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89화 (89/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89)

시간이 시간인 만큼, 학생은 별 의문 없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의 앞에 서서 말했다.

“표피부터 피하까지 2:5:3 비율로, 층마다 고정 마법 거는 것까지 알지?”

“어, 어.”

“표피부터 만들자. 먼저 조직복제 9, 유도 1 비율로 섞고, 그 양만큼 알리모니움 베이스 넣어.”

“어, 잠깐만!”

“전부 베이스로 복제되기 전에 가열하면서 저어. 그다음 층은 7:3으로, 같은 방식으로 베이스 넣고, 진피에 쓰이는 약은 전체의 50%니까 잘 계산해 봐.”

슬슬 비커가 늘어나자, 나르케가 가열을 맡았다.

“마지막 층은 3:7, 다 했으면 60초 안에 성공하랬으니까 증폭제를 넣어야겠지.”

“얼마 넣었을 때 얼마씩 빨라졌더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고등 수준으로 풀 수 있는 문제만 나온다고 했으니 학교에서 배운 대로 말하면 될 것이다.

“전체의 0.1%를 더 넣었을 때 반응은 각 변화에 맞춰서 10%쯤 빨라져. 대신 추가로 넣은 양이 기존의 5%를 넘어가는 순간 아까 레오가 보여준 부작용이 나온다는 걸 잊지 말고, 잘 계산해서 넣으면 되겠지.”

학생들이 말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약을 부었다.

아까의 방황하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방향 좀 잡아 줬다고 바로 이렇게 하네.’

100mL의 3%가 뭐냐는 질문에서 당황하긴 했지만, 바로 컨디션을 찾는 걸 보니 확실히 제국2교육원 학생다웠다.

줘도 못 먹는 놈들이 있기 때문에 이만한 침착함과 태세 전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보였다.

따르르릉―

“시간은 끝났는데, 일단 완성해 봐.”

레오가 초시계를 껐다.

안 그래도 학생들은 내가 처음에 말한 대로 고정 마법을 걸며 약을 한 병에 합치고 있었다.

“다 했어!”

학생들이 비커를 레오에게 내밀었다.

레오가 실험용 피부를 찌르고 우리가 만든 약을 차례로 부었다.

아까 레오가 보여 주었던 것보다는 느리지만, 흐르던 피가 서서히 멎어갔다.

“…오!”

“됐다!”

피부 조직 역시 느리게 차오르고 있었다.

피부 쪽은 내 도움을 받았다지만 본인들이 만들어서 그런지, 더 반응이 격해졌다.

“…과조직 안 생기겠지?”

“어, 멈췄어!”

온전히 피부가 차오른 걸 보면 계산이 전부 맞게 된 것 같다.

혈관과 피부의 각 층, 그리고 그 층마다 들어가는 약의 비율을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계산이 틀리면 의미가 없다.

그 패닉 상태에서 금세 정신을 차리고 올바르게 계산한 걸 보니 계산 좀 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닌 듯했다.

‘처음인데 이 정도면 괜찮네.’

제조법이야 내가 알려 주면 되니, 여기 둘은 계산하는 놈으로 두고, 레오와 나르케는 문제해결 방향을 잡도록 두면 되겠다.

‘분업 잘 된다.’

만족스럽게 결과물을 보고 있으니, 1분반 학생 둘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뭐냐는 시선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봤지만 그들은 여전했다.

“…왜?”

* * *

“마지막으로 축성한 레몬즙 다섯 방울. 정신 개입 약물은 효과를 죽여야 하니까….”

“희석!”

“그래. 10% 희석.”

우리는 종일 실험실에 박혀 있었다.

내가 놈들을 계산기로 쓰려 했던 것처럼, 놈들도 날 제조법 자판기로 쓰기 시작했다.

내가 읽는 족족 외워서 내뱉는 걸 보니, 레오도 어디선가 64강부터 결승까지의 5개년 기출문제를 가져와 내게 안겼다.

‘…진짜 읽기만 하면 바로 나오는 줄 아네, 이 자식들이….’

이것도 뇌를 사용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글자만 읽어댄 탓에 에너지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나 잠시 뭐라도 좀 사 먹고 온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는 사람?”

“뭐? 내가 사다 줄게!”

1분반 학생 중 하나가 버럭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팀 머리는 앉아 있어. 그런 건 병풍들이 하는 거야.”

“…….”

“너만 병풍인데 왜 싸잡아?”

“들었지? 그런 건 병풍이 하는 거야.”

잘 노네….

