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88화 (88/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88)

“…….”

첫날 지하실 이후로 처음 듣는 목소리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이건 보관해 둘 필요가 있겠다.’

듣는 순간, 첫날 느꼈던 각오가 되살아났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환히 웃었다.

[축하해. 네가 잘 지내고 있어서 정말 기뻐.]

[아, 루카스 아스카니엔 공자 저하의 소식을 들으셨나요?]

[물론이죠. 라벤나에서 두 번째 진지를 파괴했을 때 1등 소식을 들었어요.]

[어제 그 시간이면 팀원 중 한 분이 크게 다치셨던 때군요.]

[맞아요. 동생은 제게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는데, 열심히 노력해 좋은 성과를 냈다는 소식을 들으니 없던 힘이 생기더군요. 덕분에 동료를 위해 그의 몫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집안이라면 아픈 손가락이 맞기는 할 것이다.

체질상 크나큰 문제를 가지고 태어난 일곱 살 아래의 동생은 보통 그런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지.

사실 그 체질의 문제는 존재하지도 않고, 아픈 손가락은커녕 곧 죽여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제국으로 돌아와 동생의 앞길을 막을 수도 없고, 이미 내 소식은 널리 퍼졌다.

게다가 내가 실험 대회에 나가는 바람에 나를 집에 두겠다는 계획도 박살 나게 생겼다.

이미 우리가 경시대회를 치른 날부터 제국2교육원에서는 방학이 시작되었고, 나는 대회가 진행되는 첫 일주일은 집에 가지 않는다고 통보한 상태다.

‘눈치 보라는 뜻이지.’

놈도 루카가 이걸 순수한 응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안다.

나는 필터를 뽑아 신문을 가방에 구겨 넣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레오가 책상에 앉은 나를 보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음? 일어나 있었네. 아직 여섯 시 반인데.”

“오늘 발행되는 신문 좀 확인하려고.”

“아.”

레오는 이미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의 기사가 난 걸 보고 왔는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함부로 말을 얹기도 뭐한 듯했다.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레오가 들고 온 바구니를 가리켰다.

“그건 뭐냐?”

“아, 비서실에 와 있던 편지야. 오늘 온 것만 가져왔어.”

레오가 내 책상에 바구니를 올려놓았다.

일주일 전부터, 니콜라우스에게는 수많은 편지가 오고 있었다. 엘리아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편지를 하나씩 뜯어 읽었다.

‘정성이네.’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와 집단의 사람들이 니콜라우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였으면 하지 않을 일이다 보니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하나하나 답장해 줄 시간이 없는 게 아쉽다.’

읽은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고, 다른 편지를 집으려 바구니에 손을 넣었다.

‘음?’

두꺼운 편지가 손에 잡혔다.

내용물을 얼마나 넣었는지, 곧 봉투가 터질 것처럼 보였다.

“이거 다 검수하고 들여온 거지?”

“당연하지. 왕실에 반입되는 건 다 검수해야 해.”

날붙이나 약물 가루 같은 건 들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악의를 드러내려는 놈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철저히 따져야지.

‘대체 뭔 내용을 이렇게 길게 썼는지 궁금하네.’

[존경하는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경에게]

평범하게 시작하는 편지였다.

이번 일에 대한 보고서로 써도 좋을 것 같은 앞 서너 장을 넘기자, 드디어 작성자의 사담이 나오기 시작했다.

[…니콜라우스 경은 꼭 저 같아요. 당신도 제 마음을 잘 알 거예요. 우린 모두 플레로마를 처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발신인을 확인해 봤지만 딱히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세어 보니 편지만 열 장 가까이 들어 있었다. 그 말은 사담만 일곱 장을 썼다는 말이다.

‘…흠.’

마음은 고맙지만 이 정도 열정이면 조금 당황스러운데.

물론 시작부터 끝까지 나와 플레로마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위험 요소가 될 만한 이야기가 적힌 것은 아니었다.

편지의 마지막 장을 읽고 있을 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쿵쿵쿵―

“반장, 나가자! 실험하자!”

“…1분반 친구 목소리인데?”

1분반 반장은 성적이 되지 않아 오지 못했다.

그러니까 레오보고 하는 말인데….

1분반 학생이 2분반 반장을 보고 저렇게 부르고 있는 게 참 놀랍다. 전국의 학생들이 모인 곳에 오니 분반이고 뭐고 같은 학교라는 것만으로 결속력이 생긴 듯했다.

레오가 헛웃음을 치며 문가로 다가갔다.

“그렇게 부르더라….”

문을 열자, 1분반 학생 둘이 서 있었다.

“오, 둘 다 일어나 있었네. 우리 빨리 가야지. 가산점 10점 날릴 수는 없잖아!”

우리 학교 학생은 모두 50위 안에 들어, 팀 전체로 총 10점의 가산점을 얻게 되었다.

