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95화 (95/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95)

유명인 하나쯤은 희생할 수 있다고 믿는 놈들이 니콜라우스의 목숨을 이용할 기회를 놓치려 들까?

‘놈들을 손에 넣을 생각은 있어도… 놈들의 선전 도구로 쓰일 생각은 없지.’

소설의 상황이 그대로라면 이 짓을 벌인 놈들은 카타콤 중에서도 극히 일부다.

그 일부 탓에 황제 좋은 일을 시켜 줄 수는 없다.

그때 엘리아스가 히죽거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니콜라우스만~?”

“그래. 신원 하나 더 만들자.”

“하아…. 그럼 그렇지.”

레오가 깊은 한숨을 끄집어냈다.

“당연히 치료는 끝나고 시작할 거야.”

“그래야지. 애초에 다 낫기 전에는 못 나갈 텐데 뭘 그렇게 이야기해?”

레오가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말문이 막혀 웃음만 짓고 있자, 레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어쨌든 네 계획은 들어 볼 만하니까. 네 목표가 우리의 목표기도 해. 얘기해 줘.”

좋다.

이렇게 나와 줘야지.

레오가 없다면 정보를 찾기 어렵다. 애초에 레오가 워프 제한을 풀어 줄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양손을 맞잡으며 둘을 바라봤다.

“우선, 얘기하기 전에 너희가 읽어야 할 게 있어. 레오, 지금부터 우리 숙소로 워프할 건데 잠깐 경보 좀 꺼 줘.”

“뭘 굳이 꺼. 내가 가져올 테니까 뭔지 말해.”

레오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잠깐도 안 된다는 강경함이 잘 보인다.

뭐, 갖다준다면 나야 편하지.

“내 침대에 폐하께서 보내신 편지가 있어. 읽어 봐.”

레오는 그대로 사라졌다가, 금세 편지를 들고 돌아왔다.

편지를 읽기 시작한 레오가 점점 표정을 굳혔다.

“평민 마법사를 찾았다니?”

“…….”

엘리아스는 굳은 얼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와 황제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알고 있으니, 무슨 상황인지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레오가 혼란스러워하자 엘리아스가 입을 열었다.

“큰아버지가 카타콤을 자기 지지율 올릴 도구로 쓰려 해.”

“뭐?”

“카타콤을 플레로마로 몰아 제거한다면 대부분의 평민은 황제가 플레로마로부터 자기들을 지켜 주는 줄 알고 좋아할 테고, 귀족은 ‘평민 마법사’가 사라져서 기뻐할 테지. 전 계층에게서 환심을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야.”

“…….”

그래서 지금 쥐 잡듯이 평민 마법사를 찾아낸 거라고.

레오는 그런 표정으로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엘리아스가 싸늘하게 말했다.

“죽었겠네. 무덤 하나 갖지도 못하고.”

한참 정적이 이어졌다.

마침내 레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이걸 보여 준 걸 보면 네 계획이 이 편지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겠지. 뭘 해야 할지 말해 줘.”

“마리안 바움. 이 사람을 찾아 줄 수 있어?”

소설의 후반부까지 엘리아스에게 협력했던 카타콤 마법사다.

그는 수십 년간 경찰에 붙잡힐 위험을 무릅쓰고 평민 마법사를 구조해 왔기에, 카타콤에서 인망이 높다. 그런 만큼 그가 데려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전 검증이 아니라 사후 검증을 시행한다.

‘물론 그런 계산보다는… 당장 위치를 아는 카타콤 마법사가 마리안 바움밖에 없지.’

소설에서 엘리아스를 카타콤에 데려간 장본인이니, 그를 통해서 갈 때 전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도 할 테고.

“국적은?”

“확실하진 않지만, 바이에른일 거야. 적어도 활동지는 바이에른이 맞아.”

“흠… 그래. 이 사람은 누군데?”

“카타콤 마법사.”

순간 레오와 엘리아스의 얼굴이 굳었다.

“카타콤 사람을 안다고?”

“…이야…. 이 사람도 곧 죽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레오가 엘리아스를 흘겨봤다.

“…바이에른에서는 평민 마법사 안 죽여. 검문도 그냥 형식이라고.”

“그건 그렇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지.

바이에른과 몇몇 국가를 제외한 제국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제국 정부의 무관용 사형 권고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카타콤 사람이라는 게 정확하지는 않아. 내가 얻은 정보가 맞는지 우선 확인부터 해야 해.”

소설에서 엘리아스는 거지꼴로 돌아다니다가 자연스레 그를 만났지만, 나는 정보의 원천을 밝힐 수 없으니 이렇게 완충재를 깔아 두는 것이 낫다.

“그렇게 할게. 그럼, 그다음에는 어쩌려고?”

“접근해야지, 당연히.”