나는 그냥 놈들을 두고 나갔다.

어차피 잠시 바람도 쐴 생각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나야 다른 학생들보다 느긋하게 움직이면서 입만 나불대면 되니 큰 불만은 없다.

레오도 우리보다 마법약을 조금 더 잘 알 뿐이지, 마법약 전문학교 학생들처럼 능한 것은 아니기에 암기하는 인간이 꼭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밤을 새워 가며 실험에만 몰두하다, 시험 당일 새벽이 되어서야 전부 숙소로 돌아갔다.

“루카스, 네가 우리 팀의 희망이야!”

1분반 학생 하나가 양손을 싹싹 비비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부터 봤다고 저러나 싶었지만, 어쨌든 여기 뽑혀서 온 친구들은 모두 한 학기 동안 특별반에서 지낸 친구들이라 나름 내면의 거리감이 크지는 않았던 듯했다.

‘플레로마고 뭐고 지금은 징조도 안 보이는 소문보다 실익이 중요하겠지.’

그때, 레오가 무언가를 한가득 안고 들어왔다.

“…뭐냐?”

“꽃다발. 후배들이 응원하러 와 줬어.”

레오가 내 책상에 편지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자, 오늘치 편지.”

“고맙다. 아직도 많이 오네.”

그때 편지 뭉치가 들썩이더니 익숙한 동물이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루카스!”

“뭐야?!”

레오가 어이없다는 듯 파이를 바라봤다.

주변이 깨끗한 걸 보니 설치류처럼 생긴 것치고 편지를 뜯어 먹거나 하지는 않은 듯했다.

“나르케가 지금 잔대~”

―“그래서?”

“놀고 싶어.”

―“놀 수는 없고, 난 한두 시간 뒤에 잘 거니까 그때까지 여기 같이 있어.”

“그래!”

나는 오랜만에 편히 침대에 몸을 파묻고 편지를 하나씩 읽어 나갔다.

서너 개의 편지를 읽고 또다시 바구니에 손을 넣었을 때, 전과 비슷한 두께의 편지가 잡혔다.

“아.”

“왜 그래?”

나는 말없이 경이로운 두께의 편지를 보였다.

레오가 혀를 내두르고 다시 마법약 서적에 얼굴을 파묻었다.

[친애하는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경에게]

‘‘친애하는’으로 바뀌었네.’

전에는 존경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편이 훨씬 부담 없기는 하다.

나는 편지를 열어 첫 문장을 읽었다.

[역시 절 이해해 주실 줄 알았어요! 정말 기뻐요, 에른스트 경. 역시 우리의 영혼은 아주 높은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어요. 플레로마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말이죠. 언제 직접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

이 새끼 뭐냐?

부담 없다는 말 취소한다.

나는 편지를 레오의 책상에 떨구고 머리 색과 눈 색을 바꾸었다.

내가 가면을 쓰고 있자 의아해진 레오가 편지를 읽었다. 그러고는 더더욱 어이가 사라진 말투로 물었다.

“루카스, 너 따로 답장했어?”

“아니. 네가 보기에도 좀 이상한가 보지?”

“당연하지. 뭘 보고 이해해 줄 줄 알았다고 하는 거야?”

“글쎄다.”

나는 편지 봉투를 뒤집어 이름을 확인했다.

‘로버트 뮐러.’

흔해 빠진 이름에, 흔해 빠진 성이다.

나는 편지 봉투를 들고 왕세자궁으로 워프해, 비서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여쭤볼 게 있어 왔습니다.”

“아, 니콜라우스 경. 반갑습니다.”

비서장이 환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근 일주일 사이에 도착한 편지 목록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의 서고로 다가가더니, 두꺼운 장부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뭘요. 앉아서 천천히 보세요.”

나는 책을 펼쳐 속지를 잡고 완드를 들이밀었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로버트 뮐러.”

장부 곳곳이 하얗게 빛났다.

‘…일주일 사이에 편지만 네 번.’

보통 이렇게까지 하나?

하지만… 이게 문젯거리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일주일 사이 열네 번은 또 모를까 네 번 정도면 별나기는 해도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까 읽은 편지도, 조금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썼거나 착오가 있는 것으로 보일 뿐 특별한 악의가 담겨 있지는 않았다.

“비서실에서 보낸 편지 목록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아, 그건 조금 곤란한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전부터 내용이 조금 특이한 편지가 와서요. 혹시 비서실에서 답장을 보내 주셨나 해서 말입니다.”

