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07화 (107/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07)

그 말대로, 성공적이다.

‘내가 읽었던 것보다 훨씬 짧기는 하네.’

반 이상 줄어들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그때와 다름이 없었다.

중간부터 확성 마법이 끊겼는데 누군가 임의로 마법을 펼쳐 소리를 이어갔다.

발코니 아래서 사복 차림으로 대기하던 자경단원이 그를 끌어냈지만, 막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확성 마법을 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뜻은 명확했다.

대중은 엘리아스의 말을 들을 의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까는 엘리아스를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리히트호펜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나 보네.’

그저 엘리아스를 긁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었을 줄이야.

“아무리 단장님이라도 스무 명의 마력을 막을 수는 없으니 방위군을 앞세우고 도주할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하극상을 직접 제압하지 않고 도망간다면 성공적이지.

그 광경을 대중에게 보인 것부터 무수한 의구심과 상상의 여지를 준 셈이다.

“우리는 이제 자경단이 같이 사용하는 방위국 청사로 가야겠죠. 그 전에….”

리히트호펜이 뒷걸음질 치며 멱살을 잡은 레오의 손을 쳤다.

“…이것 좀 놓으시죠….”

“당장 엘리아스를 팔아넘긴 것도 너 아니었나? 네가 깔아 둔 놈들인데 여태 안 막고 뭘 한 거지?”

여태까지 레오에게 들었던 것 중 가장 음산한 목소리다. 나는 끼어들지 않고 상황을 관전했다.

“…그래요, 그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왜 내가 지시하지 않았는지는 말 안 해도 알잖아요?”

레오가 인상을 팍 구기더니 그를 밀치며 손을 놓았다.

귀족을 위해 상관을 배신하라 명령했다면 저렇게 될 쪽은 같은 귀족 출신인 리히트호펜일 테니, 결국 자경단원들 스스로 엘리아스에게 마음이 동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하지. 리히트호펜에게 명령을 받아 만들어진 결과는 의미 없다.

“가죠.”

가까스로 레오에게서 벗어난 리히트호펜이 공중에 지도를 띄웠다.

“자, 반쯤 왔군요. 이제 청사로부터 1km 떨어진 지하로 진입할 겁니다. 공간 마법 실력자들이 잔뜩 계신 곳이니,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리히트호펜과 함께 길을 통과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마법을 쓰는 대신 걸어가야 했는데, 검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예 자경단 제복으로 갈아입은 덕에 통과는 어렵지 않았다.

‘인지 교란 세게 걸긴 했지.’

오래 마주치면 모를까 잠깐은 흐릿한 인상에 의문을 갖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에 잠긴 걸 걱정으로 받아들였는지 리히트호펜이 눈을 찡긋거렸다.

“물론 저도 마음껏 공간 마법을 쓸 생각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안 합니다. 가죠.”

나는 리히트호펜을 앞세우고 걸음을 옮겼다.

한참 통로를 걸어 이동하자, 문 앞을 지키고 선 방위국 사람 둘이 보였다.

리히트호펜이 말없이 자경단의 증서를 꺼냈다.

그들은 별생각 없는 얼굴로 자리를 비켜 주었다.

“들어가세요.”

“…!”

그들의 오른손이 왼팔의 손목께로 옮겨 갔다.

나는 앞서 걷던 리히트호펜의 후드를 휙 잡아채고 완드를 뽑아 들었다.

그 순간, 아래에서 레오의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푸른 마력이 시야 옆으로 날아갔다.

콰아앙―!

“컥!”

방위국 사람이 벽에 붙어 버둥거렸다.

레오의 마력이 그들의 손과 목을 짓눌렀다.

나는 완드를 돌려 스태프로 바꾸며 신력을 끌어냈다.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

쿠웅―!

복도 전체로 하얀빛이 퍼져 나간 순간, 그들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레오가 혀를 차며 마력을 거두었다.

“놈들도 그 도구를 쓰는군. 분명 바이에른 바깥에서 유통을 허가한 적은 없는데 말이야.”

감각 전이 아티팩트를 말하고 있다.

방위국 사람들이 쓰러지고부터, 리히트호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가 둘의 손목에 걸린 아티팩트에 마법을 쏘아 박살 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수배령이 났겠군요. 내가 단장님을 배신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간 게 분명합니다.”

