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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99화 (99/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99)

“…지금 무슨 소리야? 본인이 신인류잖아. 셀프 신고냐?”

엘리아스가 핏기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자, 남은 선택지는 두 개야. 저 새끼들을 먼저 치든가….”

그가 영수증 뒷면을 내게 보였다.

“이동하거나.”

나는 출입구 쪽을 흘끗 보았다.

다행히 아까 테이블을 옮겨서 앉았기 때문에, 고개를 번쩍 들지 않는 한 그들에게 바로 보이는 위치는 아니었다.

엘리아스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이곳을 이용하는 놈들이 만들어 둔 암호가 있을 거야. 내가 어제 갔던 세 곳 전부 비밀 회의장으로 워프하는 마법진을 쓰고 있었어.”

“문제는 놈들이 쓰는 마법진이 뭔지 모른다는 거잖아.”

“당장 하나씩 시도해 보자고. 복잡한 그림은 아닐 거야.”

언제 그 짓을 하고 있는가.

오해 사기 쉬운 광경이기도 하다.

여기가 정말 친플레로마 단체의 활동 장소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모습으로 복잡한 일에 휘말리는 건 동일하다.

또, 도주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기다려 봐. 만약 도주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곳 주인에게는 어떻게 해명할 거지?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신고할 텐데.”

“…….”

“우리는 막 이곳에 신원을 등록했어. 신인류가 있는지 검사해 보겠다는 말에 바로 도주했다가 일이 더 크게 번지는 건 금방이야.”

“플레로마 잡으러 온 줄 알고 놀라서 이동했다고 하면 되지. 이건 이것대로 문제겠지만, 일단 차치하고.”

“차치하고 따져 봐도 똑같아. 만약 네가 카타콤 사람이라면 그 말에 완전히 안심할 수 있겠어?”

“…….”

엘리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황이 잘 따라 주면 모를까, 변명이 궁색하다는 걸 놈도 아는 게 분명했다.

‘생각해 보자. 도주할 방법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

지금 의문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니, 가장 감도 잡히지 않는 문제 두 개만 짚어 보자.

첫째, ‘신인류가 여기에 있다’는 신고는 어떻게 해서 들어갔을까.

생긴 것으로 신인류를 판별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그러니 가장 말이 되는 가설은 신고자가 인지 교란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 ‘우리’를 알아보고 신고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루카스 아스카니엔’ 혹은 ‘엘리아스 호엔촐레른’이라고 정확히 이름을 언급했을 것이라는 애매한 맹점이 있지만, 혹시 모르니 우선은 넘어가야 한다.

둘째, 저 마법학과 놈이 귀족 마법사라는 걸 자경단원들이 아는가.

당연히 모를 것이다.

카타콤의 귀족 배척은 상상을 초월한다.

귀족 마법사가 카타콤의 자경단으로 활동하게 둘 리가 없다.

‘답 나왔네.’

나는 엘리아스에게 말했다.

“고개 들어. 평소처럼 행동해.”

“뭐?”

“지금 죽을 위기에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 아니니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좁혔던 엘리아스가 점점 입꼬리를 비틀었다.

만약 우리가 저 마법학과 놈을 모른다면, 마법학과 놈은 카타콤 자경단으로서 제가 할 일을 아무렇지 않게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저놈이 누군지 알지.’

그가 우리를 알아본다면 떳떳하게 잡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이 자도 제국2교육원의 마법사’라는 걸 밝히면 모조리 끝나는 셈이니까.

엘리아스가 조용히 말했다.

“좋아. 그러면…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돼?”

“뭘 물어, 매번 마음대로 했으면서.”

“그래, 무슨 일이 생기면 다 깨부수고 나가는 방법도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전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시간을 돌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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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여태 재시도를 다섯 번 가까이 사용했는데도, 포인트를 다른 곳에 쏟아붓지 않은 덕에 넘치게 남아 있다.

“…감사합니다. 빠르게 확인하겠습니다.”

저 멀리서 주인과 3학년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미 입구 쪽에 앉은 손님들은 신원 확인을 거치고 있었다.

그때, 엘리아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경단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쏠렸다.

놈이 다짜고짜 움직일 걸 알았어도 솔직히 뜨악스러운 광경이었으나, 엘리아스는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뭔데요? 무슨 일이에요?”

“여기에 신인류가 들어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자경단원 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엘리아스가 나를 흘끗 바라봤다. 굳이 신호를 주지 않아도 어디가 이상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허.’

알아보지 못했다.

인지 교란 마법은 제대로 걸려 있었다.

