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71화 (71/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71)

‘…….’

겔다 아스만은 제 손을 잡은 자의 눈을 말없이 바라봤다.

돕고 싶다고.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나?

당장 소리소문없이 살해당해도 모를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으면서, 상대방의 얼굴에는 그런 종류의 망설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아니요, 알 겁니다.”

“마지막 기회예요.”

“그런가요?”

아스만이 그의 연하늘색 눈동자를 바라봤다.

상대는 흔들림 하나 없이 담담하게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아스만은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생각에 잠겼다.

‘읽기 민망할 정도네.’

어떻게든 조급하지 않은 척을 하고 있지만 능력으로 읽히는 감정은 전혀 여유롭지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저 평온한 척이 우습게까지 느껴져, 언젠가 평정을 깨부숴 본심이 겉으로 드러나게끔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감정 하나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우선 나부터 진정하고, 생각해 보자.’

펠릭스 바이첼은 플레로마여야만 알 수 있는 말을 내뱉었다.

감정이나 상황 등을 생각했을 때, 분명 같은 플레로마 신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플레로마 중에서도 1세대라면, 아무리 감정이 안전장치가 되어 준다고 해도 곤란해진다.

플레로마가 된 시기를 따져 보면 그가 높은 확률로 자신의 우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는?”

“아직 교리 수업을 듣는 중입니다.”

아스만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뻔했다.

교리 수업을 듣는 중이라면, 당연히 평신도다.

아무 능력도 없는 일반인. 플레로마의 축복을 한 번 받아 보고자 번호표를 뽑은 수십만 명 중 하나일 뿐이다.

아스만이 어깨에서 힘을 풀고 의자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내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죠?”

“들은 건 아닙니다. 그저 전에 마법을 쓰고 싶다고 하셨던 게 계속 마음에 걸렸을 뿐이에요.”

“자세히 들려줘요.”

“플레로마가 되면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습니까. 아스만 씨만 꺼리지 않는다면, 플레로마의 힘을 빌려서라도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었어요.”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세례 이야기부터 꺼내시다니, 아스만 씨는 늘 제 예상을 뛰어넘으시는군요.”

“…….”

그렇겠지. 플레로마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스만은 애써 웃음을 지어 표정을 감췄다.

‘…이거, 왜인지 바이첼에게 말려든 느낌인데.’

하지만, 읽히는 감정에서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을까 그와의 대화를 복기하던 아스만이 문득 든 의문에 입을 열었다.

“이 주제는 낮에 무얼 했는지 말하다 나온 이야기였죠. 절 돕겠다는 말이 플레로마가 되도록 돕겠다는 말이라면 앞뒤가 안 맞지 않나요? 저는 철석같이 제가 낮에 했던 일을 돕겠다고 하는 줄 알았는데요.”

“사실 오늘 일을 말해 줄 수 없다고 하시길래, 혹시나 아스만 씨가 저와 같은 길을 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말입니다. 물론, 저는 어떤 분야가 됐든 아스만 씨의 부탁이라면 도울 의향이 있지만요.”

“…….”

아스만은 자신이 말려든 게 맞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진의가 뭐든 상대는 어디까지나 떠본 것일 뿐, 자신이 당황한 티를 내지만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스만은 왜 그러느냐는 듯 웃는 바이첼에게 입꼬리를 올려 답하고 생각에 잠겼다.

‘…잘됐어.’

오히려 같은 집단에 있기에 이득이다.

교단 내부에서의 신분 상승과 생살여탈권은 1세대에게 달려 있다.

바이첼은 그 어떤 위협도 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목숨줄을 넘긴 셈이다.

그러니까….

‘내가 조금 어울린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는 점이, 더없이 아스만의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시험 삼아 하나만 물어볼까.’

아스만이 다시 바이첼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돕겠다고 했죠.”

“네.”

“피를 줄 수 있어요?”

“…….”

내내 여유롭게 웃던 바이첼이 입을 살짝 벌린 채 아스만을 바라봤다.

‘그러겠지.’

2세대는 피를 마시지 않으니, 그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에도 물은 건 그에게 아스만 자신이 1세대라는 것을 알리고, 그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시험이야 그렇다 쳐도, 1세대인 것을 알리지 않는다면 방금 전의 자신이 불안을 느꼈던 것처럼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될 바이첼 역시 배신감을 느낄 터였다.

‘어떻게 나오나 보자.’

이제 막 발을 들인 평신도들은 피에 관한 것에 적응이 되어 있지 않다. 바이첼이 기겁할 것을 생각하니 괜히 씁쓸해졌다.

