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12)
“…….”
“왜, 여기까지 오면서 이 점도 몰랐나?”
“부하들을 인질로 삼겠다고….”
아인시델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좋아.”
콱―
그가 순식간에 내 앞으로 워프해, 내 뺨을 한 손으로 붙들었다.
“이 정도 기개는 있어야 오래 볼 맛이 나지. 안 그래?”
나는 그 손을 쳐 내며 대답했다.
“글쎄. 오래 볼 생각은 없는데.”
“음, 아니. 오래 보게 될 거야. 난 경이 아주 마음에 들거든.”
이번에도 역시나 같은 말이다.
그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날 알았는지 몰라도, 경처럼 바쁜 사람이 친히 날 기다려 주다니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네. 그런 만큼 이런저런 선물도 준비되어 있겠지. 내 부하들을 모조리 잡아넣은 것도 그렇고….”
그가 텅 빈 성당을 휘휘 둘러보고는 내 어깨를 붙잡았다.
“경이 홀로 이곳에 있는 것도 그렇고. 분명 날 위한 계획이 있겠지.”
“그래, 당연하지.”
나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그가 또다시 호탕하게 웃다, 발을 쾅 굴렀다.
순간, 주위 풍경이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
“경은 아무나 주교 자리에 오른다고 보나 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멱살을 잡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놈의 모습이 이제야 드러났다.
“베른이 지나치게 약했던 모양이지. 확실히 주교품에 올리기에는 좀 약하긴 했어.”
“그렇더라.”
“하하하! 경과 이런 식으로 말이 통하는구나. 대신 머리 하나는 잘 굴러갔지. 조금만 더 하면 그 웃기지도 않은 모기들을 양산하는 데에 성공했을 텐데. 첩자로 살면서 언젠가 재상 자리에도 올랐을 테고….”
콰앙―!
눈 바로 아래까지 새까만 공격이 닥쳤다.
아인시델이 내 무표정을 보며 중얼거렸다.
“전혀 안 통하는군. 마음에 들어. 베른을 죽인 자가 이 정도도 되지 않았다면 실망했을 거야.”
그야 나도 이중공간마법을 쓰고 있으니까.
임계를 넘는 충격에는 깨지지만, 그러기 전에 마력을 흘려보내면 쉽게 타격을 막을 수 있었다.
단점은 나 역시 마법을 그 이상까지는 쓸 수 없다는 점이지.
물론, 오늘 나는 그와 대화하러 왔으니 최적의 방어 수단이다.
“그렇다면… 마법은 빼자. 나도 경이 쓴 방식이 뭔지 잘 알지. 최근에 내 마음에 쏙 든 마법이거든.”
아인시델의 발이 내 발 사이로 들어오더니, 놈이 내 어깨를 밀치며 발목을 강하게 걷어찼다.
콰앙―!
“…….”
“중요한 맹점이 있지. 만질 수는 있다는 점이 그래. 나는 주먹질에도 자신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물론 자신이야 있겠지. 엘리아스보다도 높은 체력인데 자신이 없을 수가 있나.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가지는 순간 방심하는 법이다.
내가 미소짓자, 그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가 순간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그가 펼쳤던 공간 마법이 사라졌다.
저 멀리, 성당 입구에서부터 스태프를 비스듬히 내리찍은 나르케가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잘못 걸렸네, 니콜라우스.”
놀란 얼굴로 서 있던 아인시델이 금세 평정을 찾아 중얼거렸다.
“…이걸 어떻게 깨고 들어왔지? 나는 니콜라우스에게만 볼일이 있는데.”
“글쎄요. 그렇게 따지면 나는 당신에게 볼일이 있군요.”
나르케가 의중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그대와는 뭘 할 생각이 없어.”
“나는 아닌데, 아쉽군요.”
맨날 ‘하하 그렇구나~’처럼 되는 대로 대답하며 웃는 모습만 봐 와서 그런지, 이렇게 웃음기를 섞으면서도 진중해질 수 있다는 걸 오랜만에 깨달았다.
아인시델이 찬찬히 나르케를 훑더니,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니콜라우스나 당신이나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왜 하필 재미없게 니콜라우스를 미끼로 사용한 거지?”
