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03)
내 물음에, 옆에 앉은 친구가 입을 열었다.
“쟤 주말에 쥐 먹었대.”
“뭐?”
“필립이 봤다더라.”
그 말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상해 인상이 구겨졌다.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이 상황에 개입할 수가 없었다.
“걔 말을 믿어? 지금 들을 걸 들어야지, 뭐 하는 거야.”
내 입에서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은 건지, 다른 친구가 눈치를 보다 말했다.
“그래. 걔도 이제 생기부 챙긴다고. 헛소문 퍼트렸다가 징계위 열리면 어쩌려고 거짓말을 하겠냐.”
“그런가…?”
나는 친구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훈련장 뒤편을 바라봤다.
루카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대체 언제 자른 건지 궁금해지는 긴 머리카락 탓에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필립이 제 친구들을 데리고 느적느적 다가와 루카스를 둘러싼 학생들에게 물었다.
“뭐 하냐?”
“물어보고 있었지. 진짜 쥐 먹었는지 아닌지 궁금해서.”
“가방에서 시체 나온 거면 말 다 한 거 아냐? 어디다 묻어 주려고 가방에 친절히 넣었겠어?”
“…….”
필립이 루카스의 옆얼굴에 얼굴을 들이밀며 빈정댔다.
“네가 말해 봐. 맞아, 아냐?”
“…….”
“야, 얘 말하기 싫대.”
“X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다 싫으면 그냥 자퇴나 하지 왜 여기에 있어?”
“하하하, 자퇴 그냥 네 희망 사항 아니냐?”
“너는 아니야? 전교생 희망 사항이지. 얘 때문에 돈만 퍼부으면 개나 소나 들어올 수 있는 학교 됐잖아.”
목청 큰 놈이 몰아붙이고 있으니 시끌시끌하던 훈련장이 조용해졌다.
다른 학생들이 그들을 흘끗대기 시작했다.
“말해 보라고.”
“…….”
필립의 집요한 시선이 이어졌다.
루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지 한참 입만 달싹였다.
필립이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폈다.
“아, 진짜 답답한 새끼….”
콰앙―
“…!”
필립이 루카스의 다리를 걷어찼다.
루카스가 한순간에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그가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자 필립이 놀란 체하며 말했다.
“아, 진짜 미안. 일부러 그러려던 거 아닌 거 알지?”
“진짜 존X 하나도 안 미안해 보인다. 철 좀 들어라.”
“난 진심인데 너 루카스한테 왜 그러냐, 너도 사과해.”
“니가 깠는데 왜 내가 사과해?”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왜 마법을 쓰지 않냐고, 그렇게 당하고만 있어도 괜찮냐고…. 그렇게 생각했지.
내가 동경했던 마법사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게 속이 상해서 이제는 화까지 나고 있었다.
물론 한심한 생각이었다.
내 멋대로 이상적인 인간을 그리고 루카스가 그에 들어맞길 바랐다는 걸 이제는 안다.
놈들이 작위적인 목소리로 저들끼리 낄낄대더니 루카스를 내려다봤다.
“괜찮아?”
“…….”
“아, 괜찮냐고!”
“…괜….”
쥐어짜듯 나온 희미한 목소리에 필립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쩌렁쩌렁 소리쳤다.
“야, 괜찮대! 실수한 건데 트집 잡는 새끼 나오기만 해 봐.”
“야.”
필립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내 말에, 루카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짜증이 치밀어 루카스의 얼굴을 계속 보고 싶지도 않았다.
‘…젠장.’
당장 지금 느끼는 것처럼 생생하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어떻게든 내 입을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계속 시끄럽게 할 거면 나가서 하지.”
싸늘한 말투에, 순간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나는 누군가 일방적으로 맞는 상황을 이런 식으로 중재한 적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무책임한 중재가 어디에 있나.
놀란 듯 크게 떴던 루카스의 눈에 충격이 스미기 시작했다.
“어? 아….”
필립이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러더니 인상을 구기며 루카스에게 귓속말했다.
루카스는 필립의 무시무시한 인상을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루카스가 비척거리며 계단을 내려와 훈련장 앞문 앞에 섰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와 같이 경멸 어린 눈으로 루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그 시기라면 그랬을 것이다.
‘…지금, 이거 보고 있을 텐데….’
차라리 내가 루카스 기억을 읽겠다고 해야 했다. 어떻게든.
사과할 틈도 없이 이 기억이 끝날 것이다.
