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74화 (74/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74)

마르셀 코프먼이 웃으며 인사했다.

“역시 욕심이 나지요? 이렇게 빠르게 승진할 기회는 몇 없으니까요.”

“그건 아닙니다. 제안을 주셨으니 직접 뵙고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가 나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 전에, 질문이 있는데 받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얼마든지요.”

“코프먼 씨가 절 사제로 만들어 주시는 건 본당의 다른 성직자분들께서도 동의하시는 일입니까?”

“물론이죠. 그런 권한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어요.”

그가 뭐 그런 걸 묻느냔 얼굴로 웃으며 눈을 찡그렸다.

“혹시 제가 사제라서 그러십니까? 저는 이제 막 서품받은 겔다 아스만 씨와는 다릅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있었어요.”

“그런 것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겔다 아스만 씨도 코프먼 씨가 가진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아직은 아니지요. 왜, 그분께서 본인이 직접 사제로 만들어 주겠다고 그러던가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코프먼이 웃으며 양손을 맞잡았다.

“바이첼 씨가 사제가 되어야 한다면 겔다 아스만 씨에게 그 과정을 맡기고 싶은가요?”

“…예. 여기까지 찾아와서 이렇게 말씀드리니 죄송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습니다.”

나는 진지한 눈빛을 지어 보이며 답했다.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닐 겁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그분께서 비트리올도 받고, 우리 교회에 이런저런 공헌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과연 그때까지 바이첼 씨가 예비 신도나 평신도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지금은 직접 거절의 말씀을 드리려 찾아온 겁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생각이 있어 온 것 아닙니까? 제게 맡기시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차에, 그가 말을 꺼냈다.

“생각해 보세요. 이제 막 플레로마가 된 기반도 없는 자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저처럼 보증이 된 사람과 함께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네가 그 기반이 되어야지, 이 새낀 사람을 플레로마로 만들어 놓고 지금 부하한테 추월당할 것부터 생각하고 있네….

좋게 보면 야망과 욕심이 있고, 그렇게 보지 않으면 비열하고 책임감 없다. 어떤 관계로든 엮이고 싶은 인간상은 아니다.

그때, 상대방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사람이 필요한 거면 겔다 아스만보다 더 괜찮은 사람을 하나 붙여 줄게요. 어때요?”

“이런 말씀을 하실 거라면 저는 이쯤에서 다시 돌아가야겠군요.”

콰앙―!

순간 닥친 통증에 나는 목덜미를 붙잡았다.

내 뒤에 있던 장식장에 부딪혔나 보다. 그 위에 있던 촛대가 내 옆으로 쓰러졌다.

쨍―

‘…머리 뚫릴 뻔했네.’

무력이 동원된 건 놀랍지는 않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집단에서 쓰는 방법이 뻔하지, 뭐.

코프먼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 시간을 이렇게 낭비시켜 놓고 그냥 돌아간다?”

“아뇨.”

나는 오른팔에 끼웠던 얇은 은팔찌를 뽑아 주머니에 넣었다. 셔츠 안에 손을 넣자 내가 평소에 쓰지 않던 종류의 목걸이가 손에 잡혔다.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코프먼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나는 간단히 답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거라서요.”

“아까 답해 주지 않았던가? 굳이 돌아서 갈 필요는 없죠. 제게 맡기세요.”

“물론 돌아서 갈 필요는 없겠지요.”

나는 목걸이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 완드 대신으로 옆에 떨어진 긴 촛대를 휘둘렀다.

콰앙―!

“아악!”

코프먼이 반대편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그가 머리를 붙잡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뭐, 마법사…! 여기 어떻게….”

그는 분명 더 하려는 말이 있어 보였지만, 그걸 들어줄 시간은 없다. 나는 그의 이마를 세게 누르며 입을 열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더 주문을 이어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순식간에 그의 동공이 풀렸다.

“후.”

확실히, 부주교에 비하면 사제는 쉽네.

스트라우치에게는 정신 조작 주문을 끝까지 외웠는데, 이 자식은 플레로마라는 게 한 줄로 처리가 되고 말이다.

‘겔다 아스만도 이렇게 하면 간단했겠지만….’

보다시피 티가 많이 난다.

