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09)
“으으으….”
나는 여전히 내 말을 들을 여력이 없어 보이는 상대방을 내려다봤다.
그때, 코 안쪽에서부터 무언가 따뜻한 것이 죽 흘러내렸다.
본능적으로 잠시 질색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주술은 이전하고 비슷하네.’
나는 손등으로 피를 훔치고 미소지었다.
이 정도 마력을 쓰고 코피 정도면 괜찮지.
어떤 원리로 출혈을 일으키는지 몰라도, 이게 뇌나 심장에서 터지지만 않으면 좀 더 해 볼 만하다.
내가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자, 아직도 고통에 빠져 초점이 돌아오지 않은 그의 눈이 내 손에 묻은 피로 향했다.
“잠깐 자네가 플레로마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인간은 아니군.”
마력 섞인 피가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던 스트라우치가 새삼 다시 보인다.
어쨌든….
‘슬슬 심문을 해야겠는데.’
전에 계산했을 때, 마법을 네댓 번은 쓸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때는 그걸 한 번에 모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지금 한 번 썼으니 남은 기회는 네 번이라 치자.
그중 놈의 공간마법을 해체하는 데에 두 번 쓸 분량을 써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아껴야 한다.
다행인 점은 공간마법이 파괴되길 원치 않는다면, 놈도 내게 적극적으로 공격을 퍼부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나는 놈을 잡아 올린 뒤 의자를 걷어찼다.
“잠, 잠깐!”
잠깐은 뭔 잠깐.
나는 그의 멱살을 잡은 손에 신력을 채우고, 체중을 실어 놈의 머리를 바닥에 꽂았다.
쿠웅― 콰아앙―!
“컥…!”
마력을 제대로 쓰지 못할 때는 가성비 좋게 움직여야지.
이 정도 충격이면 놈이 있던 공간으로부터 분리되었을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의 동공이 한순간에 확 풀려 커졌다.
성공이다.
정신조작마법이 걸린 걸 보니, 이중공간마법이 부서진 게 분명하다.
“이중공간마법, 네가 쓰고 있던 마법 말이다. 너희도 그렇게 부르나?”
“…….”
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새 이름을 생각할 시간에 뭘 더 뜯어낼지 궁리했겠지. 이 기술이 어디까지 퍼졌지?”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애매한 질문이기는 하다.
나는 숨을 가볍게 내뱉고 질문을 바꾸었다.
“오스나브뤼크교구 내에서만 도는 기술인가?”
그럴 리가 없겠지만, 차근차근 확장해 보자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가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나브뤼크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일주일이나 되었는데?
그렇다면 오스나브뤼크의 교구장 주교가 실적을 위해 간만 보고 있거나, 조직을 배신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높은 확률로 전자일 것이다.
“네 주인은 오스나브뤼크교구에 속한 인간을 전부 집결시킬 수 있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라면 교구장 주교일 텐데, 주교가 부른다고 교구 신도 전부가 한날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단 말인가.
거참 대단한 위계네. 역시 사이비다.
나는 웃으며 그의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시간상, 슬슬 마지막이다.
“네 주인의 이름이?”
“…아인….”
“이름.”
다시 물었지만 놈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인은 영어의 A에 해당하는 관사다.
같은 대답을 하는 걸 보면 관사로 쓰인 게 아니라 저게 이름의 전부인 듯했다.
순간, 눈앞에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워프해 왔다.
목에 십자가와 함께 플레로마의 문장이 걸려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는 건 포인트 낭비이니 저항할 생각도 없었지만, 고개를 채 들기도 전에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이번에도 푹신한 감각을 느끼며 눈을 떴다.
저 멀리 누군가가 뒤돌아 서 있었다.
‘…엘리?’
아니, 아니다.
색이 엘리아스처럼 하얗긴 하지만, 저자는 머리카락을 묶었음에도 그 끝이 허리까지 왔다.
눈을 깜빡여 초점을 잡고 있자 그가 휙 뒤돌았다.
“아, 일어났군.”
그가 부드럽게 눈을 휘며 웃었다.
“듣자 하니 경이 날 찾는다던데. 그래, 할 말이 있나?”
“…….”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얼굴이다.
잘나서 그렇다기에는 기준이 너무나 주관적이니, 그걸 제외하고 봐도 그랬다.
그의 얼굴에서는 인간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아인시델
호감도 -10
칭호: A _
체력: +9.5
정신력: +6
마력: ?