다만 거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 학교는 마법약에 특화된 학교가 아니다.

우리 역시 3교육원 때부터 10년 가까이 마법약 과목을 배웠기에 문외한은 아니지만, 이곳에는 대회만 나갔다 하면 상을 휩쓸어 오는 전국의 마법약 전문학교 학생들이 수두룩했다.

놈들이 아침 6시부터 이렇게 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레오가 가방을 챙기며 거실로 나갔다.

“그래, 가야지.”

* * *

“자, 지금부터 연습 시작해 보자.”

레오가 칠판 앞에 서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어제도 왔지만, 이곳 실험실은 좀 더 고풍스럽게 꾸며졌다는 것만 빼면 현대의 실험실과 비슷했다.

기구나 안전장치나, 모두 언젠가 학교 실험실에서 보았던 것처럼 전부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1분반 학생 둘은 저들이 불러서 일찍 온 게 뿌듯한지 서로 중얼거렸다.

“야, 우리 완전 부지런하다.”

“부지런해야지. 바이에른 마법의학 전문학교 이기려면.”

“왜 현실을 말해 주지?”

레오가 학생들의 대화를 정리하려 손을 내젓고 말했다.

“그래, 그 말대로 학교에서 배운 건 여기서 기본이야. 훨씬 난도 높게 나오니까 본격적으로 시험 출제 방식에 맞춰서 준비하자.”

“좋아, 열심히 해 보자!”

“그래, 우선 제국1교육원 의학과 지망하는 사람 있어?”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랬다면 마법의학에 최적화된 특수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분반 학생 하나가 기운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야, 큰일이다. 설마 했는데 다 일반 계열이야. 공지가 일찍 나왔으면 이 대회만이라도 제대로 준비했을 텐데.”

여기 있는 모두가 마법의약학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 레오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은 시험 출제 경향도 모른다.

“없을 줄 알았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을 대충 치를 수는 없지. 그렇지?”

“당연하지. 능력 되면 일단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받아야지!”

“좋아, 기출부터 설명할게. 작년 마법약 64강 시험은 자상 치료약이었지.”

“쉽네?”

“쉬워 보이지. 하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자상 치료약은 몸의 어느 부위에 사용하는 약일까?”

“그거 그냥 다 쓸 수 있는 거 아냐?”

“부위가 따로 있었나?”

“팔다리에 쓰지. 동맥이 손상되지 않은 경우에만.”

내 대답에 1분반 학생들이 둥그렇게 뜬 눈으로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봤다. 오히려 그 반응에 2분반 학생들이 1분반 학생들을 의아하게 보기 시작했다.

2분반 학생들은 내가 말을 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는데, 저들은 같이 수업을 들은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맞아. 이곳 64강에서 요구한 자상 치료약은 ‘파상풍 백신을 맞았다고 가정하고, 동맥이 손상되었을 경우’를 전제로 하고 있어.”

‘여기 벌써 파상풍 백신도 있냐.’

언뜻 들어 본 것 같기도 하다. 마법이 대단하긴 하네….

학생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 그럼 뭐 어째? 그런 거 안 배웠는데.”

“그렇지. 하지만 고등학교 수준에서 풀지 못하는 문제는 나오지 않아.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해 본 사람?”

나르케가 손을 들었다.

“혈관 생성 약도 만들어야겠네~ 그걸 먼저 뿌리고 그다음에 자상 치료약을 뿌리면 되지 않겠어?”

“그거야. 이 정도 수준이 64강에서 나와. 할 만하지?”

“오, 그러면 쉽지.”

시험 상황에서 임기응변력이 뛰어나야 이런 응용에도 쉽게 대처할 수 있겠다.

나르케와 레오가 빠르게 머리를 굴릴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부분은 걱정 없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짧은 걸로 아는데.’

각각의 기본 약물을 제작하는 레시피를 체화하지 않으면 제작법을 떠올렸대도, 시간 부족으로 전부 끝난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시험 시간은?”

“이 문제에는… 7분 할당됐어.”

그 말에 1분반 학생이 입을 쩍 벌렸다.

“…뭐?! 가열은 언제 해!”

“가열은 5분이면 되니까. 그러니까 다섯 중 둘은 과다출혈을 억제하는 약을 만들고, 셋은 자상치료약을 만들어야 해.”

“이야, 이거 손발이 딱딱 맞아야겠네.”

1분반 학생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레오가 그 모습에 애매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서 하나 더 필요한 게 있어. 일반적인 자상 치료약은 얼마 후에 효과가 나지?”

“30분쯤.”

“그래. 작년 첫 시험에서 통과하려면 60초 안에 성공시켜야 해.”

“…….”

모두의 말이 없어졌다.

1분반 학생이 가까스로 제정신을 챙기고 물었다.

