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84화 (84/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84)

식사가 끝나자, 엘리아스가 식당을 나오며 배를 두드렸다.

“크으, 제대로네. 하여튼 다른 건 몰라도 황실 요리는 언제나 날 실망시키지 않아.”

“저하는 바이에른에서도 그러지 않았던가요?”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네요.”

나는 둘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위층의 연회장으로 올라갔다.

무도회가 있는 파티는 아니었기에, 다들 끼리끼리 뭉쳐 대화하거나 간단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레오가 제게 다가오는 정치인들을 보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저는 지금부터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러세요.”

또 장난부터 칠 줄 알았더니만, 엘리아스는 생각보다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하지.’

제국의 중심국 왕세자가 황제의 견제를 받는 조카와 오래 어울리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또, 엘리아스와 어울리기는 해도 레오는 늘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그게 엘리아스를 황제로 올릴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그때 엘리아스가 레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경.”

“예.”

내 대답에 엘리아스가 씩 웃으며 등을 툭 두드렸다.

“긴장한 건 아니죠? 마음 편하게 갔다 오시죠~ 별일 없을 겁니다.”

“그러겠습니다.”

엘리아스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귓속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다녀와서 말씀해주시고요.”

이제 그의 말투에 웃음기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황제가 자신을 막기 위해 움직일 것이 뻔한 상황이니까. 어쩌면 니콜라우스를 황제의 편으로 만들려 작정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저 멀리서 황제의 사용인이 다가왔다.

“에른스트 경, 따라오시지요.”

나는 엘리아스에게 눈인사하고, 황제의 사용인이 이끄는 곳으로 워프했다.

“왔군요.”

황제의 목소리와 함께, 낯선 방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러운 조명 아래서 보니 황제는 생각보다 더 젊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외모는 엘리아스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 피가 섞인 것은 맞는지 엘리아스의 호쾌하고 자신만만한 인상이 황제에게도 묻어났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저야말로 그렇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어 일정을 앞당겨 잡았는데, 이렇게 선뜻 나와 주셔서 기쁘군요.”

황제가 그렇게 말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어떠셨습니까?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까?”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국에서 사교 활동을 한 적이 없는데, 때마침 폐하의 배려로 좋은 자리에서 첫 시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경께 이런 자리가 꼭 필요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족하셨다니 기쁘군요.”

내가 대답 대신 눈을 휘어 웃자 황제도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분위기를 타 말을 이었다.

“경의 활약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경의 모든 결정을 높이 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다른 친황제파 정치인들까지는 몰라도 일단 자신은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인데.

‘곧 나를 회유하려 들겠네.’

나는 반황제파의 지지를 받는 엘리아스와 한배를 탔으니 말이다.

과연 엘리아스에게서 나를 떼어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지 궁금해진다.

나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좋게 여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

“아, 부담은 가지지 마십시오. 저는 경과 진심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누고 싶은 것뿐이니 말입니다.”

그래, 먼저….

친밀감부터 쌓겠다, 이거군.

이후 나는 국내외 정치와 플레로마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황제가 꼭 엘리아스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경 같은 인재와 대화하니 인식의 지평이 더욱 넓어지는 느낌이군요.”

“모두 폐하께서 대화를 잘 이끌어 주신 덕입니다.”

“하하하! 마음 같아서는 곁에 두고 계속해서 조언을 얻고 싶군요. 함께 대화할 때 다른 분들로부터 편안하다는 평가를 많이 듣지요?”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런 말씀은 폐하께서 처음 주십니다.”

“처음이라니 놀랍군요. 다들 낯을 가리느라 말하지 못한 게 분명합니다. 이쯤에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도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쭉 느끼고 있는 점인데, 황제치고는 상당히 저자세다.

부담스러울 만큼 진솔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원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포지션 잘 잡는군.’

어떤 방식을 취해야 나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알고 있다.

현 황제에게 충성하지 않는 귀족들은 기존의 보수적인 사회에 신물을 느끼는 부류로, 보수파인 친황제파 귀족들에 비하면 에둘러 말하는 화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폐하. 얼마든지 질문하십시오.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성의껏 답하겠습니다.”

“엘리아스 공작은 어디에서 처음 만났습니까?”

그래.

이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다.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바이에른 왕세자께 소개받았습니다.”

“역시 그럴 것 같았습니다. 제 조카는 경이 느끼기에 어떤 사람이던가요?”

“올곧으신 분입니다. 장난스러우시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그 나이대로 느껴지니까요.”

“그렇군요. 조카를 좋게 평가해 주니 기쁩니다.”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자, 그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눈빛에서 따스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아이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들 아이의 태도만 보고 가볍게 판단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제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만 보아도 그 아이가 어느 정도의 잠재력과 깊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엘리아스가 평가하는 것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네.’

자신이 엘리아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제 입으로 이미지를 교정하기보다는, 자신을 비난했을 조카를 되레 칭찬함으로써 대인배 같은 면모를 보이려 한다.

