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80화 (80/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80)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 알고 계십니까?”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주교 중 하나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추기경 서임은 성하께서만 가진 권한입니다. 월권행위로 모자라 그분이 없는 자리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다니, 말도 안 됩니다.”

“마땅한 자를 찾아보라는 건 교황 성하의 명령이셨습니다.”

나르케가 부드럽게 대답하며 말을 이었다.

“또,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서품은 여러분의 동의가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교황 성하께서만 권한을 가지는 추기경 서임에 대해서는 말이 달라지지요.”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교황 대리이신 아우렐리노 각하, 교황 성하께 빠르게 연락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르케가 교황 대리라 불린 주교에게 정중하게 손짓했다.

‘…아니, 이런 자리를 열기 전에 본인이 교황에게 이야기해도 됐어.’

교황에게 직접 명령받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겉보기에는 당연한 절차로 보이지만, 이런 회의까지 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원하는 그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때, 진행을 맡았던 추기경이 손을 내저었다.

“다들 진정하시지요. 휴회하고 10분 후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 * *

직접 교황에게 말하면 끝날 일을 가지고 판을 키웠다.

의도가 분명했기에 길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높은 확률로, 내 성직 수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는 말이지.’

예고된 자리가 아니었는데도 몇몇은 내게 세례증이 없는 걸 알고 있었다.

신력을 자유롭게 쓰는 마법사는 드무니 명예직 자격에 관해 내부에서 이야기가 나왔을 테고, 나는 진작 자격 미달로 탈락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추기경 서임을 진행하면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르케는 교황에게 쏠릴 책임의 무게를 나누어서 지고, 겸사겸사 니콜라우스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증명하기 위해 심사 자리를 열었을 것이다.

―“벌써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나르케가 내게 다가오며 웃었다.

주교들은 저들끼리 모여 성당 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자리에 앉은 자는 나밖에 없었다.

말을 편하게 하는 걸 보니 이 거리에서는 신력 간섭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듯했다.

―“시작부터 이럴 생각이었냐?”

―“하하, 어떨 것 같아?”

―“여기까지 계획했겠지.”

―“잘 아네~ 그래도 저 사람들이 사제쯤에서 끝냈으면 여기까지 억지로 이어 나갈 생각은 없었어. 명예직이라고는 해도 추기경쯤 되면 할 일이 많거든.”

―“그래, 신앙교리성 장관 같은 일 말이지.”

내가 웃음을 띠며 말하자 나르케가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웃었다.

―“…속이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 알지?”

굳이 그런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겠지.

조금 놀라긴 했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알아. 멋지네.”

―“오래 앉아 있으니 된 건데, 뭘. 그래서, 추기경 자리는 어때?”

물을 필요도 없이 완벽한 방어 도구다.

물론 성직 자체만으로도 이득이니, 그 안에서 부제가 되나 사제가 되나 내게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추기경은 지나치게 부담스럽다.

‘하지만, 뭐가 됐든 기회야.’

믿음이 없는데도 자리에 앉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부담스럽다고 해서 이만한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짓이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는지 주교들이 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합시다.”

그때, 교황 대리 주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르네세 예하, 저는 자격조차 되지 않은 자를 위해 교황 성하께 연락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추기경 서임이 성하의 권한이라지만, 성하께서도 교회법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듣던 나르케가 턱을 쓸며 답했다.

“교회법이라…. 평신도이기만 해도 부제급 추기경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알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경은 평신도조차 아니지요. 이제 세례를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력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 그 자체가 문제인 겁니다.”

주교가 무게 있는 목소리로 딱 잘라 답했다.

‘…흠.’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의견이다.

말하는 것을 보니 일반 성직자인 모양인데, 그들 입장에서는 신력 하나 얻고자 부랴부랴 세례를 주는 모양새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물론 파르네세 예하께서 직접 말씀드린다면야, 저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의견을 가진 자도 바티칸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겁니다.”

“…….”

나르케가 미소를 유지한 채 그를 바라봤다.

아마, 나르케는 그 말대로 직접 교황을 알현하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끊는다면 나르케의 목적은 반만 달성한 셈이야.’

나르케가 이 자리를 연 것은 니콜라우스의 무결함을 알리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대로면 후자는 온전히 얻지 못하고 끝난다.

‘어떻게 할까.’

직접 몸을 만져 알게 하는 것이 문제라면, 당연히 간접적으로 알리면 된다.

‘…방법이 있기는 하지.’

신도만이 할 수 있으며 들은 자가 그 내용을 어디에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최적의 방법이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교황 성하께 고해성사를 하겠습니다.”

* * *

이 성당에는 이제 나만 남았다.

신도가 아니면 고해성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만류가 있었으나, 판단은 교황이 내리는 것이라는 나르케의 강력한 말로 정리되어 교황에게 연락을 보낼 수 있었다.

‘벌써 해석 갈리는 거 봐라.’

신도가 아니면 고해성사가 성립되지 않는다니, 헛웃음이 났다.

고해성사 이야기까지 꺼내면 당연히 내가 신자이니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들을 거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그러니 더더욱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마음이 생기지 않지.

‘마음껏 상상해라.’

가능성이 갈릴수록 도움이 되니까.

그때, 고해소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 처음 보는군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커튼이 없어 고해소 내부가 보이는데, 겉보기에는 텅 비어 없었다.

마법이 있는 세상에서 아주 놀라운 광경은 아니었다.

나는 나르케가 일러 준 대로 무릎을 꿇고 고해소 창틀을 짚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늦은 시간에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해소는 언제나 열려 있지요.”

나는 반쯤 웃음기가 섞인 교황의 말에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오늘 일을 보고받고 언젠가 경을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파르네세 추기경이 경과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군요.”

