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91화 (91/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91)

[이것으로 준결승전 시험을 마무리합니다. 지금부터 결승전 진출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그렇게, 16강부터 8강, 4강까지 물 흐르듯 넘어왔다.

아니, 사실 16강에서 난도가 확 높아져 애 좀 먹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목표했던 것보다 더 높이 올라왔다.

“주, 준결승….”

“…우리 진짜 준결승 친 거 맞아? 분명히 16강이 목표였는데?”

“응? 여기로 넘어온 지가 언젠데~”

나르케는 혼자 태평하게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아까 능력을 써 버려 이번 대회의 결과를 예측했는지, 아니면 원래 놈의 성격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나르케가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나한테 그렇게 생각할 때가 아닌데?”

“뭐가?”

“태평하기로는 네가 제일이지. 제국에서 마법약으로는 최고인 학교랑 붙었는데 긴장을 하나도 안 하던데~?”

8강부터 우리 상대는 쭉 바이에른 마법약학 전문학교 출신이었다.

줄곧 차분히 임하던 레오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8강부터는 조금씩 긴장하는 것이 티가 났다.

“어, 어어어어!”

“와아아아아―!”

그때,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안내판을 보니, 우리 학교의 이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결승까지 가게 됐네.’

만족스럽다.

그 완벽주의자는 자신이 모르는 정보가 생기는 걸 두고 볼 놈이 아니니, 지금 이것도 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형의 계획과 정반대로 움직이겠다는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고 봐도 좋겠다.

물론, 따지자면 16강에 얼굴을 들이민 것부터 그랬지만.

내가 안내판을 보며 입꼬리만 살짝 올리자, 1분반 학생이 내 등을 쳤다.

“야, 몰랐는데 되게 차분하네~ 부럽다!”

“난 아까 너 안 온다고 거의 콧물까지 짤 뻔했는데….”

“뭐야, 더러워….”

레오가 그 표현에 질색했다.

나는 1분반 학생의 물음에 미소로 답했다.

‘긴장할 이유가 없지.’

이길 수 있는 곳과 아직 승부를 보기 어려운 곳은 잘 알고 시작해야 실망이 없다.

단순 암기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그럴 수 없는 분야가 있다.

벼락치기로 시험을 준비한 우리가 최상위 변별 문제에서 제국 최고의 학교를, 그것도 그 안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학생들을 이기는 건 거의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물론, 결승에 진출하긴 했지만….’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수밖에.

상대 팀과 고작 0.5점 차이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또다시 30분이 지나고, 우리는 테이블에서 손을 뗐다.

[이것으로 결승전 시험을 마무리합니다.]

“후….”

레오까지 딱히 현실감 없다는 얼굴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미 우리 팀은 결승전에 진출한 순간부터 제국2교육원 대표팀 이름으로 상을 확정받고 올라간 상황이다.

이쯤 되면 결과가 어찌 나든 큰 관계는 없는데도, 긴장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지금부터, 팀별 점수를 발표하겠습니다.]

[프로이센 제국2교육원 2학년 대표팀, 실험 점수 28.5점.]

[바이에른 마법약학 전문학교 2학년 1팀, 실험 점수 29점.]

[각각 가산점 10점, 10점으로… 우승팀은 바이에른 마법약학 전문학교 2학년 1팀입니다!]

‘음.’

2점쯤 차이 날 걸 예상했는데, 0.5점?

생각보다 잘했네.

‘다만 걱정되는 건….’

나만 이 결과에 만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준우승만으로도 굉장한 행운이 따라 준 셈이지만, 언제나 당사자는 그 사실을 모르니까.

나는 안내판에서 눈을 떼고 팀원들을 바라봤다.

“수고하셨습니다~!”

“야, 진짜 끝났다!”

다행히, 준우승에 아쉬워하는 친구는 없었다.

일주일 준비하고 우승까지 바랐다면 조금 양심이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상대 팀 학생들과 가볍게 인사했다.