괜찮은 방식이다.

처음 만난 자신이 내 동료를 비난해봤자 부정적인 결과만 나는 건 당연하다.

“아, 벌써 11시네요. 이거 참, 드리고픈 말은 많은데 시간이 야속하군요.”

“폐하의 일정만 괜찮으시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소설에서 그는 엘리아스가 졸업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기에, 독자인 나는 대부분 그의 바닥 치는 인성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성정으로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대화를 더 이끌어 알아낼 필요가 있다.

“경을 오래 붙들어 두기도 죄송하지요. 하지만 마침 경과 논하고 싶은 주제가 하나 더 있는데, 여기까지는 의견을 나누고 싶군요. 괜찮겠지요?”

“물론입니다.”

“경은 플레로마가 어디까지 뻗쳐 있다고 생각합니까?”

“모든 곳에 존재하겠지요. 예외는 없을 겁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상부터, 지하까지 말이지요.”

지하.

지하라는 말이 입안에서 걸린다.

슬슬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이고, 그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해 나를 불렀는지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황제가 진지한 얼굴로 양손을 맞잡았다.

“그렇다면 경은 카타콤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

카타콤은 평민 마법사 집단이다.

귀족의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낸 역사가 길어져, 지하 묘지에 빗대 표현한 것이 집단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설마 이걸 건드리겠다고.’

마법은 현재 귀족의 전유물이지만, 가끔 평민 중에서 유전 없이 마력을 타고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마력을 통해 만민 위에 군림할 권리를 받았다는 지배층의 논리를 희미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평민 중 마법사가 나면 어린이인 경우에는 귀족 가문으로 편입시키지만, 그 이상인 경우에는 마력을 모조리 뽑아 국고에 저장한 뒤 사살한다.

‘내가 보기엔 플레로마를 비난할 자격이 없어 보이는데.’

카타콤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지.

사실대로 대답하면 황제의 심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내 조언을 들을 일도 황제의 독단으로 흘러가게 될 수 있다.

“평민 마법사 집단을 말씀하시는군요. 개인적으로 어떤 감정도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카타콤이 플레로마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아무 감정도 없다는 정도면 충분했나 보군.

제국 밖에서 왔다는 특수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평민 마법사들을 매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무도한 말로 들릴 것이 우려되지만, 만민의 안전을 고려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들을 걱정 어린 눈으로 철저히 관찰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폐하께서 어떤 점을 보고 카타콤과 플레로마 사이에 유착이 있으리라 여기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카타콤은 그 성질이 플레로마와 비슷하지요. 법망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점에서, 또 잡아내기 힘든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맞는 말이다.

발각되는 순간 사망하므로, 그들은 존재를 철저히 숨기는 데에 능했다.

카타콤이 무언가 계획한다면 그것을 잡아내기란 극히 어렵다.

“경과 엘리아스 공작이 보여 준 성과는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곧 플레로마가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카타콤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경께 부탁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황제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말씀하십시오.”

“카타콤의 동향을 확인해 주십시오. 필요한 것이라면 프로이센에서 얼마든지 지원하겠습니다.”

“…….”

‘이런 식으로 니콜라우스를 끌어들이네.’

엘리아스 대신 자신이 나와 함께 공적을 세우려는 심산이다.

황제와의 반목을 늦출 수 있다면 나야 환영이다.

하지만 문제는 황제가 카타콤을 타깃으로 잡았다는 점이다.

카타콤은 ‘평민 마법사’라는 특성으로 강하게 단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외에는 모조리 따로 놀며, 그런 만큼 플레로마 하나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리고, 황제는 건수가 하나라도 잡히는 순간 카타콤 전체를 플레로마로 매도하며 날려 버릴 것이다.

‘얻는 이득이 많지.’

플레로마라면 강한 반감을 품는 국민들의 지지를 사면서, 평소 눈엣가시였던 평민 마법사들을 플레로마로 몰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다.

즉, 안전을 원하는 대부분의 피지배층과 권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층의 호감을 동시에 살 수 있다.

‘괜찮은 전략이야.’

물론, 황제와 귀족들에게만.

“폐하, 현재까지 카타콤에 대해 조사된 바가 있습니까?”

“아쉽게도 없습니다. 경께 처음 말씀드린 점이니까요.”

“처음이라…. 영광입니다. 하지만 카타콤의 인물을 찾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 또, 사안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어떠한 결과를 장담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폐하께 유감을 가져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압니다. 경마저 해낼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라 부탁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경께서는 제가 아는 수많은 사람 중 신민의 안전을 위한 뜻이 가장 깊은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요.”

그가 신뢰 넘치는 눈빛을 연기했다.

통치자라면 좋은 의도에서 만족하지 않고 훌륭한 결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을 인격자로 포장하려다 책임까지 알게 모르게 저버린 안타까운 케이스를 여기서 만났다.

“폐하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폐하의 말씀을 유념하고 신민들의 안전을 위해 애쓰겠습니다.”

