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92)
“…….”
상대방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인상을 구겼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내며 미소지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벡 씨를 돕기 위해 왔는데, 습관이 나왔군요.”
“…습관이요?”
“플레로마를 심문할 때의 습관이라서요.”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말이었다.
여기서, 내 생각을 조금 끼워 보자면….
형은 ‘마법을 쓰는지 아닌지 확인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완벽주의자는 증거를 남길 놈이 아니다.
대신 전처럼 ‘시종장을 시켜 약을 먹이는데도 마력이 잘 제어되는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어 걱정된다’, ‘동생이 체질을 감추지 못하고 폭주할까 걱정된다’ 따위의 말을 써서 보냈을 것이다.
형의 조심스러운 편지를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그와 정반대나 다름없는 이 폭력적인 결과를 연결해 보면….
‘편지를 받은 사람은 굉장히 정의감이 넘치는 자겠지.’
플레로마라면 치를 떠는 자가 내 마력을 증명하기 위해 위르겐 벡에게 명령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르겐 벡의 깔끔한 의복을 보면 돈이 없어 이런 짓에 가담했을 가능성은 낮다.
협박을 받았거나, 명령을 준 자와 뜻이 같을 것이다.
“시작해 볼까요?”
“…….”
“벡 씨가 학생을 가둔 건 범죄가 맞습니다. 뜻이 뭐든 그 부분은 피해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양손을 맞잡고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그 동기는 한번 들어 보고 싶군요. 저도 그 학생의 소문을 익히 들었기에 하는 말입니다.”
“…니콜라우스 경은 그 소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만나 본 적이 없어 섣불리 말할 수가 없군요.”
“만약 그 학생이 플레로마가 맞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 학생이 지금 눈앞에 앉은 니콜라우스인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플레로마라면 앞으로 생길 피해를 생각해서라도 미리 뿌리를 뽑아야겠지요.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10년간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던 것 아닙니까.”
내 말에 그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경계하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소문은 진실입니다.”
“…….”
“그 가문 사람들은 알고 있죠. 모두 같은 말을 합니다. 그 학생이 마법을 쓰는 순간 아스카니엔은 끝난 목숨이라고….”
“그렇군요. 그래서 마법을 쓰는지 아닌지 알아보려 하신 겁니까?”
“…….”
사건으로 돌아오는 순간 귀신같이 입을 닫는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뭐, 싫다면 됐습니다. 어차피 앞서 하신 말씀에 따르면 당연히 마법을 쓰려는지 아닌지 알아보려는 의도였겠죠. 얻어 내신 바는 있습니까?”
“…….”
“없죠. 듣기로 그 학생은 마법을 쓸 수가 없어서 화재 경보를 내서 위치를 알렸다고 하던데….”
“가짜일 겁니다.”
“그래요?”
나는 또다시 웃음이 나려는 것을 참아야 했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다니.
물론 가짜가 맞다.
일부러 마법을 못 쓰는 사람이 쓸 법한 방법을 골랐으니까.
“벡 씨, 당신의 주장에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만약 벡 씨가 루카스 아스카니엔을 플레로마로 신고하고 싶다면, 정말 제대로 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증거? 설마 니콜라우스 경도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이건 생각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요. 수사는 최소한 매뉴얼을 지켜서 해야 합니다.”
“문이 잠긴 건 그 학생에게 위기 상황이 아니었던 거겠죠. 마침, 마법을 쓰지 않고도 나갈 방법이 있으니….”
벡이 말을 하다 말끝을 흐렸다.
확신이 없어 보였다.
“그런가요?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워프하지, 화재 경보를 낼 생각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그자는 그렇게 담대한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온건히 빠져나갈 방법이 있었다면 마법을 써서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
“벡 씨, 증거는 이런 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약간의 연민을 담아 고개를 가까이했다.
순간 그의 눈이 잘게 떨렸다.
