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90화 (90/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90)

“…왜 안 오지? 이제 10분도 안 남았는데.”

레오가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카페에 간 둘은 이제 곧 도착할 테니 됐고, 루카스는 이쯤이면 이미 왔어야 했다.

“지금 가 봐야겠다. 기다려.”

레오의 말에 나르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냐, 내가 가 볼게.”

“엉? 너희 어디 가냐?”

때마침 도착한 1분반 학생들이 물었다.

“음, 루카스 찾아보려고.”

“뭐?! 루카스 없어졌어? 걔 없으면…!”

“아니~ 곧 올 것 같기도 한데…. 직접 가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빨리 갔다 올게.”

“빨리 와야 해! 그쪽 좌표는 알지? 우리 카페 좌표 몰라서 뛰어갔다 왔잖아.”

“야, 실험실 워프하면 안 되잖아…. 우리 팀 실격당할 일 있어?”

1분반 학생이 제 친구를 말렸다.

대회 참가자용 실험실에는 워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워프 수식을 잘못 외웠다가 남의 실험실 테이블로 떨어질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었다.

나르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뛰어서 빨리 갔다 올게.”

* * *

뛰어서 다녀오겠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다.

나르케가 있는 힘을 다해 뛰며 파이를 어깨 위로 불러냈다.

“우와악!”

파이가 어깨에 매달려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잘은 몰라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괜히 워프해 실격의 여지를 내어 줄 필요는 없다.

다리에 마력을 실어서 뛰는 것도 마찬가지다. 너무 빨리 달려서 생기는 사고가 워프 사고보다 더 잦으니, 당연한 규정이었다.

‘하지만… 마력 감지망에 걸리지만 않으면 될 일이지. 사람이 워프하는 게 아니면 문제없어.’

―“파이.”

“으응?!”

―“우리 팀 실험실로 워프해. 아마 루카스에게 네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래?! 알겠어!”

나르케가 그 활기찬 대답에 피식 웃고 실험실 건물 앞에 섰다.

출발했을 때부터 8분도 남지 않았기에, 건물 앞에 붙은 시계는 대회 시작 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음, 이미 시간이….’

그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1층 계단에 서 있던 사람이 나르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

나르케가 그 말에 고개를 까딱이고 제 실험실 앞으로 향했다.

1층에 서 있던 사람은 황급히 건물을 빠져나갔다.

나르케가 그가 나간 쪽을 바라보았다.

‘참 놀라운 상황이네.’

대회 참가자도, 참가 학교의 다른 학생도, 선생도 아닌 자가 이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확실히 알았다. 루카스는 우리 팀의 실험실에 갇혔다.

‘굳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화제가 된 학생을 가둔다고….’

루카스가 아무짝에도 화제성 없던 가산점용 경시대회로 큰 반향을 일으킨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았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 짐작은 하고 있지만, 발상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었다.

덜컥―

‘역시나.’

손잡이를 돌려 보았으나 열리지 않았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열지 못하게 만드는 흔한 잠금 마법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절로 풀리는 마법이고, 일반적인 해체법으로는 10분 가까이 걸린다.

물론 그거야 다른 마법사 기준이고 나는 3분쯤, 아니, 1분만 주면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걸 내가 파괴하면…. 신고했을 때 증거가 사라지겠는데.’

직감일 뿐이지만, 루카스도 어차피 생각이 있는 듯했다.

학생들 장난이라면 그냥 파괴하겠지만 그게 아니기에, 함부로 문을 열었다가는 미래도 어그러질 게 분명했다.

조금 소란이 생겨도, 이건 루카스의 판단에 맡기는 게 낫다.

나르케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과 이어진 건물 1층 복도 끝에 관리실이 있다.

‘이곳 사람에게 상황을 알려 두는 것도 좋겠어.’

“나르케!”

파이가 또다시 어깨 위로 올라왔다.

―“루카스는?”

“이 질문에 빨리 답만 해 달래. 맞아, 아니야?”

―“…흐음….”

사실 얼굴을 보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황상 그가 물어볼 것은 하나다.

―“맞는 것 같네.”

“알겠어!”

파이가 워프해 사라졌다.

나르케가 관리실로 뛰기 시작했을 때, 파이가 또다시 나르케의 어깨로 워프했다.

“으음~?”

“나르케, 루카스가 말 좀 전해 달래.”

