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02)
그 순간 주위의 영상이 꺼졌다.
한국어로 추정되는 낯선 말소리도 이제는 들려오지 않았다.
리히트호펜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쉽네요. 어딘지 알아보고 싶었는데.”
“모르는 곳을 어떻게 말하죠?”
“…….”
엘리아스와 레오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그곳이 현실에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야만 했다.
친구들이 사실을 납득할 수 있을지, 알고서도 날 전처럼 대할지 확신할 수 없다.
특히 레오는 더더욱. 놈과의 관계는 루카의 마력에서 시작했다.
레오의 성격상 ‘루카’가 루카가 아니라는 걸 안다면….
‘아니.’
상상할 필요 없다.
당장 혀 깨물고 저세상에 가는 수가 있어도 내 입으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모든 걸 무너뜨릴 수는 없지.
“좋아요. 돌아서 가도 결론만 나면 되는 일 아니겠어요? 그래도 답변은 하게 될걸요. 탄산만 빼면 샴페인이라고 부를 만한 술도 아니잖아요.”
도수가 꽤 된다는 말을 더럽게 돌려서 하네. 확실히 좀 안 받긴 한다.
원래의 나와 달리 루카는 술에 단련되어 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
“빨리하죠.”
“이거 독립시행인데, 자신감이 대단하군요.”
“언제 모른다고 했나?”
뭐가 나오든 빨리 넘겨야 놈의 차례가 올 것 아닌가. 내가 쏘아붙이자 그가 웃으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눈이 따끔거릴 만큼 강한 조명 탓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빛에 적응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메라와 각종 음향 장비가 주위에 널려 있었다.
‘…후.’
당연히 이게 어느 곳의 기억일지는 뻔하다.
25% 확률이니 언제든 다시 나올 것을 예상은 했지만, 아무리 다시 마주해도 적응이 되지는 않는다.
“고의는 아닌데 공교롭네요. 그래서, 질문할 사람?”
엘리아스와 레오가 나를 돌아봤다. 솔직히 이제 표정이 어떤지 파악할 여력도 없었다.
“없나 보네요. 아스카니엔 씨, 이건 플레로마로부터 안전을 유지하는 활동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이건 티가 나는 간접 질문이 아니고?”
엘리아스와 리히트호펜의 목소리가 웅웅대며 귓가에서 뭉개졌다.
그때, 누군가 내 신발 옆을 툭 쳤다.
레오가 나를 보더니 희미하게 미소짓고 다시 리히트호펜을 바라봤다.
‘…음.’
정신 차려야지.
시답잖은 게임만 생각했지 정신을 건드릴 줄은 몰랐기에 놀라긴 했지만, 이기려면 평정을 찾는 수밖에 없다.
“기준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스트라우치를 잡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정도는 아니니 괜찮지 않겠어요?”
사실, 그가 지금 던진 질문에는 단순히 ‘연관이 없다’라고 말해도 문제없다.
현실에서의 나와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내가 아는 선에서는 그 사이에 어떠한 연관도 없다.
하지만 이것 역시 포커와 다를 것 없다.
매번 정직하게 답해 주면….
‘나중에는 술잔을 비우는 순간 질문을 인정하는 셈이 되지.’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말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양쪽 모두 서로에게서 얻어 내야 할 게 있는 상황이니, 각자의 양심에 맡겨 두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내가 택할 방법은 이것이다.
운이 올 때까지 계속 마신다.
나는 잔에 채워진 술을 들이켜고 말했다.
“넘겨.”
그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완드를 다시 책상에 내리쳤다.
어딘지 모를 곳이었다. 진흙이 지저분하게 묻어 있는 작은 다리 아래였고, 주위에는 초등학생쯤 되었을까 싶은 깡마른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무언가 썩어 가고 있는지 비린내가 났다.
‘…엘리아스 기억인가.’
하지만 엘리아스는 그저 리히트호펜을 보고 있었다.
“아, 이제 저네요. 질문할 사람?”