기술: +7
인상: +1
행운: +5
특성: 매력 (Lv.5), A _ (Lv.8), 영속 (Lv.10)
‘아인시델.’
이자가 아까 만난 놈의 주인이다.
‘알 만한 놈을 데려와야겠다’고 말했다고 교구장 주교가 직접 와 주다니, 이런 행운이 또 어디에 있나.
‘그리고… 호감도가 -10?’
이거 재밌네.
상태창을 통해 보는데도 성만 있고 이름이 없는 것도 그렇다.
아인시델이면 프로이센의 귀족 성씨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네 부하를 통해 다 봤겠지.”
“하하! 의심이 많군. 역시 그 이름값은 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야.”
아인시델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전해 듣기야 했지. 그래서, 내게 뭘 말하려 불렀나? 경이 부른다기에 바쁜 일정을 다 빼고 저 멀리서 왔는데… 별것 아니면 많이 실망스러울 것 같아서 말이지.”
“날 어쩔 셈이지?”
“경이 말한 대로 만들어야겠지.”
그래, 그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이 없지.
나는 그의 이목구비를 하나씩 뜯어보며 물었다.
“어떻게?”
“베른이 알려 주지 않았어? 그 애라면 똑똑하니 분명 널 그렇게 만들려 했을 텐데.”
베른이 누군데 말을 이렇게 하나.
내가 말없이 있자,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순식간에 그의 손이 내 목으로 닥쳐왔다.
콰앙―!
“…….”
“어때, 아까 경이 내 부하에게 한 짓이지.”
그가 나른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침대에서 떨어져 바닥에 부딪힌 머리를 신경 써야 했다.
역시나 이것도 플레로마 아니랄까 봐, 비상식적인 짓부터 벌이고 본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베른이 누군데.”
“하하하!”
그가 목젖이 보이게 웃었다.
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아직 제대로 대화해 보지 않았지만, 알겠다.
이놈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자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자들은 적어도 상식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이자는 세간에서 생각하는 플레로마 그 자체였다.
‘교구장 주교 정도면 플레로마 지도부에 속해 있을 텐데, 그쯤 하려면 이 정도 미친놈은 되어야 하나 보네.’
그가 미친 듯이 웃다 똑바로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통성명도 안 했지? 난 아인이야.”
“살다 살다 성을 줄여 불러 달라고 하는 자는 처음 보는군.”
내가 비웃자 아인시델이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네 성은 아인시델이지.”
“이야, 이게 성인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그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쓸더니 내 목을 누르는 손에 힘을 주었다.
“역시, 이래야지. 베른을 죽인 자가 이 정도 비범함도 없다면 안 되겠지.”
“…….”
이제 알겠다.
나는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베르너 스트라우치를 말하고 있다.
“죽이지 않았어.”
“아니, 죽였어.”
“뭐, 그렇게 봐도 문제는 없겠군.”
죽음 직전까지 몰아간 건 사실이니 말이다.
그렇게 답했음에도 여전히 아인시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그를 죽였다는 사실은 이제 그에게 당연한 게 분명하다.
그는 지금 그다음을 그리고 있다.
그러지 않고 이렇게 태연할 수는 없다.
“어쩔 거야? 경은 플레로마에게도 가족과 친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본 모양이지?”
“그러는 당신은 베르너 스트라우치가 죽이려 했던 이들이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라는 걸 모르는가?”
그가 대답하지 않고 미소지었다.
“그 애는 영생을 살 수 있었는데. 어떻게 할 거야? 응? 이렇게 된 거 널 베른으로 만들어야 할까?”
“…….”
미친 게 맞다.
하던 대화에서 이탈해 저 혼자 생각하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부터 이미 글렀다.
그를 경멸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그가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농담이지.”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중얼거렸다.
“시간은 많으니까… 서로 천천히 알아보자고.”
“굳이?”
“우린 오래 볼 테니까. 나는 경이 마음에 들어.”
호감도 –10이면 최악 중의 최악인데, 이걸 이렇게 표현하는 인간도 있다니 역시 세상은 넓다.
하지만, 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았으니까.
나는 재시도 창을 불러냈다.
그러고는 아인시델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돌려.”
* * *
“…스트라우치 의원이 몸담았던 곳이 오스나브뤼크였지요. 그곳의 교구장 플레로마와 맺은 계약입니다.”
에버하르트가 나를 보며 말하고 있다.
나는 목을 매만지며 크게 숨 쉬었다.
“…후우….”
그 순간, 레오와 리히트호펜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왜 그래.”
