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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04화 (104/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04)

“엘리아스가 네 버릇을….”

레오가 헛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알게 모르게 좀 물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엘리아스도 그렇지만, 나 역시 재미로 사람을 치겠다는 말은 아니다. 마침 그게 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을 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절한 자경단 놈의 로브를 벗겼다.

레오가 별 미친 광경을 다 보겠다는 얼굴로 내 어깨를 콱 붙잡았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남의 옷 훔칠 생각이 들어?”

“아니. 너도 빨리 걸쳐. 실루엣 정도는 비슷하게 만들어야지.”

“…….”

아까 리히트호펜은 공간 마법 너머로 우리와 대화했다.

공간 마법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을 거고, 그 뒤로 연결이 끊겼을 테니 이곳으로 올 것이다.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레오는 혀를 차면서도 로브를 입고 후드를 푹 눌러썼다.

그러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테이블 다리를 부수어 떼어 냈다.

“제대로 말도 안 했는데 알았네.”

“굳이 위장하라는 거 보면 뻔하지.”

레오가 테이블 반대편의 벽에 가까이 섰다.

나는 마력을 쏘아 방의 조명을 박살 내고, 복도의 조명에도 완드를 겨누었다.

쨍―! 투둑―

바깥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까지 없애자 안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레오가 중얼거렸다.

“둘 넘게 오면 곤란한데. 마법으로 공격당할 거야.”

“아니, 걱정 안 해도 혼자 올 거야.”

내 단호한 말에 레오가 나를 흘끗 보더니 방 안의 기류에 집중했다.

한참 숨을 죽이고 기다리자, 공기의 마력에 파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곳에 워프한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주위를 살피며 뒤돌려 했다.

“…빛이 왜….”

완드를 휘저어 그의 몸을 붙잡자 레오가 리히트호펜의 뒤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리히트호펜이 경악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때는 이미 늦었다.

빠악―!

* * *

“으음….”

낯선 목소리에 나는 발치를 내려다봤다.

죽은 듯 늘어져 있던 리히트호펜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나는 스태프를 지팡이 삼아 짚고 말했다.

“깼나 보네요.”

“…허….”

리히트호펜이 실없이 웃음을 터트리다 골이 울리는지 입꼬리를 끌어 내렸다.

‘느낌이 새롭네.’

스트라우치 때나 겔다 때나 시체처럼 바닥에 붙어 있던 쪽은 나였는데….

직접 반대 입장이 되어 보니 알겠다.

이편이 훨씬 적성에 맞다.

리히트호펜이 다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원시적이네요. 마력이 아니라 물건으로 머리를 칠 줄이야…. 잊은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 대화라는 합리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대화해서 무슨 상황을 겪었는지 아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나는 레오와 내 마력으로 칭칭 감싸 놓은 그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쪽 마력은 어때요.”

“꽤 적절하게 막혔네요. 혹시 몰라 묻는 건데… 눈 기능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겠지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빛이 완전히 들지 않게 눈을 가려 두었으니까.

“그럴 리가요. 연기는 그쯤 하시죠.”

“…….”

“전부 그쪽이 바라던 대로 됐잖아요.”

그 말에 리히트호펜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당신의 판단력을 믿은 건 올해 들어 제일 잘한 일이네요.”

뭐가 재밌는지 그는 계속해서 웃었다.

“그 니콜라우스가 우리 학교 2학년, 그것도 그 플레로마 아스카니엔이라니…. 아무도 못 믿을 일이군요.”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닌데.”

“단순히 아는 것과 실제로 확인받는 건 느낌이 또 다르지요. 그래서, 이건 언제까지 해야 하죠?”

“그건 선배님이 더 잘 알겠죠.”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그는 로버트 뮐러와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귀는 머리를 때리면서 연결이 끊겼지만, 눈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 카타콤에서 귀족 신분으로 우리를 상대하러 왔던 걸 생각하면, 당연히 놈의 위쪽에서 이 정도 손은 써 뒀을 것이라 추측했는데… 정말 그의 몸에서 결이 다른 마력이 느껴졌다. 이미 10년은 충분히 되었겠다 싶은 마력이었다.

“일종의 저주술이죠.”

“으음?”

“몸에 타인의 마력을 심는 경우는 열이면 열 범죄에나 쓰이는 방식이지 않습니까. 외부의 마력이 코어까지 건들도록 내버려 두는 셈이니까요.”

“잘 아네요. 함부로 건드리면 죽어요~ 단순히 상태만 공유해 주는 게 아니라서.”

그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놀랍네요.”

“처음 보나 봐요?”

“당신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해제할 수 있는 마법인데, 여태 그걸 달고 산 건 좀 놀랍다는 얘기였습니다.”