엘리아스가 무어라 말하려다 나를 바라봤다.
‘네가 어디 사람이냐’, 궁금한 질문이기는 하지.
하지만, 궁금한 것과 달리 중요도가 낮은 질문이다.
나는 엘리아스에게 눈인사하고 리히트호펜에게 말했다.
“왜 시간을 끌지?”
“…재밌지 않아요? 맞고 말하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방법이죠.”
놈은 그렇게 말하고는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다시 영상이 사라졌다.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네.”
“…….”
놈들은 스스로 거짓이라 생각하는 무언가를 말했을 때 피해를 보도록 해 둔 게 분명하다.
정말이라면 지금 술을 마실 필요가 없었겠지.
리히트호펜에게서는 이제 처음으로 동요가 느껴졌다. 그가 어딘가를 살피듯 저도 모르게 눈을 움직였다가, 다시 시선을 우리에게 고정했다.
“니콜라우스 경은 나르케 파르네세 씨인가요? 아스카니엔 씨는 도통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질 않네요.”
그가 손가락을 작게 튕겼다.
“…!”
그 순간, 엘리아스가 눈을 크게 뜨더니 목을 붙잡았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엘리아스가 옆으로 쓰러졌다.
콰앙―!
의자가 먼저 바닥에 부딪혔다.
나는 엘리아스가 바닥에 닿기 전에 그를 마력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금세 내 마력 위에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무슨…!”
쨍그랑―!
레오가 잔을 던지고 리히트호펜의 멱살을 잡았다. 환각으로 비춰지는 나르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여태까지 본 그의 행동 중에서 가장 충동적이었다.
“너…!”
“아무리 봐도 이쪽이 니콜라우스 같기는 하네요. 파트너 감싸고 도는 걸 보니….”
리히트호펜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공격은 안 통한다니까요. 카타콤 밖에서는 이런 이중 공간 마법을 본 적이 없어서 감이 안 잡히나 봐요.”
“무슨 짓이야.”
레오의 손에서 푸른 마력이 튀었다.
리히트호펜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굳이 게임에 끼지 않아도 엘리아스 호엔촐레른은 신원이 명확하죠. 굳이 함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나와 레오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간절함이 없는 것 같아서요. 상황을 좀 바꿔야겠네요.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지금 이 상황이라면… 로버트 뮐러가 네 위에 있냐는 질문을 해야 할까.
아니, 뻔한 질문이지.
더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야 한다.
“제대로 된 명령을 말해. 니콜라우스 에른스트가 누구인지 알아내라는 두루뭉술한 말 말고.”
“…….”
그가 입꼬리를 올려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한참 지난 뒤 말했다.
“니콜라우스를 생포하고 나머지 둘은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답변이 되었나요?”
“…….”
니콜라우스가 타깃이라면, 그의 동료들은 살려 봤자 의미가 없지.
이제 놈은 니콜라우스가 누구인지 알아내라는 명령을 위해 엘리아스의 목숨을 쥐고 있다.
‘…슬슬 알겠네.’
놈들의 계획부터, 리히트호펜의 계획까지.
어느 한 부분이 맞으면 다른 부분이 틀어졌던 그 애매한 퍼즐이 전부 제자리에 들어맞고 있다.
놈이 왜 게임을 제안하면서 시간을 끌었는지도 알겠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시간을 질질 끌 것이라는 점도 이제 알겠다.
내 예상이 맞다면, 놈의 계획은 생각보다 괜찮다.
이렇게까지 일이 술술 풀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 * *
‘시간을 끌고 있다고 했지.’
아까 루카스가 말하기로는 그랬다.
레오가 머리를 붙잡고 눈을 감았다.
‘정말 제대로 끌고 있네.’
게임은 바뀌었다.
지금 리히트호펜은 자리에서 빠졌다.
그는 니콜라우스 에른스트가 누구인지 밝히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해 주겠다고 했다.
‘기억을 직접 읽으라고 했지.’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확인해 보라고 받은 약을 먹고 나서 놈이 뭘 원하는지 분명히 깨달았다.