그가 바깥의 공간 마법을 차례로 펼쳐 보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온건한 진입은 의미가 없지요. 보안국으로 진입해서 그곳의 포탈을 탈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그런 방법도 막혔을 테니, 바로 단장님의 사무실로 진입하죠.”

그럴 방법이 있는지는 차치하고, 이미 자경단에서 반기를 든 자가 나왔다는 점에서 단장의 사무실은 이제 정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방위국은 버리자.

“플레로마와 연락할 방법이 그쪽만 있는 건 아니죠. 다른 로버트 뮐러에게 갈 방법은?”

* * *

“개냐?”

레오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분명 한 달 전까지만 해도 3학년 2분반 부반장이라고 말을 바르게 하라더니, 이제 경어는 집어치운 지 오래다.

우리는 지금 숲을 지나고 있다.

이제 막 해가 지고 있어, 빗방울이 맺힌 전나무와 서어나무 군락 너머로 붉은 햇빛이 눈을 찔러 왔다.

리히트호펜이 웃으며 뒤돌았다.

“후각이 좀 좋죠.”

“조금 수준이 아닌데.”

레오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지만, 굳이 알 바는 아니다.

그 덕에 여태 자경단 놈들이라고는 한 명도 마주치지 않고 있으니까. 아까 확인하기로 다른 자경단 놈들과 방위군은 도심 전체를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300m만 더 가면 바로 의회 청사가 나옵니다. 잠깐 여기서 확인부터 하고 가죠.”

다른 로버트 뮐러는 이곳의 국회의장이다.

지금 방위군을 도심에 풀어 놓은 자이기도 하다.

인구수가 적어서 그런지 권력 분립이 명확히 이뤄져 있지 않았지만, 군의 통수권을 가졌으니 아마 그가 국가원수 위치에 있는 자일 것이다.

리히트호펜이 멈춰 서서 공간 마법을 열었다.

이미 의회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마법사들이 주욱 깔려 있었다.

“흠, 벌써…. 이러면 차라리 우리도 공간 마법을 열고 진입하는 게 낫겠습니다.”

리히트호펜이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바닥을 발로 슥슥 훑었다.

“…….”

방금 왜인지 모르게 좀 개 같긴 했다.

그러고는 그걸로 부족했는지 자리에 앉아 흙을 쓸었다.

“그것도 안 되겠네요.”

“알아듣게 설명하시죠.”

“원본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 자체가 공간 마법으로 한번 씌운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게 일반적인가?”

“그럴 리가요. 원본이 아닌 곳에 저렇게 사람을 배치하다니… 뭔가 의도한 바가 있군요.”

리히트호펜이 땅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고민하며 턱을 쓸자, 레오가 우리에게 고갯짓했다.

“오래 생각할 필요 없지. 가죠.”

왜 그런 판단을 했냐 묻기 전에, 레오는 평소의 나와 달리 친절하게 곧바로 설명해 주었다.

“이게 의도한 거라면 우리가 찾는 자는 원본의 세계에 있겠지. 그쪽으로 이동하면 이 세계에 있는 군인들도 사라질 테니, 시간 끌지 말고 정면 돌파하는 게 나아.”

“음, 그래.”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저렇게 많은 사람을 두고 정면 돌파하자니, 내 실력을 못 믿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런 말을 듣다니 감회가 새롭다.

“혹시 모르니 우리에게 이중공간마법을 걸 겁니다. 물론 닥쳐오는 공격 중 공간 해체 마법이 있을 수 있으니, 방위군이 쏘는 마법을 그대로 맞아서는 안 됩니다.”

레오가 리히트호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 멀리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300m면 적절하네. 나는 밑에서 시간을 벌 테니까, 둘은 위로 올라가. 당신은… 이곳 워프 좌표 정도는 알고 있겠지?”

“하하, 이곳 사람이 이곳 좌표도 모르면 어떡할까요. 그러고 보니 학생회에서 꼬박꼬박 경어 쓸 땐 언제고, 말투부터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리히트호펜이 그렇게 말하고는 미소지으며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마력이 혈관에 느껴진 순간, 바람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저 멀리 노을에 붉게 물든 숲이 내려다보였다.