“뭐,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증거를 찾으려 한 결과가 어떻습니까?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한 채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
나는 그의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신력을 불어넣는 순간 동맥이 터지겠죠. 이 일이 과연 그렇게 해서 얻어 낼 가치가 있는 일인가….”
“가치는 당연히 있습니다! 그자가 어릴 적 어떤 마력을 가졌는지 경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그 마당에 플레로마라면…!”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는 없었는가, 계획과 생각에 비용을 아낀 게 아닌가… 잘 생각해 봐야겠죠. 생각보다 당신의 목숨은 비싸지 않습니다.”
“…….”
그의 얼굴에서 평정이 사라졌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이런 일을 맡았는데, 동맥 값이 비싸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는 얻은 것이 없으니까.
동요시키는 데에 성공했으니, 이제 쐐기를 박아야 한다.
“제 생각에 결과는 썩 좋게 흘러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벡 씨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
“누가 건 마법이죠? 꽤 정교하네요. 제가 아는 분이라면 도움을 조금 드릴 수도 있는데….”
그가 나를 의심 섞인 눈으로 쳐다봤다.
“이대로 돌아가면 당신은 죽을 겁니다. 어떻게든 입을 닫게 해야 할 테니까요.”
“그럴 분이 아닙니다.”
“많이 지켜봐서 알지만, 다들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목숨으로 도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
나는 숨을 후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루카스 아스카니엔이 플레로마인지 아닌지, 일 년 안에 제가 직접 증명해 보도록 하죠.”
“…일 년…!”
“너무 긴가요? 그래도 동맥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가 나를 노려보다 작게 중얼거렸다.
“6개월.”
“그래요, 그 정도면 좋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내라는 명령이 있었나 보죠? 교수님 성격이 급하시네요.”
“…!”
벡의 눈이 커졌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말아 쥐며 시선을 내 눈에 고정했다.
나는 그 반응에 헛웃음을 쳤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한 번 실수했음에도 실수를 깨닫지 못한다면 당연히 같은 방법을 쓸 수밖에.
‘전부터 오지랖이 대단하네.’
그는 정보원을 나르케로 교체한 걸 자신의 의지라고 믿고 있을 테니, 이런 대담한 짓을 해도 내가 알 수 없으리라 생각했겠지.
대신, 이번에는 신력으로 입을 막게 만든 걸 보니 나름대로 발전하기는 했다.
“스테판 트라우트 교수님께서는 걱정이 많으신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소문대로군요.”
“…어, 어떻게….”
벡이 미친 듯이 눈을 깜빡였다.
학습 능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당황해서 반응이 먼저 나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또 이렇게 반응하다니 놀랍다.
내 말이 맞다고 답해 준 셈 아닌가.
다만 여기서 문제가 있다.
띠링―!
〈 Chapter 5. 좋은 물건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1) 〉
제안 2: 최적의 선택을 하세요. (0/1) (0시간 9분 59초)
*Route 1 — 〈 제안 3 〉
*Route 2 — 〈 Chapter 6. 빛나는 것이라고 모두 금은 아니다 〉
‘…이거 오랜만이네.’
‘최적의 선택’.
그리고 저 재수 없는 Route 2의 이름까지, 오랜만에 보니 반갑게까지 느껴졌다.
내 기억에 저 ‘최적의 선택’은 미래 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에만 나왔던 걸로 아는데, 이번 일도 그런 일에 속하는 게 분명하다.
그럴 만하다.
‘형이 쥔 패가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알면 당연히 다른 패를 집을 테니까.’
스파이는 내 손 안에 있어야만 한다.
형도, 트라우트도 자신이 이기고 있다는 멍청한 감각 속에 있어 줘야 내가 두 번 고생하지 않지.
‘그럼 유도해야지.’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이끌어 내면 될 일이다.
마침, 내가 원하는 결과가 상대의 이해와 일치하는 상황이지.
