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87화 (87/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87)

“예…? 예,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한 컵이면 됩니다. 지금 갈까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조금 그렇지만, 제가 워프할 힘이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에이, 귀찮은 새끼!”

성질이 급해진 엘리아스가 그의 손목을 붙잡고 워프했다.

따라 워프해 들어가자 이미 엘리아스가 알아서 잔을 꺼내 술을 붓고 있었다.

“내가 마신다.”

“그러세요.”

“워프 못 하게 경이 마력으로 잡아 주십쇼.”

“…지금 무슨…?”

황자가 몸을 반쯤 일으키고 어리둥절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닥쳐! 말릴 거면 너도 마셔.”

“아, 아니, 그냥 묻는 건데….”

그러는 동안 이미 엘리아스는 와인 한 잔을 목구멍에 털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를 바라봤다.

엘리아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 보이네.”

“흐음.”

엘리아스가 착잡한 얼굴로 술과 황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바닥에 드러누웠다.

“?!”

“뭐 하는 거야?!”

황자의 경악에도 엘리아스는 여전히 인상을 구긴 채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예?”

갑자기 뭔 소리냐.

“그냥… 나는….”

엘리아스의 눈에 슬슬 물기가 도는 것 같기도 했다.

사촌에게 다리가 박살 날 뻔해서 그런지, 썩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닌 듯했다.

“나는 그냥 큰아버지 목을 치… 읍!”

“농담이 참 과하시군요. 하루 이틀도 아니기는 하지요. 그렇죠?”

이러다 이름도 원래대로 부르겠네.

놈이 날 루카라고 부르기 전에, 나는 그의 목에 마력을 훅 불어넣었다.

순식간에 엘리아스가 잠들었다.

“…!”

황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안 죽었습니다.”

“아, 예. 그렇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아스가 번뜩 눈을 떴다.

“뭐냐?”

“글쎄요. 그냥 평소 같으시네요. 전하, 저도 한 잔 마셔도 될까요?”

“물론이죠.”

엘리아스는 문제가 있었다는 걸 눈치챘는지, 또다시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원래 이런 놈이라 분간이 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평소와는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큰아버지 자식 앞에서 큰아버지 목을 치고 싶다는 소리를 할 만큼 미친놈은 아니다.

그러니까, 황태자가 준 술에는 생각만 하던 것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약이 들어 있을 것이다.

‘간이 크네.’

본인이 바라는 것을 동생의 손으로 실현하려 하다니.

황태자는 소설에서도 그랬다.

둘째인 아델베르트가 매사에 선두에 나서 행동해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비열하기로 따지면 황태자 쪽이 더했다. 오히려 아델베르트는 비열하다는 평가를 붙일 수 없는 자였다.

‘그러니까 감옥만 갔지.’

반역으로 황좌에 오른 자가, 그것도 엘리아스쯤 되는 놈이 인심 좋게 황족들을 살려 둘 것 같은가?

재활용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엘리아스가 생각하기에 아델베르트는, 그 충심만 제 쪽으로 돌릴 수 있다면 굉장히 쓸 만한 패였다.

‘물론 레오는 반대했지만…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황태자는 이런 일을 벌이기에 충분한 놈이다.

어차피 언젠가 날려야 할 목, 이렇게 된 거 비텔스바흐에 약물 감정을 맡겨 증거를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내가 와인을 잔에 붓자, 황자가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에른스트 각하.”

“예.”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인사를 들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심정일지 알기에 그냥 어깨를 으쓱였다.

“뭘요.”

“그리고, 엘리아스.”

“뭐. 미안하다고 할 거면 닥쳐라. 진부하니까.”

황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미안해.”

“…….”

“…이런 말 정말, 염치없게 들릴 거고… 난 아직도 널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뭐 인마?”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 일로 엘리아스가 죽을 때까지 기구에 의존해 걸어야 했다면, 아델베르트는 그 성격상 오랜 시간 자책하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러니 엘리아스가 다치지 않은 게 자신에게 다행일 수밖에.