아니, 사과는커녕 화만 냈지.
이날 나는 교수님과 함께 징계위원회를 준비했지만 루카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로 사건을 끝냈다.
그 뒤, 나는 루카스에게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고 화를 냈다.
여기서부터 시작한 걸 보니 아마 거기까지 보여 줄 셈이겠지.
속이 울렁거렸다.
점점 시야가 어둡게 좁혀졌다. 피와 함께 흐르던 마력이 어딘가 모르게 뒤틀려 변하는 듯한 느낌이 났다.
콰앙―!
그 순간, 뒤편에서 들려온 굉음에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껄렁하게 서 있던 필립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뭐, 잠깐, 지금 뭐야?!”
“악, 끄윽…!”
필립이 제 몸통을 짓누르는 마력에 마법을 쏘아대며 발버둥 쳤다.
‘…이게 무슨….’
이제 보니 여태까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약발 더럽게 늦게 드네.”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 서 있던 루카스가 긴 머리를 쓸어 넘기고 앞자리 학생의 완드를 다짜고짜 빼앗았다.
그러고는 계단을 성큼 올라가며 필립의 친구들에게 완드를 겨누었다.
“어?! 잠, 잠깐만…!”
콰아앙―! 쾅―!
루카스가 조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마력을 쏘아댔다.
필립과 함께 서 있던 학생들이 뒷걸음질 치며 비명을 질렀다.
“어, 어…! 악!”
“아아악! 잠깐만!”
“또 처맞을까 봐 열심히 강의록 필기하는 것만 보다가 이런 걸 보니 새롭네. 이건 뭐, 여기서 적극적으로 손보기도 애매하고….”
루카스가 눈을 번득이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
말의 내용이 아니라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1학년 때의 루카스가 아니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이제 미친 건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루카스가 숨을 길게 내쉬더니 제 발치의 필립을 바라봤다.
퍼억―
“커헉…!”
아까 분명 손보기 애매하다고 했으면서 루카스는 필립을 걷어차고 걸어 내려왔다.
그가 주위를 휘 둘러보더니 나를 발견하고 눈썹을 올렸다.
루카스가 내 앞까지 걸어왔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멱살이 붙잡혔다.
“안 돌아갈 거야?”
“…!”
루카스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일었다.
그 순간 시야 끝의 어둠이 걷혔다.
* * *
잘 읽었다.
하나 예상 밖이었던 건, 레오의 시점에서 기억을 읽을 줄 알았는데 루카의 시야가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그 말은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이곳은 진짜 기억이 아니라 공간 마법으로 펼쳐진 공간이다.
둘째, 내가 성공했다.
“둘 다네.”
처음에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순수한 공간 마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레오의 기억 안이기는 한 것이다.
그러니… 레몬 씹어 먹은 보람이 있다.
신력으로 축성했지만 맛에는 변화가 없어 표정 관리하느라 고생 좀 했다.
‘전에 64강 첫 실험으로 봤던 문제지.’
남의 정신에 개입하는 약물.
신력을 쓰지 못하는 일반인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사용하는 약이다. 술이 있어 대강 재료는 비슷해졌다.
나야 아예 신력으로 레오의 정신을 만져도 되겠지만, 티가 많이 나니 있는 재료를 이용하는 게 좋았다.
‘또, 그게 리히트호펜의 계획을 성공시켜 줄 방법이기도 하고.’
아무튼… 아까부터 느꼈지만 기억을 타인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현한 것을 보니 상당히 놀랍다.
‘역시 기술 하나는 최고야.’
마음에 든다.
제국에서 수십 억을 쏟아부어도 해내지 못했던 것을 이들은 한다.
지금이야 레오의 과도한 죄책감 탓에 이런 웃기지도 않은 기억이 재생되어서 그렇지, 대상을 잘만 고른다면, 또 외부에서 보여 줄 기억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더 확실하게 내분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형 대상으로 전국에 뿌리고 싶다.’
머리카락이라도 구해 올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레오의 상태를 살폈다.
방금까지 마력이 비트리올화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 그에게 검은 마력은 나오지 않았다.
그가 당황한 얼굴로 내 손을 떼어내려 했다.
“뭐, 루카스….”
“또 뭔 엿 같은 기억이 있나 했다. 지금 이걸 가지고….”
나는 가볍게 웃고 말을 이었다.
“대체 어디에 기분 나쁜 포인트가 있는 거야?”
“…….”