레오는 감회가 남다른지 안내판에 뜬 학교 이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대회에서 첫 번째로 타 지역에서 수상자가 나왔네.”

“국왕 전하께서 자랑스러워하시겠어. 프로이센 학교긴 해도 네가 상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음, 대회 확대하신 진짜 목적은 따로 있어서 그쪽 성과에 만족하느라 내 쪽은 생각도 못 하실 것 같은데.”

“설마. 네 부모님이신데.”

“뭐, 좋아하시기는 하겠다.”

레오가 웬일로 학생답게 웃으며 답했다.

[10분 후, 상패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참가 학생들은 모두 대기실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에, 직원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급하게 다가왔다.

“루카스 학생, 나르케 학생.”

“예.”

“잠시 따라오세요.”

* * *

“이러시면 저희도 어떻게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지금 선생님 때문에 만 명이 못 움직이게 생겼는데, 빠르게 끝냅시다.”

“…….”

“휴….”

수사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이곳 경기장과 실험실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나르케가 신고한 사람이 내내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팀 실험실 바깥에는 정말 나를 감시하던 사람이 있었고, 나르케를 보자마자 도망쳤다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문이 잠겼다고 했죠?”

“예.”

“그리고 이분께서 안에 루카스 씨가 갇혀 있는 걸 확인했고요?”

수사관이 나르케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손잡이에 잠금 마법이 걸려 있었습니다. 실험실 관리인께서도 확인하셨는데요.”

“그렇죠. 증언이 계속 나오는데 이렇게 입만 닫고 계시면 일이 더 커지는 거예요. 1만 명 못 나가게 통제했다고 기사 나는 거 순식간이라니까요.”

“…….”

“선생님께서 뭘 알고 그러셨는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가두신 분은 그냥 귀족도 아니고 안할트 공작 자제분이에요. 아스카니엔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뭘 말해도 통하지 않으니 집안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아스카니엔이 이 소식을 들어 봤자 심드렁할 것은 나만 아는 사실이기에, 앞에 앉은 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제가 그런 게 아니라….”

“예예, 그래요. 선생님이 그런 게 아니라?”

“…….”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수사관의 얼굴이 점점 흙빛이 되어 갔다.

이대로면 정말 오늘치 대회를 마치고도 건물을 봉쇄해야 한다.

조용히 끝낼 수 있는 일을 타국 통치가문 자식 감금 문제로 키우게 생겼으니, 나 같아도 심경이 복잡해질 것이다.

내가 통찰 능력이 있는 건 아니나, 얼굴만 보아서는 당장 신력 사용 영장을 떼 올 기세였다. 물론 떼와도 신력을 쓸 수 있는 수사관이 없기는 하다.

‘나야 일 커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문제는 바이에른의 입장이다.

아무리 루카가 별 볼 일 없는 취급을 받고 있어도, 기본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건 사실이다.

바이에른 수도 한복판에서 타국 통치가문의 일원을 감금하는 사태가 일어났느니 어쩌니 하면서 일이 커지면 바이에른만 곤란해진다.

‘사실 이 사람이 본체일 확률은 낮지. 뒤에 형이 있다고 했으니, 전처럼 두세 다리는 거쳤다고 생각해야 해.’

혹시나 뭐라도 잘못 말했다가 주동자에게 위협받을 것을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라면 수사관이 아니라 더 믿을 만한 사람이 말을 들어주는 것이 낫다.

예를 들어 신원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든지.

물론 신원 보호에 있어서는 수사국이 최고지만, 그런 실상과 달리 인식 면에서는 다들 기본적으로 수사국에 불신을 가지고 있다.

‘…대중친화적인 쪽을 고르자면… 왠지 니콜라우스라면 이야기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시도나 해 볼까.’

그때 나르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 그거 괜찮겠는데.”

“예?”

“…….”

가만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 생각을 읽고 있네?

나르케가 수사관에게 잠시 셋이서 대화하자는 사인을 보냈다.