저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나, 확실히 루카스가 읽어서 좋을 기억은 아니었다.
레오가 술잔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은 심정으로 앞에 놓인 액체를 바라봤다.
또… 저 안에 마력을 비트리올로 바꾸는 약이 있다.
내게는 아직 발현되지 않았는데, 추측일 뿐이지만 누구 하나를 플레로마로 만들어서 고발시키려는 계획이 아닌가 싶다.
그때, 레오와 비슷한 시간대에 약에서 깬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좋은 전략이야. 상대편을 분열시키면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이길 수 있으니까. 밑바닥까지 보고 나면 배신을 안 할 수가 없지.”
“…루카스.”
“왜.”
레오는 말없이 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그런 분석이나 하고 있을 때냐?
루카스 역시 내게 보이기는 께름칙한 기억을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아까 시간을 끌고 있다느니 하는 말로 봐서는 놈의 계획이 뭔지 파악한 것 같은데 말이다.
‘그야, 엘리아스가 인질이 되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취한 게 분명하다.
원래 술을 잘 마시지 않던 사람이라 더 세게 받았을 것이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됐죠? 지금 이 게임, 아니면 새 게임? 고를 기회 줄게요.]
루카스는 시야가 핑 도는지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새로 할 건 뭔데.”
[미리 알면 재미없죠. 운에 맡기세요.]
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레오 역시 알 수 있었다.
뻔하지.
굳이 두 선택지를 주면서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는 건 다른 선택지를 택하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게임으로 누가 선뜻 넘어가겠나.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아서는 넘어갔다가 더 큰 위험을 마주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리히트호펜은 지금 이 게임에 확실한 강점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새 걸로 해, 루카스. 너 지금 상태가 좀 아닌 것 같다.”
루카스가 눈을 굴려 레오를 올려다봤다.
그러더니 이제는 리히트호펜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허공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금 하던 것 그대로 가죠.”
“너…! 무슨 소리야!”
루카스가 그 말에 이마를 짚었던 손을 떼고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새로운 리스크를 질 필요는 없지. 그리고 지금 내 생각엔 똑바로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
레오가 말없이 눈썹만 구겼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술에 취해도 말은 멀쩡히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생각은 영 아니지만.
루카스도 평소의 인지 능력이 살아 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여태까지는 저렇게 나올 때마다 전부 이유가 있었지.
그래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루카스는 말을 이었다.
“주종은 제가 고르죠. 이 정도 장단 맞춰 주는데 좋아하는 것 정도는 마시게 해 줄 수 있잖아요?”
[그러시던가요.]
“위스키 사워 정도면 만들 수 있겠죠? 브랜디 사워도 좋습니다.”
[전부 시켜서 내오는 거니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취향 아니니까 라임은 말고. 마시면 끝나는 거라고 가니쉬 빼지 말고 모양 제대로 갖춰줬으면 합니다.”
루카스가 쓸데없는 주문을 덧붙였다.
‘취했네….’
레오는 헛웃음이 나려는 것을 참았다.
사워 칵테일에서 라임을 쓰지 말라고 하면 그건 곧 레몬으로 달라는 말인데, 그냥 애초부터 레몬으로 달라고 하면 될 일 아닌가.
설마 이것까지 뭔 생각이 있는 건 아닐 테고.
금세 위스키 사워 두 잔이 테이블에 놓였다. 레몬 슬라이스가 장식으로 꽂혀 있었다.
딱히 들려오는 말소리는 없었다. 방법이야 뻔하니 굳이 그쪽에서 다시 입을 열 필요가 없기는 했다.
“루카스.”
“아니, 미안한데 안 돼.”
말을 다 꺼내지도 않았는데?
레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안하지만 정말로 양보 못 해.”
“알아, 저놈들이 뭔 수를 썼는지 몰라도 어쨌든 네가 받은 약에는 내가 나오겠지.”
