인트
* 다음 포인트 획득까지 행운 0.25점
‘두 번 쓸 수 있네.’
충분하다.
틀린 선택이면 그 즉시 돌린다.
나는 그저 웃기만 하는 겔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죠. 처음에는 조그만 세계를, 다음에는 큰 세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반응에 놀라움을 느끼던 중, 겔다가 재빨리 표정을 관리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갑자기요?”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여기까지, 아니… 아스만 씨라면 이보다 더한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상대의 얼굴이 다시 굳어 갔다.
경계심 올라가는 소리 들린다.
‘그래야지.’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전에, 플레로마는 성서가 아닌 다른 것으로 주문을 만든다고 했지.
사람을 플레로마로 만드는 결정적인 마법에 파우스트의 대사를 쓸 정도면, 다른 데에도 분명 그 작품을 인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문으로 쓰일 법한 대사를 뽑아 그대로 읊었는데….
‘넘어왔네.’
나는 분명히 ‘플레로마냐’고 묻지 않고 ‘여기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본인이 먼저 찔려서 이렇게 굴면 어떡하나. 모르는 척만 해도 먹히는 부분인데.
나는 굳어 가는 겔다의 얼굴을 한껏 구경하며 온화한 미소를 만들었다. 약효 덕에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놀랍게도 상대의 얼굴만 봐도 자연스럽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겔다의 손을 잡아 겹쳤다. 다행히 반감은 없는지,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저는 어떤 것이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입장에 있으니까요.”
“…….”
“아스만 씨께 민감한 이야기를 꺼낸 걸 압니다. 무례했다면 죄송하지만….”
나는 상대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돕고 싶어요. 안 되나요?”
가서… 엘리아스한테 술 있냐고 물어봐야겠다.
엘리아스가 기계냐고 했던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는 9단계를 마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말해라.’
나는 딱딱히 굳은 겔다의 얼굴에 이제는 혼란이 스미는 것을 보며 입을 뗐다.
이제 들을 차례다.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플레로마에 잡아 넘길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