황제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가운 답이로군요. 명령이 아니라 개인적인 부탁일 뿐이니, 지나치게 부담을 가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폐하.”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에른스트 경. 앞으로도 논의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주저 말고 주십시오. 저도 그렇게 할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폐하.”

나는 예를 갖춰 인사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황제의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따르지 않을 것인가.

‘결론은 이미 났지.’

저 부탁은 따르지 않는다.

내 손으로 황제의 권력을 강화시켜 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곧 엘리아스와 나의 목을 조르는 일이 된다.

카타콤은 놓쳐서는 아까운 집단이다.

그들은 자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결과 마법에 있어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소설에서 엘리아스는 그 점을 보고 카타콤을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었다. 그 흐름을 따르면 따랐지, 바꿀 생각은 없다.

또, 이곳을 얻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형은 카타콤을 공략한 적이 없다.

아니, ‘공략할 수가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지금까지 나는 형이 얻었던 지지 기반을 흡수했으니, 이제는 형이 얻지 못할 기반을 흡수해 전력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황제와 척질 수는 없지.’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다고 했지, 벌써부터 황제에게 등을 보이겠다 말한 적은 없다.

방법은 있다.

카타콤의 평민들을 말살시키지 않으면서, 황제를 만족시킬 방법이.

* * *

“니콜라우스 경.”

엘리아스를 찾기 위해 다시 연회장으로 복귀하자, 몇몇 귀족들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참 지나 자정이 되어서야 나는 숨을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빈인 만큼 주요 귀족들과 한 번씩 대화하는 게 예의인데, 이제 웬만한 사람과는 말을 섞어 봤다.

오늘은 이 이상으로 황제와의 관계가 이어지지 않을 테니, 이쯤에서 돌아가도 좋겠다.

‘…저 시선만 어떻게 하면 말이지.’

나는 연회장 한쪽을 바라봤다.

식사 때 처음 인사했던 황자가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중에도 계속 이쪽을 흘끔대고 있었다.

‘꽤 비중 있는 악역이었는데, 열다섯 살짜리 모습으로 마주하니 새롭네.’

엘리아스보다 두 살 어리지만, 현재 제국2교육원 마법학과 1학년이다.

재능이 뛰어나 어릴 적에 월반했기 때문이다.

딱히 본인이 왕위에 오르려는 욕심은 없지만, 첫째가 왕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기에 엘리아스에게 항상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끝까지 황태자의 충실한 지지자로서 엘리아스를 공격하고, 엘리아스가 실권을 잡고 나서는 투옥된다.

‘어쨌든, 지금은….’

딱히 그런 악역 티는 나지 않고, 중학생티만 풀풀 난다.

지금도 내게 말을 걸고 싶지만, 붙잡는 사람들이 많아 눈치만 보고 있는 듯했다.

내 알 바는 아니다. 나는 뒤돌아 계단으로 향했다.

“가죠, 엘리아스 공작. 이제 저희를 찾는 분이 없으니 슬슬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럽시다.”

“에른스트 경.”

저 멀리서 누군가의 부름이 들려왔다.

안 봐도 누구였을지는 뻔했다. 아델베르트가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만찬 이후 따로 인사하기는 처음이네요.”

“그렇습니다, 전하.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황자는 말을 멈췄다. 겉보기에는 침착해 보였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만 깜빡이는 걸 보니 긴장한 게 분명했다.

“으음, 아, 아닙니다. 잠시 생각 좀….”

“푸흡!”

“…….”

엘리아스가 작위적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손으로 가리자, 황자가 왜 저러냐는 듯한 눈길로 쏘아봤다.

‘어쨌든 얘도 멜빈이랑 비슷한 부류인가….’

성인들은 그러지 않는데, 학생들만 유독 니콜라우스에게 이런 반응을 보였다.

제대로 밝혀진 게 없는 신비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되고 싶은 게 많은 시기라 그런지 모르겠다.

엘리아스가 황자의 매서운 시선에 어깨를 으쓱이며 비꼬았다.

“인사 안 해 줘요? 저는 안중에도 없군요.”

“…그래요. 푹 쉬셨나요, 공작?”

“아뇨?”

“…….”

그가 싸늘한 눈빛으로 엘리아스를 보더니,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언제 한번 진심으로… 크흠, 언제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잠시 대화할 수 있을까요?”

분명 이 말을 몇 시간 전에 이 자의 아버지에게도 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묘한 데자뷔를 느끼며 미소지었다.

‘뭐… 이쪽은 아직 어린애고, 황제와는 느낌이 또 다르긴 하지.’

엘리아스라면 죽일 듯이 달려들고 봤던 인물이 엘리아스의 동료인 나를 좋게 보고 있는 건 솔직히 놀랍다. 이십 대 중반이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열다섯이라 차이가 있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둬서 나쁠 건 없겠다.

나는 긴장한 얼굴로 답을 기다리고 있는 황자에게 가볍게 답했다.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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