“저희가 기본적으로 응답하는 편지가 있기는 합니다. 읽어 보시겠어요? 이런 일이라면 예외적으로 장부를 확인해 보셔도 괜찮습니다.”

비서실에서 보낸 편지는 지극히 평범했다.

어딘가에 접수를 한 뒤 나오는 의미 없는 감사 문구와 다름이 없었다.

비서실 발신 장부도 확인했지만, 딱히 나타나는 건 없었다.

‘…설마 저 기본 답신 편지를 가져다가 자길 이해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차라리 착오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현실성 있다.

이상한 사람이야 늘 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약간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요소는 일찍부터 알고 처리해야 하는 게 좋겠다.

‘답장을 보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네.’

나는 그 길로 수사국으로 향했다.

* * *

[지금부터 바이에른 마법약 실험 대회 64강을 시작하겠습니다.]

뭐 이런 걸 수사하냐는 말을 들을 걸 각오하고 갔지만, 수사국에서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내 요청을 받아 주었다.

오늘 아침에 접수 편지가 레오의 비서실로 도착했기에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고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허어… 허어어….”

“어르신 왜 그러세요….”

시험장 복도에 대기하는 우리 팀 학생들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유독 태평해 보이는 나르케에게 물었다.

“긴장 안 돼?”

“응? 하하, 네 기억력이 있으니까 우린 걱정 없어~”

“또 능력 썼냐?”

“으음, 그건 아냐. 사실 시험 직후라면 몰라도 중요한 일 직전에는 되도록 자제하려고 해. 미리 알아 버리면 태만하게 행동하다가 미래가 바뀔 수도 있거든. 그냥 우리 팀을 믿는 거지~”

일리있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항상 일상적이고 잡다한 일에만 능력을 펑펑 쓰기는 했지.

조금이라도 중요해 보이면 상황을 봐 가며 사용하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 바깥을 내다봤다.

시험장은 거대한 체육관이었다.

1만 명을 모았다더니 정말 사방으로 앉아 있는 관객들이 보였다.

한참 다른 학교의 입장을 안내하는 멘트를 듣고 있자, 어느새 우리 학교 차례가 다가왔다.

[52조, 프로이센 제국2교육원 2학년 대표팀.]

“와아아아아―!”

“잘 부탁한다, 루카스.”

어느새 정신을 차린 1분반 학생들이 비장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안전 수칙까지 발표되자, 테이블마다 차음 마법이 걸리고 본격적으로 시험을 시작하는 멘트가 들려왔다.

[첫 번째 실험 주제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정신 개입 마법약입니다.]

“어!”

“어제…! 이거 레몬즙! 맞지?”

학생들이 손뼉을 치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연습한 주제다.

물론 어제만 50개가 넘는 약을 실험했으니 안 걸리기가 어렵기는 하다.

아는 주제가 나와 그런지, 벌써부터 학생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다.

드디어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들렸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 *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64강이 끝났다.

[이것으로 64강 시험을 마무리합니다. 지금부터, 32강 진출팀 명단을 발표하겠습니다.]

마법으로 찍어 낸 글자가 허공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숫자와 팀명을 이루었다.

“…!”

“아….”

“와아아아―!”

곳곳에서 상반된 반응이 들려왔다.

수많은 팀의 이름에 붉은 선이 그어졌고, 그 상대 팀은 32강 진출을 의미하는 선과 이어졌다.

이제 숫자는 46조를 넘어, 47조, 48조로 쭉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52조, 우리 팀의 이름 앞에 32강으로 이어지는 줄이 생겼다.

“우와아아아아악!”

1분반 학생 하나가 고막이 뚫릴 것만 같은 크기로 소리치며 내 어깨를 힘차게 때렸다.

“야, 네 덕이야, 루카스! 너 없었으면 진짜 우린…!”

“…!”

순간 주위가 얼음장처럼 싸해졌다.

다른 학교 학생들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갔다.

분명 뭔 이상한 소리냐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32강 진출팀의 환호성이 들려오며 그 분위기는 금세 사라졌다.

덩달아 놀랐던 1분반 학생이 팀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내, 내가 실수했나? 방금 꼭 그런 말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시선을 받은 것 같은데? 네 소문 때문에 그런가?”

“그렇겠지. 고맙다.”

쓸데없이 정확히 보네.

그때, 레오가 대진표를 보고 미묘한 표정으로 뒤돌았다.

“얘들아. 우리 다음 상대 작센마이닝겐 마법의학 전문학교야.”

“…마법의학…?”