“그래, 너는 언제나 기준이 높으니까. 마음이 편치 않으니 죄책감이 증폭됐겠지. 그 정도야. 됐어?”
“…너는 기분이….”
“다시 말하지만 어디서 기분이 나빠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 감상만 그런 게 아니었다.
루카가 상처받았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루카 역시 반장이 나를 도와줄 줄 몰랐다고 생각하기만 했다.
지금 레오는 ‘시끄럽게 할 거면 나가서 하라’는 말에 꽂혔나 본데, 누가 그 말을 ‘나가서 패라’고 받아들이냐.
당연히 그만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본인도 그런 뜻으로 말하고서는 쓸데없이 수백 번 곱씹는 바람에, 또 루카의 표정까지 합쳐져 오해가 커진 모양이다.
‘하여튼 완벽주의자들은 귀찮다.’
남이 보기에는 별문제도 아닌데 저 혼자 완벽한 대응을 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다.
“아니, 이 전날에, 또 이다음에도 내가 너한테….”
“또 뭐. 그냥 입 닫아라.”
“…….”
레오가 한참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이 점점 안정적으로 변해 갔다.
“미안하다.”
아까의 기억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이 이제 평소의 날카로움을 담고 있었다.
레오는 지금 빠르게 평정을 찾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별로 미안해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뭘.”
“루카스.”
“응?”
“나가자. 또 계획이 있는 게 아니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이 배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너, 너, 지금, 마법, 아니, 신력을…!”
“네 머리에서 필립이 저렇게 말하는 놈이었냐?”
“실제로 이 상황이면 저럴 텐데.”
비슷하긴 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을 있는 힘껏 스태프로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새하얀 신력이 닿자 우리의 몸을 포함한 모든 것이 크게 일렁였다.
하지만 균열은 생기지 않았다.
‘…보통 이렇게 빠져나가면 되는데?’
‘공간’ 마법이니 말이다.
이곳에서 벗어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면 균열이 나야만 했다.
내 마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던가?
그때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완드를 꺼내 들었다.
마력량으로는 내가 하는 게 나을 텐데, 본인이 직접 하려는 건가.
“뭐 하려고?”
“나가야지.”
“어떻게.”
레오가 잘 걸렸다는 듯 피식 웃더니 간단히 대답했다.
“글쎄.”
“…….”
내가 평소에 대강 얼버무린 걸 그대로 돌려받은 것 같은데.
뭘 하나 구경하고 있자 레오가 자신의 심장께에 완드를 가져다 댔다.
경악에 입을 벌린 순간, 세상이 온통 까맣게 변했다.
* * *
“…헉…!”
아까 있던 그 방이다.
몸을 벌떡 일으키자 먼저 일어나 있던 레오가 보였다.
‘이… 이 새끼….’
지금 자기 코어에 마력을 쏘았다.
눈에 욕설을 담아 바라보자 레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필드 원천이 내 기억이면 그냥 내가 잠에서 깨면 되겠지.”
“…….”
맞는 말이긴 한데 이렇게 일 치고 들으니 어이가 없네.
여태 레오가 왜 자꾸 반대부터 했는지 알겠다.
대부분의 요구를 두괄식으로 전했으니 당연하다.
‘역시 거울 치료가 최고다.’
물론 치료할 것까지는 없다.
뭐가 어쨌든 성공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엘리아스 찾으러 가자.”
“방법은 있고?”
“하던 대로 하면 돼.”
“뭐, 잠깐. 그런 평범한 방식으로 뚫릴 거면….”
나는 완드를 스태프로 늘이고, 코어의 흐름을 잡았다.
그러고는 아까 했던 것처럼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 순간 바닥에서부터 벽까지 하얀빛이 퍼지더니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 넷이 나타났다.
아니, ‘나타났다’고 하기에 상대는 모두 당황한 상태였다.
“음?!”
“뭐야?!”
‘그럴 수밖에.’
이들은 원래의 장소에서 자리를 지키던 자들이었을 테니까. 그 위에 씌운 공간 마법이 해제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습인 만큼 우리에게 이점이 있다. 나는 주저 없이 완드를 단검으로 바꾸어 바로 옆에 서 있던 사람의 어깨를 찍었다.
콱―
“끄아악!”
어차피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이라 실물에는 큰 손상이 없다. 단지 팔로 향하지 않게 마력을 막았을 뿐이다.
그는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다른 손으로 미친 듯이 마력을 쏘아 냈다.