누구도 여기에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혹은 ‘루카스 아스카니엔’이 들어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 말은 신고가 우리 둘을 지명해서 들어오지 않았고, 정말 신인류를 지목해서 들어왔다는 말이다.

‘그런 신고를 대체 누가?’

하지만 지금 그걸 생각할 때는 아니었다.

반응이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카운터 앞에 서 있던 마법학과 3학년이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엘리아스를 바라봤다.

다른 자경단원이 우리에게 말했다.

“일어나신 김에 여기 신분증 보여 주시면….”

“아니, 이만 가죠.”

그가 말을 끊었다.

전에 보았던 것처럼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말투는 싸늘했다.

“예?”

“아직 확인이 안 끝났습니다.”

“두 번 말해야 하나?”

“…….”

다른 단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시민들에게 묵례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엘리아스가 황당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무슨?”

“…….”

짬 좀 먹었나 보네.

더 의문스럽다.

귀족 마법사인 그가 어떻게 카타콤에서, 그것도 자경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걸로 모자라 다른 평민 마법사들을 아래에 데리고 다닐 수 있는가.

그 뒤 우리는 줄리안 바움을 만나 곧장 지상으로 돌아왔다.

로버트 뮐러에 대한 단서를 얻고 말고, 지금 그곳에 더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왔어? 잠깐, 너 얼굴이…!”

방에서 책을 읽던 나르케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됐다.”

“잠깐만, 루카스. 뭐가 그렇게 돼?!”

통찰 능력자가 놀라는 걸 보니 재밌네.

나는 곧장 내 방으로 가 레오를 불러왔다.

레오도 같은 반응이었지만,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그새 레오도 나르케도 굳은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데. 대체 얼굴은 왜 그래?”

“레오, 분명 제국2교육원 마법학과에는 평민이 들어올 수가 없지.”

“말 안 할 거야?”

“나중에.”

레오가 나를 노려보더니 숨을 내쉬며 답했다.

“규정상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지.”

“가능한 적이 있었어?”

“내가 알기로 최근 10년 내에는, 아니.”

“그래. 그런데 카타콤에서 마법학과 3학년 학생을 만났어.”

“뭐?!”

엘리아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같이 포커 쳤던 놈 있지? 걔야. 직접 대화도 했는데 확실해.”

분명하다.

그도 제국2교육원 대표팀으로 대회에 와서 교육받고 있기에 불과 며칠 전에도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3학년 2분반 부반장 말하는 거야? 그 사람 프로이센 귀족이잖아. 거기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있더라. 그것도 자경단에.”

“…….”

레오가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레오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나르케에게 말했다.

“나르케.”

“응?”

“그곳 사람들이 엘리아스가 누군지 알아봤을 것 같아?”

“아니, 발각될 만한 변장이었으면 내가 그걸 그대로 둘 리가. 그리고….”

나르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루카스 너도 들킬 만한 얼굴 상태는 아니야.”

그렇겠지.

카타콤 병원에서 치료하긴 했지만, 좀 집중적으로 맞았더니 상태가 썩 좋지 않다.

또 나는 엘리아스보다는 얼굴이 훨씬 덜 팔린 상태다.

“…그래서, 자경단은 어쩌다 마주친 거야.”

“우리가 있던 가게에 신인류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

“설명은 여기까지면 됐겠지. 지금은 계획을 수정하려고 너희를 부른 거야.”

“어떻게 수정할 건데. 나는 당장 여기서 손 떼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야. 길이 하나뿐인 건 아니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레오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해한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엮인 문제가 많다.

또 그가 엘리아스를 알아본 순간부터 이 문제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게 됐다.

만약 그가 황제의 스파이라면?

엘리아스가 카타콤에 진입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엘리아스를 보내 버릴 수단이 된다.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카타콤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해.”

“그분은 정상적으로 그곳에 있는 게 아니고, 심지어 너희에게 정체까지 들켰어. 거기에 더 있다가 뭔 일을 겪을 줄 알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빠질 생각이었다면 진작 시간을 돌렸을 것이다.

‘이건 피해서 될 일이 아니지.’

이대로 카타콤에서 물러난다면 나나 엘리아스의 생명이 위험해지며, 황제의 계획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밀고 나간다면 카타콤에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 레오의 말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둘을 비교하면 말이 달라진다.

전진과 후퇴 중 후퇴의 리스크가 더 크다.

“안타깝지만 그 안에 진입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일이 없어.”

나는 나르케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르케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같이 카타콤에 들어가자.”