콰아아앙―!

밑에서 레오가 낸 것으로 추정되는 굉음이 들려왔다.

리히트호펜이 나를 둘러싸고 장막을 설치하며, 난간에 기대어 방위군이 난사하는 마법을 막아 냈다.

충격음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장막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구궁― 콰아앙―! 쾅―!

“빨리. 지금 내려가서 데리고 올 테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하고 있다.

완드를 휘젓자 가문의 완드가 교황청의 것으로 바뀌며, 코어로부터 흘러나오던 신력과 하나로 연결되었다.

대체 이곳에 공간 마법이 몇 겹 설치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단 한 번의 기회다.

‘증폭시켜야지.’

마력 소모가 크더라도.

나는 신력을 스태프 끝으로 밀어 보내며 빠르게 외쳤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 순간, 귀가 먹먹해지며 수많은 공간의 겹이 눈앞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다시 청력이 돌아왔을 때, 귓가에 때려 박히던 굉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쳐 있었다.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마법사 역시 단 한 명도 남지 않고 깨끗이 사라졌다.

‘레오는….’

나는 귀를 한 번 때리며 뒤로 돌았다.

다행히, 공간 마법을 벗기기 전에 이곳에 돌아왔던 건지 리히트호펜이 레오를 데리고 옥상에 와 있었다.

리히트호펜이 완드를 들고 조심스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내가 아까 신력을 쓰면서 느꼈던 대로 말했다.

“1층. 아마도 혼자.”

어차피 원본 위에 덮인 공간 마법을 제거한 순간부터 의장이라는 자도 상황을 알았을 텐데,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뭘 하고 있을지는 뻔하다. 특히 다른 사람 없이 홀로 이곳에 있다는 것도 그렇지.

리히트호펜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서 수를 세더니, 코너를 돌며 스태프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 순간, 바닥의 대리석에 통하던 그의 마력이 그대로 멈추었다.

“기껏 준비한 음식이 전부 망가지겠군요.”

“…!”

나는 눈을 의심했다.

1층의 본회의장은 전부 깨끗이 치워진 채, 가운데에 긴 테이블만이 있었다.

한 노인이 와인을 내려놓고 나를 보며 말했다.

“드디어 만났군요, 니콜라우스 경.”

내게 가면이 없음에도 그는 이 중에서 누가 니콜라우스인지 알았다.

나는 그의 몸을 신력으로 콱 붙들었다.

그러고는 아까 리히트호펜에게 했던 것처럼 심장에 완드를 겨누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음, 그래요.”

그가 양손을 들어 보이더니, 제 심장께를 매만졌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씩 올려 웃었다.

“니콜라우스 경의 신력을 눈앞에서 보다니 영광이군요. 심지어 내가 그렇게 위협이 될 만한 사람으로 여겨졌다니, 더더욱.”

“…….”

영광?

태평하게 그런 말을 할 때인가?

이 자가 그 편지를 쓴 로버트 뮐러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로버트는 남성 인명이지 않은가.

표준 모형 하나로 인간을 찍어 내다 보니 성별 구분이 불가한 신인류와 달리, 구인류는 외형으로 성별을 가늠하는 것이 가능하다.

레오처럼 마법을 썼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보기에 그는 여성인 것 같다.

‘뭐, 상관은 없지.’

그가 로버트 뮐러라는 점은, 즉 내가 처리해야 할 자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게 있나 좀 볼까.’

시몬 에버하르트

호감도 0

칭호: 로버트 뮐러

체력: +5

정신력: +10

마력: +6

기술: +9

인상: +1

행운: +1

특성: 근성 (Lv.10)

다행히 정신력이 10점인 것을 빼면 특별한 점은 없다.

그때, 에버하르트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테이블을 가리켰다.

“경이 여기에 올 줄 알았습니다. 한참 기다려서 이제야 만났는데, 내가 당신께 무슨 짓을 할까요. 들지요.”

나는 앞에 놓인 와인잔을 집어 들며 가볍게 웃었다.

“이거 이미 예습한 방식인데.”

“하하, 이게 제 큰 그림이었죠.”