뜻을 눈치챈 수사관이 다른 수사관에게 용의자를 지켜보라고 말하고는 뒷방으로 옮겨가 문을 잠갔다.

“감사합니다. 마침 묻고 싶은 게 생겨서요. 에른스트 경은 수사국에서 활동하지 않으시나요?”

“에른스트 경… 니콜라우스 경이요? 그렇죠. 그분은 왕국군 소속이시잖아요. 여긴 바이에른 연방 정부고요.”

“심문만 맡겨 보는 건 어때요? 신력 영장만 발부받으면 그분이 심문할 수 있을 텐데요.”

“예? 그분은 수사국 분도 아니시고….”

수사관이 난감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규정상 안 되는 건가요?”

“아뇨… 대화를 이끄는 정도면 괜찮지만, 왕세자 저하를 보좌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안 되는 건 아닌데, 수사국 소속도 아닌 왕세자의 호위를 부르기는 부담스럽다… 이거지.

나는 나르케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 * *

허락만 받는다면 가능하다.

그 대답을 듣고, 우리는 다시 대기실로 뛰어갔다.

수사관은 직접 연락해 보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레오에게 허락받고 오겠다고 한 덕에 그럴 필요는 없게 됐다.

‘그쪽이 연락하면 안 되지.’

내가 니콜라우스인데, 그 자리에 같이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자리를 뜰 생각으로 직접 뛰어왔다.

우리를 보자마자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어? 누가 그런 거래?”

“아직 못 찾았어. 레오, 나 수사국 갔다 온다.”

“이제?”

레오가 지금까지 갔다 온 거 아니냐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니콜라우스 좀 쓴다.”

“아, 그쪽. 마음대로 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자, 레오가 나를 불러 세웠다.

“루카스.”

“왜?”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앞으로는 허락 받았다고 해. 나도 눈치껏 얘기 들었다고 할게.”

“그래, 고맙다.”

“내가 뭐 도울 건 없어?”

“이미 도왔어. 간다.”

레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있다가 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빠르게 준비하고 수사국으로 워프했다.

똑똑―

거의 곧바로 문이 열렸다.

아까 봤던 수사관이 반갑게 인사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급하게 말씀을 드렸는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른스트 경.”

분명 방금 봤는데 이렇게 첫인사를 하니 어색하다.

나는 변조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일이 커질 수 있다고 저하께 전해 들었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저쪽입니다.”

수사관이 내게 방을 안내하며 말을 이었다.

“대답을 안 합니다. 여태 말한 게 자기 이름밖에 없어요. 그것도 처벌 얘기를 꺼내고서야 10분 전에 간신히 말한 겁니다.”

그가 내게 파일을 내밀었다.

“자료인가요?”

“예, 증언을 바탕으로 적은 사건 기록입니다. 저, 그런데….”

“말씀하세요.”

“알아보니 신력을 쓸 수 없게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영장을 발급받으러 검사하던 중에 알아서요.”

“…어디에요?”

“동맥이요. 해체법은 아직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왕국에 신력 마법사가 많지 않아서요.”

정말 작정했네.

심문을 막기 위해 아예 사람을 인질로 썼다.

“그렇다면… 신력을 동원하지 않고 말하게 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겁니까?”

“지금 알아보기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말하지 않고 있으니 참 답답합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나는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까 보았던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위르겐 에더 씨.”

그는 내 눈을 흘끗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신력을 쓸 수 없다고 해도 문제는 없다.

눈앞에 주어진 정보로, 온건하게 말로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그 전에, 하나 확인하고 가자.’

위르겐 벡

호감도 +6

‘흠.’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데, 이렇게 떳떳지 못 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도 니콜라우스에 대한 인상이 크게 나쁘지 않다.

어쨌든….

그 문제는 됐고.

“…아니, 위르겐 벡 씨죠.”

“…!”

상대가 눈에 띄게 동요하며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의 고급진 옷과 반짝이는 시곗줄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반응하시면 벡 씨의 성씨가 에더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셈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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