엘리아스가 뭐 그런 말을 길게 하냐는 표정으로 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팔을 걷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안 다쳐서 진짜 다행이지.”

“어? 왜, 왜….”

황자가 제게 다가오는 엘리아스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빠악―!

“악!”

황자가 엘리아스에게 맞은 머리를 붙잡았다.

엘리아스가 후련한 얼굴로 씩 웃었다.

“다쳤으면 언제 황자 전하한테 꿀밤 먹여 보겠냐? 지금쯤 병원에서 이만 빡빡 갈고 있었겠지. 어휴, 속이 시원하네.”

꿀밤 수준이 맞나?

내가 헛웃음을 치는 사이 엘리아스가 눈물을 찔끔 짜고 있는 황자에게 던지듯 말했다.

“묻어.”

“뭐?”

“네 잘못이 맞는데 네 잘못이 아니기도 하니까, 계속 땅만 파지 말고 적당히 묻으라고.”

엘리아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홱 돌려 이글거리는 눈으로 황자를 바라봤다.

“근데 완전히 묻어서 없애진 말고! 대충 뭔 말인지 알지? 알아서 적당히 선 찾아, 인마! 귀찮게 여러 말 하게 하지 말고.”

“그, 그래…. 알았어.”

엘리아스가 또 위협적으로 다가가자 황자가 몸을 피했다.

그가 무어라 버럭 소리칠 것 같았기에, 나는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작 저하. 슬슬 가죠.”

* * *

나는 잠시 방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방에서 찾은 용기에 와인을 담았다.

간단한 쪽지를 남기고 레오의 비서실에 워프시켰으니, 곧 분석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뭐 했다고 일곱 시냐.’

결국 잠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엘리아스와 마차를 타고 학교 주변 여관으로 이동한 나는, 곧바로 기숙사로 워프해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정문으로 나왔다.

“왔군요, 루카스 학생.”

나를 기다리고 있던 담임 교수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렇게 나는 담임 교수와 함께 여덟 시간을 기차로 이동해,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가세요. 저는 교사 숙소에 있을 테니,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오세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교수님.”

교수의 얼굴이 출발 때와 달리 반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저택에서 나온 사용인의 뒤를 따랐다.

사용인이 복도 한가운데에서 걸음을 멈추고 거대한 문을 가리켰다.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사용인을 보내고 문을 열자, 여러 방이 딸린 거실이 나타났다.

학생들과 카드 게임을 하던 나르케가 내 안색을 보고 말했다.

“많이 힘들었나 보네. 괜찮아?”

“괜찮아. 그러고 보니 네가 여기에 왔네.”

“응, 율리아가 말하기로는 실험에 신력도 재료로 쓰인다더라고~ 그래서 왔지. 네 방은 저기니까 빨리 짐 풀어.”

나르케가 복도 끝을 가리켰다.

나는 복도 끝 문을 열고 별로 놀랍지 않은 얼굴을 보며 말했다.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왔어? 오래 걸렸네.”

레오가 내 자리라는 듯 반대편 책상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렸다.

“아, 네가 보낸 술 분석 맡겼어. 무슨 술이길래 그래?”

“황태자가 자기 동생한테 먹인 술이야.”

“음…? 아델베르트 황자 전하한테?”

레오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마 엘리아스가 말해 줄 거야. 나중에 들어.”

“뭐, 그래. 그리고 루카스, 학교에서 나눠 준 교재는 다 풀 줄 알아?”

나는 레오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그거 못 풀면 중간기말도 망칠 텐데?”

“그렇지.”

경시대회 대비용으로 학교에서 과목별 교재를 나눠 주었는데, 특목고나 다름없는 제국2교육원에서는 딱히 어려운 난이도가 아니었다.

