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13)
솔직히, 못 할 짓이다.
망자의 모습을 흉내 내는 건 내키지 않았다. 아니, 그런 가벼운 말로 전부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주교는 확실히 다르네.’
놀랍게도, 놈은 아직 미약하게나마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이런 놈들이 주교라면 스트라우치는 확연히 떨어지는 실력을 가졌던 게 맞지.
그때, 놈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또다시 피 냄새가 났다.
“…경은 더 높이 가야겠어.”
스트라우치의 기억을 잃고 싶지 않은 건지, 놈은 필사적으로 내 조작 마법을 밀어내려 했다.
“하는 김에 싹 다 지우려 한 걸 잘도 파악했네.”
“하하하….”
물론, 그 덕에 다음 기억은 무방비 상태다. 나는 이마를 꽉 누르며 지울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빠르게 생각해 보자.’
내가 승기를 잡은 지금, 이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첫째로, 예속 마법을 건다.
하지만 예속 마법은 연결을 기본으로 한다. 원수를 갚겠다고 날뛰는 놈과 연결되면 놈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 주는 꼴이지.
둘째로, 지금 당장 코어를 공격한다.
‘이거 좀 끌리는데.’
하지만 직감이 좋지 않다.
좀 더 깊이 따져야 한다.
코어를 공격하려면 정신 마법에서 그만큼의 힘을 빼야 한다.
놈이 내 마법을 이겨 내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30초 이상의 딜레이가 생길 만큼 강한 정신력을 가졌다면 힘을 줄인 틈에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타격을 입히면 되는 일이다.
“오스나브뤼크의 성직자들이 기억을 잃은 건 누구 때문이지?”
“경의 짓이겠지, 유감스럽게도.”
“아니.”
아인시델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천천히 내게 향했다.
“사실은 분명히 해야겠지. 외부의 그 누가 이곳까지 쳐들어올 수 있을까? 아무리 니콜라우스라도 그건 어려우니, 상식적으로 너희와 사이가 썩 좋지 않은 교구 짓일 테지. 이중공간마법을 공유할 경우 너희에게 손해가 될 플레로마 교구 말이다.”
“…하하하…! 이거, 눈 뜬 뒤가 두려워지는데….”
눈이 감기는 와중에도 놈은 웃음을 터트렸다.
상황 파악 빠르네.
아까 나르케가 쓴 것과 유사한 방식이지. 그때는 잠깐 놀라긴 했지만 내분을 유도한다면 확실히 놈의 명예에도, 플레로마의 전력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신력을 확 밀어붙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좋아….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가. 그래서, 다음에 만났을 때 내게 베른이 개죽음당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
놈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끝까지 몰렸는지 숨이 점차 느려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마력을 확 밀어 보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눈에서 초점이 완전히 사라짐과 동시에 그가 펼쳤던 공간 마법이 흩어졌다.
‘오래 버티네.’
루카의 낮은 정신력으로 무리하게 공격해서 그런지, 시야가 핑 돈다.
앞으로 주교급 플레로마를 만날 때 참고해야겠다.
이제 눈앞에 펼쳐진 건 성직자들을 잠재웠을 때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풍경이었다.
언제 돌아왔는지 리히트호펜이 성당 바깥에서 공간 마법을 돌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레오와 나르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공했네.”
나르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자, 신력이 부드럽게 넘어왔다.
떨어졌던 힘이 천천히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끊어질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던 손가락도 이제 멀쩡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끝이야.”
끝이지. 마지막으로 여기 있는 잔챙이들에게도 아인시델에게 심은 가짜 기억을 그대로 심기만 하면 말이다.
나는 아까 썼던 명령어를 그대로 읊으며 스태프를 바닥에 찍어 신력을 흘려보냈다.
이제 정말 정신력을 죄다 끌어다 썼는지, 순간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
빨리 값을 올리든가 해야지 안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레오가 내 어깨에 완드를 대고 치유 마법을 발동시켰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아, 고맙다.”
“뭘.”
나는 치유 마법이 스미기까지 잠자코 기다린 뒤, 리히트호펜에게 고갯짓했다.
“갑시다. 안내하세요.”
리히트호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 귓가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처음 이 플레로마 세상에 떨어졌을 때 펼쳐졌던 그 성당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아스카니엔 씨.”
“예.”
“이제부터는 가면을 쓰는 게 좋을 겁니다.”
도착하면 바로 다른 이들이 있나 보군.
나는 변화식을 외워 가면을 만들어 냈다.
준비가 끝나자 그가 텅 빈 성당 한가운데에 서서 스태프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금빛 마력에 눈을 찡그린 순간, 카타콤 의회가 나타났다.
아까와 달리 테이블 주위는 새까만 로브를 입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왔군요.”
홀로 자리에 앉아 있던 에버하르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주위에 희미하게 느껴지던 마력이 깨끗이 사라졌다.
그가 여태 리히트호펜을 플레로마의 세계와 카타콤 사이에서 연결하고 있었던 듯했다.
리히트호펜이 그를 보자마자 완드를 들었다.
“…….”