―“그렇군요. 다음에는 앉아서 정식으로 뵙겠습니다.”

―“좋네요. 자,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작 1시간 30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교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고해한 지는 반년 되었습니다. 지금 속죄할 잘못은….”

나는 말을 멈추고, 해야만 하는 말을 먼저 꺼냈다.

―“첫째로, 저는 제 믿음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

종교를 위해 인생을 바친 자들 앞에서 거짓을 연기할 생각은 없다.

또, 추후 누군가 새로운 증명법이라도 찾아 내 신앙을 꼬투리 잡는다면 이곳에서의 일이 전부 허사로 돌아간다.

부정한 마음을 고하도록 마련된 이 시기에 내 입으로 사실을 밝혀야 뒤탈이 없다.

―“둘째로, 모두가 교회의 양심 문제로 혼란스러워하는 이 순간에도, 저는 제가 견진성사를 마친 신자라는 것을 제 입으로 밝힐 수 없습니다.”

정적이 이어졌다.

한참 허공을 보고 있을 때, 교황이 말했다.

―“손을 뻗으십시오.”

나는 고해소 창 안으로 팔을 뻗었다.

무언가 내 손목을 잡는 듯하더니, 차가운 신력이 밀려 들어왔다.

―“정말이군요.”

교황이 말을 이었다.

―“경이 무엇을 우려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과연 믿음이 없는 자가 성직에 앉아도 되는가, 납득되지 않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마주했습니다. 플레로마는 전 세계를 교단에 흡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달려왔습니다. 그 산물이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에른스트 경이 오늘 입증했지요.”

따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교황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진실하지 않은 자들이 명예직에 앉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리 암기와 기계적인 사목을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지요. 그들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큰 악에 맞서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암흑이 걷히기 전까지 기꺼이 타협할 수 있습니다.”

‘이거… 과연 다들 동의할지는 모르겠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다.

명예직은 오래전 귀족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런 역사에 비하면 이렇게 대의를 위하려는 쪽이 훨씬 듣기에 와닿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교황청이 세계의 신력 보유고로써 마법사들을 한데 묶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경의 요청에 곧바로 수백에 달하는 마법사를 제국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교회의 타협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교황이 그렇게 말하고는 내 손을 놓았다.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경의 마음에 평화가 오길 바랍니다. 보속은… 그래요.”

교황이 가볍게 말을 이었다.

―“충실히 봉사하며 사는 것으로 하지요.”

* * *

“…꽤 길게 하네요.”

“하실 말씀이 많으신가 봅니다.”

바로 주변 성당으로 이동한 주교들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포탈이 닫히기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포탈이 있는 곳까지 걸어서 40분 거리이니, 이쯤에서 끊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성하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나르케가 단상 위의 빳빳한 종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적막 속에서 불꽃 튀는 소리와 촛농 떨어지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불안한 듯 입 안을 씹어대던 한 신부가 다른 명예 신부에게 신력을 쓰며 속삭였다.

―“…로마니 신부님, 될 거라 보십니까?”

―“말도 안 됩니다. 어찌 세례도 받지 않은 자를 명예직으로 올릴 수 있겠습니까?”

―“역시 그렇겠지요. 이 나이가 되도록 세례를 받지 않았다니, 에른스트 경은 어쨌든 대륙의 귀족 출신 아니던가요? 저 밑에서 그분을 알라로 믿었던 게 아니라면 말도 안 됩니다.”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로마 중에도 세례를 받은 자가 있는 세상이다. 그만큼 간단한 자격조차 충족하지 못한 자를 등용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추기경직은 한번 주어지면 철회할 수 없는 종신직이고, 인원 제한이 있다.

이렇게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면 동시대에 살고 있는 자신의 기회가 줄어든다.

신부가 핏발 선 눈으로 이마를 싸맸다.

―“…날벼락 같은 일입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꼴 아닙니까.”

물론, 마법사로서 더 강해지면 해결될 일이다.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능을 바꿔치기할 수도 없고, 강해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저렇게 자격이 되지 않는 자들이라도 철저히 걸러내야 자신이 더 높이 오를 수 있다.

“…….”

나르케의 시선이 그들에게 잠시 닿았다.

―“교황 성하께서 부디 현명한 결정을 내리셔야 할 텐데.”

옆자리에서 들려온 혼잣말에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의 무류성, 교황은 신앙과 말씀의 면에서 그르치지 않는다는 성질 탓에 말을 얹을 수도 없다.

오로지, 교황의 손에 모든 것이 달린 셈이었다.

“…!”

덜컹―!

그때, 나르케가 숨을 들이켜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교들의 시선이 나르케에게 향했다.

“왜 그러시죠?”

“…왔습니다.”

“예?”

휘익―

나르케가 세차게 휘파람을 불자, 열린 창에서 새하얀 비둘기가 날아들어 왔다.

나르케가 종이를 둘둘 말아 비둘기의 다리에 묶어 보냈다.

한 주교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물었다.

“예하, 저 새는….”

“교황청 국무부의 전서구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국무부는 교황청의 정치 및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한 신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상황에 국무부의 전서구를 부르는 걸 보면….

“설마…!”

사색이 된 신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황을 파악한 나이 든 주교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무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희에게 말씀은 해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예하!”

“그리 급한 일이 아닌데 왜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군요.”

“화를 내려는 게 아니라, 워낙 중대한 사안이니…!”

“알겠습니다. 말씀드려야지요.”

상대방의 말투가 딱히 예의 있지는 않았으나, 나르케는 여유롭게 웃으며 답했다.

“11일 자정부터 니콜라우스 에른스트를 추기경으로 서임한다, 교황 성하로부터의 전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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