* * *

[2분 뒤, 16강이 시작됩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는 모두 자리를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

“어, 어, 어, 어, 어떡하지? 이제 올 때가 됐는데.”

1분반 학생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었다.

주변 테이블과 관중석에서도 대놓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다섯이어야 할 인원이 셋밖에 없으니, 당연했다.

1분반 학생이 어두운 표정의 레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루카스가 왜 안 왔다고 했지?”

“…기출 가져온다고 했어. 실험실에 놓고 왔잖아.”

“그, 그게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거기 뛰어서 2분이면 가잖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레오가 숨을 푹 내쉬며 머리카락을 쓸었다.

한 학생이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나르케는 뛰어서 갔다 온다고 했는데 왜 안 와?! 벌써 5분 지났어.”

“…큰일이야. 우리 벌써 기권한 거나 마찬가지야….”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까지 기다려 보자. 그래도 안 오면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 봐야지. 벌써 포기할 수는 없어.”

“…안 돼, 제조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어.”

“아예 모르는 건 아니잖아. 우리도 전부 배운 것들이야.”

레오가 그들을 다독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불안을 지울 수는 없었다.

‘…16강에 진출한 일반학교는 우리뿐이지.’

우리가 한 약물을 10번 연습했다면, 여기 있는 전문학교 학생들은 50번은 연습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나와 나르케가 틀을 잡으면 루카스가 곧바로 제조법을 던져 준 덕분에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루카스가 없으면… 속도가 안 나.’

말로는 다독였지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다들 심리적으로 무너진 게 보인다.

표정을 관리할 여력이 없는지, 1분반 학생들은 핏기 없는 얼굴로 입술을 물어뜯고 있었다.

다른 전문학교 학생들은 그저 놀라운 일을 다 보겠다는 얼굴로 우리를 구경했다. 그 점이 불안을 더 키운 듯했다.

‘루카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2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멋대로 빠지는 놈이 아니지 않은가.

“이제 30초 남았는데…!”

“…야, 우리… 일단, 여기까지 고생 많았다.”

“뭐?”

“레오, 너도 고생했어. 다른 학교 애들이 여기 왕족 있는 팀이라고 어디까지 올라갈지 기대하던데, 우리보다는 네 부담이 더 컸겠지.”

그 말에 레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벌써 포기할 생각 하지 말고….”

[잠시 뒤, 제151회 바이에른 고등부 2학년 마법약 실험 대회 16강을 시작하겠습니다.]

레오가 입을 다물었다.

이미 학생들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신경도 쓰이지 않던 기자들의 카메라가 유독 거슬렸다.

관중들의 웅성거림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시험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러는 것일 텐데, 마치 우리 팀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은 생각이 사라지질 않았다.

“…아냐.”

나까지 이래서는 안 된다.

셋밖에 안 남았어도, 후회 없이 해야 한다. 시작 전 유의 사항이 안내되는 동안 어떻게든 친구들을 격려해야 한다.

저 멀리 사회자가 마이크를 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귀가 찢어질 듯 가느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삐이이이이이이―!

“아!”

“뭐야?!”

여러 테이블에서 동시에 눈을 찡그렸다.

소리는 여전했다. 학생들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이거 마이크 소음이 아닌데?’

우우우우웅―

이제 다른 경보음까지 겹치기 시작했다.

레오가 귀를 막고 고개를 들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비상구로 긴급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 * *

쏴아아아―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비상구로 긴급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후.’

성공했다.

나는 얼굴로 쏟아지는 물줄기를 피하며, 이제는 푹 젖어 꺼진 성냥 세 개비를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유용하게 썼다.’

스프링클러 땜납 녹이는 데에 말이다.

사실 알코올램프에 붙이라고 있는 것이지만, 이제 와서 뭘 따지겠는가.

실험실인 만큼 이곳 스프링클러는 비상벨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창 너머로 보이는 체육관에서도 같은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정말 저기까지 울리고 있네.’

연결된 건물은 아니지만, 바로 옆 건물이라 그런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비상벨이 꺼졌다.

사실, 저곳까지 울릴 것을 고려해 파이를 나르케에게 워프시켰다.

‘여기 사람 갇혔다고 알리려다가 1만 명을 대피시킬 수는 없지.’

나르케에게 ‘관리실로 곧장 가 달라’고 했는데, 다행히 파이가 내 요구를 제대로 전한 듯했다.