“카타콤은 당신이 플레로마의 손을 잡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에버하르트는 말없이 술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장님의 우려와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플레로마와 뜻이 같지 않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카타콤의 전제군주가 아니지요.”
“…….”
“당신은 이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카타콤의 신민들을 당당히 설득했어야 했습니다.”
“비트리올을 취하겠다는 계획을 쉽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테지요.”
“아뇨, 당신은 그럼에도 해냈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앉은 자리는 그런 자리입니다. 대중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걸, 아직도 모르십니까?”
귀족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니, 상당히 놀랍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까지 봐 오기로 리히트호펜은 귀족 생활에 익숙하기는 해도 귀족 친화적인 자는 아니었지.
에버하르트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 일을 예상하고 있던 것처럼 차분했다.
리히트호펜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우리는 존엄과 생명이 달린 문제를 자신의 독단으로 결정하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의 단단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에버하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잔을 들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잔을 옆으로 치우고 팔꿈치로 책상을 받친 채, 양손을 내밀었다.
“…….”
리히트호펜의 입이 세게 다물렸다.
의장의 곁에 서 있던 자경단원 둘이 그의 손에 구속구를 채웠다.
적막만이 감돌았다.
카타콤의 원수가 스스로 의장직 제명을 받아들였음에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에버하르트가 플레로마의 스파이라서 진정으로 카타콤을 팔아넘기려는 자였다면 이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방식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지만, ‘평민 마법사를 학살하려는 제국에 맞서겠다’는 뜻은 그들 모두와 같다는 걸 모를 수가 없으니까.
리히트호펜 역시 말없이 완드를 내리고는, 한참 침묵했다.
그러다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니콜라우스 경.”
“…….”
로버트 뮐러에 대한 처분을 내리라는 뜻이겠지.
어쨌든 그와 자경단장은 나를 죽이려 했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그를 지상에 데려가 지상의 법령에 의해 처벌받게 한다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짓이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을 카타콤의 일부로 분리해서 황제에게 넘긴다면 당신은 죽겠지요.”
“…….”
“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습니다. 카타콤을 플레로마와 같은 악의 집단으로 몰아가겠다는 황제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셈이니까요.”
에버하르트는 반응 없이 내 말을 들었다.
“당신의 결정은 근시안적인 실책이었습니다.”
“…….”
“하지만 그건 제삼자인 제 입장이겠지요. 저는 생존을 위협받는 당사자가 아니고, 당신과 달리 이 모든 일을 한 발짝 떨어져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플레로마가 강해진다 해도 당장 조직을 살려야 하는 당신에게 몇 년 뒤의 미래는 중요치 않은 요소였을 겁니다.”
나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앉아 있는 에버하르트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이 나를 왜 죽이려 했는지 이해합니다. 당신을 지상에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이곳 법에 따라 처벌받으시죠.”
이해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나르케와 레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에버하르트는 이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그에게서 사과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잘된 일이었다. 그 역시도 의도한 바일 테다.
“이 시간부터, 카타콤의 국회의장직은 법령에 따라 안제 드라허 부의장이 대신할 겁니다. 연행하세요.”
리히트호펜의 말에, 자경단원 몇이 에버하르트의 팔을 잡고 워프했다.
그가 자리에 남은 자경단원에게 광장으로 돌아가라 지시하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저는 슬슬 빠질 때가 됐군요. 이러다 저까지 제거되게 생겼습니다.”
여전히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슬쩍 농담을 하는 걸 보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레오가 질문했다.
“엘리아스는 일어났습니까?”
“당연히 그렇죠. 내 부하들이 여기에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엘리아스 저하 때문입니다. 아니, 덕분이라고 해야겠죠.”
“덕분?”
“저하께서 쓰러지고 난 뒤에, 방위군은 마리안 바움을 앞세웠습니다. 그분이 당신들에게 분노할 줄 알았겠죠. 그런데… 당신들이 이미 바움 선생님께 사실을 전부 이야기했던데요.”
“그랬죠.”
“선생님께서는 다 알고서 여러분을 데려왔다고 하더군요. 누가 봐도 아닌 게 분명했는데 말이에요.”
“…….”
“뭐, 그 뒤에는 자경단원들이 피를 내서 비트리올을 증거로 보여 줬습니다. 이미 단장님이 우리 단원들에게 제압당했을 때부터 난리가 나기는 했는데, 점점 상황이 더 심각해지더군요.”
그러겠지.
플레로마에 대한 인식은 카타콤이나 지상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엘리아스 저하가 깨어나 방위군을 설득한 뒤부터는 남은 자경단도, 방위군도 전부 단장님과 의장님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방위군을 설득했다고?
소설에 없던 장면이라 상상이 안 간다.
이런 건 나도 직접 봤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누르고 안부를 물었다.
“다행이네요. 상태는 좀 괜찮습니까?”
“걱정할 필요 없을걸요. 평소대로예요.”
의회 청사를 벗어나자, 리히트호펜이 우리를 데리고 광장으로 워프했다.
“…!”
광장 한복판에 리히트호펜이 펼쳤던 것과 같은 공간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빈 회의장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거대한 영상을 바라보며 헛웃음 쳤다.
“설마 또….”
