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17)
나는 나르케에게 받은 하얀색 가면을 쓰고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쉬는 중에 파시아를 풀거나 옷을 갈아입지는 않았기에 바로 나가기에 문제는 없었다.
이미 비명을 듣고 다들 잠에서 깨었을 법도 한데, 이 넓은 저택의 복도에는 그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다.
‘…설마 나왔다가 불똥이 튈까 그런가.’
[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우리가 있던 방의 바로 아랫방에서 악에 받친 외침이 들려왔다.
이런 소리를 듣고서 함부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문 옆에 서 있다, 레오와 시선을 교환했다.
일단 나르케부터 불러야 한다.
아까 읽은 바로는 구마 예식에 사제 둘 이상이 참여하는 게 최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제대로 교육받은 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지. 섣불리 열었다가 화만 부를 수 있다.
나는 내 어깨에 매달려 있는 파이를 바라봤다. 나를 따라온 걸 보니 혼자 남기 무서웠던 게 분명하다.
―“파이.”
“…….”
―“나르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알면 다녀와 줄 수 있겠어?”
파이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고 내 어깨에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층에서 무언가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아스가 먼저 뛰어 내려왔다.
그의 뒤를 따라온 나르케가 손에 든 물병을 흔들며 말했다.
“벌써 나와 줄 줄은 몰랐는데, 빠르네.”
나르케의 신력이 물병 주위에 일었다. 그가 문을 벌컥 연 순간, 새까만 공기가 훅 끼쳐 왔다.
눈에 핏발이 선 사용인이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달려들었다.
[아아아악!]
“진정하세요.”
그의 팔은 나르케에게 닿지 못했다.
나르케가 그를 신력으로 짓누르며 말했다.
“몸 주인의 이름을 알아봐야겠어. 소지품 좀 확인해 줄 수 있어?”
“아니, 마틴 듀러야.”
“어떻게…. 아.”
나르케가 놀란 듯 묻다가, 내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콰앙―!
플래시 터지듯 빛이 확 일자 사용인이 뒤로 쓰러졌다. 나르케가 한 손으로 신력을 운용하며 다른 손으로 물병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내가 도울 테니까 손으로 열어.”
“아, 고마워.”
[놔!]
그의 사지와 가슴을 신력으로 찍어누르자 잔뜩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이 세상 목소리가 아닌데.’
성대에 비트리올이라도 꼈나.
내가 그를 관찰하는 사이, 나르케가 신력을 거두고 손가락에 물을 찍어 그의 이마에 십자선을 그었다.
순간 그의 몸이 강하게 튀어 올랐다. 입에서는 거품 섞인 침이 흐르고 있었다.
“흠, 전형적인 부마 증상이네. 하지만 이만한 상태는 너무 갑작스러운데…. 정말 맞는지는 지금 알아봐야겠지. 엘리아스.”
“어, 말해.”
“누가 구경하러 오지 않게 살펴 줄 수 있어?”
엘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고 밖에 섰다.
이미 레오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기도문을 읊고 있었다.
레오의 집안은 구교를 믿고 엘리아스의 집안은 신교를 믿기에, 구교의 의식을 곁에서 지키며 도울 자로는 레오가 적합했다.
“레오, 계속 부탁해. 인간의 오랜 원수인 너를 쫓으리니, 천주의 피조물인 마틴에게서 나오라.”
나르케가 무어라 중얼대며 명령하는 동안, 레오는 대답 없이 계속해서 기도문을 외웠다.
얼마간 기도를 이어갔을 때, 부마 희생자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이제 나은 것 같아요.”
아까와 달리 선명한 목소리였다. 그가 당황한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다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방금 무슨….”
쾅―!
나르케가 그의 가슴팍에 걸어 둔 제어 마법에 신력을 때려 박았다. 그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
“천주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 이름을 밝혀라.”
[왜 그래야 하지?]
아까 그 목소리였다.
나르케와 눈이 마주쳤다.
‘…이건 뭐, 꼭 귀신 들린 것처럼….’
상당히 놀랍다.
물론 놀라움은 잠시였다.
사람 피나 처먹는 시체 집단이 신도 12만 명을 넘긴 채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보다는 놀랍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르케가 레오와 나를 보며 물었다.
“이대로 24시간 넘게 대치하게 될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
“…지금 괜찮고 말고 일단 끝은 봐야 하는 상황 아닌가 싶은데.”
일단, 우리는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귀족을 만나 간단히 인사했다. 그런 마당에 그냥 가면 우리의 입장도 난처해질 테다.
또… 입에 거품 물면서 날뛰는 사람을 보고서 그냥 버리고 등교하자는 말은 안 나온다.
아마 나르케는 넷 모두 결석하는 문제 때문에 물었겠지만, 그거야 둘은 보내고 나는 질병계를 내면 된다.
내 말에 나르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시간 되어도 안 나오면 레오랑 엘리아스는 보내야겠어. 일단 해 보자.”