“…그런 약 안 팔지 않나…?”

“그래, 맞아. 사실 사용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

레오가 말하면서 능숙하게 재료를 섞고 가열했다.

그러고는 옆에 놓인 실험용 피부를 송곳으로 푹 찔렀다.

사람 피부처럼 피가 줄줄 나기 시작했다.

불을 끄고 끓는 약을 그 위에 뿌리자, 10초도 지나지 않아 패였던 조직이 차올랐다.

“어, 성공한 거야?!”

“잠깐만.”

학생들이 인상을 구기며 한 발짝 물러났다.

피부가 거품처럼 끓으며 표피 위로 계속해서 솟구쳤다.

“조절을 조금만 잘못해도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서 팔기에는 위험하지. 하지만 시험은 64강부터 결승까지 이런 약을 요구해. 그것도 부작용 없이 말이야.”

다들 일반적인 약물은 잘 만들기 때문이다.

오직 난이도 조절을 위해 시장에 팔지 않는 약을 만들게 한다.

‘미래의 흑마법사 양성소 아니냐….’

안타깝지만 이것도 입시의 일환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상향평준화가 거듭되니 해가 지날수록 더욱 괴이한 난이도의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

레오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실, 우리는 64강을 통과하는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야. 작년까지 32강에 진출한 팀은 모두 바이에른의 마법의학 전문학교 재학생이었거든.”

“…올해 처음으로 전문학교 외의 학생들이 시험장에 들어간다는 말이지?”

“거의 처음인 셈이지. 그러니까 우리 목표는 더도 말고 딱 8강 진출로 하자.”

다들 열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8강에 든 팀부터는 바이에른 왕립 학술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 때문에 8강 진출은 많은 학생들의 목표였다.

물론, 내 목표도 그렇다.

마지막 일주일까지 제대로 날리기 위해서는, 방학 기간 동안 왕립 학술원의 특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8강에 들어야 한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1분이라도 빨리 시작하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어.”

“그래, 다들 보안경 끼고, 장갑도 껴. 시간 잴게.”

“주제는?”

“이거 그대로. 나는 일단 빠져 있을 테니까, 너희끼리 해 봐.”

레오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초시계 윗부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시작.”

“야야야, 혈관 만들 수 있는 사람!”

“내가 루카스랑 할게.”

나르케가 베이스가 되는 마법약을 비커에 부었다.

“층이 나뉘어야 하니까, 외막부터 내막으로 들어가자. 으음, 마법약은 재료 이름들이 다 생소하단 말이지.”

“외막에는 조직 복제약, 그리고 유도약 조금.”

내가 병에 적힌 약자를 풀어 말하자 나르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고마워. 내막에 쓸 유도약은 학습 범위 1.5cm짜리로 갈게. 여기선 이게 제일 넓네.”

“그래.”

그렇게, 3분쯤 지나자 우리 약은 끝이 났다.

그런데….

“으악, 진짜! 지금쯤 가열 들어가야 하는데.”

“아, 안돼. 그냥 강불로 때워야 하나? 알코올램프 두 개 깔자.”

“오?”

“…….”

“…뭐가 오야, 지금 4분 되어 가고 있다고.”

레오가 현실적인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렇게 현실을 일깨우지 않아도 이미 1분반 학생들의 얼굴은 장난스러운 말과 달리 어두침침했다. 우리에게도 미안한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100mL에서 3%면 몇 넣어야 하냐?”

“뭐?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아, 아! 3mL!”

시간제한이 있으니 머리가 굳었나 보다.

가열해야 할 시간인데 아직도 약을 만들고 있으니, 망했다는 생각 탓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재료를 고르는 손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2학년 학기 초에 배운 것이니, 한 학기가 지나가는 지금은 잊었을 법도 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운 마법약이 아니고서야, 관련 전공도 아닌데 오랫동안 제조법을 기억하기는 어렵다.

그 부분에서 공부를 게을리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해는 한다만… 이러면 곤란하지.’

평소라면 각자 능력껏 하게 두겠지만, 지금은 안 된다.

나는 입을 열었다.

“얘들아.”

“…응?! 왜?!”

그 뒤에 ‘똑바로 안 하냐’ 따위의 말이 붙을 줄 알았는지, 1분반 학생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아니, 뭐라 하려는 게 아니고. 너희 계산 잘하냐?”

“어? 어. 좀 하지.”

“100mL 3%를 모르는데 좀 한다고? 믿어도 돼?”

“미, 미안, 그건…. 너무 긴장해서 머리가 하얘졌어. 그래서 왜?”

“제조법 다시 암기하면 긴장 안 할 것 같아?”

“당연하지.”

1분반 학생의 눈빛이 일순 진지하게 변했다.

그래, 그렇게 나와 줘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테이블에 턱짓했다.

“불러 줄게. 한번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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