그렇게 답하자, 평정을 찾은 엘리아스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로버트 뮐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카타콤 이야기가 나왔네. 루카 너는 이번 일이 카타콤 짓이라고 생각하나 봐?”

“그래. 나는 이번 일이 두 번 꼬인 문제라고 생각해.”

레오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기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레오 네 말은 이거지. 모든 증거가 극성팬인 로버트 뮐러의 짓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은 그것마저 전부 플레로마의 의도다. 일리 있어. 플레로마가 아니라면 나를 공격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

“하지만 나를 공격해서 이득을 얻을 집단이 하나 더 있다면?”

내 말에 엘리아스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카타콤이 널 공격하면 이득을 얻는다고? 그새 큰아버지 의견에 감화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아까 레오가 그랬지. 플레로마가 단순히 우리를 죽인다면, 대국적인 분노만 살 뿐이라고.”

“그래.”

“그걸 노린 거야. 한창 이슈가 커진 이 시기에 니콜라우스가 희생당한다면 플레로마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이르게 될 테니까.”

나는 아까 읽었던 뮐러의 편지를 레오에게 건네며 말했다.

“한마디로, 국민들을 손쉽게 반플레로마 정서로 단결시킬 수 있지.”

“…….”

“그 뒤의 계획은 모르고, 지금의 단서로는 추측할 수도 없어. 다만 지금은 이게 카타콤의 짓일 가능성도 지울 수 없다는 얘기야.”

엘리아스가 손뼉을 쳤다.

“야, 이거 좀 복잡해지는데~ 카타콤 역시 플레로마의 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짓을 벌였다는 말이잖아…. 상식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 돼.”

엘리아스가 웃음기를 지우고 턱을 쓸었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플레로마의 적이기 전에 그 사람들은 평민이니까. 카타콤은 마력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비마법사 평민보다 훨씬 더 박해받고 있어.”

“우리한테 말이지.”

“그래. 그리고 왕세자의 전속 부관인 니콜라우스 에른스트는 귀족 중에서도 상당히 출세한 귀족이야. 같은 편이지만 같은 편이 아니다…. 아, 이런 게 제일 재밌지.”

엘리아스가 꼭 처음 만났던 날처럼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항상 보면 엘리아스는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특이했다.

레오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루카스, 이게 두 번 꼬인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상대를 지나치게 고평가한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해.”

“그래. 그저 플레로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지.”

실제로 카타콤에 플레로마가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카타콤이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솔직히 나는 여전히 이게 플레로마의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네가 카타콤에 가야 한다면….”

레오가 한참 침대만 내려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자. 도울게.”

“이야, 진짜 전적으로 믿어 주는구나. 좋은 태도야.”

엘리아스가 낄낄댔다. 그러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우선, 루카 네 의견에 동의해. 하지만 카타콤에 잠입해서 뭘 할 건지는 미리 들어보고 싶네.”

“잘못된 부분을 잘라 내야지. 너나 다른 반플레로마 유명인들이 카타콤의 제물이 되기 전에 말이야.”

“그래, 그건 당연해. 그 뒤에는?”

엘리아스가 웃는 얼굴 그대로, 건반을 두드리듯 제 손등을 툭툭 쳤다.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걱정하는 듯했다.

조금만 삐끗해도 황제를 돕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카타콤을 얻어야지, 엘리.”

* * *

레오는 내가 이야기를 꺼낸 날로부터 사흘이 되는 날, 그러니까 내 치료가 끝난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어 자료를 가져왔다.

자료에 따르면 마리안 바움은 뮌헨의 중견 극단에서 총책임자이자 연출가로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소설에서도 지나가는 이야기로 나오기는 했지.’

잘된 일이다. 어디 은둔하고 있는 자가 아니니, 적어도 그에게 접촉할 시간은 충분히 확보된 셈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저녁이 되어, 나는 손의 붕대를 풀고 마리안 바움을 찾으러 극장에 왔다.

‘과연 바로 찾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천천히 시작해 보자고.

“…아, 휑해.”

옆에서 들려온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옆자리에 앉은 나르케도 엘리아스를 흘끗 돌아봤다.

극장에 도착해서도 엘리아스는 계속 목을 만졌다.

나는 실내임에도 아직도 둘려 있는 그의 목도리에 고갯짓했다.

“이미 목도리까지 둘둘 감싸고 왔으면서.”

“갑자기 잘라서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어~ 근데 진짜 잘 어울리지?! 아, 나 너무 멋진데?”

“그렇게 받아들여 주니 다행이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엘리아스는 그동안 뒷머리를 어깨 바로 위까지 기르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레오처럼 짧게 머리를 쳤다.

머리 모양을 바꾸는 데에 반감이 클 법도 한데 신력으로 언제든지 늘일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엘리아스는 선뜻 머리카락을 내주었다.