“…….”

“내가 나쁜 일을 하는 건 전부 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 뭐 그런 심리인가? 아무래도 플레로마의 기술을 받아먹는 집단에 있으려면 얼굴에 그 정도 철판은 깔아야겠죠.”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네요.”

그가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마법을 해제해 봤자 로버트 뮐러에게 의심만 산다는 건 잘 알겠죠.”

역시, 그는 로버트 뮐러에 대해서 더는 숨길 생각이 없다.

그렇겠지. 우리에게 끌려갈 걸 알고서도 그곳에 홀로 워프하는 기행을 보였으면서, 이제 와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뭐, 그렇죠. 그러니 계속 그렇게 계시는 게 낫겠습니다.”

“아.”

내가 그쪽 사정까지 생각해서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

그게 아니라도 나야 풀어 줄 이유가 없다.

잡은 주도권을 놓칠 생각은 없다. 정보를 얻어도 더 빠르게, 더 질적으로 얻을 기회를 왜 놓쳐야 하는가?

그때 리히트호펜이 중얼거렸다.

“신기하네요. 공유되고 있다는 걸 안 것도 놀랍고…. 로버트 뮐러를 알아본 것도 놀랍고.”

“놀라실 것 없습니다. 당신이 준 단서가 어디 한두 개뿐이었어야 말이죠.”

“의도대로 흘러가니 좋네요. 어떻게 공유를 끊었죠?”

나는 그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말했다.

“지금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닐 텐데.”

“아… 하하하! 그렇네요.”

“로버트 뮐러부터 시작하죠. 같은 편인데 지금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너무 긴데. 당신도 대강 알 텐데요? 처음부터 말해 주면 틀린 부분을 고쳐 주죠.”

귀찮게 하네….

아무튼 상관은 없다.

내 추론이 맞는지 검증하려 물었으니까.

이곳에 오기 전에는, 나를 죽였을 때 이득을 얻는 존재로 플레로마와 카타콤의 로버트 뮐러를 들었지.

처음에는 그 둘을 별개로 보았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둘 다지.’

로버트 뮐러는 플레로마와 손을 잡은 동시에, 카타콤의 권익과 안위를 위하는 자다.

나는 입을 열었다.

“카타콤은 공간 마법 분야에는 탁월하지만 그 외의 분야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죠. 오랜 시간이 지나도 탄압이 줄기는커녕 더 심각해지고 있으니, 당신들은 부족한 인구와 힘을 보충하고 싶었을 겁니다. 마침 딱 맞는 재료가 있죠.”

“비트리올 말이군요.”

리히트호펜이 대답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로버트 뮐러가 소속되어 있는 카타콤 자경단은 플레로마로부터 비트리올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정확히는 협박을 들어주고 있다고 해야겠네요.”

“흠, 정확하네요.”

“당신들은 플레로마뿐 아니라 카타콤까지 이득을 보게 상황을 꾸며야 했을 겁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동시에 플레로마를 저지할 방법이 있다면 더욱 환상적이겠죠.”

“…….”

“그런 방법이 어디에 있나 싶지만, 실제로 논리는 괜찮았죠. 니콜라우스를 죽이는 일은 품을 들여 정교하게 니콜라우스를 끌어내리려는 플레로마의 ‘진짜’ 계획을 그르치는 일이니 말입니다. 적절하게도, 플레로마에게 있어 아주 손해인 일도 아닙니다.”

“…음.”

이미 내게 설명을 들었던 레오까지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플레로마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신민들이 믿고 따르는 자를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카타콤 입장에서는 비트리올 획득에 가까워지면서, 플레로마에 대한 반감을 각계각층에 주입하게 될 테니… 이득은 이득대로 얻으면서 그들의 수명을 줄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죽이지 못했지 않습니까? 플레로마에게 떨어지는 이득 없이 경계심과 반감만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악수가 되었으니 실수를 만회하려면 이번에는 제대로 니콜라우스를 잡아다 바쳐야겠죠.”

리히트호펜이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만 터트렸다.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궁금하군요. 누가 알려 줬나요?”

틀린 점이 없다는 말로 알아듣겠다.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질문했다.

“명령을 교묘히 망친 걸 보면 당연히 당신은 그와 뜻이 같지 않겠죠. 맞습니까?”

“그렇죠. 그분과 달리 저는 니콜라우스 에른스트가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귀족 가문 사람이라는 건 제 입지를 매번 흔드는 일입니다. 카타콤의 부흥보다 플레로마를 막는 것을 우선한다면 그것 역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일이 되죠. 뭐가 됐든 제 결정은 전부 귀족의 입장으로 귀결되니까요.”