그야 베르너 스트라우치를 처리한 나에게만 유별난 관심을 보이니, 그를 자리에 묶어 둘 사람으로는 내가 적합하지.
하지만 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다. 언제부터 내가 자길 알았는지 의문을 가질 테니까.
나르케 역시 대답 없이 스태프를 그에게 조준했다.
“비키시죠.”
“음?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니콜라우스가 지금 나 때문에 못 일어날까 봐 그러나? 동료를 믿어 보는 게 어떤지 싶군.”
“하하, 논리적인 분은 아니군요.”
콰앙―!
나르케의 신력이 제게 닥쳐온 비트리올을 흩었다.
경쾌하게까지 느껴지는 움직임을 보니, 나르케가 제힘의 반도 쓰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인시델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졸린 듯 반쯤 떴던 눈에 잠시 빛이 돌았다.
“이거, 이쪽은 그 마법을 씌우지 않았군. 당신보다는 니콜라우스 경이 제 실력대로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그가 비트리올을 거두고 말했다.
이제 그의 얼굴에서는 온화함이 느껴졌다.
“알겠어. 그대들은 내게 원하는 게 있지?”
“음, 이제 대화가 통하는군요.”
“아무리 그래도 니콜라우스 둘… 아니, 하나가 더 있군? 셋은 별로니까. 게다가 나는 폭력을 즐기지 않아. 가능하면 할 수 있는 데까지 대접하고 싶지.”
나는 공간 마법이 깨지지 않을 만큼 마력을 쏘아 내며 바닥을 차고 일어났다.
“자신이 없다는 말을 길게도 하는군.”
“어차피 경을 홀로 마주하는 건 이미 그른 모양인데, 내가 여기서 그대들에게 협력하는 것 외에 뭘 택할 수 있을까.”
그가 싱글싱글 웃으며 제대에 걸터앉았다.
“말해 봐. 무얼 원해서 이곳을 이렇게 날려 버렸는지.”
“기억.”
“기억…?”
“네 기억을 지워야겠어.”
그가 눈을 찌푸리다 씩 웃었다.
“안 되지. 이러다 베른의 기억을 잃으면 그쪽이 책임질 건가?”
“그래, 걱정할 것 없어. 내가 원하는 건 최근 일주일의 기억이니까.”
“일주일?”
그가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뭘 원하는지 파악해 보려는 듯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나르케를 바라봤다.
일주일이고 자시고,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하는 자인가.
‘…처리하기에는 놈의 스탯이 걸린단 말이지.’
주교다. 카타콤 지도부에 있는 놈이라는 말이다.
느껴지는 미세한 마력만으로도 지금까지 만난 이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계획만 잘 세운다면 처리하지 못할 것은 없겠지만, 놈을 지금 죽일 수 있거나, 죽여야만 했다면 나르케가 먼저 강하게 나갔으리라는 점이 걸린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나르케 역시 내 생각을 알았는지 고개를 저었다.
시기가 아직 아니거나 죽이려 했다가 되레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일 테다.
그도 그럴 게, 놈이 공간 마법을 펼쳐 다른 교구의 플레로마에게 상황을 알릴 수 있으니 말이다.
이중공간마법을 독점하는 행태로 보아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나, 죽음 직전까지 몰리면 말이 또 달라진다.
아인시델이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그럼 난 오늘 경이 날 성대하게 맞아 준 기억도 잊겠어. 오스나브뤼크가 카타콤과 좋은 관계를 맺은 것도. 그런데 내가 기억을 잃으면 내게는 무슨 이득이 떨어지지?”
“그렇게 재고 따질 처지는 아닌 걸로 아는데.”
내 비웃음에 그가 놀란 듯 눈썹을 올리더니, 환히 웃었다.
“경이 이런 성격이었을 줄이야.”
“…….”
“경의 말이 맞아. 마침 경이 내게 선물을 하나 했지. 솔직히 부하들이 죽건 말건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 방에 사라진다면 교단 내에서 내 입지가 볼만해지겠지.”
“정말 구경하고 싶은 상황이네.”
“경에게 약점을 잡혔으니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내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고는 나르케를 보면서도 미소지었다.
기억을 지워도 좋다는 뜻인 듯했다.
“…….”
나르케는 완드를 들지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인시델이 웃으며 물었다.