“아니, 아냐.”
나는 대강 얼버무렸다.
얼굴에 말라붙었던 피는 이제 없었다.
능력을 사용한 여파로 시야가 어지럽긴 하지만, 충격으로 인한 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깊게 심호흡하고 레오에게 말했다.
“이제 네 모습으로 돌아와도 되겠어.”
“…뭐?”
레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렇게 반응할 만하지. 내내 쓸 만한 정보를 얻을 길도 없었는데 뜬금없이 말하는 셈이니까.
‘네 모습으로 돌아오라’, 그러니까 몸에 입힌 환각을 깨뜨리라는 말은 나르케를 부르라는 뜻이다.
레오를 감싸고 있는 마력은 나르케의 것이고, 나르케는 이것이 깨지면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으로 판단하고 우리에게 오기로 했다.
‘한 가지 변수가 있기는 하다.’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 마리안 바움에게 사정을 전부 설명했다.
그리고 미하엘 슐츠와 똑같이 생긴 자가 지상에 찾아온다면 그를 데리고 카타콤으로 와 달라고 했다.
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우리가 그를 이용했으니까.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그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우선은 레오의 환각부터 깨 마리안 바움이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
레오가 나를 빤히 보다 손가락을 튕겼다.
그를 이루고 있던 환각 마력이 깨져, 레오의 모습이 드러났다.
예상했는지 에버하르트도 리히트호펜도 모두 놀라지 않았다.
나는 에버하르트를 보며 말했다.
“가겠습니다.”
“음?”
“그쪽으로 넘어가 드리죠.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에버하르트가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당신을 제외하고, 이곳에 오는 사람 모두 가야 합니다. 가능하겠어요?”
“플레로마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으니 불가능합니다.”
음, 그래.
그렇게 나오겠지.
나는 그의 심장에 완드를 겨누고 말했다.
“그럼 가능하게 만드시죠.”
“…….”
레오가 황당하게 보는 게 느껴졌지만, 내가 이런 수까지 생각해 줄 필요는 없다. 이 정도는 이쪽에서 알아서 해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 그쪽에 넘어간 당신들의 기술을 회수하러 가는 겁니다. 저들이 당신들의 기술로 얼마나 강해질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요.”
“…회수하겠다고?”
리히트호펜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에버하르트가 나를 빤히 보다 말했다.
“…시간 차이를 둔다면 괜찮겠지요. 경이 넘어가고 한 시간 뒤에 그곳으로 간다면 될 겁니다.”
“진작 그렇게 나오셨으면 좀 좋습니까.”
나는 레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르케에게 말해 줘. 적당히 아무나 잡고 옷 빼앗아서 내가 있는 곳까지 오라고. 그리고, 오스나브뤼크 교구의 주교좌성당이랑 문서고 위치를 좀 찾아 달라고 전해 줘.”
“그래.”
다행히 레오는 별로 윤리적이지 않은 말에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약을 마셨다.
* * *
이번에도 아까 보았던 그 방이다.
“카타콤에서 독한 약을 드셔서 속이 상하셨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식사부터 정찬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나가 봐.”
나는 시종을 빠르게 내쫓았다.
그리고, 일어날 때부터 손에 쥐여 있던 종이를 펼쳤다.
나르케의 필체였다.
‘빠르네.’
종이에 적힌 건 레오에게 걸었던 환각 마법 공식이다.
대체 언제 내가 원하는 걸 알고 이렇게 해 놓았는지는 몰라도, 잘됐다.
나는 종이에 적힌 공식을 외우고, 내가 아까 보았던 모습을 대입했다.
채 묶이지 않은 하얀색 머리카락이 시야 아래로 길게 내려왔다.
환각 하나로 나의 인지까지 이렇게 바꿀 수 있다니 놀랍다.
조심스레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 보았다. 내가 알던 루카의 골격과는 다른 얼굴이 잡혔다.
처음 써 보는 마법이지만 다행히 공식을 제대로 외웠는지, 목소리도 다르게 났다.
솔직히 기분은 더럽지만, 이게 최선이지.
나는 죽 흐르는 코피를 대강 닦아 내고 일어섰다.
콰앙―!
아까 보았던 시종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문을 열고는, 나와 빈 침대를 번갈아 바라봤다.
“…주인님? 니콜라우스 각하는….”
빠르네. 코어에서 마력을 끌어냈으니 그걸 느꼈을 것이다.
나는 주교의 느긋한 말투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