“그래요. 우리가 했던 말은 전부 이곳에 전달됐습니다. 설마 안 되는 내용이 있었나요? 내 생각에 당신이 의장님을 용서한다는 말은 감출 말이 아니라 전달해야 할 말이었는데.”
자꾸 말도 안 하고 전달하고 있네.
물론 감사한 일이긴 하다.
했던 말 또 하지 않아도 되니 나야 좋지.
나는 광장을 휙 둘러봤다.
말하는 사람도, 공간 마법을 통해 방송되는 것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질서 있게 광장에 있었다. 소식을 바로 듣기에는 이곳에 있는 것이 좋으리라 여긴 모양이었다.
리히트호펜이 단상을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말이 있죠?”
“예.”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이곳에 더 있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플레로마와 로버트 뮐러를 잡기 위해 온 것뿐이다.
이들의 문제에 참견할 생각은 없으니 마지막으로 정리만 하고 바로 돌아가야지.
나는 엘리아스가 서 있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엘리아스는 장난스럽게 굴지 않고 내게 묵례하고 뒤로 비켰다.
순간, 대중의 시선이 내게 쏠리면서 공간 마법에 내 모습이 비쳤다.
“…….”
누가 알아서 이렇게 연결을?
연설을 하겠다고 한 적은 없으나 이미 그럴 준비가 모두 마쳐졌다.
나는 확성 마법을 걸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니콜라우스 에른스트입니다.”
“…….”
나는 쥐 죽은 듯 조용한 광장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렇게 인사를 드릴 상황이 아닌 것을 압니다. 귀족인 제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이곳에서 나가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신력을 발동시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여러분께 사죄하고, 약속하고자 합니다. 무슨 연유에서든 귀족인 저희가 이곳에 발을 내디딘 순간 여러분이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위험 지대로 변했다는 것을 압니다. 지상에서도, 이곳에서도 여러분께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 것에 깊이 사죄드립니다.”
“…….”
“먼저, 오늘 이곳에 진입한 우리는 앞으로 카타콤의 정치에 일체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독립성을 침범할 생각이 없다.
“둘째로, 우리는 ‘플레로마와의 연관이 의심되니 카타콤의 동향을 확인해 달라’는 황제 폐하의 명령을 받고, 그분의 명령을 어기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 만큼 오늘 있었던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분께 알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기기 위해 왔다는 말 때문인지, 조용했던 그들에게서 작은 동요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분께서는 카타콤의 문제에 귀족인 저희가 끼어드는 것이 곧 여러분의 주도권을 빼앗는 일이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자경단장께서도 엘리아스 저하께 그런 의미를 담아 말씀하셨죠.”
이들이 귀족인 우리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정체성에도, 앞으로 그들과 우리의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오늘 우리는 플레로마와의 연결을 끊고 계약을 없던 것으로 돌렸으며, 넘어간 기술을 전부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여러분의 뜻이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던 일입니다. 저희는 여러분께서 이룩한 결과를 저희의 성과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나는 조용한 대중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또한 지상에서의 삶을 박탈당한 이 상황은 여러분이 짊어져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제국의 귀족이 뿌렸고 제국의 귀족이 키운 문제입니다. 카타콤의 자주권을 침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려는 것입니다.”
“…….”
“그러니… 염치 불고하고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 황제 폐하께 대항하기 위해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한다면, 플레로마가 아니라 우리와 잡아 주십시오.”
여전히, 광장은 조용했다.
눈에 들어오는 몇몇 얼굴에서 멍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사실 큰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말은 아니긴 했다.
그저 이들이 우리를 적으로 여기지만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말을 하고 나니, 자칫하면 꾸며 낸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는 완드를 굴려 스태프로 늘이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아앙―!
이미 이곳은 밤이었지만, 해가 뜬 것처럼 순간 주위가 밝아졌다.
“약속하겠습니다. 오늘 말한 이 각오는 제 숨이 다하는 날까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언약 마법의 조건문이다.
어길 시에는 내게 스민 언약 마법이 내 생명력을 깎겠지만 그렇게 될 일은 없다.
내가 이 시대의 귀족이 아니라 현대인인 이상, 나는 권력을 위해 제도로 사람을 학살하는 귀족에게 정을 붙일 수가 없다.
나는 라틴어로 된 성서 구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신력으로 일어난 강한 바람이 광장의 놀란 목소리를 흐리게 만들었다.
제국어로 된 성서 주문은 평민 마법사들에게 가해지는 대표적인 차별이다. 오래전, 평민 마법사들에게 사형이 적용되기 전부터 제국 정부가 제국어 성서 소지를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국어 주문은 이곳에서 담을 말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다른 신력 마법과 달리, 이번에는 빛이 주위만을 밝히지 않고 내 몸을 타고 올랐다. 나는 내가 쏟아낸 신력이 코어를 옥죄는 것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을 마치고 스태프를 바닥에서 떼어 낸 순간, 마지막으로 터져 나간 빛이 시야를 가렸다.
눈앞에 새하얀 글자가 나타났다.
띠링―!
Chapter 5 안내
새로운 지지 기반.
당신의 생존 가능성을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