리히트호펜의 말투가 점점 차분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카타콤에서 쫓겨나 영영 들어오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단장님께서는 카타콤의 공간 마법 기술 대부분을 플레로마에 공유하는 대신, 카타콤 전원이 비트리올을 가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려 하고 있습니다.”

“…….”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그걸 플레로마에 공유한다고.

아주 그냥 플레로마 세상을 만들어 주게 생겼네.

분명 소설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전개가 바뀐 탓에 기술 발전의 필요성을 느낀 게 분명하다.

“짧은 생각이죠. 잠깐은 강해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카타콤은 독립된 곳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곧 플레로마의 일부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정부의 박해를 피해 스스로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은 그때 가서는 우스운 이야기가 되겠죠.”

그야 그렇겠지.

그놈들이 어디 공간 마법 기술만으로 만족할 놈들인가. 카타콤의 인간과 이미 잘 구축된 도시까지 전부 탐낼 것이다.

그때, 리히트호펜이 중얼거렸다.

“…플레로마와 접촉하기 이전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그쪽을 공격했습니다. 당신은 알지도 모르겠군요. 플레로마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왜곡되어 있지 않던가요?”

“그랬습니다.”

이전에 진입했을 때에 그랬지. 1:6 비율로 플레로마의 시간이 더욱 느리게 흘러갔다.

“좌표계에 압력을 가할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쪽은 아직 우리 짓인지도 모르더군요.”

리히트호펜이 가볍게 웃다가 씁쓸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플레로마를 공격하던 과거는 이제 사라지고 그쪽에 흡수될 일만 남았으니, 그렇게 반응할 만했다.

그나저나….

‘…그게 붕괴의 징조였군.’

그런 공격을 이곳에서 해냈다니.

아무리 봐도 이들은 공간 마법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쯤 되면 황제가 멍청하게까지 느껴진다. 카타콤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상대다.

“플레로마와 접촉한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이제 2주째네요.”

“기술은 얼마나 넘어갔죠?”

“아직 제대로 넘어간 건 없습니다. 이중 공간 마법 하나만 빼면. 제가 아까 당신들과 함께 있었을 때 사용했던 마법 말이에요.”

아까 리히트호펜은 상대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타격을 입지 않았지.

그 방법이 놈들에게 넘어갔다.

“…….”

“제 발로 무덤에 들어가는군요.”

플레로마뿐 아니라 황제에게도 좋은 일을 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어느 정도 스스로 무덤을 파 주었기 때문에 훨씬 더 수월해졌다.

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자, 지금부터 판을 좀 키워야겠습니다. 이 건물 밖은 지금 어떤 상황이죠?”

* * *

“하….”

카타콤에 있는 인간은 모조리 이곳에 나온 것 같다.

엘리아스는 당장이라도 사람으로 터질 것만 같은 광장을 바라보며 한숨에 가까운 웃음을 터트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엘리아스에게 삿대질하며 핏대를 세웠다.

“당장 죽여!”

“황족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엘리아스의 목덜미를 붙잡은 자경단 사람이 말했다.

“반응이 뜨겁군요.”

“아아아… 진짜 너무하네. 놀러 온 것도 아닌데.”

“유일하게 평민 마법사들이 숨 쉴 곳에 거지 연기까지 해 가며 진입한 귀족이 더 너무하지 싶은데, 아닌가요?”

“그건 미안하다니까.”

엘리아스가 별 감정 없는 얼굴로 사과했다.

“가벼운 말 한마디로 끝내려는 걸 보니 생각이 얼마나 짧은지 바로 느껴지는군요. 파란 피가 우리를 이해할 거라 기대한 적은 없지만….”

“…어디선 파란 피라 하고 어디선 경우 없는 놈이라 하고…. 이러면 너무 속상해~?”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네요.”

그가 든 칼이 엘리아스의 목에 닿았다.

엘리아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숨을 내뱉었다.

“에이, 잠깐만~! 너무 빠르지 않나?”

“당신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지요.”

“아니, 알아들었어. 왜 네 멋대로 판단하고 난리야.”

그가 표정 없이 엘리아스를 내려다봤다.

“니콜라우스 에른스트를 데려올 생각 아냐? 이렇게 대놓고 내걸면 니콜라우스가 네 앞까지 올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지.”

우드득―!

엘리아스의 손에 걸려 있던 마력 구속구가 부서졌다.

루카가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예상이 맞다면….

이 자가 뮐러일 것이다.

엘리아스가 제 어깨에 올려져 있던 손을 겹쳐 잡으며 씩 웃었다.

“로버트 뮐러가 뭘 원하는지는 이제 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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