그렇게, 네 시간이 지나고서 그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새벽 여섯 시. 딱 마무리하고 학교로 돌아가기 좋을 시간이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귀족이 왜인지 우리보다 더 핼쑥해진 얼굴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그리고….”
그가 인지 교란 마법을 세게 건 레오와 엘리아스를 보며 똑같이 인사했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저택에는 이런 사례가 나온 적이 없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주말까지 오지 않으시나요?”
“저희는 고통을 덜기 위해 기도해 드릴 뿐, 결국 구마는 그분의 뜻에 달려 있기에 어떤 변고가 있을지 확답드리기 어렵습니다.”
나르케가 차분히 대답했다.
“우선 저는 내일도 올 생각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귀족은 이미 충격받은 탓에 영혼이 저세상에 가 있는 듯했다.
그걸 눈치챘는지 나르케가 이런저런 말로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흠.’
지금까지는 악마라는 게 대체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까, 부마자에게서 검은 마력 비스름한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지.’
그건 구마 예식서에서 읽은 특징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게 비트리올일 가능성은?
그것 역시도 검은 마력 비슷한 것이 아니던가.
비트리올은 점성이 있는 액체로 알려져 있지만, 아인시델은 비트리올을 마력처럼 공기 중에 내뿜었다.
통념과 달리 비트리올도 액체 외의 상태로 내보내는 게 가능한 것이다.
‘또 하나 더.’
리히트호펜이 먹인 약 중에는 ‘마력을 비트리올로 바꾸는’ 약이 있었다.
내게는 그 약이 통하지 않았지만, 레오는 잠깐 약효가 들었지. 그때도 주변 공기가 검게 물들었다.
‘뭐, 구마 예식서에도 나온 특징인 건 변하지 않으니 아직 가설이지만… 조사는 해 봐야겠다.’
나는 귀족을 보며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아, 예, 말씀하시지요. 뭐든 따르겠습니다.”
“희생자들의 특징에 대해 조사해 주십시오.”
“지, 지금보다 더요? 이미 자료는 넘겼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나요?”
“보내신 자료는 인적 사항과 부마 원인으로 의심 가는 행동 정도지요.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나르케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 생각을 파악한 듯했다.
나는 아직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귀족에게 말했다.
“희생자들이 부마 사흘 전까지 어디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물 한 잔도 빠뜨리지 말고 전부 조사해 주십시오.”
* * *
영지에 신력 마법사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죄다 조사하냐는 충격이 스쳤지만, 그래도 협조적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알아보겠다고 답하고 우리를 배웅했다.
“플레로마라. 그러니까 루카스 네 말은 부마된 게 아니고, 비트리올에 중독된 거라는 말이지.”
나르케가 턱을 쓸며 의자를 뒤로 기울였다.
나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나르케를 학생회관 지하로 불러, 내가 세운 가설을 그에게 설명했다.
“그 모든 부마 증세가 비트리올 중독 증세와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일리는 있어. 하지만 통찰 능력을 썼을 때 그런 생각을 해 보지는 못했는데.”
“그래, 나도 그 점이 조금 걸리기는 하더라.”
나르케가 한참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비트리올이 곧 악의 것일지도 모르지. 이렇게 깊이 들어간 문제라면 통찰로 바로 도출하지 못한 게 이상한 일은 아니야.”
“음.”
“한번 네가 말한 방향으로 조사해 보자. 안 그래도 자료도 요청했으니, 오늘이나 내일쯤 받아 볼 수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고 플레로마고 교황청 입장에서는 둘 다 때려잡아야 할 대상이므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헛짓을 하는 건 아니니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럼 이따 교실에서 보자, 루카스.”
나르케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앞발로 인사하는 것에 맛을 들였는지 파이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마침 학교에 정보를 털어 볼 구석이 하나 있었지.’
가서 좀 털어 봐야겠다.
3학년 2분반 교실로 가자, 마침 돌아오고 있던 리히트호펜이 나를 보고 눈썹을 올렸다.
“여기서 보네요.”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선배님.”
리히트호펜이 친구들을 교실에 몰아넣고는 다시 복도로 나왔다.
“뭔데요, 동아리?”
“그럴 리가요. 저 연극부 들어갔습니다.”
“연기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글쎄요. 아무튼, 그걸 물으러 온 건 아닙니다. 자리 좀 옮기죠.”
“그래요.”
리히트호펜은 옥상으로 올라가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차음 마법을 걸고 말했다.
“뭘 물으러 왔을까요?”
“카타콤에서 그쪽이 우리에게 먹인 약 말입니다. 그쪽은 우리에게 마력이 비트리올로 변하는 약을 먹였죠.”
“…하하…. 여기서 그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그래요.”
자경단 로브가 아니라 제국2교육원 로브를 입고서 이런 부적절한 말을 순순히 인정하다니, 굉장히 부조화가 느껴진다.