이 상태로 다른 플레로마라도 만난다면 세뇌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쉽게 발각될 것이다.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아 올리며 물었다.

“코프먼 씨, 최근 인력 문제에 대해서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겔다 아스만 씨가 하이리겐지 지역의 인력 수급책으로 선정되었죠. 그렇죠?”

그가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겔다 아스만과 아빈 아스만 외에도 플레로마로 내정되었던 사람들이 있습니까? 정리된 자료는 있고요?”

나는 그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미소지었다.

그래, 그러겠지. 어디 하이리겐지 뿐이겠냐.

이제,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소설의 전개와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게 된다.

과연 어디까지 뻗쳐 있을까.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문서의 접근 권한은 코프먼 씨에게도 있습니까?”

“…….”

“잘됐네요. 이거 저도 그 문서에 이름 좀 올리고 싶은데, 어때요. 그쪽이 바라던 대로 내가 당신에게서 플레로마가 될 수 있는 기회지요. 그렇죠?”

슬슬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정신 조작 마법은 시전자에게도 큰 무리가 된다.

나는 그가 세뇌 와중에도 아까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손에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다.

“그럼, 지금 문서부터 찾으시죠.”

그 말에 코프먼이 귀신에 홀린 것처럼 일어나 서랍을 부수고 그 안을 헤집었다. 나는 그사이 확인차 질문을 던졌다.

“자, 하나 더 묻겠습니다. 하이리겐지 외에 타깃이 된 지역은 제국 내에 몇 군데 더 있습니까? 대답은 숫자로 하죠.”

“…….”

그가 말을 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 입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손에 든 종이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마침내 성대를 움직였다.

“47.”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아, 그에게 건 정신 조작 마법을 유지하지 못할 뻔했다.

예상한 숫자를 벗어나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스만 남매를 고발해 처형시킨 엘리아스의 선택은 짧게는 옳았으나 길게 보면 틀렸다.

조직 내에서도 아무 힘이 없는 플레로마만 죽을 뿐이며, 그걸로 모자라 플레로마의 수뇌부에게 더 안전히 움직일 유인만 주는 일이다.

물론 지금 47개 지역을 잡아내는 것도 아주 완벽한 처리법은 아니겠지만, 완벽히 처리하려면 플레로마 전체를 말살해야 하니 그런 실현 가능성 낮은 일을 지금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크게 타격을 주는 방법을 생각해야지.’

나는 아까 끝내지 않았던 주문을 끝까지 외워, 그의 뇌에서 최근의 기억을 모조리 삭제했다.

그러고는 바닥에 겔다가 설명했던 그림을 그리고, 칼로 피를 내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너희들은 이제 신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리라.

그렇게 말하고 숨을 돌리고 있자,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루카스!”

어디로 도착한 건지, 파이가 내 등 위로 뛰어내렸다.

아까, 파이에게 표적 저주술이 걸린 사탕을 먹였다.

‘나르케한테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소환 방법은 겔다 아스만과 같은 말단 플레로마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절차가 간략화되어 있었다.

겔다와 대화해 정보를 털었던 세 시간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다.

나는 종이를 접어 파이에게 주었다.

“자.”

“루카스는?”

“처리할 게 있어서. 조금만 더 있다가 따라갈게.”

“빨리 와!”

파이가 입에 문 서류 탓에 웅얼거리며 앞발을 흔들었다.

돌려보내는 마법을 쓰지 않았는데도 이미 나르케가 깨어나서 두 세계 사이에 손을 쓰고 있는지, 파이가 곧바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내일이면 플레로마는 자신들의 계획이 전부 허사가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제국은 반 플레로마 정서로 가득 찰 것이고, 어쩌면 플레로마는 또다시 보복성 공격을 행할지도 모른다.

‘그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겔다 아스만을 처리해야 한다.

죽이려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을 죽여 봤자 실질적으로 떨어지는 이득은 적다.

그리고….

나는 코프먼이 손에 쥐었다가 떨어뜨렸던 다른 종이를 집어 들었다.

[11월 브란덴부르크대교구 1구역(북) 실행 보고서]

내가 아까 파이에게 넘겨준 문건은 10월 25일에 작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두 아스만이 사고를 당해 사망한 날은 11월 29일이었다.