‘사실 나르케를 기다려 볼까 했는데….’

이런저런 과정에 시간이 버려지면 시간이 촉박할 게 분명했기에 마냥 그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정말 몇 초 차이로 늦었을 것이다.

내가 스프링클러를 터트렸을 때 이미 시곗바늘이 시험 시작 30초 전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물론, 땜납을 녹인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쾅― 콰앙―!

“루카스!”

비처럼 쏟아지는 물 너머로 재미있다는 듯 웃는 나르케가 있었다.

그와 달리, 옆에 심각한 얼굴로 서 있는 실험실 관리인이 보였다.

‘불도 안 났는데 기물 파손해서 그런가.’

“아니.”

나르케가 단칼에 내 생각을 잘랐다.

때마침 관리인이 물소리에 묻히지 않게 목청을 키우며 물었다.

“여기 언제부터 갇혀 있었던 거예요?! 누가 그랬는지 알아요?”

“20분 전부터요. 누가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허어…. 지금 경보 때문에 시작 미뤄졌어요. 뛰세요.”

나르케가 그 말에 나를 잡아끌고 뛰었다.

나는 건물을 빠져나오며 뒤를 흘끗 보고 중얼거렸다.

“…여기 소방 예산이라도 좀 보태야겠다.”

“하하, 그거 진짜 고등학생 입에서 듣기 이상한 소리네.”

아네?

이놈도 귀족 집안 출신이라 현실을 모를 줄 알았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 짜내 뛰자 3분 만에 체육관 안의 참가자 출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

“어, 어!”

저 멀리 우리 팀 테이블에서 1분반 학생 둘과 레오가 놀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우리 팀에서 두 명이 사라진 걸 다들 알고 있었는지, 다른 팀에서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학생 하나가 자리를 이탈하고 뛰어왔다.

“으아아아악! 너 왜 이제 와! 진짜 이대로 끝장인 줄 알았어….”

“미안하다. 실험실에 갇혔어.”

“엥?!”

“나중에 설명할게. 몇 분 뒤에 시작해?”

“야, 딱 시험 시작하기 직전에 10분 미뤄졌어. 타이밍 대단하지 않냐?!”

대화를 듣고 있던 레오가 십년감수한 얼굴로 한숨을 쉬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너 왜 가운이 젖었어? 설마 이거….”

“뭐.”

“경보 네가 냈어?! 아니지?”

“이야, 이거 일반적으로 하기 힘든 생각인데 이제 적응했구나~”

“…….”

나르케의 말에 레오가 이제 다른 의미로 힘이 빠진 채 웃었다.

아마도 1만 명을 대피시키느니 어쩌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지만 나 역시도 그 부분에서는 편치 않기에 이해한다.

레오가 그냥 포기했는지, 내게 다른 질문을 했다.

“…그래서, 실험실에 갇혔다는 건 뭔 말이야?”

“말 그대로야.”

“누가, 설마 너 못 오게 하려고 그런 거야?”

레오가 주위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우리 팀의 학생들도 이제야 같은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굳어 가고 있었다.

“…뭐야? 우리 팀 탈락시키려고…!”

“글쎄.”

나도 처음에 했던 생각이다.

범인이 다른 학교 학생인 경우 말이다.

예상을 깨고 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던 만큼 ‘네 덕이다’ 같은 말을 헛소리로 흘려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애들이 머리 덜 굳어서 미친 짓 하는 것으로 여겨 줄 수 있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경우다.

교황령에서 플레로마의 흔적이 나타난 이후부터 줄곧 나를 긁고 있는 형이, 내 마력 사용 여부를 알아보려 했거나 남은 일주일을 집에서 보내게 만들려 했다면?

형이 이 일에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느냐,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맞다’는 답을 들었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여러 신문사에서 나온 카메라와 시험 기록 및 중계용 카메라가 보였다.

행색이 이 모양인 데다 곧 주최 차원에서 조사하러 나올 테니 스프링클러를 터트린 인물이 나라는 건 금세 퍼질 것이고, 아마 형의 귀에도 들어갈 것이다.

‘그래야지.’

그걸 원하고 터트리기도 했으니까.

형이 내가 마력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려 했다면, 나는 가만히 원하는 답을 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아까 8강까지만 오르면 된다…고 생각했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걸로 끝낼 수 있을 리가.

“얘들아.”

“응?”

“8강으로 끝낼 생각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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