‘…그렇게 나온다면 정신을 만져서 내 존재를 지워 버려야겠지.’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사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럴 자신이 있느냐 묻는다면, 아스만 스스로도 전혀 자신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행히, 그는 금세 평정을 되찾고 웃음 지었다.

“아직요.”

* * *

“피를 줄 수 있어요?”

세게 나오는 거 봐라.

질문이 조금 뜬금없는 걸 보니 테스트 같은 느낌인데.

내가 어디까지 해 줄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거겠지.

여기서 대답 잘못하면 계획이고 뭐고 전부 없던 일이 된다.

하지만 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피에 마력이 흐르고 있으니, 내가 여태 거짓을 말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적당히 답해 보자.

“아직요.”

“나중에는 된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죠. 제가 마음의 준비만 된다면 말이에요.”

겔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런 것에 마음의 준비까지 하냐는 듯한 웃음이었다.

‘상식은 벌써 갖다 버렸군.’

상식적으로 누가 내 피를 먹겠다는데 맘껏 퍼 드십쇼 할 수 있겠냐? 반쯤 허락해 준 것만으로도 기적적인 일임을 알아야 할 텐데.

‘얘기도 슬슬 끝났겠다, 확인해 보자.’

겔다 아스만

호감도 +7.5*

‘…호감도 올랐네….’

내가 자신을 이겨 먹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걸 알아서 그런가, 확실히 경계가 한 꺼풀 꺾인 모양이다.

그걸 알고서 호감도가 올랐다는 점에서 왜인지 동족의 냄새가 나는데, 어쨌든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애초에 플레로마도 마냥 순수하고 순박한 자를 장기 말로 쓰지는 않을 테니 그다지 놀랍지 않기는 하다.

“그래요.”

내가 호감도 창을 보고 있을 때, 겔다가 결심했는지 말을 꺼냈다.

“이제 알았겠지만 저는 1세대 플레로마예요.”

“그렇군요.”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플레로마가 되면서 저는 마법을 쓸 자격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우리 쪽에 몸담았다면 알겠지만, 어떤 일이든 대가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자격을 얻게 되었다’?

보통 이럴 때는 ‘쓸 수 있게 되었다’ 고 말할 텐데, 미묘하게 둘러 말하는 투다.

아직 비트리올을 쓸 능력이 부여되지는 않은 건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물었다.

“대가?”

“영생과 마법을 얻는 대가죠. 제게 부여된 사명은 새 생명들이 그분의 뜻에 함께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오늘 바이첼 씨에게 말하지 못했던 일이 바로 이거고요.”

아무리 거짓된 감정이 내 이성을 채우고 있다고 해도, 상대가 미친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머리가 아파지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연기를 이어 나갔다.

“사명이라…. 멋지군요. 어떻게 부여된 건가요?”

“새로 태어나는 순간 계시를 받아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죠.”

겔다는 진심으로 뿌듯하다는 듯한 얼굴로 씩 웃었다.

그러니까… ‘한 달 내로 사람 10명 잡아 오기’처럼 조직 내 할당량이 제시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

계시라고 했으니 문서화되어 전달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즉 그에게서 강탈할 수 있는 서류는 없다. 문서로서의 증거를 잡으려면 더 상부로 올라가야 한다.

좋은 정보 고맙다. 전략 한 번 수정해야겠네.

그때, 겔다가 잠시 고민하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내게 물었다.

“안 그래도 내일 일정이 하나 잡혔는데, 같이 가실래요?”

* * *

나는 빗물에 젖은 머리칼을 털며 해독제를 마시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친구들 중 누구도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쏘듯이 내뱉은 물음에 엘리아스가 끝내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몸을 뒤로 젖혀 가며 웃었다.

“하하하하! 야, 너 진짜 10년 동안 집에만 있었던 거 맞아? 난 네가 좀 떨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하게 말하는데?”

“…….”

녹음기는 상황상 스트라우치 때보다 발각 위험이 커서 가지고 다닐 수 없다.

그 대신 감각 전이 마법을 다시 사용했는데, 내가 오늘 했던 말 탓에 저러나 보다.

‘감각’ 전이이기 때문에 저장이나 재녹음은 안 되지만, 나르케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사용해 보려 내린 결정이었다.

나르케는 입을 손바닥으로 누른 채 피식거리고 있었으니 더 볼 것도 없고.

나는 눈을 돌리는 레오를 보며 그를 불렀다.

“레오.”

“…….”

이놈도 들었네.

나름 내가 민망할 것을 생각해 준 건지 혼자 진지한 척을 하고 있는데, 눈을 못 마주치는 데에서 끝났다.