“그래, 그랬어.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상처 안 받아. 못 믿어?”
“그래.”
못 믿는다는 말에 루카스가 가만히 레오의 말을 기다렸다.
레오 자신도 그 말이 이 상황에서 최악의 말이라는 걸 알았다.
“…정확히는 널 못 믿는 건 아냐. 인간을 믿지 못하는 거지.”
“말해 봐.”
“사람은 겪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라. 네가 날 아무렇지 않게 대하려 한대도 과거를 다시 보고 나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지나간 시간을 과거로 두는 거랑 현재에 다시 재생시키는 건 다르잖아.”
“…….”
“미안하다. 난 너랑 멀어지고 싶지 않아.”
루카스는 레오를 빤히 보더니 그저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안 그럴게. 다 알고 너랑 친해진 거야. 몰라?”
루카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과장되게 눈살을 찌푸리며 웃었다.
“친해진 건 맞나?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이제 와서 뭔 소리야.”
“그래, 그럼 믿어.”
“…….”
“믿어 봐도 크게 나쁘지 않은 일이 있다는 걸 알려 줄게.”
레오는 여유롭게 웃고 있는 루카스를 보았다.
저 웃음과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말하는 것을 보니 작년 기억을 읽을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인데….
그저 취기에 되는대로 말을 지껄였을 수도 있다. 엘리아스 방식대로 머리를 한 대 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입에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고맙다.”
루카스는 레오의 표정을 알아봤는지 희미하게 웃으며 잔을 가져갔다.
그가 제 잔에 있던 레몬을 떼어 살펴보더니, 순식간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제 잔을 밀쳐 떨어뜨렸다.
쨍그랑—
“…!”
“미안. 이런 식으로는 말고 나중에 직접 말해 줄게.”
레오는 경악에 빠져 할 말을 잃고 입만 벌렸다.
“야, 너 지금 뭘 먹은 거….”
“이거 못 먹을 음식은 아닌데?”
“아니, 그건 아는데!”
지금 레몬을 생으로 먹어 버린 모습을 보니 정신 상태를 믿을 수가 없었다.
루카스는 말없이 잔에 꽂힌 레몬 조각을 떼어 이리저리 살폈다.
“레몬 먹어 본 적 있어?”
“없을 리가.”
순간 시원한 바람이 폐까지 밀려오는 것처럼 공기가 상쾌해졌다.
찰나에 불과했기에, 착각인지 아닌지 분간할 시간이 없었다.
루카스가 레몬을 코앞까지 불쑥 내밀었다.
“먹어. 맛있더라.”
“…네가 잡은 거 아냐?”
“어휴… 까다롭네. 안 더러워.”
“아니, 상식적으로 세균이 있지.”
“…….”
루카스가 별 이상한 새끼를 다 보겠다는 눈으로 쳐다봤기에,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아, 알았어. 먹을게…. 그런데 이건 왜 먹으라는 거야.”
“충격 덜라고. 먹고 바로 들이켜. 나도 바로 마실 테니까.”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진지하게 한 대 쳐서 술을 깨워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취한 사람에게 뭘 바라겠는가.
이제 곧 루카스는 내 기억을 읽으면서 술이 깰 테고, 앞으로 내게 쉽게 장난칠 일도 없을 것이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딱히 필사적으로 거부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레오가 난생처음으로 레몬 장식을 씹으며 칵테일을 한 모금 넘겼다.
* * *
뚝―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공용 훈련장 끝, 아직 보수가 되지 않은 천장에서 어제 온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기숙사 가고 싶다.”
“망할 놈의 학교는 쉬질 않네.”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 년 전 그때 그대로, 나는 둥글게 계단식으로 배치된 좌석 한가운데 앉아 친구들의 시답잖은 대화를 듣고 있었다.
‘루카스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말을 듣질 않았다.
그때, 뒤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짜 쥐 처먹었냐?”
“아, 진짜겠어? 진짜면… X발….”
그제야 내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입에서 절로 짤막한 물음이 나갔다.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