실험 대회에 진출할 학생들만 지원하는 경시대회인 만큼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올림피아드 수준으로 문제를 낼 수 없었던 듯했다.

‘그러니까 내일이 시험인데 다들 카드 게임이나 하고 있지….’

레오가 책을 덮고 일어났다.

“다행이네. 그럼, 경시대회는 됐고 바로 마법약 연습이나 하러 가자.”

* * *

‘경시대회는 됐다고 하는 거 봐라.’

굉장히 바람직하다.

레오뿐 아니라, 우리 학교 학생들 모두 같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몰입에는 도가 튼 놈들이라 그런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다 같이 실험에 집중하고 있으니 점호 시간이 되었다.

복도에서 일을 보고 다시 짐을 챙기러 들어가려던 차에, 저 멀리 난간에 기대어 대화하는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서 익숙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진짜 여기 어떻게 왔어? 아니겠지, 했는데 진짜로 왔더라.”

“여기도 돈 주고 왔겠지.”

“아, 걔 거기도 기부 입학으로 들어갔었지.”

“제국2교육원에 기부 입학이 웬 말이냐….”

“내가 진짜 우리 학교 기부 입학생들도 이해가 안 돼서 하는 말인데, 실력 없으면 안 가면 되는 거 아냐? 하여간….”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 나를 발견한 학생 하나가 제 친구들에게 눈짓하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이런 반응 오랜만이네.’

그래, 학교 밖은 이렇지.

내가 그간 교내의 분위기에 젖어 심각성을 잊고 있었다.

어쨌든, 저 정도야 내가 초반에 느꼈던 교내 분위기에 비하면 양반이다.

그저 딱 기부입학 이야기만 했으니 말이다.

딱히 나를 조롱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여태 저들이 알던 한정된 정보로는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 이래야지.’

그래야 내가 여기에 나온 의미가 있지.

외부에서의 내 이미지가 저 모양이 아니었다면 내가 왜 여기에 있겠는가.

* * *

그렇게, 경시대회 당일 아침이 되었다.

제국2교육원 학생들이 진지한 얼굴로 시험장 바깥 복도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얘들아, 힘내자.”

“나 그냥 50위 턱걸이할게. 레오 너는 1등 가자. 우리 학교 명예 좀 살려.”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우리 학과 1등은 루카스인데.”

“어, 그러네.”

[시험 시작 30분 전입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는 지금 바로 입실하시길 바랍니다.]

안내 음성이 들리자, 학생들이 인상을 구기며 탄식했다.

“아, 진짜 저녁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그니까…. 나 지금 기말 두 번 치는 기분이다.”

‘…점수 안 나올까 봐 그러는 게 아니라 시험 치기 싫어서 저러는 거냐….’

하여간 다들 자신감이 대단하다.

“가자, 이제.”

“다들 잘 치고 와!”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는 모두 고사장이 갈렸다.

나는 내게 인사하는 학생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다.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는 오후 10시까지 학술원 강당으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끝났다.’

정말 아까 어떤 학생이 그랬던 것처럼 기말고사만 두 번 치른 기분이다.

나는 전과 달리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에 나가자 옆 반에서 나르케가 나오고 있었다.

“루카스, 잘 봤어?”

“그럭저럭.”

“하하하, 이걸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나르케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더니, 다른 제국2교육원 학생들을 모아 다 같이 강당으로 향했다. 발표 시간까지 한참을 대기하고 나니 드디어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지금부터 바이에른 왕립 학술원이 주관하는 제국 고등부 학업 경시대회의 가산점 대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전체 발표에 앞서, 1등부터 3등 학생에 대해 상패와 상장 수여가 있겠습니다.]

나는 널찍한 강당을 둘러보았다.