어떻게 될지 몰라 데려온 것이지만, 누군가 그를 알아본다면 곤란해지기에 인지 교란 마법까지 걸었더니 나름 튀지 않고 묻히는 인상이 되었다.

엘리아스가 내게 귓속말했다.

“너는… 그냥 펠릭스 바이첼 아냐?”

비슷하긴 하다.

이번에도 머리가 붉은색이니까.

금발은 형과 비슷해지니 할 수가 없고, 자연적으로 나는 색으로 남은 선택지는 갈색과 붉은색밖에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펠릭스 바이첼이 맺었던 인간관계는 딱 한 명뿐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안경 안 썼어. 눈도 더 짙은 색이고.”

“뭐, 그렇긴 하네! 훨씬 낫다.”

금세 극이 시작되었다.

극은 파우스트로, 전에 직접 자리에 섰던 공연의 네 배 길이였다.

나르케가 내게 신력으로 말을 걸었다.

―“음, 여기엔 네가 말한 그 사람이 없네. 인사하러 나오지도 않았어.”

―“그래? 끝나고 뒤로 가 봐야겠네.”

그렇게, 3시간쯤 지나자 객석에 불이 들어왔다.

나는 친구들과 눈짓하고 곧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지금까지는 시작도 아니었다.

건물의 후문으로 나가, 공터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공연장과 이어진 반대편 건물 앞쪽에 누군가 담배를 피우며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르케가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아, 저 사람부터 시작하면 되겠어.”

―“어떤 사람이야?”

―“추측이긴 하지만, 적어도 마리안에게 널 연결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거야.”

괜찮네.

먼저, 극단 내부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야 평민임에도 마력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테니 이곳에서 잡일꾼이든 하인으로든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쳐야 한다.

이 정도 극단이면 포화 상태일 테니, 그마저도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다.

‘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먼저 해야지.’

나는 나르케가 가리키는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가 나를 빤히 보더니 무언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디트리히 그라나흐입니다. 방금 공연을 감명 깊게 봐서요.”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요?”

“당장 이곳 배우로 서고 싶습니다.”

“으음, 이곳…. 예?!”

뒤에서 엘리아스가 나르케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래도 돼?”

“하하….”

이래도 되냐는 말이 엘리아스에게서 나오니 새롭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배우가 되려면 어디서든 수습만 몇 년을 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잡일꾼으로 부려 달라는 말을 하기에는, 요즘 극단에서는 허드렛일할 사람을 따로 뽑지 않는다.

배우 지망생을 견습으로 쓰면 되기 때문이다. 좀 어이가 없지만 이곳에서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세게 나가도 문제가 되진 않지.’

오히려 허드렛일을 시켜 달라고 할 때 거절당할 확률이 더 크다. 공짜로 일해 줄 배우 지망생이 넘치는데 굳이 잡일꾼을 둘 필요가 없지.

역시나 그는 별 이상한 놈을 다 보겠다는 얼굴로 나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혹시… 어디 분이시죠?”

“프로이센에서 왔습니다.”

“아뇨, 어느 극단에 계신 분이시죠?”

“예?”

“배우 아니세요?”

“…아닌데요.”

잠시 말이 헛나올 뻔했다.

순식간에 상대방의 표정이 일변했다.

* * *

미친놈 취급을 받고 쫓겨날 줄 알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데리고 들어가 질문을 쏟아냈다.

“나이는?”

“스물셋입니다.”

“무슨 일을 하시나요?”

“데겐베르크 남작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기에 오기 전 말을 맞춰 줄 수 있는 가문이 있냐고 국왕 전하께 물었다. 그렇게 답변으로 온 곳이 이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되죠?”

“요나스라고 부르세요.”

“요나스 씨, 여기에 배우는 몇 분 계십니까?”

“글쎄요, 정확히는…. 저는 배우를 케어하는 일을 맡지는 않아서요. 견습을 포함하면 쉰 명쯤 될 겁니다.”

“생각보다 많군요.”

“이 분야 판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스타 배우들이 늘어나니까 다들 하고 싶어 하시죠.”

극단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는 상황이다.

언젠가 시켜 준다 말하면서 죄다 부려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럼, 저도 견습부터 시작하겠군요.”

“그렇지요.”

“견습은 대체로 무슨 일을 합니까?”

“당연히 연기를 해야겠죠?”

“…….”

그래. 당연히 표면상으로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실상은 아니지 않은가?

“견습이라고 해서 무대에 바로 서지는 않지 않습니까. 연기 교육을 받으려 해도 몇 년은 기다려야 하는 걸로 아는데, 제 말은 그전까지 정확히 무슨 일을….”

“아,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침 오셨네요!”

나는 그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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