“제가 있는 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트라우트 교수님께서 늘 애쓰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요. 다만….”
벡이 경계를 풀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조금 놀랍네요. 그분이 이런 것을 명령했나요?”
“…….”
“벡 씨가 아스카니엔의 분위기를 잘 알고 계셨던 걸 생각하면…. 분명 그 교수님은 아스카니엔의 후원을 받으신 분이셨죠. 이제야 좀 아귀가 맞는 느낌이군요.”
“그, 그런 게…. 아니, 고작 이런 일에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아까도 처벌이 두려워 제 이름을 털어놓았다고 했지.
물론 가짜 이름이었지만, 지금도 눈에 띄게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면 처벌 이야기는 그를 동요시키기에 최적인 주제다.
“물론입니다. 목적은 이해하지만 결과는 범죄니까요. 특히 계획을 짠 분이 누구인지 찾아내야 합니다.”
내가 생각에 잠겨 책상을 손으로 툭툭 두드리자 그가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반응할 만하다.
트라우트가 자신을 인질로 쓰는 것에 동의하려면 보통 충성심이 아니어야 할 테니까.
“믿기지 않는군요. 아스카니엔에서도 트라우트 교수님의 독단을 알고 있습니까? 이 일이 커지면 아스카니엔에서도 처벌을 고려할 텐데….”
“접니다.”
“…….”
내가 그를 빤히 보자, 그가 눈을 피하며 말했다.
“…저는 그 교수님이 시켜 이 일을 했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그저 들은 말을 토대로… 제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뿐입니다.”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실험실 뒷문에 걸린 마법은 관리실에서 해체했지만, 앞문에 걸린 마법은 신고가 들어간 직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누구의 마력인지 알아보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압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그분은 제가 이미 많이 신세 지고 있는 분입니다. 갑자기 신고받으시면 놀라실 테니, 그분을 용의자로 올리는 건….”
내가 아는 트라우트는 단순히 말만 흘리면서 조심스레 행동할 놈이 아니다.
그런 놈이 자기 학과 학생에게 내 감시를 맡겨? 나라면 좀 더 품을 들여서라도 내가 직접 감시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파일에서 종이 하나를 떼어 밀었다.
“그렇다면 그분 말고, 정보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자들이 있다면 명단을 적어 주시죠. 전부 조사할 것이니 거짓으로 적어서는 안 됩니다.”
“아….”
벡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반응과 달리 그는 흔쾌히 종이를 채울 것이다.
‘트라우트에게만 관심이 집중되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
입을 벌린 채 종이를 빤히 보던 벡이 시선을 올려 나를 보았다. 번들거리는 눈에서 미묘한 승리감이 스쳐 갔다.
나는 미소지으며 펜을 향해 손짓했다.
이내, 벡이 막힘없이 이름을 적어 나갔다.
‘내가 헛발질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생각해라.
내 목표는 누가 형의 계획에 동원되었는지 아는 것이었다.
놈이 ‘교수님’ 소리에 격한 반응을 보인 것만으로 내 목표는 끝이었다.
그리고 이걸로, 트라우트와 사상이 비슷한 인간들의 명단도 얻은 셈이다.
‘그러니까, 이 자들도 형의 영향권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
앞으로 쓰일 가능성이 큰 자들이다.
종이를 내게 민 벡이 결연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반년 내로 찾아봐 주실 겁니까?”
정의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는 자신이 믿는 정의가 과연 진정한 정의인지 아닌지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오로지 ‘루카스 아스카니엔이 플레로마인가 아닌가’ 이것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다 버리고 있지 않은가.
그 루카스 아스카니엔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게 플레로마를 줄이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될 텐데 말이다.
어쨌든, 거짓을 말할 생각은 없다.
나는 적당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약속하죠.”
띠링―!
축하합니다!
‘제안 2: 최적의 선택을 하세요.’ 완료!
‘Route 1 — 〈 제안 3 〉’을 확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