강당의 1층에는 300명쯤 되어 보이는 시험 참가자들이, 2층에는 여러 학교에서 응원하러 나온 선생과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출제 난이도는 같았으나 전국 단위로 범위를 확대한 것이 처음인 만큼, 예년보다 어려웠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기량을 발휘해 뛰어난 성적을 보여준 학생 여러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바이에른 학생 수준이 제국 평균보다 높다는 말을 이렇게 하네….’

[지금부터 2학년 상장 수여자부터 발표하겠습니다. 3등, 프로이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립 마법학교 프레데리케 젝트.]

[축하합니다. 고생 많았어요.]

왕립 학술원장이 학생과 악수하며 상장과 상패를 학생의 손에 넘겼다.

수여가 끝나자 사회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2등 발표하겠습니다. 프로이센 제국2교육원,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와아아아아―!”

순간 귀가 따가울 만큼 커다란 함성이 쏟아졌다.

아까보다 더 큰 반응이었다.

‘잊고 있었는데.’

저놈 인상 점수가 10점이었지.

레오의 인지도와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레오가 학생들이 뻗는 손을 가볍게 잡아 주고 단상 위로 올라가 상장과 상패를 받아 들었다.

[마지막으로, 1등입니다.]

1등 차례가 되자, 사회자가 아까보다 더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프로이센 제국2교육원, 루카스 아스카니엔.]

“…어?!”

“뭐?!”

‘…….’

아까랑 대우가 너무 다른 거 아니냐?

다른 학교 학생들이 충격에 절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단상 쪽으로 걸어가자, 그제야 박수 소리가 한둘씩 들려오더니, 금세 강당을 메웠다.

예의상 치는 것이겠지만, 적막만이 감돌 것을 예상한 것치고는 괜찮은 반응이다.

[축하합니다. 3년 만의 만점 합격자인데, 소감 한마디 할까요?]

‘또? 중간고사부터 세 번째네.’

나는 살면서 내 기억력을 저주한 적이 더 많았는데….

솔직히, 이제는 슬슬 생각이 바뀌고 있다.

나는 확성 마법이 걸린 마이크를 잡았다.

[뜻깊은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국2교육원의 교수님들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국왕 전하 이야기는 최대한 삼가는 것이 좋다. 어쨌든 루카스 아스카니엔과는 접점이 없으니까.

[여러분 덕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특정한 누군가를 겨냥한 말은 아니었다.

모두가 나에 대해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

전 국민이 날 아스카니엔의 부진아로 여기지 않았으면 이 대회에도 나오지 않았을 테니, 사실상 틀리지는 않은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강당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이걸로, 내가 바랐던 이미지 전환의 전국적인 초석이 깔렸다.

* * *

다음 날, 나는 방 앞에 꽂힌 바이에른 왕립 신문을 가져와 책상 위에 펼쳤다.

[바이에른 왕립 학술원 주관 고등부 경시대회]

[2학년 최종 가산점 대상자 명단 (50)]

[루카스 아스카니엔 100.0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99.7

프레데리케 젝트 97.5

….]

‘레오는 문제 하나 틀렸나 보네.’

내가 국왕 전하였으면 점수는 빼고 무작위로 이름을 적었을 텐데, 이러나저러나 해도 ‘이미지를 바꾸는 데에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은 정말 확실히 지켜 주셨다.

비록 왕세자가 타지역 사람에게 밀린대도 말이다.

그리고….

이 대회의 결과는 벌써 해외에도 전달되었다.

나는 왕국신문을 치우고 오늘 자 제국신문을 펼쳤다.

흐릿한 숲과 도심을 뒤로한 채, 재수 없는 얼굴이 피를 잔뜩 묻힌 채로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교황령 라벤나 지역 플레로마 주둔지 성공적으로 파괴]

나는 타이틀을 읽으며 필터를 끼웠다.

인터뷰의 중반부터 소리가 재생되었다.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공작 전하와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경께서 알아낸 정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다음에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한참 진행되던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안부 인사 하나만 전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고맙습니다. 그럼….]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미소짓더니, 입을 열었다.

[루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