“안 할 건가? 공간 마법도 해제했는데.”
“수작 부릴 거면 관두지 그래.”
“정확하네. 이야, 이렇게 의심이 많으니 원….”
콰앙―!
그가 발을 한번 구르자, 무언가 눈앞에 떨어졌다.
사람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는 되나 싶은 아이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아인시델이 별 감정 없는 말투로 말했다.
“오늘 구해 온 피야. 안 그래도 오늘 내에 마시고 처리해야 해서 곤란했는데, 잘됐네.”
“…….”
“지워 봐. 내가 알기로는 사람에 따라 조절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내 기억을 지우려고 신력을 쓰면 이 친구 머리는 충격에 멀쩡할까? 영영 복구 못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연결을 해 뒀다는 말인가.’
아까 나와 놈의 시종처럼 말이다.
나는 완드를 들었다.
동시에 저 멀리서 나르케가 스태프를 우리 쪽으로 휙 기울였다.
그 순간, 바닥을 덮친 비트리올이 아이를 덮었다.
“안 되지.”
“뭐가 안 돼?”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
순간 아인시델의 눈에 당황이 깃들었다.
그러다, 그가 휘청대던 몸을 바로 세웠다. 곧바로 제정신을 차린 아인시델이 놀란 눈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 이 친구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나를 재우겠다는 뜻이었어? 역시 경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피 냄새와 장막 마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지금 놈은 내 마법을 막아 내기 위해 제 혀를 씹은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확인해야 할 게 하나 있지.
나는 미소지으며 나르케에게 눈짓했다.
콰앙―!
나르케의 금빛 마력이 아이를 둘러싼 비트리올을 잡아 뜯었다.
아이는 그저 겁에 질려 있었을 뿐, 입가에 손을 대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
“…아, 이런 방식으로 파악할 줄이야.”
아인시델이 휘파람을 훅 불며 완드를 까딱였다. 동시에 나르케가 주문을 외웠다.
―너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야훼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콰앙―!
충격음은 짧았다.
아이에게 날아가던 놈의 비트리올이 내 신력에 흩어졌다. 꼭 워프한 것처럼, 아이가 그대로 사라졌다. 나르케가 공간마법으로 리히트호펜에게 넘긴 게 분명했다.
이 짧고 손쉬운 방어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중공간을 풀지 않았네.’
애초부터 ‘마법을 풀었다’는 말이 거짓이었겠지. 놈도 장막이 깨지지 않게 조심하고 있는 중이다.
놈을 잘 아는 건 아니나, 성향으로 보아서 계속 우리와 대치하고 있을 위인은 아니다. 지금부터는 시기를 보는 수밖에.
“…….”
아인시델이 나르케가 있는 곳을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방식은 재미가 없군.”
그가 선 자리가 검게 변해 갔다. 그 순간, 굉음이 귀를 흔들었다.
나르케가 스태프를 양손으로 쥐고 비트리올을 막아 내고 있었다.
‘시기를 보겠다고 생각하자마자 풀 줄이야.’
콰앙―!
공간이 까맣게 변하면서 놈의 비트리올이 내게 닥쳐왔다. 나는 발뒤꿈치에 무게를 실어 중심을 잡았다.
‘이 정도면 나도 이중공간마법을 풀어야 승산이 있겠는데.’
하지만, 더 확실한 승리를 위해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레오도 합세했는지 어디선가 푸른 마력이 계속해서 튀었다.
아인시델도 밀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끌어다 쓰는 중인 듯하지만, 사람 셋을 상대하는 걸 보니 ‘아무나 주교 자리에 오르는 줄 아느냐’는 말은 역시 허풍이 아닌 듯하다.
내가 멋대로 기억을 지울 것을 우려했는지 계속해서 공기가 어두워졌다. 이제 실루엣 외에는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힘을 조금만 더 높이면 부하들을 전부 보낼 생각이지?”
“당연하죠.”
나르케가 웃으며 신력을 내보냈다.
“1분에 한 명씩 보내야 좀 정신을 차릴까요?”
“하하, 무서운 소리를 하네. 이대로면 시간만 버리는 셈인데, 부탁 하나 하지.”
“들어나 보죠.”
“니콜라우스를 내게 넘겨.”