숨기는 게 있는 놈들은 눈을 과할 만큼 자주 맞추거나 아니면 이놈처럼 티 나게 굴지. 이제 보니 약간 웃음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르케에게만 전달했는데, 너희 둘은 어떻게 알고 있지?”

“우리도 겔다 아스만이 뭔 말을 하는지는 들어야 하니까. 직접 듣는 게 확실하지.”

엘리아스가 답했다.

내가 보기엔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같이 들은 것 같은데.

어쨌든, 그들도 어차피 들어야 하는 이야기이니 문제없다. 내가 또 설명해 줄 필요 없으니 말이 빠르겠네.

“들었으면 알지?”

“그래,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레오가 헛기침하며 목을 풀고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 내게 밀었다.

제국신문 맨 뒷장, 구석진 조그만 칸에 실종자 기사가 하나 떠 있었다.

[실종 아동을 찾습니다]

이름: 안나 바우어 (7세)

실종 일자: 12월 4일 오후 3시

실종 지역: 하이리겐지 시민공원

신체 및 착의 특징: 117cm, 19.5kg, 시립보육원 가방 및 명찰

경위: 하이리겐지 보육원 오후 산책 자유 시간 (15시~15시 10분) 중 실종

“벌써 일이 터졌어. 24시간 붙여 뒀던 사복 경찰은 그동안 어떤 낌새도 못 느꼈다고 했고 말이야.”

* * *

그래, 이런 속도였지.

소설에서도 그들은 거침없이 사람을 잡아 넘겼다. 그래서 엘리아스의 눈에 들어온 것이기도 했고.

12월 4일이면 그에게서 플레로마라는 사실을 끌어내기 전, 내가 아스만과 세 번째로 만난 날에 일어난 범죄다.

시기상 손쓸 방법이 없는 범죄였다.

그런데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 왔네요.”

나는 겔다의 손을 잡아 마차에서 내려 주었다.

시립 하이리겐지 보육원.

나는 겔다가 초인종을 누르는 동안, 입구 앞에 달린 문패를 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꺼운 철문이 스르륵 열렸다.

평소 같으면 자잘한 대화라도 나누었겠지만, 오늘은 아무리 약효가 든다고 해도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가 말이 없자 겔다 아스만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분위기가 어둡네요.”

“그렇겠죠.”

네가 사람을 잡아다 넘겼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신원과 안전에 대한 수속을 마치고 활동실로 향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외부인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기에, 이곳 선생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조건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활동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어두운 얼굴로 운동장을 지켜보는 선생을 볼 수 있었다. 운동장에 나가 노는 아이들에게서도 활기찬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선생님.”

“아, 오셨군요.”

선생이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겔다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을 건넸다.

“일은 전부 들었습니다. 상심이 크시겠어요.”

“…….”

선생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더니, 뒤늦게 답했다.

“…10분 사이에 사라질 거라고는….”

겔다 아스만이 그의 손을 잡아 매만지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힘드시죠. 이 친구들을 만난 지 얼마 안 된 저도 마음이 아픈데, 선생님께서는 오죽하시겠습니까.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봐요.”

“그래야죠.”

그가 또다시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끝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이 자가 그날 7세에서 10세 사이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선생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선생은 아이들을 불러 모으겠다고 말하며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겔다가 운동장 쪽으로 건너간 선생을 바라보며 내게 말을 걸었다.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요.”

못 느껴?

나는 속이 뒤틀리는 것을 무시하고 미소지었다.

겔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겁니다. 그분께 한 몸 바칠 기회가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인가요?”

“…….”

그쪽에 잡아다 넘겨놓고는 영광으로 알라고.

지난 며칠, 일상을 함께 보냈던 겔다 아스만이 너무나도 사람 같아서 잊고 있었다.

아스만의 뇌는 이미 플레로마에 의해 조작되어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도무지 구제할 길이 보이지 않는 인간 말종이다. 아니, 그런 말로 이 추악함을 전부 표현할 수 있나?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찾고 싶다.

‘…내가 누구 앞에서 뭘 하는 건가.’

맨 처음 부활한 아스만을 마주쳤을 때 느꼈던 그 구역감이 또다시 살아난다. 약물로 만들어진 가짜 감정이라고 해도 내가 느끼는 것이라 그런지, 낯간지러운 말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결의 자괴감이 차올랐다.

그때, 아스만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요?”

“…….”

생각이 바뀌었다.

조금 더 빠르게, 명시적인 증거를 잡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아스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몸이 조금 안 좋아서요. 사실 어제 돌아가는 길에 비를 맞았거든요.”