나는 순간 인상을 구긴 레오를 말리려 손을 내저었다.

“갈 수 있다면 우리 넷 모두가 가는 게 좋겠지만, 얼굴이 알려진 사람은 엘리아스 하나로 족해.”

“음, 나도 가고는 싶지만….”

나르케가 중얼거렸다.

“…아냐,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아.”

“무슨 말이야?”

“여기에는 레오가 가는 게 낫겠어. 나는 나중에 진입할게.”

뭔가 생각이 있나 보지.

물어봤자 직관일 뿐일 테니, 그냥 믿어 주는 게 낫다.

애초에 마력은 나르케가 나아도, 기술 점수는 레오가 더 높다.

누굴 데려가든 정신 조작 마법을 쓸 게 아니라면 전력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나르케가 한참 고민하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그래도 겉모습은 바꾸고 가는 게 좋을 거야.”

“뭐, 바꾸기야 해야겠지. 그분 앞에서는 큰 의미 없겠지만 말이다.”

“다른 방법을 써야지. 레오만 괜찮다면 내 겉모습을 빌려줄게.”

“뭘 빌려, 지금?”

레오의 어처구니없는 물음에 나르케가 웃으며 답했다.

“말 그대로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적어도 더 늙게 만들기보다는 쉽지.”

“익혀서 할 수 있는 마법이야?”

“물론이지. 정석으로는 교과서 세 장짜리 공식을 외워야 해서 힘들지만, 루카스나 나 정도면 정신 조작 마법이랑 중첩시켜서 성공시킬 수 있어.”

“쟤는 그냥 외울 텐데.”

“…음, 그럴 것 같네.”

나르케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레오 너랑 엘리아스 중에서 시험 삼아 누굴 해 볼까?”

“엘리아스.”

그 말에 나르케가 손가락을 튕겼다.

“…!”

나르케의 머리칼이 길어지며 하얗게 변했다.

아니, 지금은 머리칼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눈꺼풀 모양부터 콧대, 입매까지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때.”

“…엘….”

“아, 어릴 때 말곤 해 본 적 없는데, 재밌다. 뭐 평소에 듣고 싶었던 말 있어?”

그 말에 순간 현실감이 돌아왔다.

나는 자신 있게 웃고 있는 엘리아스… 아니, 나르케를 보며 코웃음 쳤다.

“여기 옆에 진짜가 있는데 남의 입으로 들어 봤자 무슨 의미야.”

“남이라니~? 서운한데, 루카.”

“…!”

“아무튼… 있다는 말이지? 무슨 말을 듣고 싶었을지 궁금하네. 한번 맞춰 볼까?”

특유의 날티 나고 나른한 말투를 따라 하니 정말 엘리아스 같다.

그나저나 이렇게 느끼한 놈은 아니었는데, 아주 액기스만 쏙쏙 빼서 따라 하네….

안 그래도 레오는 벌써 엘리아스를 보는 눈으로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연기 잘하네, 나르케.”

“그렇지? 루카라고 불러 보니까 새롭다.”

나르케가 다시 손을 튕겼다.

다시 그의 모습이 돌아왔다.

“이렇게 모습을 빌려줄 수는 있어. 어때, 레오. 내 얼굴로 카타콤에 진입할 생각이 있어?”

“…아니, 왜 내 얼굴로 활동하면 안 되는 건지 모르겠네. 꼭 네 얼굴로 진입해야 해?”

“웬만해서는 단언하고 싶지 않은데, 응.”

‘음.’

이 부분은 좀 자세히 물어봐야겠네.

한참 께름칙함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레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문제는 없어.”

“하하, 좀 그렇기는 할 텐데, 고마워.”

나르케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나는 그런 나르케를 빤히 보며 턱을 쓸었다.

“아, 루카 또 뭐 써먹을 거 생각났나 보네.”

엘리아스가 장난스럽게 키득댔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나 물을 게 있는데, 나르케.”

“으응?”

“너는 카타콤에 진입하는 것만 피하면 되는 거지?”

“그렇지.”

“그럼, 지금 나로 변할 수는 있어?”

“지금은 아까 썼더니 힘이 좀 부족해서, 엘릭서만 마신다면 가능하지. 그런데 왜… 아.”

나르케가 금세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미소를 지었다.

* * *

“요즘 교육에 계속 안 나오던데요.”

“…….”

숙소 바깥의 카페에 앉아 있던 나르케가 눈만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

처음 보지만, 능력으로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루카스와 엘리아스가 말했던 마법학과 3학년이 앞자리 의자를 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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