이번에 생존한 32팀 중, 전국의 마법의약학 전문학교 팀은 총 25팀.

앞으로 계속 전문학교와 붙게 될 테니, 진짜는 32강부터다.

[40분 뒤, 이어서 32강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자유롭게 휴식하고 12시 40분까지 자리로 복귀해 주시길 바랍니다.]

* * *

그렇게, 또다시 한 라운드가 끝났다.

절규에 가까운 1분반 학생의 외침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아악!”

“와, 진짜 잘됐다~”

나르케가 32강 대진표에서 빛나는 우리 학교 이름을 보며 손뼉을 쳤다.

걱정이 무색하게, 우리는 무사히 16강에 진출했다.

‘이제 한 판 남았네.’

더 높이 진출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여기서만 우승하면 내 목표는 끝이다.

[20분 뒤, 이어서 16강을 시작하겠습니다. 자유롭게 휴식하고 1시 40분까지 자리로 복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엔 20분밖에 안 남았네. 우리 카페 한번 다녀오면 끝나겠는데? 뛰어서 갔다 올까?”

“그래, 당 떨어진다. 너희 뭐 사다 줄까?”

“아니, 괜찮아.”

“그래? 알겠어. 빨리 갔다 올게!”

1분반 학생 둘이 뛰어서 건물을 나갔다.

나는 저 멀리 사라지는 둘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이쯤에서 제조법을 짚어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난 잠깐 우리 팀 실험실 좀 다녀올게. 이쯤에서 기출 한번 다시 읽어야겠어.”

“그래, 빨리 갔다 와.”

레오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실험실은 체육관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10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 첫 라운드에서도 실험실에 드나드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번엔 두 번째 쉬는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네.’

64팀 중 이제 16팀만이 남았으니 여기에 드나들 사람이 절대적으로 줄기는 했다.

우리 팀의 실험실에 발을 디딘 순간,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콰앙―! 덜컥―

“?!”

뒤에서 바람이 훅 밀려왔다.

열어 놓고 왔던 문이 저절로 닫혀 있었다.

‘…이거 느낌이 이상한데.’

나는 바로 다가가 손잡이를 돌렸다.

덜컥―

“…….”

열리지 않았다.

문손잡이를 돌린 채로 힘껏 밀었지만,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20분 후, 아니, 이제 15분 후까지 입실해야 하는데, 이게 잠겨?’

앞문도 살폈지만 잠겨 있었다.

“누구 없어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쳐 봤지만, 밖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왔을 때 느꼈던 것처럼 지나다니는 자도 없는 듯했다.

‘대체 어떤 놈이….’

적이 많아서 누군지 감도 안 잡힌다.

우리에게 진 팀은 사실상 다 적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 루카 개인에게 악감정을 가진 이, 심지어는 형까지도 용의 선상에 오를 수 있다.

‘…안돼, 지나치게 많아.’

이걸 지금 따지고 있다가는 시간만 버린다.

범인은 나가서 찾아도 늦지 않다.

덜컥― 쾅―

나는 손잡이를 돌리며 문을 밀어 보았다.

일단, 나무 문이 아니라 단순히 몸의 힘만으로는 부술 수는 없다.

‘마법으로 부수거나, 워프해야겠는데.’

하지만 실험실 내외로 워프하는 건 안전 규정에 어긋난다.

들킨다면 그 자체로 팀 실격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어찌어찌 안 들키고 워프한다 해도,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마법을 못 쓰는 자가 이걸 어떻게 풀고 시험장에 왔는가.’

이 점에서 의심을 피할 수가 없다.

이 짓을 벌인 자가 이미 튀었다면, 내가 이 앞으로 워프해 지나가는 사람이 구해 준 척 문을 풀어도 된다.

하지만 만약 누가 지켜보고 있다면 ‘누가 지나가다 열어 줬다’는 등의 자작극을 할 수 없으니, 워프해서 이곳을 빠져나가기 애매해진다.

‘또 단순히 워프하면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신고할 수 없어.’

주동자를 색출하고 처벌할 기회를 잃게 된다.

‘…차분히 생각해 보자.’

마법 없이도 나갈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여차하면 의자로 문을 찌그러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문에 마법이 걸린 것 같은데, 문고리를 10분 안에 부술 수 있을지는 모른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에도 생각했듯, 생각보다 현대의 것과 다르지 않은 실험실이다.

유해 물질을 저장하는 캐비닛과 비상용 샤워기, 그리고 비상 탈출용 망치까지….

‘…현대?’

나는 곧바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찾았다.’

나갈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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