빗물에 전복된 마차는 사고가 아니었다.

죽은 김에 써먹어 보려 끌어들인 게 아니라, 살인으로 시작하는 계획된 범죄였겠지.

종이를 넘기자 겔다 아스만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마차가 자주 드나드는 길목, 지난 1년간 사고가 자주 발생했던 지점, 60대인 겔다 아스만과 아빈 아스만의 생활 패턴, 사상 재교육 방향성….

“…….”

뱃속이 뒤틀리는 느낌이다.

돌이킬 수 있는 게 없어 그런지, 아무리 약으로 이성을 지우려 해도 내가 만났던 60대의 그들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금세 잊었겠지. 하지만 아무 잘못 없는 자들을 죽어서까지 눈 감을 수 없도록 욕보이고 있는 현실이 그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낸다.

나는 종이 끝에 적힌 글자를 다시 읽었다.

‘사상 재교육.’

무엇을 뜻하는지는 뻔하다.

마법이 가해졌다고 해서 아스만이 저지른 범죄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 나는 그자의 존재 자체가 생전의 겔다 아스만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스만의 선택이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었는지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그 지점에서는 겔다 아스만이 절대적인 악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늦지 않았어.’

납치된 아이들은 이곳에 오기는 했어도 아직 잠든 상태 그대로다.

그러니 사람들을 다시 돌려보내는 전제하에, 내가 제안할 선택지는 두 가지다.

‘자신이 잘못 만들어진 자라는 걸 인정하고 눈을 감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죗값을 치르고 원래의 겔다 아스만과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거나.

‘그리고.’

머리가 아파지는 일이 하나 더 있었지.

아스만이 후자를 택할 거라면 감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재킷 안쪽 주머니를 만져 보았다.

해독제와 함께, 그것이 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들고 다녔던 반대 작용의 약병이 손에 잡혔다.

이제 마무리다.

* * *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자,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겔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까와 달리 아무 표정이 없었는데, 분위기로 보아하니 자세히는 몰라도 내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

대충 눈치를 챘을 것은 알고 있었다.

내 제안도 썩 좋은 내용은 아니니, 미리 파악해 준다면 나쁠 것은 없지.

그때 겔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코프먼 씨를 죽였나요?”

“아니요.”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당신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연결이 끊어졌거든요.”

“그런 것이 있군요.”

“이제는 물어도 대답 안 해 줄 겁니다.”

“그래요. 저도 이제 더 물으러 온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약효 탓에 심장 어딘가가 쑤셔오는 것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안타깝지만 이제 결정을 해 주셔야겠습니다.”

“어떤?”

“당신은 이미 죽은 겔다 아스만을 부활시킨 뒤 시간을 돌려 만들어진 결과물이죠.”

“…….”

“본인이 순리에 맞지 않는 존재라는 것은 잘 알 겁니다. 원래 살아 있었던 겔다 아스만 씨는 당신처럼 아이들을 비윤리적인 종교 집단에 잡아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겔다는 말없이 나를 보기만 했다.

나는 그 무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결정하세요. 생전의 아스만 씨를 그대로 보내 드릴 것인지, 아니면 다시 사회로 돌아가 죗값을 치르고 살아갈 건지. 플레로마에 남아 있기를 택할 생각이시라면, 높은 확률로 곧 잘릴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쪽 세계에서 뭐라도 되는 사람인가 보죠?”

“후자를 택한다면 조사 과정에서 도와드릴 수는 있다는 말입니다.”

“하하….”

아스만이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죽음을 선택하길 바라나요?”

“아니요.”

해독제를 마신 나라면 대답이 또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동정심이 깔리긴 했어도, 사실 그에게서 플레로마의 세뇌가 빠진다면 계산상 죽어도 살아도 문제없는 자다.

그때 겔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주제를 꺼냈다.

“이것부터 묻죠. 날 이용한 거죠?”

“…….”

약을 먹이려면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게 낫겠지.

입을 열려는 순간, 귀가 먹먹해졌다.

“…!”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머리를 붙잡자,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 * *

나는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어, 그 장면이 끝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다.

“일어났네요.”

돌아가긴 개뿔….

나는 헛웃음을 치며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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