“어디서 구했습니까? 플레로마에게서 받아 온 건 당연히 알고 있으니, 그것 말고 아는 대로 설명해 주시죠.”
“답해 주면 동아리 들어올 거예요?”
“…….”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그가 손을 내저었다.
“알았어요. 전에, 5,000명이 일 년간 사용할 수 있는 비트리올을 받았다고 했죠? 캡슐 형태로 전달받았고 저는 그중 한 명분을 열어서 반만 썼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편이면 그냥 기억 약만 먹이지 그건 왜 먹인 겁니까?”
“단장님이 제 코어를 공격하시길래.”
의심받았다는 말이군.
아마도 내가 했던 ‘왜 시간을 끄냐’는 질문 탓일 테다.
딱히 미안하다고 할 생각은 없어, 주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예속이 빠졌군요.”
“그래요. 이제 그쪽만 풀어 주면 되네요.”
이 새끼 내가 건 마법을 아직도 안 풀었어?
일부러 약하게 걸었기에 조금만 힘쓰면 풀 수 있다.
단장 것 파괴하는 김에 같이 없애면 됐겠는데 아주 별짓을 다 한다.
“직접 푸시죠. 전에도 말했듯이 그쪽 실력이면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흠… 자기 실력을 모르는 모양인데, 그쪽은 단장님과 다르게 내 마법으로는 안 풀리거든요.”
그래?
‘그럼 그냥 둬야지.’
예속 마법도 그가 무방비 상태니까 걸었지, 마법을 자유롭게 쓰는 상태라면 방어에 가로막혀 걸기 어렵다.
필요할 때 써먹을 일이 생기겠지.
리히트호펜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표정 보니까 안 풀어 줄 생각인가 보네요….”
“나중에. 그럼, 저는 그걸 마셨지만 발동되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그거야 마력이 불안정해지지 않았으니까요. 아까 왜 약을 같이 줬냐고 물었죠? 그 캡슐은 원래 기억을 재생하는 약과 함께 먹이는 약입니다. 그러니 의심을 피하려면 당연히 원래 복용법대로 먹여야겠죠.”
경청하고 있자 리히트호펜이 말을 이었다.
“악몽을 유도해서 마력이 불안정해지는 틈을 노리는 겁니다. 비트리올이 진입할 자리가 생겨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플레로마도 이런 방법으로 신도들에게 비트리올을 준답니까?”
“그건… 잘 모르겠군요. 그쪽에서 우리에게 준 약은 어디까지나 판매용이라고 말한 걸 듣기는 했습니다.”
조금 다른 걸 줬다는 이야기인가.
어쨌든, 혈관으로 직접 비트리올을 넣기도 한다는 걸 아니 이 질문은 우선 패스하겠다.
나는 그 뒤로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노트 한 장을 질문과 답변으로 가득 채우고 나서, 마무리 인사를 꺼냈다.
“이 정도면 됐겠네요. 정보 고맙습니다.”
“그래요. 아, 잠깐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그를 바라봤다.
“마리안 바움 씨는 만났어요?”
“아뇨.”
“주말에는 극단에 가 보세요.”
* * *
평일에라도 가 볼까 했지만, 평일에는 카타콤의 일을 처리하기 바빠 지상에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날 새벽, 우리는 저녁부터 잠을 보충하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구교인 레오는 몰라도 신교인 엘리아스는 굳이 낄 필요 없는데, 기어코 워프하는 중에 쪽잠을 자 가면서까지 우리를 따라왔다.
“너 잠 많구나.”
“많지~ 조금만 나눠 가져가, 루카.”
“네 잠 나눠 가지면 거의 12시간 자겠는데.”
“좋네. 레오 키 따라잡자고.”
잠꼬대 수준으로 아무 말이나 한다.
사실 잠이 많다는 건 소설에서부터 나왔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이곳 귀족은 뭐가 두려운지 성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으로 워프하자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온 귀족이 우리를 반겼다.
“어제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빠르군요.”
“바덴 대공국 정부에 신력을 조금 쓸 줄 아시는 분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는 자료를 넘겼다.
‘…흠.’
이거 좀 특이한데.
일하는 장소나 들른 장소는 왜인지 유사하지만, 겹치는 음식은 딱히 없다.
“먹은 음식의 맛이 평소와 다르게 특이했다고 하는 분은 없었습니까?”
“예, 그런 말은 못 들어 봤네요.”
그렇다면 희생자는 플레로마의 공격을 받은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쉽게 납득되지는 않지만 정말 마귀에 씐 것일지도 모른다.
‘잠깐.’
나는 희생자의 인적 사항을 읽다, 손을 멈췄다.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약을 음료에만 타야 한다는 법은 없지.’
그때, 함께 자료를 들여다보던 나르케와 눈이 마주쳤다.
같은 결론에 도달한 듯했다.