여기서 방어 따위에 쏟을 시간은 없다. 나는 신체 장막을 두르고 마력을 그대로 맞으며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 순간, 레오의 마력이 나를 옆으로 끌어당겼다. 중심을 잡으며 뒤를 돌자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이 레오의 공격에 쓰러지는 게 보였다.
“뒤 봐야지.”
나는 고개를 대강 끄덕이고 주위를 훑었다. 레오가 혼자 빠르게 셋을 처리한 덕분에 여기는 이미 끝났다.
‘다시 봐도 실력 하나는 최고네.’
안 데려왔으면 아쉬울 뻔했다.
아무리 명분뿐이라지만 저런 놈 호위라고 내가 있는 것도 이제 보니 웃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바깥에서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지만 아마 자경단에서 곧 지원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뮐러가 어딨는지 이제 확신했는데 이대로 리히트호펜을 놓치면 안 되겠지.’
그리고, 또 좋은 생각이 났다.
표면적으로 황제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면서 실질적으로는 카타콤의 편이 되기 위해, 그는 내 장기 말이 될 필요가 있다.
레오가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 카타콤에서 이렇게 허술하게 공간 마법을 만들 이유가 없어.”
“그래서 이게 함정일 거다?”
“그럴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 리히트호펜이 어떤 사람인지 정보가 없으니 섣불리 움직이면 안 돼.”
물론, 이 허술한 공간 마법은 의도한 바가 맞다.
아마 리히트호펜의 작품이겠지.
“아니. 괜찮아. 우리 편이니까.”
“뭐?”
나는 레오에게 타박을 듣기 전에 그를 이끌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준비나 하면서 말하자. 아까 자경단 놈들 검은 피 봤지. 뭐 같아?”
“아무리 봐도 덜 된 비트리올 같은데.”
“좋아. 아까 내가 리히트호펜에게 ‘정확한 명령이 뭐냐’고 물었지. 니콜라우스를 데려오는 게 놈들 목표였어. 그걸 위해서는 너희를 죽여도 된다고 했고.”
“그래. 그런 명령으로 봐서는… 정말 카타콤에 로버트 뮐러가 있다면, 자경단에 있겠지. 그것도 단장으로.”
잘 아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버트 뮐러는 분명 반플레로마 성향을 가진 자였어. 그런데 왜 그가 이끄는 자경단 조직 전체가 비트리올에 물들어 있지?”
“…….”
레오가 턱을 쓸며 대답했다.
“플레로마로부터 공격을 받은 건가. 널 데려오면 몸에 든 비트리올을 풀어 주겠다고 했다거나.”
“아닐 거야. 플레로마 놈들에게도 비트리올은 높은 분들만 가질 수 있는 고급 재료야. 그것만 있다면 인간을 초월해 강해질 수 있으니까.”
‘강해질 수 있다’는 말에서 레오의 표정이 굳었다.
놈도 내가 세운 가설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듯했다.
“…카타콤에서 놈들과 계약을 맺었군.”
그래.
계속해서 핍박이 들어오니 지금보다 더 빨리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물론 비트리올을 가져오겠다는 미친 발상은 카타콤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 오직 자경단의 계획일 것이다.
“좋아. 다음으로 넘어가자. 아까 리히트호펜은 시간을 끌고 있었지.”
“그래.”
“그리고 놈은 나와 네 이름을 알고 있었어. ‘루카스 아스카니엔과 나르케 파르네세’라고 했지. 하지만 네가 받은 약은 왜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의 기억이지?”
“…….”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네가 비텔스바흐라는 걸 안 이상 놈은 누가 니콜라우스인지도 알게 됐어. 당연히 남은 사람은 나뿐이니까.”
레오의 얼굴이 굳었다. 이제 내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깨달은 듯했다.
“여기서 하나 더. 이름을 아는데 왜 아까 봤던 경보에 우리 이름이 없었을까.”
레오가 차분히 답했다.
“…루카스 아스카니엔과 나르케 파르네세 중에서 누가 니콜라우스인지 숨겨야 했겠지.”
“그래, 로버트 뮐러가 니콜라우스를 다시 선전 도구로 쓰는 걸 막으려면 말이야.”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이제 리히트호펜의 손을 잡으려고?”
“아니.”
레오가 의문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고생을 시켜 놓고 어떻게 바로 손을 잡을 생각이 들겠는가.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레오에게 말했다.
“일단 좀 패고 시작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