레오의 눈빛이 무시무시해지자 리히트호펜이 눈을 피하며 미소지었다.

에버하르트가 안됐다는 듯 눈썹을 과장되게 기울이더니 양손을 맞잡았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우리를 배신했을 줄이야…. 아주 카타콤의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학습을 시켰군요.”

그가 아까 내가 썼던 표현 방식을 응용하며 리히트호펜을 나무랐다.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단장님 설득해서 구하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그놈도 멍청해 빠지긴 똑같군.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말했는데….”

“당신은 저를 못 믿는군요?”

“손님을 앞에 두고 우리끼리 수다만 떨 수는 없지요. 앉으세요. 그리 서 있는다고 뭔가 바뀌는 것은 없으니.”

리히트호펜이 미소만 짓고 있다가 우리에게 눈짓했다.

나는 반대편의 의자를 빼 앉았다.

“제가 처음 편지를 보낸 게 벌써 3주 전이군요. 경의 활동에 굉장히 감복했습니다.”

“그런 분이 플레로마와 손을 잡을 줄은 몰랐군요.”

“허허허….”

그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참 부럽지 않습니까? 나는 경이 부럽습니다. 그렇게 원하는 방식으로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입니다, 니콜라우스 경.”

“…….”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저하께서는 파멸이 예정된 방식에 몸을 맡기고 싶냐고 하셨지만… 이 얼마나 꿈 같은 말입니까? 세상에는 남은 방법이 하나뿐인 자도 있는 법인데요.”

그가 미소지으며 와인을 마셨다.

나는 그의 말을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하나뿐이라.”

“잡지 않으면 죽는다. 하지만 잡는다면, 죽음만은 피할 수 있다. 수십만 명을 책임져야 하는 나는 이런 결정을 나만의 가치관대로 내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는 플레로마를 우호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걸 문자 그대로 말하지는 않지만, 당연하다. 플레로마를 위해 나를 죽이려 한 자가 내 앞에서 플레로마에게 손해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폐하께서 이곳을 공격하려 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까?”

“물론 알지요. 그러니 더더욱 우리 역시 힘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말이지요.”

온건과 급진을 나누자면 이쪽은 급진파다.

시기가 올 때까지 몸을 사리는 대신, 황제와의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와는 다르네.’

카타콤이 황제에게 공격받지 않는 동시에, 내가 황제를 만족시키는 방법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제3의 적을 만들면 될 일이다.

그러니 그가 내 바람을 들어줄지 궁금하다.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표정 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 그날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당신의 손을 다치게 한 건 미안합니다.”

“손쯤이야.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지요.”

내 말에 그가 빙긋 웃었다.

“플레로마에 충성하면서도 카타콤과 세상의 안전을 위하고, 그런 동시에 누구도 모르게 플레로마를 공격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렇군요.”

“플레로마의 힘을 빌려 강해지되 그렇게 강해진 뒤 플레로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내 생각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아닌가 보죠.”

내 비아냥에도 그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당신도 알겠지만 내 계획의 성패는 니콜라우스의 생사에 달려 있었지요.”

“니콜라우스가 죽는다면 플레로마에게 주어지는 장기적인 손해를 어느 정도 상쇄할 이득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플레로마에게는 손해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역시 니콜라우스 경이 맞군요. 잘 알고 있으니 이야기가 빠르겠지요.”

그가 마지막으로 길게 와인을 마시더니, 말없이 우리를 바라봤다. 그가 포크를 들어 접시를 가볍게 두드렸다.

쿠웅―

“…!”

리히트호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까맣게 변했다.

또다시 공간 마법이 걸린 게 분명하다.

에버하르트가 조용히 말했다.

“가 주셔야겠습니다, 경.”

제3의 적이 필요하다 했다.

그 제3의 적이 플레로마가 된다면 더없이 훌륭한 상황이 되겠지. 황제의 니즈를 충족하면서도 플레로마에게 타격을 줄 수 있고, 카타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곳에 연결된 플레로마를 만나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이동할지는 안 들어도 뻔하지.

놈은 플레로마에게 이 공간 전체를 넘겼을 것이다.

나는 미소지으며 에버하르트를 응시했다.

“이렇게 도와주니 고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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