“아, 비가 왔죠.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있겠어요?”

“오늘 세워 뒀던 계획이 있잖아요. 해야죠.”

“저 혼자 해도 괜찮으니까요. 정말 몸이 안 좋으면 들어가서 쉬세요.”

혼자 사람 납치하게 두겠냐?

나는 내 얼굴께로 뻗쳐 온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납치는 타깃을 고른 당일에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제 오랜 시간 대화하며 알아낸 것이다.

본인이 다녀간 날 실종이 일어나면 용의 선상에 오를 수 있기에 다른 날을 골라 사건을 벌인다고 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타깃 선정을 위해 온 것이다.

어차피 놈이 납치를 실행하기까지는 며칠의 간격이 있다.

밑밥을 깔고 내 계획을 이제 슬슬 실행에 옮길 시간이 있는 셈이다.

“아뇨, 오늘은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어서 해요.”

* * *

아파서 못 간다.

다음날이 되어 내가 아스만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었다.

납치 실행일은 3일 뒤로 잡혔고, 나는 그사이 독감에 걸린 것으로 위장했다.

나는 공중 우편함에 워프된 겔다 아스만의 편지를 들고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

기숙사에서 다시 학생회관 지하로 워프하자, 내가 주고 간 편지를 읽고 있던 엘리아스가 손을 흔들며 글을 소리 내 읽었다.

“음식에 표적 저주술을 건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 다른 플레로마를 만나면 조심해야겠는데요. 물론 아스만 씨라면…. 흐하학!”

“프흡….”

엘리아스와 함께 내 편지를 읽던 나르케가 다급히 입을 손으로 막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읽지 마라.”

나는 내가 쓴 편지를 당장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신문용 필터를 꺼냈다.

언젠가 엘리아스가 신문에 끼웠던 것을 본 적이 있었지.

마법 용지나 잉크의 마력을 재생시키는 얇은 종이로, 기사에 녹음된 소리를 듣기 위해서 자주 사용한다.

‘물론 그 기능이 중요한 건 아니지.’

이건 편지가 녹지 않게 씌우는 덮개일 뿐, 사실 일반 종이여도 상관없다.

다만 내가 아는 종이 중 가장 질기면서도 내용물이 깨끗이 비쳐 보였기 때문에―애초에 신문에 씌워서 읽으라고 나온 물건이니까―골랐다.

나는 편지를 필터에 넣고 달군 쇠 사이에 넣었다.

필터를 열로 지져 편지와 접착시키는 사이, 엘리아스는 이제 겔다 아스만이 쓴 편지를 읽어 나갔다.

“답장 고마워요. 당신이 같이 보내 준 마법 잉크로 써서 보낼게요. 한 시간 뒤면 사라진다니,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우리에게 딱 맞는 물건이네요…. 이야, 철저한데~?”

엘리아스가 나를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정말로 작동 시점으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잉크다.

최근에는 흔히 사용되는 물건인데, 아스만이 살았던 40년 전에는 발명되지 않은 마법 물품이었으니 생소할 수밖에.

그를 안심시켜야만 편지에 낱낱이 계획을 담을 수 있기에, 시간제한 마법이 걸린 잉크는 필수적인 도구였다.

‘물론 안심시켜도 정말 글자가 날아가면 쓸모없어지는 게 문제지만….’

다행히 여기서 이용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었다.

1+1은 2라는 말을 길게 해 보자면, 마력을 못 쓰게 만들면 당연히 마력이 모여 완성된 마법까지 제구실을 못 하게 된다.

그래서, 열로 지져서 잉크에 담긴 마력을 파괴했다.

마법이 기존의 과학 체계를 상당히 깨부수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 생태계와 상호작용하는 분야다.

내가 레오에게 재료를 받아 독을 강화제로 바꾸었을 때도 열과 농도를 조절해 가며 전환에 성공했었지. 결국 마력도 열에 영향을 받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바이에른 왕국 신문에서 카메라를 빌려 와 찍어도 좋겠지만 더 이상 원본이 아니게 되므로, 어차피 재료도 간단하겠다 직접 코팅했다.

편지를 필터에 넣는 것을 돕던 레오가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잔머리는 잘 굴러가네.”

“잔머리라니.”

표현은 별로지만 이번에는 레오도 만족스러워 보이니 됐다.

나는 이제 완벽히 굳어 영영 사라질 일 없는 손글씨와 봉투의 우체국 소인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문서화된 자료가 없다고 했지.

그렇다면 직접 만들도록 유도하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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