충격음 속에서도 나르케가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그의 매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할까요?”
나는 헛웃음을 쳤다.
레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모르긴 몰라도 어이없어 할 것 같긴 하다.
물론 나도 잠시 그렇긴 했다.
순간, 비트리올이 걷혔다.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던 나르케가 아인시델을 향해 스태프를 겨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나르케의 말에도 놈은 변함이 없었다.
이중공간마법을 한번 해제하고 다시 펼치는 과정은 복잡하므로, 이제는 장막을 두껍게 씌워 튕겨 낸 게 분명하다.
아인시델이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동료를 팔아넘기는 건가? 무슨 계획이라도?”
“아뇨. 저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지 알지도 못했는데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까요?”
“좋아.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 느낌이네. 그래도… 믿으려면 뭐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가 손가락을 마찰한 순간, 하얀빛이 흘러나왔다.
“…!”
나르케나 내 것처럼 투명한 느낌이 나지는 않았지만, 이건 누가 보아도 신력이었다.
‘분명 스트라우치와 만났을 때, 플레로마라고 해서 신력을 쓸 수 없는 건 아니라고 했지.’
그 증거를 눈앞에서 마주할 줄이야.
“…….”
나르케가 그저 미소지으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니콜라우스가 이기면 순순히 말을 듣지. 하지만 진다면…. 그대의 시체를 오늘 당장 내게 줘.”
지금 뭔 소리를 한 거냐?
순간 정색했지만, 나르케는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안 될 것까지야. 그런데 왜죠?”
“능력이 좋아 보여서. 그래서, 할 건가? 내가 어떤 방식을 쓸 줄은 알지?”
“모를 수가 있나요.”
나르케가 제 심장께를 완드로 툭 두드리고는 아인시델을 향해 말했다.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너와 나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그 순간, 다시 주위가 하얗게 변했다.
이제 공간에 남은 자는 아인시델과 나뿐이었다.
“깔끔한 사람이네. 그보다, 동료가 경을 많이 믿나 봐?”
그것까진 모르겠고, 그저 나르케 같은 친구가 우리 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퍼억―
놈이 또다시 나를 걷어찼다. 주먹질에 자신이 있다는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길 생각인 듯했다. 비트리올을 쏟아부어도 내 마법을 부술 수 없다는 걸 일찍 깨닫다니, 상식이 없는 것과 달리 상황 판단은 그럭저럭 되는 모양이다.
“나도 풀었는데 경도 어떻게, 좀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어?”
“…….”
“마법 풀어 봐. 풀고 일어나서 제대로 공격해.”
나는 별다른 표정 없이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 정도 요구도 못 들어주나? 들으면 아까 그 사람이 죽을까 봐?”
“아니.”
“아니야?”
아인시델이 웃으며 내 왼손을 발로 쳤다. 이어 육중한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
손가락 하나에 극심한 통증이 닥쳤다.
내가 인상을 구긴 순간, 놈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
“직접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있는데.”
물론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진짜가 아니다.
공간마법만 풀리면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놈의 얼굴을 살폈다.
“어떻게 한번을 안 풀어 줄 수가 있어?”
놈은 이제 웃느라 주위를 제대로 살피고 있지도 않았다.
부하고 뭐고, 니콜라우스를 잡겠다는 그 목표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내가 뭘 하는지 살피고 있지도 않는다는 말이었다.
‘아까 나르케에게 받았던 공식이….’
좋다.
아직 기억에 있다.
물론 아직 기억에 있으니 나르케가 나를 믿고 여기로 넘겼겠지.
“아프지 않다는 건가? 나 같은 건 언제든지 베른처럼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
그 순간, 내 몸 위에 흩어져 있던 하얀 머리칼이 사라졌다. 동시에 키가 줄어들고 피부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놈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눈에 지나치게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가, 그가 어떤 충격을 느끼고 있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베르너 스트라우치의 모습을 그대로 옮겼으니 말이다.
콰앙―!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놈을 넘어뜨리고 아직 멀쩡한 팔로 그의 눈을 가격했다.
“으윽!”
놈의 눈빛에 당혹이 서렸다.
금세 그 당혹은 살기로 바뀌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나는 그의 이마를 바닥에 내리찍고 입을 열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